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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49화 (149/321)

149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아까 잠깐 지옥 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트를 끌고 린슬렛과 트리슈의 뒤를 따랐다. 저녁 시간대의 마트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으나, 대부분의 사람이 나보다 키가 작았던 터라 앞서 나간 둘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

역시 라이오넬이나 베디비어가 거인인 거라니까.

“고기는 어떤 걸로 할 거야?”

트리슈는 신이 나 보였다. 정육 코너 앞에 서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아까 전의 침울한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여행의 고기는 삼겹살이 아닐까?”

린슬렛이 말했다. 하나로 묶어내린 금발이 가볍게 흔들렸다.

“껍데기 붙은 거? 안 붙은 거?”

“기름이 많은 게 좋으니 붙은 걸로 하자.”

“그러다 살쪄.”

“…. 그럼 닭 가슴살.”

“헤에, 그걸 구워먹으려고?”

“같은 고긴데 괜찮지 않…. 이익, 어쩌자는 거야!”

“불판이 기름이 빠지는 구조냐 아니냐도 중요하지 않겠어? 그런 의미에서 난 목살.”

“그럼 목살로 하던가.”

“아 근데 역시 맛있는 건 기름이 붙은 부위지.”

“어쩌자는 거야!”

“으음, 글쎄. 트리슈는 먹어도 살이 가슴으로만 가는 체질이라서 괜찮지만….”

“여기서 죽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건?”

“아, 타나 오빠는 어떻게 할래?”

싸늘한 기운을 내뿜는 린슬렛을 뒤로 한 채 트리슈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린슬렛 역시. 아까부터 물건을 고를 때마다 이런 식이었던 터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냥 둘 다 섞어서….”

“여억시 그러는 게 좋겠지? 린슬렛 언니는 닭 가슴살만 먹고, 타나 오빠랑 나는 삼겹살에 목살!”

“아니, 왜?!”

“기름 진 건 살찐다면서…?”

“나, 나도 살 찌면 가슴으로 가거든!”

“영양 보충이 많이 필요해 보이네.”

“이이익…!”

“트리슈.”

“응? 왜애?”

적당히 하라는 듯 목소리를 내자 트리슈가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또 언제부터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걸까 싶었으나, 나는 일단 수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린슬렛.”

“왜, 왜 불러?”

“먹고 싶은 걸로 사도 괜찮아.”

“….”

린슬렛의 얼굴이 돌연 빨갛게 물들었다.

“오, 오빠! 트리슈는!”

“너도 좋을 대로 해.”

“우으…. 트리슈한테는 묘하게 차가운 느낌인데.”

그렇게 볼멘소리를 중얼거린 직후, 트리슈는 어째선지 싱긋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이 즐겁다는 듯 들떠서 다시 린슬렛의 곁으로 가는 그녀.

“그래서, 뭐 살 거야?”

“삼겹살하고 목살하고 섞어서 사자며!”

“역시 그게 좋겠지이?”

어쩐지 자매 같다는 인상이었다.

어쨌든 트리슈가 고기를 사고, 나에게 휙 데이터 덩어리를 던졌다. 그걸 잡아서 쥐자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고 나는 적당히 날짜와 시간을 입력했다. 이렇게 해두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지역에 있는 마트의 체인점에서 물건을 찾아갈 수 있는…. 뭐 간단하게 말해 편리한 서비스였다.

“그럼, 다음은 뭐 사면 되지?”

“과자랑 술?”

“안주는 그냥 만들어 먹는 게 낫지 않겠어?”

“…. 너 요리할 줄 알아?”

“물론! 린슬렛 언니는?”

“나, 나는…. 으음. 보통이려나?”

린슬렛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섞였다. 잠깐 머뭇거리던 그녀가 이내 내 쪽을 조심스럽게 돌아보았다.

“티, 티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아, 그거 좋겠네. 타나 오빠. 뭐 먹을래?”

“그냥 너희가 먹고 싶은 걸로….”

““안 돼.””

두 사람의 대답은 단호했다.

술안주라.

딱히 술 같은 걸 좋아하지도 않고, 거기에 밤에는 따로 좀 할 퀘스트가 있었던 터라 그쪽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가만히 고민을 하던 나는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찌개 종류면 괜찮지 않을까.”

“아 그럼…. 된장찌개?”

“바보야! 술에 무슨 된장찌개야!”

“그럼 린슬렛 언니는 뭐가 좋을 것 같아?”

“음, 역시 매운탕이려나?”

“할 줄 알아?”

“머, 먹어본 적이라면 있는데….”

“해물 들어간 거지? 음. 오뎅 같은 거 넣으면 되나?”

“조개랑, 오징어랑…. 문어랑….”

“뭐 야채 같은 것도 들어가던데.”

“파를 넣으면 될 거야.”

“호오, 그럼 당근이랑 감자도 넣을까? 색깔 예쁘게.”

“아니 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매운탕에는 쑥갓이랑 그런 게 들어가지 않나.

“오빠는 조용히 해.”

하지만 트리슈는 단호했다.

“그, 그래도 티티의 의견 또한….”

린슬렛이 당황해 중얼거렸고 트리슈는 빙긋 웃으며 입을 가렸다.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렸다는 듯이.

“헤에, 트리슈는 ‘어필’할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어, 어필…!”

무슨 소리야, 대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과 달리 여성 두 분께서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뭔가 협의를 마쳤다. 대체 뭐에 어필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티티.”

린슬렛이 진지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어, 응.”

“환상적인 맛을 느끼게 해줄게.”

“트리슈의 맛도 기대해. 오빠.”

“….”

그리고 두 사람은 갈라졌다.

진지한 얼굴로 식품 코너와 통조림 코너 쪽으로 달려가는 린슬렛과 트리슈. 허망하게 손을 뻗은 나는 대체 왜 매운탕에 그런 게 들어가는 거냐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두 개를 끓이면 대체 어디 사는 누가 먹는다는 걸까.

설마 나는 아니겠지.

“주인니임!”

멍하니 카트를 잡고 서있던 바로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휙 돌린 나는 넬이 해맑게 웃고 있는 넬이 이쪽으로 날아드는 걸 발견했다.

“생선을 봤어요!”

“그, 그렇구나.”

어린애처럼 신나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 대답했다. 내게 날아들어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한 넬이 이내 주변을 맴돌며 말을 이었다.

“인간은 정말 잔혹하군요!”

“….”

“죽은 시체를 얼음 위에 놓아서 진열하다니!”

즐거운 거야, 아니면 혐오하는 거야.

“넬, 그렇게 먼저 가버리면….”

그리고 유하 역시 돌아왔다. 가서 새우를 구워먹는 게 어떻겠냐며 갔던 그녀였기에 나는 슬쩍 웃어보였다.

“어떻게 됐어?”

“으음, 가격이 좀 세기는 했는데…. 뭐 괜찮겠죠?”

그녀가 즐거운 듯이 웃자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앞치마 차림이 아닌, 재킷에 머리를 묶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 여행이니까.”

“으음, 그래도 경비까지 다 대주시는 건….”

“그, 그때 괌 알바한 거 대가니까!”

“그런, 가요?”

“응! 그거야!”

나는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어, 괌에 간 것도 아니고 거기에서 한 알바도 아니었지만 그렇다 치자.

“타나.”

그렇게 생각하며 있자니 다른 곳으로 갔던 베디비어와 발렌타인이 돌아왔다. 양손 가득 과자를 든 베디비어가 카트에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다, 다 먹을 수 있겠냐?”

“뭐 이런 기회니까요. 계약금 느낌으로. 발렌타인님이 평소에 드시고 싶으시던 걸 살짝….”

“아, 아저씨…!”

당황한 발렌타인이 얼굴을 붉히며 베디비어의 옷자락을 슬쩍 쥐고 당겼다. 아까는 관계가 ‘평소’와 같다더니 이럴 땐 또 본모습이 나오고 마는 거군.

“괜찮죠?”

“저어…. 준우 씨?”

그런 이야기를 들은 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네, 유하 씨.”

“그, 왜 준을 타나…. 라고?”

“일종의 별명 같은 거죠.”

“으음…. 그러고 보니 둘이 어디서 만났다고 했죠?”

“술집이었죠.”

거짓말에 능숙하다. 이 자식.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준, 언제 또 그런 곳을….”

“리, 린슬렛이 가자고 해서….”

나는 처음 쥬브나일 포르노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그때 진짜 마실 줄도 모르는 술에 왕창 취해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었지.

“린슬렛, 은 다연 씨로군요.”

“그리고 저는 베디비어, 이쪽은 발렌타인입니다.”

“뭐, 뭔가 외국사람 같은 이름이네요.”

외국사람 이름이니까.

“아 그럼 저도 하나 지어볼까요?”

이어진 유하의 말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민에 빠진 그녀를 보았다.

“자, 잠깐 그 전에.”

“네?”

“그…. 유하. 혹시 매운탕에 뭐 들어가는지 알아?”

“음, 일단은 생선이죠. 그리고 무랑 쑥갓이랑 콩나물…. 미나리, 양파. 양념은 고추장에 액젓….”

“아, 아니 그 정도면 됐어.”

확실한 건 역시 당근과 파는 들어가지 않는다.

괜찮으려나….

나는 불안한 기색으로 린슬렛과 트리슈가 사라진 지점을 바라보았다.

간단하게 푸드 코트에서 저녁을 먹고, 여행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한 뒤 그날의 모임은 끝났다.

반대편 방향이었기에 일찌감치 나머지 일행과 헤어진 린슬렛은 집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응, 응 그래서 다 같이 좀 놀다오려고.”

요새 걱정하는 게 늘었다.

[엄마는 너 나갈 때 되게 신나 보이기에 그 남자애랑 단 둘이 가는 줄 알았는데.]

“그, 그게에…. 이따 들어가서 이야기해!”

당황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며 린슬렛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눈앞에 통화 종료라는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보며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조금 지치는 걸 느꼈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으나, 트리슈는 생각 외로 난적이었다. 린슬렛은 이런 상황에 대한 면역이 없는 스스로가 조금 어린애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상대는 완전 여유롭고,

“하아.”

다른 상대는 완전 거유였다.

아니 왜 이런 괴상한 말장난을….

그런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지는 걸 느끼며 린슬렛은 신호등 앞에 섰다. 완연한 밤에 잠긴 거리, 차량에서 나는 불빛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같은 입장’에 서있기 때문일까.

트리슈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경쟁심을 느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리고 다음 순간,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린슬렛은 움찔 몸이 굳어지는 걸 느끼고는 이내 삐걱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트리, 슈….”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저쪽에서.”

그리고 트리슈가 가리키는 곳은,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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