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36화 (136/321)

136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응?”

“빼빼로랑 아직도 사귀는 거지? 그치?”

“….”

아니 거기서 침울해하면 어떻게 해!

“좋, 아하는 건…. 맞지? 아직도.”

“그, 그게 아니면 같이 있지도 않아!”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질문이었으나 갑작스레 발렌타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슬쩍 놀라 뒤로 물러선 린슬렛을 보고 정신을 차린 그녀가 다시 침울해졌다.

“단지 그 사람이…. 날 여자로 봐주지 않을 뿐.”

“….”

그 이야기를 어머, 어머. 하고 듣고 있는 유하.

아니 그렇게 대놓고 들으시면….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적어….”

“아, 아니! 빼빼로도 널 분명 싫어하진 않을 거야!”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떨기 시작하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린슬렛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라, 나 뭔가 실수했나?

“너, 너를 좋아할 걸~ 분명히?!”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

“다 내가, 내가 나쁜 거야….”

거기에서는 분명 트리슈를 생각하는 기색까지 느껴졌다.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린슬렛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 서비스에요.”

그리고 주방 안쪽에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쟁반에 따뜻한 허니 버터 브레드를 받쳐 든 채로.

“가, 감사합니다.”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발렌타인이 인사를 했다. 웃으며 테이블 위에 허니 버터 브레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한 장 내밀었다.

“여자아이가 울면 세상이 같이 슬퍼한다고요?”

으엑, 그건 좀.

무슨 2010년대에 나온 영화 같은 대사를.

“….”

“인간의 마음은 빵 같은 부분이 있어요. 식으면 딱딱해진다는 것. 하지만 부드러웠을 때를 잊진 못하죠.”

둘이 닮았구나.

뭔가 굉장히 진지한 구석이 있는 게.

“저, 저어. 송유하 씨…?”

“조용히 해주세요. 주다연 씨.”

이, 이 여자가 진짜?!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린슬렛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유하의 모습에 격의 차이를 느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발렌타인을 신경 쓰고 있다!

이 사람은 어른이다!

“그러니 다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요?”

“네…?”

“당신과 그 사람의 오븐으로.”

부드럽게 중얼거린 유하는 팔목에 걸고 있던 실로 된, 장식이 없는 팔찌를 풀어 발렌타인의 손에 묶어주었다. 뭔가 굉장히 공을 들여서.

“이게 용기를 가져다줄 거예요.”

“…. 네.”

그리고 발렌타인은 눈이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린슬렛은 머쓱해져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 신화나 전설이나 뭐 그런 미신 따위에 관심이 많다고 했었던가.

“자, 잘 먹….”

“네?”

유하가 싱긋 웃으며 돌아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약간 고마운 마음을, 그런 말로 대신 표현하며 린슬렛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웃은 유하가 이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린슬렛은 그 어른스러운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번 신세를 졌네.

“후우.”

좀 저런 건 배우고 싶단 말이야.

린슬렛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반대편에서 팔찌를 들여다보고 있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그녀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정심을 갖자. 지금은 빼빼로를 구하는 부분에만 집중을 하는 걸로. 그 남자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바로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티…!”

티! 하고 밝게 웃으며 돌아보려던 린슬렛은 이내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악력으로 구부렸다.

“트, 트리슈…. 자, 잠깐!”

“왜애? 타나 오빠아♡ 트리슈가 좋아?”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명백하게 여자에게만 느껴지는 ‘끼’를 부리며, 트리슈는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들러붙은 채였다.

린슬렛은 이성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유하 언니이이!”

밝게 웃으며 달려든 트리슈가 유하의 품에 안겼다.

“시, 시우 양?!”

팔짱을 낀 채 들어온 우리를 보고 유하의 표정이 굳어지자 한 행동이었다. 애교를 부리듯 자신의 품에 안기는 트리슈를 보고 유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 과제는 잘하고 왔어요?”

“응응! 타나 오빠가 많이 도워줬어요!”

“타나…?”

“주, 준 오빠겠지?!”

그 이름을 이해하지 못한 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서있던 린슬렛이 상황을 수습하

기 위해 소리쳤다. 그러자 트리슈는 이번엔 린슬렛을 휙 돌아보았다.

“아 그렇지. 랜슬롯 언니도….”

“다, 다연 언니잖아?!”

“헤에, 본명은 그쪽이구나?”

“본명?”

유하의 얼굴에 더욱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감돌았다. 얼굴이 빨개져 상황을 수습하려는 린슬렛과, 명백하게 꾸민 의도가 보이는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는 트리슈,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쉬는 발렌타인까지.

“그러고 보니 넬.”

나는 옆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넬에게 물었다.

“네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넬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내 얼굴을 힐끔 돌아본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상한데….”

“뭐가요?”

“아니 유하랑 린슬렛이랑 날 보고 딱 굳어졌잖아.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었지.”

“…. 하아.”

애써 이야기했지만 넬은 대답을 하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며 네 사람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준…. 넬도. 잘 다녀왔어요?”

“헤헤에, 개마고원 풍경이 무척 멋있었어요!”

밝게 웃은 넬이 유하를 향해 웃으며 다가갔다. 뒤를 이어 소매 쪽에서 무언가 당기는 듯한 감각을 느낀 나는, 옆에서 이쪽을 올려다보는 린슬렛을 발견했다.

“잘 다녀왔어?”

“응, 별 거 아니었어.”

“….”

지그시 이쪽을 노려보는 그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린 나는 안쪽의 발렌타인을 보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실 거 가져다줄 테니.”

“아, 트리슈는 하이퍼 초코 우유요!”

“트리, 슈?”

트리슈의 활기찬 외침에 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린슬렛이 으르렁거리며 트리슈에게 달려들었다.

“너, 너 무슨 그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응…? 아, 다들 부끄러운 거구나?”

“뭣…?!”

“타나토스에 린슬렛이니, 헤에에에, 이 중이병들.”

“….”

아니 나름 진지하게 지은 건데.

“그,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뭐 됐어. 그냥 영어 교실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하면 되지 않아? 타나토스는 역시 좀 그렇지만.”

나는 상처를 받았다.

“하아, 티티. 뭐라고 좀 해봐.”

“타나토스가 그렇게 이상하냐…?”

“진지하게 들으면 어쩌자는 거야!”

진지하게 고민했으니까.

그런 말을 삼키며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자니 한숨을 내쉰 린슬렛이 소파 좌석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초코 우유를 끌어갔다.

“이 단 걸 어떻게 먹는 건지.”

트리슈도 그렇고 린슬렛이나 우정현 씨까지. 어째 이런 걸 좋아서 먹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으엑, 맛있다고?”

“왜애, 타나 오빠는 더 달콤한 것도 먹으면서.”

후우, 하고 귓가에 바람이 불어졌다.

“으극?!”

“다, 당장 떨어지지 못해애!!”

“어머, 질투는 꼴사나워. 랜슬롯.”

“키이이이익!”

린슬렛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게 팔짱을 꼈다.

왼쪽에는 트리슈가.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린슬렛이. 팔이 당겨져 반으로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나는 반대편의 발렌타인을 바라보았다.

“….”

놀란 눈이었다.

맨 얼굴은 지난번에도 보기는 했지만, 앳된 티가 남은 소녀라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 양쪽에 붙은 린슬렛과 트리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발렌타인, 퀘스트는 어떻게 됐어?”

“네? 아…. 여기요.”

내 물음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곧이어 팝업창을 띄워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열쇠를 저며서 넓게 편 뒤 만든 듯한 낫이었다. 나는 트리슈를 돌아보았다.

“우리 망치도….”

“빨리 놓지 그래?”

하지만 그녀는 망치를 꺼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너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

“어머나아, 그럼 그쪽이 박힌 돌?”

“그으으으으…. 그건 아니지만!”

“….”

일단 내버려두자.

“일을 진행하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아, 넵.”

린슬렛과 트리슈를 바라보던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속과 현실의 그녀는 어쩐지 다른 구석이 많다고 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어.”

“….”

“각오는 되어있는 거겠지.”

“물론이에요.”

그 말을 듣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팝업창을 열어 모드레드에게 연락을 취했다. 미리 이야기를 해둔 덕인지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반신만 떠오른 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어.”

[퀘스트는 끝내셨습니까?]

“응, 둘 다.”

“트리슈는 타나 오빠랑 다녀왔지이~.”

“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다음에는 절대 단 둘이 어디 보내거나 하지 않을 거야!”

[뭔가 분쟁이라도?]

“….”

여전히 나를 사이에 둔 채 다투는 두 사람을 보고 모드레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내가 대답을 피하자 무언가를 눈앞에 표시했다. 그 데이터는, 전송 과정을 거쳐 우리의 앞에 명확히 드러났다.

지도였다.

서울 강북구의 전반을 표시한 것처럼 보이는.

[빼빼로 씨가 붙잡힌 장소가 이곳입니다.]

그녀가 한 곳에 점을 찍었다. 산악 지형이었다.

[형을 집행하기 이전, 에스콰이어들을 수감해두는 장소입니다. 해서 약식 재판을 위해 거치는 장소가….]

지도에 표시된 점에서 점선이 이어져 한강 근처로 이어졌다. 나는 대략적인 루트를 머릿속에 그렸다.

[이곳. 형의 집행은 바로 근처에 있는 할 킬러즈의 본부에서 이루어집니다. 타깃의 이송은 평범한 경찰 밴이 사용될 예정이며 따라서 저희는….]

“밴을 습격하는 거지.”

[네, 그 지점은….]

“여기일 테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감옥과 재판을 받는다는 지점 사이였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모드레드가 살짝 인상을 쓴 채 입을 열었다.

[생각을 할 줄 아시는군요.]

“…?”

어라 이거 욕인가.

[일단 자세한 작전 개요는 나중에….]

말을 이어나가던 모드레드가 이내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 깔았다. 뭔가 싶어 그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하아암…. 기차에서 잤더니 아직도 피곤하네에.”

“그, 그래놓고 왜 여기에 눕냐고!”

“그쪽이야말로 왜 눕는지?”

“네가 누우니까!”

두 사람이 내 무릎에 누운 채였다.

거기에 서로를 노려보며 계속해서 으르렁거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드레드는 빨리 어떻게 해보란 듯 시선을 보냈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저기, 다연 씨. 시우 양.”

고민에 빠져 있던 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든 나는, 주방 쪽에서 고개를 내밀며 웃고 있는 유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거대한 식칼을 든 채로 트리슈와 린슬렛이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 좀 도와줄래요?”

그리고 협박(?)을 했다.

“뭐, 뭘, 요?”

식칼과 웃음이 조합된 모습에, 트리슈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린슬렛은 꿈쩍도 않고 불만이 섞인 얼굴로 유하를 바라보았다.

“아 음료수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다연 씨?”

“아니 그 음료수를 만드는데 식칼이….”

“필요해요.”

“…?”

“필요하다고요.”

번쩍, 식칼이 빛났다.

“아, 알겠어.”

그런 모습에 린슬렛 역시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유하의 인도에 주방 쪽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하 나이스.

========== 작품 후기 ==========

역시 정실(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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