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아론다이트라고…?”
“그래.”
“기사 랜슬롯의 검, 아론다이트 말이냐?”
어이가 없다는 듯 우아랑이 물었다. 하지만 린슬렛은 팔을 감싸고 있는 방패를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패 끄트머리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일어났다.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던 우아랑은 기색이 심상치 않자 먼저부터 세 자루의 검을 하나로 합쳤다.
길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검이 길어졌다. 자루 끝에 길게 끈 장식이 달린 환도였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길어진 검을 쥐며 우아랑은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 그 호흡이 채, 땅에 닿기도 전 도약했다.
톰슨가젤처럼 잘 단련된 하반신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발목까지 뒤덮는 코트가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힘차게 펄럭이며, 우아랑은 아론다이트를 내린 채 서있는 린슬렛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검은, 사선으로 린슬렛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손에 감각이 전혀 없었다.
“뭣…?!”
우아랑은 베어넘긴 자세 그대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슬렛의 모습이 물에 비친 것처럼 일렁거렸다.
“참 아이러닉하게도, 역시 호수…. 더라고.”
그리고 그 뒤에 서있던 린슬렛은, 자조하듯 자신의 팔목에 감긴 방패를 내려다보았다. 라쿠스라는 이름을 다시금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큭, 장난 같은 짓을…!”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힌 우아랑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막아낸 린슬렛은 뒤를 이어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너희야말로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여우 모양을 한 가면 아래의 눈이 진지한 얼굴로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아론다이트의 내에서 규칙적인 형태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나로서는 말이지! 가만히 앉아 수상쩍은 꿍꿍이나 벌이는 너희들보다 저 사람이 더 진지하다고 생각하거든!”
검이 튕겨졌다. 우아랑의 팔이 높이 치솟았다.
조금 진지한 부분이 지나칠 때도 있지만…!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린슬렛은 일갈하며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잔잔한 호수에 퍼지는 파장처럼, 원을 그리며 푸른 검기가 우아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팔이 튕겨진 상태에서 빠른 판단을 내린 우아랑은 곧바로 몸을 뒤로 젖히며 검기를 위로 통과 시켰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퍼진 파장은 분명히 세계를 베고 지나갔다.
삐걱거리며 나무들이 연달아 베어져 넘어갔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잠깐 어이가 없어 바라보던 우아랑은 분노를 담아 고개를 돌렸다.
“랜슬, 롯…!!”
하지만 다음 순간,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와 같은 검기가 수십 개, 린슬렛의 몸에 둘러진 채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푸른 호수 속에서 마치 자신이 여신이라도 된 것처럼 당당하게 서있던 린슬렛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화나게 한 각오는 되어있겠지? 우아랑 대위.”
그리고 아론다이트가 휘둘러졌다.
◇
갑작스레 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맞은편에 있는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녀석이 두르고 있는 검은 망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뇌가 본능적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건 위험하다고.
마치 달궈진 용광로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무뚝뚝하게 나를 바라보며 서있는 라이오넬은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당황하는 기색을 필사적으로 감추는 나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순식간에 접근해왔다.
“젠장!”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스파다를 휘둘렀다. 하지만 펄럭이는 망토는 검이 닿는 순간 딱딱하게 경화되며 견고한 벽을 형성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크게 숨을 쉬었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금세 갈증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거기에 대응했다. 라이오넬에게 압도되지 않도록 고개를 푹 숙이며 파고들었다.
주먹이 머리 위를 스쳤다.
“역시…. 그리 나왔군.”
코끝이 마주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이를 악 물고는 녀석의 빈 복부에 스파다를 찔러 넣었다.
확실하게 손에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다.”
라이오넬은 망토로 몸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복부에 박힌 스파다가 거기에 감춰졌다. 불길한 감각에 나는 서둘러 스파다를 빼내려 힘을 주었다.
“무슨, 짓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루 부분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몇 번이고 라이오넬을 걷어차며 어떻게 해서든 검을 빼내려 애썼다.
그리고 뽑혔다.
“큭…!!”
칼날이 녹아 부러진 채로.
“땀으로 범벅이군.”
복부에 박힌 나머지 파편을 본 라이오넬이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것처럼 녹아내린 그것이 피부에 그대로 들러붙었다.
열기를 내는 종류의 스킬인가?
“망자, 소환….”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과 대응책을 떠올릴 시간이.
나는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된 걸 느끼며 뼈로 이루어진 짐승을 소환해 날렸다. 하지만 소환된 순간부터 녹기 시작한 그것은 라이오넬의 곁에 다다르자 제대로 된 형태를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나 또한 전력을 다해 상대하겠다. 사자여.”
반쯤 녹다 만 뼈대를 녀석이 귀찮다는 듯이 쳐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금 격투가 벌어졌다.
문제는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뜨겁게 불타오르는 태양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접근을 한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시야를 타고 땀이 흘렀다.
기본적으로 녀석은 레슬러였다.
잡고, 또 잡으려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망치로 때리는 듯한 ‘잽’을 끼워 넣어 나를 혼란시켰다.
물론 나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좀 더 빠르게.
뻗어져 오는 팔을 쳐내고 주먹을 휘둘러 나는 계속해서 녀석의 턱에 꽂아 넣었다. 이런 게 통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휩싸인 채였음에도 수단이 없었다.
녀석은 무적이었다.
무적이 아니었음에도 무적이었다.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뭐지? 방어력이 떨어진다는 건가? 아니면 줄곧 이런 상태라는 건가?
그래서, 이 열기 속에서도 멀쩡하다는 건가!
“하아아아앗!!”
기합을 내지르며 나는 라이오넬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 상태에서 굳어진 녀석이 곧이어 뻗어진 내 팔을 양손으로 쥐었다.
이걸 기다렸다…!
순식간에 매를 소환, 뼈 조각이 공중에서 모이며 라이오넬의 팔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물론 강한 열기에 조그마한 그것은 버텨내지 못하고 단숨에 녹아내려,
“…?!”
라이오넬의 팔목에 달라붙었다.
마치 수갑처럼.
당황한 건지 녀석이 그대로 멍하니 굳어졌다. 더욱이 안쪽으로 파고든 나는, 녀석의 멱살을 쥐고 허리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등이 치익 불타는 것이 느껴졌다.
“좀비, 자식…!!”
그리고 넘겼다.
거대한 몸뚱어리를 내던져, 반쯤 녹아내리다시피한 밴에 처박았다. 등이 녹아내리는 감각과 함께 나는 숨을 몰아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
녀석의 바이크 슈트의 앞이 뜯겨진 채였다. 그리고 밴에 처박힌 채 라이오넬은 그것을 움켜쥐었다.
땀이 흘러내렸다.
녀석의 얼굴에서.
뭐지? 지금 이 상황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멍해져 라이오넬의 상태를 살폈다. 녹아내린 밴의 형태가 변하며 마치 뾰족한 옥좌처럼 뒤바뀌었다. 나는 다시금 희미한 빛을 보았다.
몸을 앞으로 내달렸다.
추스르고 있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주먹을 내리 꽂았다. 올라타 턱을 걷어차고 뾰족하게 녹아내린 밴의 잔해를 부러뜨려 손에 쥐었다.
“무적이 아니었군…?”
그리고 베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했다.
“큭!”
묶인 양손을 들어 올린 라이오넬이 그대로 날 끌어안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힌 것을 느낀 나는 동그랗게 떴고 이내 엄청난 열기가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망토가 몸을 감싼 것이었다.
“…!! 라이, 오넬!!”
“역시, 싸움에 능숙하군.”
녀석의 목소리는 다시 여유를 되찾은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사자.”
“커헉?!”
팔이 꾸욱 조여들었다.
나는 거대한 열기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뼈가 으스러지는 게 느껴지며 정신이 순간적으로 멀어졌다. 머릿속의 심전도기가 삐이, 하고 죽었다.
“결국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채, 돌아가는군.”
“…!”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머리를 잡고 뒤흔들었다.
“그래서 순응하라 일렀을 터인데.”
“그, 건….”
성대가 뜨거워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질 못했다. 나는 녀석의 품안에서 익어가며 점차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디멘션 커넥터가 각종 경고창을 내보냈다.
이길 수 없나.
이 녀석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가.
싸울 이유가 있고, 망설이지 않는 이 녀석을….
나는….
“엿이나, 먹어…!”
입술을 세게 짓이기듯 깨물었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필사적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순응하라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의 안면을 붙잡았다.
왜냐면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거든…!”
화면 구석에서 스킬창이 빛나기 시작했다.
라이오넬의 면상을 잡은 손이 치익, 하고 타들어가며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단숨에 이해했다.
“근본 승계…!”
그리고 왼쪽 어깻죽지의 방패가 사라졌다.
형태가 뒤바뀌며 어깨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트리슈의 카메라가 되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녹인 쇳물 속에 처박히란 말이지…!”
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라이오넬과 내 주변을 맴돌던 카메라들이 빠른 속도로 ‘망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금세 녹아내리면서도 갖가지 형태를 이룬 망자들은 내 뇌가 이끄느 대로 라이오넬을 향해 달려들었다.
“윽…?!”
녀석이 처음으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투견 하나가 목덜미를 물고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들러붙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점차 셀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라이오넬을 새까만 어둠 속으로 내몰았다.
목을 붙잡고 있던 손이 굳어졌다.
“이거, 놓으시지…!!”
나는 그렇게 외치며 필사적으로 힘을 주어 녀석의 품속에서 빠져나왔다. 박차고 뒤로 휙 날아 바닥에 착지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케헥, 큭….”
대미지는 심각했다.
손이 새빨갛게 물들어 나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연이어 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가 빠른 속도로 망자들을 ‘찾아내’ 만들었고, 그것들은 모조리 라이오넬에게 달려들어 움직임을 막아냈다.
“타나, 토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대로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온몸이 굳어진 와중에 멜팅 케이프는 시뻘겋게 물들어 열을 발산했다. 이런 트리슈의 힘조차 녀석을 막아두기엔 버겁다는 생각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녹아 달라붙은 밴의 파편은 아직도 뾰족하게 날이 선 상태였다.
“라이오넬….”
나는 그리고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피로 물든 시야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건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녀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이겼다.”
그리고 가슴에, 파편을 들이댔다.
피투성이에, 온몸은 화상으로 인해 그을린 상태에서도 나는 녀석을 향해 그렇게 선언했다. 씨익 웃으며 얼굴을 바라보자 라이오넬은 우뚝 선 상태에서 멈췄다.
“알아챈 건가.”
“그래.”
녀석은 무적이 아니다.
재킷이 찢겨져 피부가 드러난 시점에서 감각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내가 복부에 찔러 넣었던 스파다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멱살을 쥐고 던졌을 때 옷은 확실히….”
뜯어졌지.
그래서 그게 회복되는 시간동안 자신의 스킬인 멜팅 케이프의 강한 열기에 노출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네 가슴을 베어내면 어떻게 될까?”
“….”
“회복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견뎌낼 수 있나?”
그리고 멜팅 케이프는 사라졌다.
거대한 대검이 발밑에 박혔다. 숨을 몰아쉬고 서있던 나는, 이내 곧바로 검을 찔러 넣으려고 했다. 뒤를 이어 푸욱,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
주륵, 입에서 피가 흘렀다.
“아, 이거…. 좀 늦었네.”
땡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파편이 떨어졌다.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이네, 이준.”
“…!”
붉은 머리에 흰색 코트. 가웨인이 서있었다.
“한 편의 영화 같았어. 멋진 싸움이었지.”
“너, 이, 자….”
“하지만 현실에 그런 건 필요 없거든.”
활짝 웃은 녀석이 뒤를 이어 검을 쑤욱 뽑아들었다. 나는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
========== 작품 후기 ==========
다음 화면 챕터 3도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