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장작이 갈라졌다.
“후우….”
먼 곳에 떨어져 있던 이준이 가볍게 도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깨에 걸쳐두었던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몸이 달라붙은 셔츠는 땀에 젖은 채였다.
“무슨 2020년대 맥주 광고 보는 것 같지 않아?”
2층 난간에 올라가있던 트리슈의 감상은 그러했다. 하지만 린슬렛은 대답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장작을 패는 이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흐음.”
그리고 트리슈는 ‘왜 그러는지’를 곧바로 눈치 챘다. 귀에 부착된 린슬렛의 디멘션 커넥터는 아까부터 일을 하느라 빨갛게 달아오른 채였다.
“사진 찍는 거라면 내거 빌려줄까?”
“?! 뭐, 뭣?!”
가볍게 말을 걸자 린슬렛이 깜짝 놀라 벽에서 몸을 뗐다. 트리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 이해한다는 듯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랑에 빠진 소녀란 역시이~.”
“아, 아니거든! 사진 찍고 있던 거 아니거든!”
“에헤이~ 그럼 사진첩 보여줄래?”
“그, 그건 싫어!”
“왜애?”
“…. 어, 음. 내, 내 인권 때문에!”
“….”
인권을 위협받을 만한 사진이 잔뜩 있는 모양이다.
트리슈는 변명을 하려다 오히려 더 큰 오해를 사버린 린슬렛을 짜게 식어서 바라보았다. 하지만 뒤를 이어 그녀는 아무래도 좋다 싶어 크게 기지개를 폈다.
산의 좋은 공기가 폐로 파고들었다.
“으음, 역시 가끔 이렇게 힐링을 해줘야지.”
별장은 풍취가 넘쳐흐르는 곳이었다. 간단하게 벽난로부터 시작해서 해먹이라던가. 넓은 정원, 산책을 할만한 장소도 많은 것이 마음이 절로 편해졌다.
거기에 눈앞에는 멋진 남자가 장작을 패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베디비어랑 발렌타인은?”
무릎을 들어 턱을 괴니 린슬렛이 질문을 던졌다. 트리슈는 눈을 치켜뜨며 두 사람에 대해 떠올렷다.
“호숫가에 산책을 간 모양이던데.”
“…. 둘이 완전 사이좋은데?”
“제발 경찰에 잡혀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베디비어가 선을 지키지 않을 남자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마안, 너무 지키기만 하는 것도 좀.”
그렇게 중얼거리고, 트리슈와 린슬렛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반대편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순수하게 장작 패기에 몰두하는 눈치였다.
“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까부터 계속 패더니 장작은 산더미처럼 쌓인 상태였다. 잘생긴 얼굴을 타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으나 장작을 패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 재킷 안 입고 있는 거 맞지?”
“힘도 좋으셔….”
두 사람은 그런 이준을 조금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트리슈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는 엉덩이를 털며 난간에서 일어섰다.
“그럼, 난 유하 언니나 도와주러 가볼까?”
“아, 저기 트리슈!”
“응? 왜.”
“…. 결국 그 작전이라는 게 뭐야.”
“?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지.”
중얼거린 트리슈는 손을 입으로 가져다댔다.
“타나 오빠아~!”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남자를 크게 불렀다. 다시금 장작을 죽인(?) 그가 고개를 휙 들었다.
“유하 언니가 너무 젖으면 빨래할 때 불편하니까 티셔츠 벗고 하래애!”
그 말에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검은 티셔츠를 벗었다. 근육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린슬렛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고개를 들었다.
“뭐, 뭐뭐뭐뭐뭐뭐, 뭐어엇?!”
“자, 이런 거야.”
“아니 이런 게 뭔데!”
“음, 다음은 린슬렛 언니 하기 나름이라는 거?”
“뭘 하는 건데?!”
“글쎄, 물이라도 가져다준다던가?”
“….”
“그럼 여기는 맡겨두도록 해볼까!”
그러더니 휙,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트리슈.
남겨진 린슬렛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걸 느꼈다.
◇
마지막으로 두었던 장작까지 반으로 갈라졌다.
“흠….”
너무 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놓인 장작더미를 바라보았다. 한 50개쯤 팬 거 같은데 그렇다면 100개 정도?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옆에 있던 외발 수레를 바라보았다.
남는 건 그냥 창고에 넣어두어야겠군.
땀으로 수건을 닦아낸 나는 곧이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변의 경치를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는 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가만히 놔두자.
“티티.”
그렇게 생각하며 장작을 담던 나는, 린슬렛의 목소리를 듣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조그마한 물병을 내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 고마워.”
마침 목이 말랐던 차라 난 거절하지 않았다.
“뭘 이렇게 많이 팼어?”
“크흠, 뭐 하다 보니.”
조그마한 페트를 순식간에 비워낸 나는 가볍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린슬렛의 시선이 약간 멍한 채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린슬렛?”
“어, 음? 아, 그, 그렇구나!”
그런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뒤를 이어 장작이 가득 담긴 수레를 들었다. 그러자 슬쩍 다가온 린슬렛이 내게서 손수레를 빼앗듯 가져갔다.
“창고가 어느 쪽이었지?”
“아, 내가….”
“괜찮아, 괜찮아. 같이 가자!”
그러더니 앞장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깐 굳어져 있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사실 이런 거 좋아하거든!”
“수레 움직이는 거?”
“응! 뭔가 재미있지 않아?”
녀석이 동네에 가끔 보이던 장난꾸러기처럼 해맑게 웃었다. 뭐 나도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재미있긴 하지. 움직이는 거.”
“아, 티티. 마트에서도 카트 끌었엇지?”
“린슬렛이 하고 싶었어?”
“조그음…?”
“그럼 양보해줄 걸 그랬나.”
“아냐! 어차피 요리 재료를 샀어야했을 테니까.”
짓궂게 웃은 린슬렛이 곧이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표정의 변화가 참으로 많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오늘 저녁, 기대해도 좋아. 티티.”
“…. 네?”
이어진 말에 나는 공포를 느꼈다.
“치즈를 넣을 거니까!”
“음, 매운탕에?”
“응, 맛있겠지? 치즈 라면 같은 감각으로.”
“….”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 꺅!”
“린슬렛!”
돌부리에 발이 걸린 린슬렛이 중심을 잃었다. 덜컹거리며 가속해 수레가 앞으로 나아갔고, 린슬렛 역시 그것을 따라 비틀거리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티, 티티이이이이잇?!”
그녀가 비명을 질러댔다.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앞으로 달려 나간 나는 수레가 나무에 충돌하기 직전 린슬렛을 낚아채 옆으로 몸을 던졌다.
“꺅?!”
쿵, 하는 소리.
등에 먹먹한 충격을 느끼며 나는 린슬렛을 끌어안은 채 나무와 충돌했다. 이를 물며 신음이 새나가지 않으려 한 나는, 곧이어 품안에 있는 녀석을 확인했다.
“괜찮냐?”
“으, 으응. 고마워….”
“바보야. 그럴 땐 그냥 수레를 놓으라고.”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하자 린슬렛이 얼굴을 붉혔다.
“미, 미안.”
“아니, 나무라려는 게 아니라….”
근데 좀 이상하다.
품에 등을 대고 있던 린슬렛이, 휙 하고 내 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안겨왔던 것이다. 나무 아래에 누운 상태에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나무라도…. 돼….”
그리고 그런 말을.
“어, 음….”
가슴에 맺혀있던 땀이 식은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린슬렛의 모습이 엄청나게 귀엽다고 생각한 나는 저도 모르게….
바로 그때,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고개를 든 나는 무언가 검은 물체가 머리 위에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이내 거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둑고양이.]
트리슈였다.
그렇다면 저건 카메라라는 말인데, 게임을 켜두지 않은 사람에게는 저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네, 네가 나 하기 나름이라며!”
[그래도 역시 도둑고양이.]
웃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의 뒤를 이어, 카메라가 휙 날아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린슬렛은 나를 휙 돌아보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간 분위기가 어색한 채 우리는 다시 창고로 향했다.
◇
그리고 저녁 시간,
“자아, 티티! 마음껏 먹어!”
“타나 오빠, 트리슈의 요리야!”
커다란 냄비를 들고 온 두 사람이 테이블 앞에 펼쳤다. 그리고 뚜껑을 열자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유하 씨, 고기는 제가 구울 테니 마음껏 드세요.”
“어머, 그래도 될까요?”
“네, 밑 준비 다해주셨으니 이정도야.”
그리고 테라스 쪽에는 천국이 있다. 반으로 자른 드럼통 불판 앞에 나머지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훈훈하게 고기를 굽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저기 얘들아. 나도 고기 좀….”
“으응? 이거 다 먹으면.”
“이걸, 다?”
나는 안색이 창백해지는 걸 느끼며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4~5인용의 커다란 냄비가 두 개. 거기에 가득가득 들어찬 정체모를 무언가에 자연히 압도되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며 팔다리가 떨렸다.
나는 이 감정을 알고 있다. 라이오넬과 가웨인을 눈앞에 동시에 두고 상대한다면 바로 이런 느낌일 터였다.
“얼른 먹어봐. 티티. 치즈 매운탕이야.”
“트리슈는 고추 매운탕으로 해봤어!”
“….”
무슨 훠궈도 아니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옆에 있던 국자로 준비된 두 개의 국그릇에 각각의 요리를 담았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비주얼이군.
각종 해산물들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채 국그릇에 담겼다. 눈이 퀭한 채 우럭인지 뭔지 모를 생선이 죽어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광경.
어쨌든 피할 수는 없겠다.
“자, 잘 먹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눈앞에 있는 국을 한 숟갈 떠서 곧장 입으로 넣었다. 일단 최대한 맛을 느끼지 못하도록 음미하는 게 아니라 마신다는 감각으로.
“….”
하지만 넘어가질 않았다.
국물이 질척거리며 임안에서 휘감겼다. 고민 끝에 나는 그것이 치즈의 맛임을 알아차렸다. 농후한 생선 향과 함께 뒤섞인 그것은 정말이지…. 정말….
“느끼, 해….”
그것이었다.
“뭐, 뭣?!”
린슬렛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뒤를 이어 어떻게든 넘기기 위해 트리슈의 매운탕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크흑?!”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매운 맛이…!!
“타나 오빠, 타나 오빠, 트리슈가 만든 건 맛있어?”
“맵, 잖아?!”
“히익!”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반대로 린슬렛의 것을…!
“느끼, 해…!!”
“티, 티티!”
빠져나오기 힘든 무간지옥이다.
중간에 유하의 중재가 있었는지 재료들은 치즈와 고추가 잔뜩 들어간 걸 제외하면 의외로 평범했지만, 그 재료들의 맛이 엄청나게 강해 다른 맛을 모조리 파묻는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으, 으응? 트리슈 고추 별로 안 넣었는데….”
“나, 나도 평소에 먹는 정도로만 넣었다고?”
“….”
그게 문제잖아. 이 바보들아.
“타, 타나 오빠 너무 맛없으면 안 먹어도 돼.”
“그, 그래 티티. 무리해서….”
“아니, 괜찮아.”
풀이 죽은 두 사람을 향해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역시, 유하의 도움이 있기 때문인지 못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눈앞이 흐릿한 와중에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나를 위해서 만들어준 거니까….”
“티, 티티….”
“타나 오빠….”
그렇게 약간 감동적인 기류가 우리 사이에 감돌 즈음,
“트리슈! 린슬렛! 고기 다 구웠어!”
테라스 바깥에 있던 베디비어가 소리치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향긋하게 풍겨오는 고기와 구운 새우의 냄새….
“지, 지금 갈게!”
“타나 오빠, 다 먹으면 얘기해!”
“….”
두 사람은 휙 바깥으로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쫓던 나는 고기 좀 달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 느끼며 눈앞의 냄비 두 개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정찰 마치고 돌아왔…. 어라, 표정이 왜 그러세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넬이 돌아왔다.
“넬.”
“네넬!”
“고기 좀 가져다주라.”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멍하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