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모드레드로부터 작전에 대한 개요를 전달받고, 유하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힘을 주어 케이크를 굽는 바람에 한동안 티 파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역시 다들 그다지 신나게 먹고 떠드는 기색은 아니었고, 용기를 전해 받은 정도랄까.
“다들 잘 돌아갔어요?”
“응.”
해가 짧아 뉘엿뉘엿 석양이 넘어갈 쯤, 세 사람을 근처 역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치우고 있던 유하가 빙긋 웃었다.
“괜한 짓은 아닌가 싶네요.”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어.”
아무래도 분위기가 무거움을 유하 역시도 어림짐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때문에 슬슬 가봐야겠다는 이야기에 저녁까지는 권유하지 않은 거겠지.
“다들 긴장이 풀렸을 거야.”
“뭐 중요한 일이라도 앞두고 있나 봐요?”
“…. 게, 게임이야! 게임.”
잠깐 머뭇거리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거짓말까지는 아니니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니 유하가 슬쩍 한숨을 내쉬고는 웃었다.
“어린애들이라니까.”
“두 살밖에 차이 안 나잖아.”
“채영 양은 아직 중학생이라면서요?”
“아, 응.”
“그렇게 어린데도 말하는 게 예의바르고 무척이나 어른스럽던데요? 착한 아이 같아요.”
“그건 다른 두 녀석들하고 비교해서 하는 말이야?”
나는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크, 크흠…. 구, 굳이 그렇지는….”
슬쩍 얼굴을 붉힌 유하가 깨끗하게 테이블을 훔친 행주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유하의 어시스트(?)로 인해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긴 했으나 린슬렛과 트리슈는 여전히 나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것이다.
“음, 준?”
그리고 돌아서 나온 그녀가 조심스럽게 날 불렀다. 근처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넬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누구랑 사귀는 거예요?”
“뭐…?”
어쩐지 등골이 삐쭉 스는 기분이었다.
“그, 다연 씨랑 시우 양 중에서.”
“….”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묻는 유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티를 내고 있음에도 어쩐지 불안해 보였던 것이다.
“아, 아직은…. 그 누구와도 사귀는 건 아닌데.”
“아직은?”
유하가 반응을 보인 건 그쪽이었다.
“으, 으음. 두 사람 다 나쁜 관계는 아니랄까.”
하지만 게임에 대한 걸 제외하고서는 그다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였다. 주다…. 아니 린슬렛과 트리슈 두 사람 모두 어느 선을 그어두는 듯했으니.
거기다 트리슈는 사실, 어제 밤부터 시작된 거라.
아니 시작됐다니….
“하아.”
이, 이것도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는 편이 좋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유하를 바라보았다.
“저, 유하.”
“네?”
“그…. 유하는 나한테 언제 화가 제일 많이 나?”
“이렇게 여자를 데려올 때요?”
“….”
죄송, 죄송합니다.
“아, 아니 그! 으, 러니까아…. 음.”
“그럼 준부터 말해보는 게 어때요?”
고민을 하고 있자니 유하 쪽에서 먼저 물꼬를 틀듯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제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화가 가장 많이 나나요?”
“딱, 히?”
솔직하게 대답했으나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린 유하가 이내 허리에 양 손을 올리고는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진짜로요?”
“응, 내가 유하한테 화날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
유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마안~.”
“?”
그리고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제가 갑작스레 결혼을 한다면?”
“죽일 거야.”
“아이 참, 자살은 안 된다고요?”
“…?”
“아, 이해 못했네요.”
무슨 소리지.
“어쨌든, 무슨 일 때문에 그래요?”
상황을 환기시키려는 요량인지 유하는 바로 옆에 있던 에스프레소 머신을 켰다. 10년을 넘게 썼으나 잘 손질되어 반짝이는 강철의 기계가 떨리며 작동을 시작했다.
“뭔가 고민이라도 있는 건지?”
“고민이랄 것…. 까지야 있군.”
“이 누나한테 다 털어놓아요.”
슬쩍 들뜬 기색이었다.
역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카페가 왁자지껄해 또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덕이려나. 나는 대학을 다니던 3년 전의 유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잔에 떠오르느 에스프레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도 적당히 이런 느낌이었지.
좀 더 밝고 경쾌했지만.
“뭐어…. 트리슈가 오빠랑 좀 다퉜다더라고.”
“저런, 언제요?”
“1년 넘었다고 들었는데.”
“…. 준?”
“응?”
“보통 그런 건 의절이라고 불러요.”
“그, 그런가?”
“네, 의절.”
“아니 의절이란 말은 보통 부모 자식 간에….”
“아~아뇨. 의절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의. 절.”
“네.”
의절이군요.
나는 단호한 유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뭐 어쨌든 유하가 의절이라고 하니 맞는 말이겠지…. 하고 적당히 생각하며 나는 그녀가 건네주는 조그마한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받아들었다.
“문제가 심각하군요.”
“그렇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준우는 독립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께는 가끔 얼굴을 비춘다고는 하지만 트리슈는 그때마다 집에 들어가질 않았다고 했던가.
“우리 때는 어땠나요?”
“…?”
왜 갑자기 또 이쪽으로 방향 선회를.
“준하고 저하고 어렸을 적에는 좀 다퉜던 거 같은데.”
“유하 ‘누나’가 내 햄 빼앗아 먹었잖아.”
“후후, 그랬었죠?”
“…. 고등학생 때도 맨날 내 자전거 훔쳐타고 학교에 갔으면서. 그리고 돌려받지 못했지.”
아니 돌려받긴 했다. 자전거였던 잔해를.
“아 그건 어쩔 수 없었다고요? 준이 타는 자전거가 기어가 좀 더 많아서 빠르고 좋았으니까.”
“…. 그 날 이후로 내 자전거는 없어졌지.”
“어머나, 제걸 대신 드렸잖아요?”
“분홍색 자전거를 어떻게 타라고!”
나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분홍색에, 흰색에, 웬 괴상한 여성스러운 레이스 무늬와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였다. 지금도 지각을 할 뻔했을 때 그걸 타고 학교에 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수치심까지 합쳐서.
“후후후, 미안해요. 제가 어렸을 땐 철이 없었죠.”
“요새도 가끔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고는 목이 타는 감각에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훌쩍 마셨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웃는 유하…. 와 옆에 있던 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
“음, 아, 아뇨. 두 분 옛날이야기 하시는 건 처음 봐서…. 뭐랄까. 신기하네요!”
그런가.
의도적으로 꺼린 건 아니었지만, 의식하게 되자 나는 거기에 대해 무의식중에 피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좀 그럴 수도 있었겠다.
왜냐하면 좋은 기억의 끝에 파멸이 있으니까.
에스콰이어에 의해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었던 과거가.
그리고 그걸 지켜내지 못한 갤러해드의 절망이.
유하의 고통이 섞인 기다림이.
“….”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나요?”
유하가 웃고 있었으니까.
“유하 ‘누나’가 매번 괴롭혀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어머, 준은 제가 매번 그런 것처럼….”
“핫하, 어디 변명해보시지.”
“…. 주인님이 소리 내서 웃으시다니.”
다시금 신기하다는 듯 넬이 중얼거렸다.
◇
저녁을 먹고 씻자 금세 잘 시간이었다.
“후우….”
허리 뒤쪽이 뻐근해 오랜만에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한껏 좁은 욕조에 시루떡마냥 엉겨붙어있던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진짜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몸을 녹여내(?) 추욱 늘어졌다.
“오늘은 푹 쉬실 수 있겠네요?”
디멘션 커넥터 안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넬이 이야기했다. 나는 어깨를 풀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 털썩 엎어졌다. 드로워즈 한 장 차림으로.
약간 차가운 공기가 몸을 식혀주는 게 느껴졌다.
“언제는 안 쉬었다고.”
“…. 기차에서 새우잠 잔 게요?”
“그 정도면 푸욱 쉰 거지.”
그렇게 중얼거린 것과는 반대로 나는 길게 하품을 하며 몰려드는 잠을 견뎌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으나 그와는 별개로 아직은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었다.
퀘스트 때문에 아침에 할 일도 유하에게 맡겨두었던 터라 오늘은 얼른 자야할 텐데. 이 상태로 움직이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저, 주인님.”
그리고 돌연 넬이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슬쩍 드니 침대 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넬의 모습이 보였다. 새삼 노출이 심한 복장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일부러 고개를 침대 시트에 말아 넣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편하게 해. 편하게.”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나셨어요?”
“응?”
“트리슈님하고 빼빼로님이요.”
그렇게 말한 녀석이 이내 내 볼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감촉은 없었으므로 그런 표현은 어딘가 이상했지만, 나는 넬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하나 떠오르긴 했지.”
“…. 부, 불안한데요.”
“별 건 아니야. 원래 가족 싸움이란 게 그런 거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역시, 가족 싸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멀리까지 온 걸지도 몰랐다.
거기에 준우는 이걸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트리슈가 계속해서 도발하고 준우는 그걸 회피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런 도발에 걸려드는 것은 준우의 곁을 지키고 있는 발렌타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준우에 대한 감정은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죄책감.
그 형태는 정반대였음에도.
“….”
“주인님, 한 가지만 더.”
“원하시는 만큼.”
“왜 그렇게 잘해주시는 거예요? 트리슈님한테.”
“뭐…?”
“린슬렛님도 그렇고.”
“갤러해드가 되기 위해서 라니까.”
그리고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
“거짓말은 역시 잘 못하시네요.”
“….”
약간 짜증을 부리듯 올려다보니 넬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더 말해봤자 손해라는 생각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로 올랐다.
삐그덕거리며 스프링이 뒤엉키는 소리가 났다.
점차 수마가 몰려들어 눈을 감으려던 순간,
- 주다연님이 가상 세계로 초대하셨습니다.
- 김시우님이 가상 세계로 초대하셨습니다.
거의 동시에 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엑….”
나는 잠이 훅 깨는 걸 느끼며 그런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