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풀숲을 헤치고 앞으로 뛰쳐나가 가드레일을 밟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러자 좁은 비탈길 형태의 포장도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한참 속도를 높이고 있는 밴이.
“넬.”
“준비 해두었습니다!”
“망자 소환.”
넬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스킬을 시전 했다. 커브를 돌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지점에 맞춰 넬이 미리 색적해둔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차가 곧바로 거기에 부딪쳤다. 기우뚱, 하는 차체의 뒤에 올라탄 나는 다시금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발에 힘을 주고 섰다.
“내려. 빨리.”
그러자 어느덧 가까이 접근해온 린슬렛이 가볍게 운전석의 문을 뜯어냈다. 일반인인 건지 방석복을 갖추어 입은 사내 둘이 차에서 내렸다. 나는 곧장 모르가나를 이용해 두 사람의 디멘션 커넥터를 무력화시켰다.
일단 작전 자체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시야가 넓은 트리슈가 주변의 감시를 맡는 사이, 나머지 인원이 밴을 무력화시킨 뒤 경로를 통해 탈출. 그 과정에서 퀘스트를 수행해 준우의 신체 능력을 정상적인 수준까지 되돌릴 것. 이후 은신처로 대피까지.
“지금 밴을 세웠어.”
[문을 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발렌타인이 가까이 다가왔고 나는 스파다를 뽑고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져 있던 밴의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대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정확히는 둘.
한쪽은 준우였고, 다른 한쪽은 라이오넬이었다.
발렌타인이 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라이오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의 반응을 기다렸다. 양쪽 벽에 설치된 의자에 준우를 감시하듯 앉아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깨에 대검을 걸친 채 기다렸다는 듯한 눈으로.
[그쪽도 물론 바보는 아니란 말이군요.]
“호위가 빈약한 시점에서 눈치를 챘다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장 강한 패 하나를 둘 줄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쪽에 서있던 발렌타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수갑이 채워진 채로 있는 빼빼로에게 달려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걸 허락하지 않고,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몸을 웅크린 채 괴물처럼 길을 가로 막았다.
자 일단, 시간을 벌어야할 ‘이유’는 생긴 셈인데.
“타나토스님….”
잠깐 대치가 이어지던 중, 준우가 피로한 기색이 엿보이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훤해 보이는데.”
“칭찬, 이십니까?”
물론 아니다.
나는 어설프게 웃는 준우를 보며 감정을 정돈하려 했다. 오랫동안 감옥에서 굴려진 건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얼굴은 평소의 두 배까지 부푼 상태였다. 그렇게 상태를 확인하고 애써 숨을 고른 나는 그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라이오넬과 눈을 마주쳤다.
“…. 왔군. 약속대로의 사자.”
“네놈의 기대대로 말이지.”
내가 중얼거리자 고개를 끄덕인 라이오넬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준우의 손에 채워진 수갑 사이의 사슬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우지끈, 하는 소리.
수갑이 부서졌다.
나는 라이오넬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녀석은 끊어낸 수갑의 잔해를 부스스 털어버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다. 비겁하지는.”
“네 목적은 게임을 끝내지 않는 거라면서?”
“목적의 이전, 수단. 전사로서의 긍지. 중하다.”
“….”
아주, 알 수 없는 녀석이군.
“5분의 유예. 정리정돈.”
“내려, 빼빼로.”
그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나는 준우를 향해 중얼거렸다. 녀석은 라이오넬을 힐끔 바라보고는 천천히 밴에서 내렸다. 상처가 있는지 비틀거리며 무너지려는 녀석을 발렌타인이 부축했다.
“아저씨…!”
“발렌타인님….”
반쯤 이성을 잃은 발렌타인에게 기대어 준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을 정리한 듯 모드레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탈출 루트를 변경하겠습니다. 포인트 델타에서….]
“그럴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네?]
“너희들은 먼저 빠져나가.”
“티티…?!”
그런 내 이야기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린슬렛이 밴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차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있는 라이오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의지를 담아 녀석을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트리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돕는다는 게 이런 거였어? 타나 오빠.]
“요령이 없어서 말이지.”
[…. 하, 알았어. 지금 그쪽으로 갈게.]
“대답해, 티티!!”
“난 여기서 시간을 벌겠어. 그 사이에 탈출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당황해 멱살까지 쥐는 린슬렛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나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아니…! 어떻게 걱정을…!”
[다 같이 탈출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과 함께 모드레드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에 나는 적당히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뭐, 개인적으로 이 녀석과 승부를 내고 싶어서.”
거기에 눈앞의 남자는 그런 게 통할 상대도 아니었다.
[바보 같은 이유입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인가?”
[혐오스럽군요.]
모드레드의 대답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쓰게 웃었다. 라이오넬로부터 도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나는 확실하게 시간을 벌어두고 싶었다. 아예 추적이 나에게만 집중되도록.
왜냐하면 트리슈는 준우가 베디비어가 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오빠가 자신과 같은 기사가 되는 걸.
왜냐면 그녀는 기사가 불행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지만 준우는 나를 위해 베디비어가 되려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관계된 사람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시간을 벌기로 마음을 정했다.
두 사람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
“너도 가, 린슬렛.”
“정말 그런 이유에서야?”
“물론, 이 멀대하고는 결판을 내야하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린슬렛은 나를 힘껏 노려보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여전히 못하네, 거짓말.”
“….”
나는 거기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주변에 감시하는 듯한 기미는 없어. 지금이라면 바로 탈출해도 괜찮을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낸 트리슈가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엉망이 된 준우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애써 웃는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타나 오빠, 잡히면 안 돼.”
“너는 왜…!!”
여유롭게 대답하는 트리슈의 모습에 린슬렛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트리슈는 그런 린슬렛을 힐끗 보고는 이내 몸을 돌려 준우를 부축했다.
“저 사람 거짓말에는 속아줄 수밖에 없잖아?”
“타나, 님….”
“괜찮아, 빼빼로. 네 몸이나 걱정하라고.”
준우의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발렌타인까지 약간의 걱정을 담아 나를 돌아보고, 세 사람은 이내 허공으로 뛰어올라 멀리 사라졌다. 그 궤적은 눈으로 좇던 나는 그때까지도 린슬렛이 앞에 서있자게 입을 열었다.
“린슬렛 너도….”
“나도 남을 거야.”
“위험해.”
“너야말로 위험하다고! 멍청아!”
“커헉?!”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흥분한 린슬렛은 밴 안쪽에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너 내가 지켜볼 거야! 정정당당하게 승부해!”
“…. 암사자.”
그런 모습에 라이오넬의 반응은 지극히 명료했다.
“? 뭐, 뭐라는 거야?”
“너보고 암사자라는데.”
그러고 보니 린슬렛은 번역기가 없지.
“뭐엇?!”
“좋다. 신부로서.”
“아주 일등 신붓감이라고….”
“뭐, 뭐뭐뭐뭐뭐뭐, 뭐엇?!”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린슬렛이 뒤로 물러서며 당황해 팔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통증이 약간 가셔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무릎을 탁탁 털어내며 안쪽에 있던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린슬렛은 싸움에 관여하지 않아.”
“린슬렛은 이다. 기사 랜슬롯?”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이오넬은 육중하고 단단해 보이는 몸을 움직여 스스로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웅장하게 밴에서 내렸다. 그 무게로 인해 슬쩍 내려앉아있던 밴이 다시 올라섰다.
“…. 티티.”
그 거대한 덩치에 트리슈는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
“지지 마.”
“그래.”
걱정하는 기색이 강해졌다. 그만큼 라이오넬의 모습은 압도적인 전사의 위용을 띈 채였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키에 근육질의 몸. 그리고 특유의 대검까지.
좁은 비탈길. 린슬렛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질문. 존재하다. 한 가지.”
발밑에 검을 꽂아둔 라이오넬은, 그런 질문을 던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쪽이 유리해졌기에 나는 딱히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너의 이유.”
이유? 싸우는 이유를 말하는 건가?
“말했잖아. 난 이 게임을….”
“그것이 아닌, 할 수 있는 이유.”
“뭐?”
“싸울 수 있는 이유.”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자니 길게 한숨을 내쉰 라이오넬이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네가 싸울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은 거다.”
그리고 제대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이 영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어서 나는 눈썹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싸울 수 있는 이유라고?”
이쪽도 마찬가지로 영어를 써서 대답.
“그렇다. 왜냐하면…. 넌 전사의 피를 타고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거다.”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네가 이전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서리안을 현실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지.”
“….”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가상의 벽을 부수고 침범해 들어오는 이 게임이 싫은 거다.
“그렇다면 너는 실제로도 벨 수 있다는 말이군.”
그리고 라이오넬은 곧장 결론을 내렸다.
“뭐?”
되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한동안 두터운 입술을 꾹 다문 채 나를 노려보았다.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가? 타나토스.”
“글쎄.”
나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사자의 피가 흐르지 않는데도 사자의 심장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절대 얕잡아볼 수 없는 상대다.”
“애초의 그 사자의 심장이라는 건 뭔데?”
“내장 깊숙한 곳에 박힌 의지로 인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를 말하는 거다.”
“…. 틀렸어.”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빈정거리듯 중얼거렸다.
“아주 잘못 봤군. 나는 사자 따위가 아니야.”
그리고 입을 놀렸다.
“사자(死者)인 거지.”
영어로 말을 한 것이기에 나는 이 표현의 참된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될 것이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들었다.
알려줄 필요는 없다.
명확하게 대답할 이유도 없다.
나는 거짓말을 못하기에.
그런 식으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너와는 달리, 난 네가 싸우는 이유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나라를 위해 싸우니 아니면 사자의 심장이니 전사니 뭐니. 나에게는 전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이다.”
“그런가. 타나토스.”
“하지만 방해하게 두지는 않겠어.”
나는 이 게임을 끝낸다.
스스로 동경하던 기사인 갤러해드의 이름을 빌려.
지금은 거기에, 트리슈를 위해 시간을 번다는 개인적인 이유를 덧붙여….
“라이오넬!!”
나는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