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나름대로의 근거는 있다.
대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게임을 끝내지 말아야할.
포 무탐바라는, 짐바브웨의 대통령이었던 로버트 무가베의 독재 정권이, 독재자의 자연사로 끝난 2020년에 태어났다. 가웨인이 아는 라이오넬에 대한 정보는 일단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 외에는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의 짐바브웨는 무너지기 직전의 나라였다.
초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나라의 경제는 파탄이 났고, 후계자로서의 정통성 관련 싸움으로 정권 내에 피바람이 불었다. 거기에 아프리카의 무더운 날씨까지 겹쳐 한동안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가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확실한 건 포 무탐바라는 그 과정 속에서 군인이 되었고, 불길에 휩싸이는 나라를 보며 신께 빌었다.
구해달라고.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포 무탐바라의 눈앞에 신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편이 낫겠지.”
가끔씩 가웨인은 엘레노어를 ‘세계 최초의 인공 지능 테러리스트’라는 이름 대신, 간단하고 쉽게 이런 이름으로 부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신이라고.
단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형태의 신’은 최초이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건 아닐까. 하지만 포 무탐바라에게 있어 엘레노어는 분명한 신이었다. 나라에 비를 내리고, 각종 정치권의 싸움을 종식시키며 나라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위대한 신.
그렇게 짐바브웨는 신정(神政)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 거짓말을 하는 제사장은 없다.
그런 상황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보면 라이오넬에게 있어 지금의 싸움은, 신에게 보여드리기 위한 뭐 일종의 명예로운 시험 같은 거겠지.
가웨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간부들이 모여 있는 지휘통제실 안은 현재, 어둠에 물든 상태였다.
“영상 송출합니다.”
드론이 위치에 도착한 건지, 사병의 말에 뒤를 이어 눈앞에 스크린이 떠올랐다. 제각기 불안해하던 간부들은 송출되는 영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가웨인은 휘파람을 불었지만.
“3차원으로 돌려.”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자 눈앞의 스크린이 변화하며 지통실의 넓은 책상 위로 펼쳐졌다. 주변의 지형이 표시되며 타나토스와 라이오넬이 대치해선 모습이 드러났다. 그 주변에는 린슬렛과 제압당한 사병 둘까지.
“저건…. 랜슬롯이 아닌지?”
간부 중 하나가 옆에 서있는 린슬렛을 알아보고는 물었다. 타나토스와 함께 의지로 가득 찬 그녀의 모습에, 만약 비비안이 보았다면 분명 원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웨인은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분명 랜슬롯입니다.”
“거기에 트리스탄까지…?”
간부들 사이에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기색이 감돌았다. 그레일에 대해 모르는 그들에게는 타나토스의 주변에 기사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거겠지.
정정하던지 아니면 편하게 너스레를 떤다던지 그런 식으로 고칠 마음은 들지 않았던 터라 가웨인은 담배를 빼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불을 붙였다.
우아랑은 미리 경계 근무로 돌려두었던 터라 방해가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짜증나는 여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다른 간부들도 몇몇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전투는 시작되었다.
강해졌군.
모두들 입을 다물고 지켜보는 가운데, 가웨인은 능숙하게 라이오넬을 상대하는 타나토스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강해졌다기보다 요령이 늘었다. 그가 지닌 재킷의 실질적인 능력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라이오넬에게 맞섰다.
“이 친구…. 잡아넣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전투를 지켜보던 중, 간부 하나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물었다. 가웨인은 고개를 들었다. 타나토스를 바라보는 간부의 얼굴에서는 불안한 기색이 느껴졌다.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그러려나요?”
“네, 그냥 두었다가는 성가셔질 것 같은데요.”
그렇게 중얼거린 사내는, 가웨인으로부터 비롯된 소위 ‘원탁 일파’가 할 킬러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있던 간부였다. 즉 그는, 아서리안이나 할 킬러즈의 진정한 목적은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라이오넬을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네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만. 경험상 이런 친구는 오랫동안 활개를 치게 두면 위험해서.”
“어떤 점에서요?”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습니까?”
“….”
그건 좀 신선한 의견인데.
“아무것도 없다뇨오~.”
잠깐 당황하고 있자니 반대편에서 담배를 꼬나문 여자간부가 요염하게 다리를 꼬았다. 금발을 가볍게 어깨에서 찰랑이며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핸섬하잖아?”
“…. 헥터?”
가웨인은 약간 어이가 없어져 반대편의 헥터를 바라보았다. 할 킬러즈에 속한 기사인 그녀는 피식 웃으며 화면 속에 서있는 타나토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골격만 봐도 눈에 들어오잖아요? 분명 가면 벗으면 어마어마한 핸섬 가이일 걸?”
“지금 장난을 칠 때가….”
우려를 표시했던 간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말로. 트리스탄도, 랜슬롯도 단숨에 반했을 걸? 저런 위험해 보이는 남자는 인기가 많은 법이라.”
“하지만 헥터.”
가웨인은 이런 문제로 다투는 것조차 한심해지는 걸 느끼며 헥터를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웃고 있다. 남자를 홀리는, 더욱이 여성임을 이용하는 듯한 눈이었다.
“베디비어 후보자 있잖아. 그 친구는 남잔데?”
“What…?”
허를 찔린 건지 헥터가 당황해 목소리를 냈다.
“어, 음. 다른 성적 지향? 아하하~.”
스스로 이야기를 하고 너스레를 떤 헥터가 입을 다물었다. 약간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간부들은 입을 다물고 다시금 전투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타나토스는 대체 어떤 술수를 부려 트리스탄과 김준우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걸까.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은 국가 조직인 할 킬러즈와 척을 진다는 것인데.
어째서 김준우는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개인 정보가 다 노출된 상황이라, 할 킬러즈에 협력하지 않는 이상 탈출해봤자 수배가 될 텐데도.
“흐음….”
가웨인은 느긋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담배를 껐다.
◇
트리슈는 하수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허억, 헉….”
좁고 오수가 흐르는 길을 따라서 달리는 감각은 무척이나 비참해, 스스로가 범죄자 취급을 받음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함선’을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이곳에 쥬브나일 포르노를 만드는 것을 꺼려 했다.
“큭!”
부축을 받아 달리던 준우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트리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는 그를 돌아보았다. 나무토막 같은 오른팔을 움켜쥔 채 그는 이를 악물고 제대로 서질 못했다.
“아저, 씨…!!”
“윽!”
발렌타인이 다가가 상태를 살폈으나 그는 팔이 만져질 때마다 괴로워하며 몸을 떨었다. 그런 모습에 트리슈는 불길한 예감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걸 느꼈다.
“아픈, 거야?!”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달려들어 발렌타인의 옆에 앉아 팔을 살폈다. 미세하게 무언가를 갉는 듯한 소리가 팔 안쪽에서부터 계속되어 트리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픈 거냐고!”
“….”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야! 다람쥐! 당장 나와!”
반쯤 이성을 잃은 트리슈의 외침에, 두터운 나무처럼 된 팔 안에서 고르바초프가 코를 킁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스운 설정이다. 모두 사람을 기만하기 위한 이야기다. 그런 생각에 트리슈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인가? 여자.”
“팔이 아파야 정상인 거야?!”
“당연하지 않나. 새 팔을 만드는 건데. 그리고 남는 재료로 내가 왕국의 인간들에게 혁명의….”
“그딴 시덥잖은 소리는 됐고!”
“낫과 망치는 가져왔나? 그게 있으면 바로 끝날 텐데.”
고르바초프는 허허 웃으며 트리슈와 발렌타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약간 다급함을 느낀 발렌타인은 곧바로 아이템창에서 망치를 꺼내 건네주었다.
하지만 트리슈는 그러지 않았다.
“트리슈….”
심각한 분위기에 옆에 있던 발렌타인조차 압도되어 무어라 말을 하질 못했다. 입을 다물고 있던 트리슈는 고개를 휙 돌려 그녀의 멱살을 쥐고 당겼다.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증오를 담아 소리쳤다.
“그만해, 트리슈.”
“날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마!”
옆에서 준우가 제지했으나 트리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마음이 부서져, 나무토막처럼 떨어져나가는 걸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다.
이 바보 같은 오빠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발렌타인은 알았을 터였다. 김준우가 팔에서 크나큰 통증을 느낄 것이라고.
왜냐면 항상 곁에 있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모른 척 했던 건데!”
이것은 증오스러운 짓거리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엘레노어에게.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에게.
김준우라는 남자가 20년이 넘는 인생 속에서 겨우 찾아낸 소중한 꿈이 있다. 하지만 그 꿈은, 김시우에 의해 산산조각 나 부서지고 무너졌다.
트리스탄 퀘스트로 인해.
유명해지고 싶다는 헛된 욕망으로 인해.
준우의 손의 감각은 오랜 시간 동안 희미해졌다 일상생활은 그렇다 치더라도 베이스 기타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그리고 게임은,
“이, 빌어먹을….”
게임은….
“오빠가 다시 느끼게 한 감각이 고작 고통인 거냐고!”
“…. 트리슈.”
감정이 복받쳐 바닥을 내리치는 트리슈를 보고 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에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한껏 벗어던진 채 트리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발렌타인은….
“트리, 슈.”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아 고개를 들질 못했다.
단 한순간 감정을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껏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자신들을 대해왔는지. 아니 알아챈 것이 아니었다. 모른 척하던 사실이 눈앞에 곧바로 드러나자 상기한 것에 가까웠다.
“왜, 당신이….”
발렌타인은 비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결국 같은 상황에 그녀와 자신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트리슈는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그것은 발렌타인이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행동이었다. 이타적이고, 전혀 화를 내지 않는 남자에게.
화를 내라고.
미워하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남자는 그럴 성격이 못되기에.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옆에 있는 것뿐이었다.
“왜, 당신이냐니?!”
하지만 그런 발렌타인의 말을 단단히 오해한 트리슈는 감정을 참아내지 못하고 다시금 소리쳤다. 준우는 무거운 팔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하듯 뻗었다.
“저, 트리슈…. 일단, 퀘스트를….”
“싫어.”
하지만 트리슈의 대답은 단호했다.
인상을 찌푸린 채 눈앞의 준우를 바라본 그녀는 눈이 그렁그렁해져서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은 채 있는 준우와 발렌타인을 내려다보았다.
“오빠. 왜 베디비어가 되려는 거야?”
“….”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곤란할 때면 항상 회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배려에 타인이 이유를 물을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준우가 베디비어가 되려는 것은 결국에는 타나토스의 부탁을 받아 돕기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왔다.
트리슈는 그게 싫은 것이었다.
“베디비어가 되어서는 안 돼.”
“어째서?”
“이 게임은 기사의 삶을 유린하니까.”
그렇기에 준우는 외팔이 기사가 되는 것이다.
“베디비어가 되지 마. 오빠.”
트리슈는 단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로는 캐릭터가 적당히 모순된 면이 없잖아 있도록 하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라이오넬을 정말 좋아합니다.
왜냐면 타나토스와의 싸움이 가웨인의 말처럼 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