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라이오넬의 대검을 피해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큭!”
그렇다고 해서 상대하기 쉬운 건 아니었지만…!!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대검이 내리꽂혔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것을 피한 나는 바닥에 꽂힌 대검이 파편을 만들어 내는 걸 보며 어깨를 들었다.
콘크리트 파편이 산탄처럼 날아들었다. 그걸 막아내니 쉴 틈도 없이 라이오넬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당하지는 않았다…!
소환된 망자가 충격을 가까스로 줄여주었다. 거기에 린슬렛의 방패를 겹친 나는 뒤쪽으로 나가떨어지며 방어력이 위험 상태까지 떨어졌음을 확인했다.
“커헉…! 큭….”
나는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전에 복부를 얻어맞은 충격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싸늘하게 한기가 몰려들었다.
한 방 남았다고 보면 되려나.
우습고도 비참한 이야기지만 그러했다. 내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그리고 어떤 상황에 사용해야할지 알 수 없는 망령 신체도 더하자면 두 번이 되려나? 그래봤자 최악의 상황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몸에 한계가 찾아온 모양이로군.”
“아직…. 쌩쌩한데?”
라이오넬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정면으로 노려보며,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그런 말과는 달리 몸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뼈마디가 산산이 울어댔고 현기증마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왜 이제 와서 영어를 쓰시는 건지….”
그래서 시간을 벌 필요성을 느꼈다.
“나의 의지가, 우습지도 않은 번역기에 의해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가 않아서다.”
“….”
진지해 빠진 녀석이로군.
“한 가지 물어도 되겠나?”
돌연 녀석이 자리에 멈춰 섰다.
“뭐지?”
“네가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다.”
그리고 녀석은 대검을 땅에 꽂았다. 무릎이 굽혀지려는 걸 버텨낸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라이오넬을 노려보았다. 바이크 헬멧이 좌우로 열리며 검은 눈동자가 똑바로 날 쳐다보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
약간 충격적인데, 이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인가?”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이라고 해두면 될까.”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군.”
“….”
왜 죄다 내 거짓말에 속지 않는 거지.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벌일 리가 없으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도망쳤겠지. 하지만 너는 이곳에 남았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라고 했지? 누굴 위해서?”
그 짧은 사이에 간파를 했다는 건가.
“도망치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무언가를 기다리기 위한 싸움이다. 무척 궁금하군. 이유가 무엇일지.”
“…. 내가 대답할 것 같나?”
“같은 사자로서 묻는 거다.”
“아니야. 난 사자가 아니야.”
사자(死者)인 거지.
고개를 내저은 나는 곧장 스파다를 뽑아들고 라이오넬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세워둔 검의 뒤로 숨어 휘두르는 검을 막아냈다.
뭔가, 희미하게 빛이 보인 기분이었다.
“하아아아앗!!”
그 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어깨로 대검을 들이받자 녀석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덕분에 거리가 벌어졌다.
녀석이 원하는 거리가.
“망령, 신체….”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다시금 돌진했다. 예상대로 바닥에 눕혀두었던 검을 든 녀석이 나를 향해 그것을 찔러 넣었다.
푸욱, 하는 근섬유가 찢어지는 소리.
“큭…!”
기분이 나빠져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멈춰 섰다.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아도 될 것 같은 대검의 끝에 무표정한 얼굴의 라이오넬이 보였다.
“무슨….”
그리고 거기에 의아한 기색이 감돌았고, 나는 대검 사이를 손으로 꾹 쥔 상태에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불쾌한 소리와 함께 몸이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배를 꿰뚫린 상태에서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는 녀석이 팔에 힘을 주는 순간 어깻죽지의 방패를 정면으로 쭈욱 내밀었다.
“가디언 서핑.”
“…?!”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대검을 꿰뚫은 복부가 걸레짝이 되며 나는 라이오넬을 어깨로 들이받고 함께 뒤쪽으로 날아갔다.
정확히 위치를 봐둔 그곳으로.
“타나…!!”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과 나는 밴의 뒷좌석에 처박혔다. 매캐하게 먼지가 일며 충돌을 겪은 밴이 삐그덕 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라이오넬에게 팔이 붙잡혔다.
하지만 달려든 망자가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다. 나는 잡히지 않은 다른 팔을 들어 녀석의 얼굴을 후려쳤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몸의 반응은 존재했으나 얼굴은 계속해서 무뚝뚝한 채였다. 나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 녀석의 모습에 질리는 걸 느끼며 스파다를 들었다.
“커헉?!”
하지만 다음 순간, 차량이 덜컹거리며 크게 기울었다. 운전석 쪽으로 나가떨어진 나는 유리창에 등을 처박고는 사이드 브레이크에 복부를 찔렸다. 하지만 역시 통증은 전부 흡수되어 단지 놀란 것뿐이었다.
라이오넬은 그 와중에도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지긋지긋한, 자식…!”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친 나는 유리창을 박차기 위해 발을 디디고 그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몸이 굳어졌다.
밴은 언덕을 굴러 시가지를 향해 반쯤 부서지며 폭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도로로 접어드는 끝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치고 있는,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순간 몸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나는 본능에 의거해 몸을 움직였다. 과속 방지턱에 올라선 차량이 후웅, 하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도로 끝에 있던 여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나는 유리창을 걷어차 박살내며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윽…!!”
차의 앞 범퍼를 박차고 앞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웅크린 채 있는 여자를 잡아 감싸 안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밴이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괘, 괜찮아요?”
그리고 몇 번이고 구른 끝에 가드 레일에 어깨를 박으며 멈춰선 나는 여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물었다. 반쯤 정신이 없이 몸을 일으켜 세운 여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꺄악…?!”
“아, 아니 전 이상한 사람…. 이지만.”
“아니, 뒤!!”
그런 외침에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처박힌 이후에도 밴은 속도를 멈추지 않고 회전하며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굴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빠져나갈 시간은, 없다…!
“큭!”
나는 이를 악 물며 여자를 감싸는 형태로 가드 레일을 잡고 등을 세웠다. 온몸이 부서지기 직전이었음에도 각오를 다지고 충격을 대비했다.
“꺄아아아악!!”
투콰앙, 하는 폭음.
하지만 충격은….
“뭐, 야?”
찾아오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든 나는 뒤쪽에 서있는 기둥의 모습에 가드 레일에서 손을 뗐다. 아니 그건 기둥이 아니었다. 그것에 지극히 가깝기는 했지만.
라이오넬이 서있었다.
달려드는 밴을 어깨로 막아내며.
“라이오넬….”
내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묻자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넌 사자다.”
“아니 넌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냐…?”
“어울리지도 않는 짓 말란 말이다. 타나토스.”
“뭐…?”
묵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이 고물상에서도 안 살 것 같은 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금 나를, 그리고 뒤쪽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괜찮습니까. 여성 분.”
무척이나 젠틀한 목소리다.
“아, 으…. 저 죄송한데 영어는 잘.”
“…. 괜찮냐고 물어보는데요.”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것처럼 싸우고 있지 않았나. 우리. 근데 왜 갑자기 친절하게 번역을.
“할 킬러즈의 라이오넬에게 연락을 주신다면, 상처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기꺼이 하겠습니다.”
“….”
이런 면모가 있었군.
잠깐 당황해 서있자니 라이오넬이 날 바라보았다.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뒤쪽의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꼬우면 전화하래요.”
“네, 네?!”
“할 킬러즈로.”
그렇게 짧게 요약을 한 나는 다시금 라이오넬과 눈을 마주쳤다. 코피를 쓰윽 닦아낸 녀석이 이윽고 가까이 다가왔다. 옆의 여성을 생각한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역시, 어울리지 않는군.”
그리고 라이오넬은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무슨 소리를….”
“너는 하이에나의 무리에 있을 녀석이 아니야. 무리에서 약한 이를 보호하며 이끄는 게 네 역할이다.”
“….”
“할 킬러즈로 와라. 타나토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나는 어이가 없어져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지금 자신들이 하는 짓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게임을 유지하는 게, 네놈의 정의인 거냐?”
“그렇다.”
“어이가 없군.”
“그렇기 때문에 네 정의를 물었던 거다. 타나토스.”
얼굴은 진지했다.
진한 흑빛의 피부는 아직도 평소와 다름없이 멀쩡했다. 코피는 닦였고 그 자국만이 남은 상태였다.
“닥쳐.”
그리고 나는 분노로 몸을 물들였다.
“내 앞에서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지 마.”
“…. 아쉽군.”
그렇게 중얼거린 녀석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금, 팔을 쭈욱 뻗어 대검을 꺼내들었다. 묵직한 그것을 보며 나는 여자와의 거리가 떨어진 걸 확인했다.
빛이 좀 더 명확해졌다.
스파다를 뽑아든 녀석과 나는 산 비탈길의 아래에 대치했다. 박살난 밴에서 위험할 정도로 연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나는, 라이오넬과 마주보았다.
몸은 솔직하게 말해서 한계였다.
망령 신체의 쿨타임은 이제 막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 수는 없다.
그런 의지를 되새기며 나는 라이오넬에게 달려들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 뭐지?”
서로 검을 마주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설마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너,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
“….”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검의 위쪽으로 망자를 날려 라이오넬이 슬쩍 허리를 숙인 틈을 타 나는 대검을 타고 올라가 높이 뛰어올랐다.
그 얼굴은 창백한 채였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거지?!”
머리 위로 높게 스파다를 치켜든 나는 라이오넬의 목을 노리고 검을 내리 찍었다. 하지만 무게로 인해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음에도 녀석은 능숙하게 검을 비틀어 스파다를 흘려냈다. 목 끝을 스친 검이 바닥에 꽂혔다.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재킷은 기본적으로 운동 능력을 극한까지 상승 시키지만 신진대사를 마비시키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분이 넘게 검을 붕붕 휘둘러댄 라이오넬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눈썰미가 좋군.”
그리고 녀석이 나를 튕겨냈다.
“크흑!”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등 근육만으로…?!
나 역시 나름대로 체중 80kg이 넘어가는 근육질이었다. 그런데 그걸, 단순히 힘만으로 이렇게 멀리…!!
“좋다, 사자여.”
그리고 라이오넬이 천천히 일어섰다. 검을 들어 어깨에 짊어진 녀석은 목덜미의 상처를 별거 아니라는 듯 바라보았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음에도.
스킬인가? 아니면 재킷 자체의 능력?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해 대미지를 반감시킨다는 걸까? 아니면 그저 뇌에 가는 통각을 차단 시켜서 전투에만 지장이 없다는 걸까?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망령 신체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스킬이었다.
“간파를 당한 이상, 더 보이는 것도 실례겠지.”
고개를 끄덕인 녀석은 검을 등에 꽂았다. 그리고 이내, 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녹아내려 라이오넬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기다랗게 바닥에 끌리는 망토의 형태를.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위풍당당하게 서있던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멜팅 케이프.”
“….”
나는 녀석이 ‘기사 라이오넬’임을 상기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