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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46화 (146/321)

146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오랜만에 한껏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조그마한 밥상을 사이에 둔 채 나와 유하는 마주 앉은 채였다. 최근에 거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나 오늘은 푹 쉬고 일어났다. 덕분에 새벽의 일과를 하고 난 나는 오랜만에 급한 걱정 없이 식탁에 앉게 되었다.

“준, 이것 좀 먹어봐요.”

부드럽게 웃고 있는 유하가 맞은편에 있다. 조그마한 방안,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끼며 그녀가 집어 밥 위에 놓아주는 고기를 먹었다.

“음.”

유하의 불고기는 최고란 말이지.

“괌에서는 좀 어땠나요?”

하지만 이내 그 여유는 부서졌다.

“….”

“정말로 산호와 진주가 가득한 대양이었나요?”

“어, 음.”

“먹을 건 잘 맞았어요? 물갈이는 안하고?”

“그, 그랬, 지.”

맛있는 밥에서 갑자기 텁텁한 맛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유하의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는 넬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

“모델 일은 어떤 거였어요? 잡지 같은 건가요? 언제 발매가 된다고 하나요?”

“그, 여름쯤에?”

나는 적당히 괌에서의 촬영을 상상하며 변명을 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사진 같은 건 안 찍어왔나요?”

“촤, 촬영이 워낙 바빠서 말이야.”

“그렇군요….”

유하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입술은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호를 그린 채였지만.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유하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가고, 싶었어?”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저, 저는 가게 일도 있고 해서…. 음, 어쩔 수 없으니까요.”

“….”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다니.

“가자, 여행.”

“아, 안돼요! 며칠씩 가게 비우면 다음 달 월세라던가…. 생활비라던가…. 이것저것….”

침울하게 이야기한 유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나는 무력한 자신을 느꼈다.

하긴 원래부터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아니었으니…. 기사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라도 해볼까.

“유하 누나.”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왜요?”

“여유가 생기면 꼭 가자, 여행.”

“….”

“응?”

“물론이에요.”

내 말에 유하가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그 모습을 감상하던 나는, 뒤를 이어 눈앞에 팝업창 하나가 떠오르는 걸 확인했다.

전화였다.

“…?”

우정현 씨로부터.

“이걸 전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우정현 씨는 책상 위에 포장된 무언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거대한 유리창 앞에 선 그녀가 머그컵에 담긴 음료를 홀짝이며 날 바라보았다.

“…?”

조심스럽게 뜯어보니 손수건이었다.

하와이안 프린팅이 된 조그마한 손수건. 나는 그것을 앞뒤로 번갈아 바라보고는 살짝 어이가 없어져 눈앞의 우정현 씨와 눈을 마주쳤다.

웬일로 날 이런 곳으로 부르시나 했더니.

“저어…. 회장님?”

“왜 그러시죠?”

“이건 왜….”

“물론, 위장용 선물입니다만.”

위장용?

“이준 씨가 괌에 다녀오시면서 유하 씨의 선물을 안 사올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 습니까?”

“오늘 아침에 전용 비행기로 공수해온 물건입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잠깐볼멘소리를 중얼거리던 나는, 생각을 바꿔 그냥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금 포장지 속에 손수건을 넣고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넬 양에게도.”

그러자니 그녀는 내 옆에 있던 넬을 보고는 디멘션 커넥터를 매만졌다. 평소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입을 다물던 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걸 선물로.”

“네넬?”

정현 씨가 데이터 덩어리를 쥐고는 가볍게 이쪽으로 보냈다. 허공을 떠 날아든 그것을 넬이 받아들었고 거품 같은 게 부글거리며 새하얀 머리칼 위에 일었다. 그리고 검정색 해골 모양의 머리핀이 생겨났다.

“와, 와아…. 감사합니다!”

거울을 꺼내 머리핀을 확인해보는 넬의 반응은, 얼떨떨하다는 모습이었다. 뒤쪽에서 그걸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이준 씨가 엇나가지 않도록 지켜봐주고 있으니까요.”

“그런, 가요.”

“헤헤, 주인님이 엇나가지 않도록 지켜보겠습니다!”

가볍게 브이 사인을 그린 넬은 다시금 내 뒤로 돌아왔다. 어쨌든 어울리긴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금 정현 씨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이런 일로 부르신 건 아닐 테고….”

“호오, 슬슬 풍모가 잡혀가시는군요.”

“풍모?”

“네, 좀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머쓱해져 볼을 긁었다. 그런 나를 바라본 정현 씨는 가볍게 웃으며 사무실 한쪽에, 칸막이로 가려진 장소로 날 안내했다. 한참이나 해골 머리핀을 보고 있던 넬이 뒤늦게 우리를 따라왔다.

소파와 낮은 테이블, 응접실 같은 방이었다. 새삼 그녀가 기업 회장이라는 걸 머릿속에 떠올린 나는 소파의 맞은편에 앉아 떨떠름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음료는 어떤 것으로?”

“아 제가….”

왠지 일어나야할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간단한 일이니.”

“보통 그런 건 비서를 시키지 않나요…?”

나는 커피 머신의 앞에 서있는 우정현 씨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 밑에서 자른 단정한 머리, 검정색의 바지 정장. 도무지 회장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옆의 비서 A가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오늘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갈 예정이므로.”

나는 대충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파악했다.

“예, 그렇습니다.”

중얼거린 그녀가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그걸 감사히 받아든 나는 원두의 향을 맡으며 앞에 내려놓았다.

“자, 그럼….”

뭔가 일을 맡기려는 걸까.

“네.”

“여행이라도 다녀오시지 않겠습니까?”

“네?”

“여행 말입니다.”

“….”

“뭔가 문제라도?”

“아뇨, 전 당연히 지난번의 싸움에 대해서 물어보시거나 새로운 퀘스트를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 너무 냉혈한으로 보는 건 아니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 정현 씨.

“바로 맞추셨군요.”

그리고 그 뒤에서 기업 회장의 얼굴이 나왔다.

“또 어떤?”

“별 건 아닙니다. 원래 계약하고는 동 떨어져 있으므로 원하신다면 추가 수당을 지급할 의향도 있습니다.”

“아 뭐 그건….”

가볍게 볼을 긁적거리며 거절하려던 나는, 이내 그 위에 있는 앞머리를 매만졌다. 정현 씨는 미소를 지은 채 그런 나를 침착하게 기다려주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전히 요령이 없으시군요.”

“…. 이게 왜요?”

“보통은 받을 테니까요?”

“회장님하고는 동등한 관계로 있고 싶어서.”

“어른을 놀리는 소년이로군요. 이준 씨는.”

“타나토스로서 그렇다는 거죠.”

“후후….”

내 이야기에 정현 씨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는 뭔가 먼 곳을 바라보듯 왼손의 반지 자국을 매만졌다. 나는 거기에 궁금증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남편 분은?”

“…. 조금 개인적인 질문이 아닌지?”

“죄, 죄송합니다.”

“아뇨 뭐, 저야말로 한껏 그런 쪽으로 파고들었으니.”

가볍게 웃은 정현 씨가 이내 셔츠 위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가느다란 체인 목걸이, 그 끝에 반지 하나가 꿰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가요.”

어두운 정현 씨의 얼굴에 나는 입이 다물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리고 뒤를 이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장난입니다.”

“…. 네?”

“살아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없지만.”

“네에…?”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되묻자 정현 씨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었다. 입가에 슬쩍 지는 주름과는 달리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

“당신이 있는 그 세계 말입니다.”

“아, 그렇게 보시는군요.”

게임 쪽 세계라는 건가.

“그래서 홧김에 이혼해버렸죠.”

“…. 쿨하시네요.”

“이 개인적인 퀘스트 또한, 그와 연관이 있죠.”

“그 남편 분을 찾기 위한?”

“뭐, 지금까지는 허탕이었습니다만.”

“근데 이혼하셨다면서 찾으시면 어쩌시려고…?”

“죽여야죠.”

“넵?”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 죄가 있으므로.”

그렇게 이야기한 정현 씨가 약간은 잔혹한, 하지만 즐겁다는 듯 웃었다. 나는 약간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이준 씨. 이 나이 많은 아줌마의 남자 이야기를 들어서 이려나…?”

하지만 그 화살은 이내 내 쪽으로 돌아왔다.

“아, 음. 그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후, 너무 진지한 건 이준 씨의 나쁜 버릇이군요.”

“그런, 가요?”

스스로가 나름대로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거기에 매료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당히 여유를 갖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

그 말에 나는 입이 다물어지는 걸 느꼈다.

진지하다라….

거기에 여유가 없고, 무모하며, 뭐 기타 등등. 그런 세간의 평가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그런 내 성격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조언을 할 때가 있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선에서.

거기에 조금은 격차를 느꼈다.

어른과 아이 정도의.

“그럼 대가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현 씨가 미소를 지었다.

“저희 가게 하루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카페, 말인가요?”

하지만 이내 의아함으로 뒤바뀌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걸까.

“넵, 가게.”

하지만 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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