155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트리슈는 완전히 울상이 되어서는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이준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턱을 쥐고 눈을 마주치게 했다.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키스하자.”
그리고 이야기했다.
“흐읏?!”
트리슈는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그와 마주보았다. 커다란 키에 우수에 젖은 눈동자, 그런 그가 어쩐지 욕정에 취한 눈동자로 내려다보고 있다.
아, 안,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남이 보는 곳에서….
그렇게 점차,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에라 모르겠다. 하며 받아들이려던 트리슈는, 곧이어 뭔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넬이 반대편의 벽 뒤에 숨은 채였다.
“자, 잠시만!”
뭔가를 감추려는 듯한 기색에 트리슈는 이준을 밀치고는 넬을 향해 달려갔다. 깜짝 놀란 넬이 뒤로 물러섰으나 그녀는 개의치않고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 네네엘?!”
“뭔가 있었지! 넬! 바른 대로 말해!”
트리슈는 그렇게 물으며 뒤쪽의 이준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서있던 그는 이내 다시 프라이팬 앞으로 다가가 빵을 굽기…. 아니 태우기 시작했다. 불의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처럼.
근육으로 다져진 넓은 등, 거기에 세로로 길게 난 상처까지 이렇게 섹시해보일 줄이야.
아, 아니….
“바른, 대로, 말해애애애애…!!”
“바, 바른 대로 말하겠습니다아아아!”
트리슈의 반 협박에 못 이겨 넬이 항복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네비게이터 소녀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 퀘스트?”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트리슈의 반응은 그러했다.
약간 어이없음.
“네, 아까 새벽에 다들 주무시고 계실 때…. 빛을 쬐시고는 뭔가 이상해지셨어요. 자기도 그렇다는 자각이 있으시긴 한데 주체할 수가 없으시다고….”
“하아, 바보 오빠.”
게임의 영향인 걸까. 그럼 아직까지 재킷을 입고 있는 상태라고? 다양하게 떠오르는 생각에 트리슈는 디멘션 커넥터의 아서리안을 실행 시켰다.
하지만 주변에 잡히는 퀘스트는 없었다.
어쨌든 밤까지 좀 기다려봐야 하려나.
오늘 일정이 빼곡한 상황에서, 트리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음으로 씨익 웃었다.
어쨌든 재미있는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넬?”
“네넬?”
“일단 이거 린슬렛 언니한테는 비밀로 하자.”
“왜, 왜죠?”
“흐흐응~ 그게 더 재미있잖아?”
트리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왜냐하면 오늘 오전에는 린슬렛과 한옥마을에 가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점심부터 저녁까지는 자신과의 도보 산책.
마지막으로 저녁에는 유하 언니와의 명당 온천.
“후, 후후…. 이거 재미, 있겠어…?”
트리슈는 사악하게 웃어보였다.
◇
그리고 물론 미행이다.
“저, 저어…. 시우 양?”
“쉿,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아침에 이준이 했던 대사를 흉내 내며 트리슈는 유하의 입술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유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
“네가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건 싫어.”
“크, 크흠. 서, 설명을 좀 해주세요.”
당황해 헛기침을 한 그녀가 고개를 휙 들어 멀찍이 보이는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트리슈는 비뚤어진 갓끈을 바로하고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이 움직였다.
“앗! 빨리 가요!”
“자, 잠?! 저, 저는 치마가 길어서…!”
“그러니까 내시 복장으로 했으면 좋았잖아요!”
기생 복장을 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꽃무늬가 들어간 삿갓과 틀어 올린 머리, 짙은 화장까지. 트리슈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진한 회색의 치마를 드는 유하를 돌아보았다.
“어, 어떻게 그렇게 해요오…!! 시우 양이야말로 포졸 복장 그대로 입으라고 했으면 안 입었을 거면서!”
“큭!”
반박할 수 없겠군.
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포졸 복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미행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위해 그런 옷을 택하기는 했으나, 그녀는 푸른 도포의 아래에 아침에 입던 짧은 바지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즉, 섹시한 허벅지와 엉덩이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나름의 어레인지였던 것이다.
“후우…. 오늘의 유하가 눈이 부셔서 태양이 두 개 뜬 거라고 생각했어.”
“또, 또 그렇게 준이 아까 했던 말로 말 돌리고! 애초에 대체 왜 저희가 두 사람을 미행해야…!”
“이런, 이런,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유하 언니.”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트리슈는 이내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유하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부끄러운 건지 유하는 어깨를 움츠린 채였다. 그게 또 지켜주고 싶고…. 나만의 마리오네트로 만들고 싶은 그런 충동을 들게 했다.
하지만 트리슈는 냉정했다.
“둘이 저희 없는 틈에 오작교를 건널 수도 있다고요?”
“오, 오작…!!”
“다른 말로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하죠!”
“여, 역사!”
“다른 말로는…!!”
“그, 그만해주세요!”
“…. 이것이 현실이에요. 언니.”
트리슈는 잔혹한 현실을 그녀에게 일렀다.
“물론 언니도 타나 오빠와 가상 세계에서라면 물고(?) 빨고(?) 다 하셨겠지만….”
“아, 으…?!”
“그래도 역시! 지금 오빠는 위험해요!”
그렇게 중얼거린 트리슈는 먼 곳에 있는 이준을 손으로 가리켰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성들의 시선을 이끌며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린슬렛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
아까 전에 만든 커플 팔찌를 끼고!
엄청나게 상쾌한 웃음을 짓고 있다!
“너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얼굴이잖아요!”
“주, 준이 왜 갑자기 저렇게에에에….”
“….”
그건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저렇게 가다가 물레방앗간 같은 게 나온다면 타나 오빠가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
“그리고 둘이서 달로 허니문을 떠나겠죠.”
“그, 그그그그, 그건 안돼요! 허락할 수 없어요!”
“자 그럼, 가시죠! 유하 언니!”
“네! 시우 양!”
그런 식으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앞장서 걷고 있는 이준과 린슬렛을 천천히 미행하기 시작했다.
◇
나는….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지금의 상황은 나를 사지로 밀어 넣는 듯했다. 거기에 내던져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왜….
“티, 티?”
왜 이 녀석은 이렇게 귀엽지?
“왜? 아기 고양이.”
“….”
“그렇게 불러도 될까? 너만 허락해준다면.”
“마, 마음…. 가는 대로….”
얼굴을 붉힌 린슬렛이 입술을 꾹 다물고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녀석이, 조그마한 녀석이 품안에 있는 채였다. 등까지 이르는 금발을 하나로 묶고, 가벼운 데님셔츠에 스키니진이라는 보이시한 스타일.
“저기 린.”
“아, 아까부터 왜 그렇게 불러?”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을 가지고 싶으니까.”
“오, 오그라들잖아…!”
“안 돼.”
“뭐, 뭐?”
“오그라들어서 지금보다 더 조그매지면 널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귀여운 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앞머리에 가려져 있던 이마가 다시금 붉은색으로 물들고 녀석은 더는 말을 잇질 못했다.
귀엽다.
이 녀석은, 정말이지 귀엽다.
“….”
나는 녀석을 빤히 바라본 채로 계속해서 함께 한옥 마을을 거닐었다. 생각대로 즐길 거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커플 팔찌를 맞췄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녀석을 볼 때면 항상 이런 느낌이었다.
대단한 반면 귀여운 일면도 있다.
어떻게 보면 어렸을 적에 흔히 보였던 골목대장 같다는 느낌으로, 남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어른스러운 성격. 하지만 정작 거기에 지쳐 기댈 곳을 찾은 소녀.
내가 그것이 되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느낌이었다.
왜냐면 난 린슬렛을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으니까.
“아, 저기…. 의상대여실이네.”
그렇게 적당히 한 바퀴쯤 돌았을까. 린슬렛이 조금 먼 곳의 간판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고개를 들자 디멘션 커넥터가 의상대여실이라는 메시지를 출력했다. 조금 재미있겠다 싶어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볼까?”
“음…. 이렇게 더운데?”
“그래도 입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나는 가볍게 권했다. 그러자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린슬렛은 이윽고 내 어깨 아래에서 빠져나와 춤을 추는 것처럼 몸을 빙글 돌리며 팔을 잡아당겼다.
“뭐 그럼, 굳이 거절하지 않고?”
“잘 어울릴 거야.”
“…. 역시 오늘 좀 이상해.”
“네 앞에 있으면 언제나 이상해질 것 같단 말이지.”
“그, 그게 더 이상해!”
당황스러운 기세를 날려버리려는 듯 그녀는 앞장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조그마한 소녀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귀엽다는 생각에 활짝 웃었다.
“어서오…!”
의상대여실 안에는 두 명의 점원이 있었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 여성 점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 무슨 촬영…?”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점원이 얼굴을 붉힌 상태에서 나는 린슬렛의 손을 잡고 옆에 서게 했다.
“여자 친구 입을 만한 예쁜 한복 같은 걸.”
“티, 티티?!”
“왜? 린.”
나는 당황해하는 린슬렛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러자니 점원은 홍홍, 하고 웃으며 디멘션 커넥터에 팝업창을 띄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 커플이셨구나! 남자친구분이 골라주시는 것도 너무 좋겠다아~!”
“너, 너무 여자 같은 건 나한테 좀…!”
“여기 중전마마 세트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카탈로그처럼 표시된 각종 세트 중 하나를 골랐다. 단숨에 이어진 선택에 린슬렛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보았다.
“티티이이이?!”
“괜찮아. 어울릴 거야. 린은 예쁘니까.”
“….”
린슬렛의 몸이 굳어졌다. 사실을 말했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활짝 웃었다.
“예쁘니까.”
“어머나아, 깨가 좔좔 흐르네요!”
“하하, 그렇죠? 이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굳어진 린슬렛을 점원들 사이로 떠넘겼다. 당황해 무어라 중얼거렸으나 그녀는 다른 점원들에게 이끌려 탈의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되어 잠깐 진정을 하자….
“으윽….”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어 섰다. 갑자기 정신이 휙,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가 되어 나는 다급하게 퀘스트창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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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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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산속의 유령 2/2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정신을 혼란시키는 유령을 퇴치하세요.
제한 시간 : 해가 진 이후, 동이 틀 때까지.
보상 : 경험치 8,000,000, 기사의 명예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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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여행객은 나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