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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35화 (135/321)

135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지휘관 회의가 있는 아침은 언제나 귀찮았다.

“흐아암….”

즉 매일 매일이.

그렇게 생각하며 할 킬러즈를 상징하는 정복을 몸에 걸친 가웨인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붉은 머리를 흩날리며 그는 복도를 지나 사무실로 향했다.

“오, 일어났어? 라이오넬.”

그리고 그는 높은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큰 사내를 보고 인사했다. 검은 피부에 깊어 보이는 눈동자가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

“잘 잤어, 오빠? 오늘 아침은 떡국이래.”

“….”

어쩐지 불쾌한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였기에 가웨인은 그런 식으로 놀리고는 이내 킥킥 거리며 웃었다.

“오늘도 셋이겠지?”

그리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세련된 복도에서는 얼마 전 경찰청 바로 옆에 신축한 막사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거기에 매일 같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의무를 지는 장병들이 쓸고 닦기 때문도 컸지만. 필요 이상으로 반짝거리는 바닥을 보며 가웨인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국민의 의무라….

“그것만큼 좋은 말이 없지.”

속이기 좋은 말도 없고.

어쨌든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가웨인은 지휘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의 백과 가웨인이라는 위치, 거기에 지난번 작전의 성과로 인해 그는 할 킬러즈 내에서 아버지와 경찰 쪽 지휘관을 제외하면 대적할 자가 없는 위치에 올랐다.

거기에 이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국가의 지원까지. 역시나 국가의 이름을 단 사업은 돈이 된다는 말이지….

그 중 가장 큰 녀석이 군대인 거고.

더러운 시궁창 쥐새끼들이나 할 법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며 가웨인은 유리 칸막이로 나누어진 지휘실 안쪽의 상석에 앉았다. 경례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라이오넬의 모습이 보였다.

“또 뭐하려는 거야. 저 양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안경을 쓴 두 빡빡이(사병)들에게 나누어주는 걸 보며 가웨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지네 나라의 과자니 뭐니 하는 거겠지.

“하이고 마.”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취사장에서 열심히 과자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분명 병사들 중 하나가 울었겠지.

“애들이 맛있게 먹겠대?”

“….”

“재미없는 인간.”

대답을 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서는 라이오넬의 모습에 가웨인은 혀를 찼다. 그리고는 워커를 신은 발을 깔끔하게 닦인 책상에 올려놓았다.

“내려.”

그러자 바로 반응이.

“깨끗이 하다. 매일의 아침의 병사.”

“예이, 예이.”

“존중, 전사의 혼.”

“알겠다니까.”

그리고 잠시 침묵이.

회의가 시작되는 시간까지는 10분가량이 남았으나, 단 한 명의 간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껏 차려놓은 밥상을 빼앗긴 듯한 기분이겠지.

“억울하면 기사가 되던가….”

게임 상의 계급을 입에 담은 가웨인은, 이내 그것이 주는 괴리감에 피식 웃었다. 할 킬러즈에 있던 기존의 간부들과 차이를 벌리는 게 게임 상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어이가 없었다. 기존의 간부들은 그렇기 때문에 가웨인을 필두로 한 기사 계급을 무시했다.

한 여자를 제외한다면.

“오, 왔네?”

딱딱한 경례에, 그보다 더 절도 있는 경례로 대답을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이렇게 해서 회의에 참가하는 간부 셋이 모였다.

“반말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 혼잣말이었어요.”

“….”

“잘 쉬셨는지 몰라.”

가웨인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눈앞에 보안화가 된 보고서를 띄워 암호를 입력했다. 우아랑은 머리를 하나로 묶은 채였다. 아름다운 생김새였지만 여성적인 매력보다 날렵한 고양잇과의 짐승 같은 느낌이었다.

쉬쉬하며 명령을 듣고, 상황을 지켜보는 기존의 간부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어 할 킬러즈가 최근 보이는 소극적인 대외 정책을 혐오하는 간부.

남자들만 있는 곳이기에 그녀에 대한 성희롱은 일상다반사였고 그녀 또한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아랑은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면 모르는 걸까.

“자아…. 그럼 뭐 간단하게?”

“정식으로 진행해 주시죠.”

우아랑이 딱딱하게 말을 걸어왔고 가웨인은 약간 불편해지는 걸 느꼈다. 중대장이 완전히 칩거나 다름없이 대외적 활동을 중단해버려 회의 진행을 맡게 되었지만, 정확한 교범은 전혀 모른단 말이지.

애초에 지휘체계고 뭐고 다 막장인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던 가웨인은 눈에 띄는 보고를 하나 발견하고는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 대위님. 이건 뭐죠?”

“네?”

“김준우를 이송한다고요?”

“네, 스스로 형을 집행 받겠다고 해서.”

“…? 그걸 왜 당신이 정해요?”

약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듯했다.

여기서 말하는 형은, 재킷을 제거당하는 것이다. 거의 고육지책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에스콰이어의 기억이 소거된 이후 사실을 이야기하고 재판을 받도록 법안이 책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베디비어인데?

“보고는 드렸습니다만.”

“아니, 아니아니, 우아랑 씨. 아니 대위님. 하 거참. 더럽게 FM이시네, 이거. 제대로 남자 만나서 유도리 있게 사는 법 좀 배우시라니까.”

“….”

차라리 쌍욕을 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의 독설에 우아랑은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한숨을 내쉬며 있던 가웨인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날카롭게 무언가 날아들어 담배를 잘라냈다. 필터 부분을 입에 문 채로 있던 가웨인은 벽에 박힌 검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실내에서는 금연입니다.”

우아랑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하아, 말로 하지?”

“한다면 들으실 겁니까?”

“….”

오늘은 한 층 더 짜증나게 구는군.

“저기 아가씨.”

일부러 그런 언사를 쓰며, 가웨인은 필터를 손에 꾹 쥔 채 우아랑을 향해 다가갔다. 담배 한 갑이 무려 만 오천 원이다. 사병 월급으로 30갑을 사면 없어지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 말이야. 베디비어라고?”

“…. 그렇습니까?”

“그게 아니라요. 잘 들어봐요. 전력으로 두면 꽤나 쓸만할 것 같지 않습니까?”

“단순한 범죄자일 뿐입니다.”

“끄으윽….”

말해봤자 통하질 않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선 준우는 끙끙 앓으며 고민에 빠졌다. 왜 갑자기 버티고 버티던 그 녀석이 형을 집행 받을 마음이 든 건지….

어라 하나 있네.

“아 그거군.”

재빠르게 머리가 돌아, 준우는 슬쩍 웃었다. 그것 외에는 그의 마음이 변할 이유가 없었다.

“백 대위님?”

“아아, 아 그래. 이송 좀 잘 부탁드림다. 땡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우아랑의 모습에, 가웨인은 적당히 대답하고는 돌아섰다. 뭐 어쨌든 여기는 경찰 조직과 군 조직이 합쳐서 운용되는 곳이니 만큼 그쪽에서도 끄나풀 하나 정도는 심어두었겠지.

재미있겠는 걸.

그 남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린 그는 씨익 웃었다.

느긋하게 햇살이 가게 안으로 내리쬐는 가운데 린슬렛은 잔에 담긴 초콜릿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몸에 짜릿하게 휘감기는 달콤한 맛에 그녀는 진한 흑갈색의 액체를 보며 저도 모르게 말을 중얼거렸다.

“하이퍼.”

“응?”

그러자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발렌타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그 광경을 본 린슬렛은 짓궂은 얼굴로 웃었다.

“어른 흉내 내는 거야?”

“단 음료는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미성년자가 담배나 피우고 말이야.”

“그, 그런 게 아니라고 알고 있잖니?”

“흐음~ 그래?”

물론 가짜였지만.

린슬렛은 이런 식으로 놀리는 행동이 어쩐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이내 얼굴이 붉어져서는 적당히 식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빨대를 쓰지 않고.

그런 행동은 무척이나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립스틱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기에.

“….”

“뭐, 뭘 그렇게 보니?”

“귀여워서.”

“하아, 말해주는 게 아니었어….”

“왜애? 우리는 한 배를 탄 동지가 아니었던가?”

“빼, 빼빼로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아니지, 빼빼로 아저씨지. 빼빼로 분명히 나랑 비슷한 나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 그만해!”

“범죄잔데, 그건….”

나이 차이가 몇 살인 거지.

약점을 찔린 발렌타인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린슬렛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 발렌타인.”

그리고 손을 뻗어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발렌타인의 손을 꾹 쥐었다. 그 남자의 다소 진지한 사고방식대로 말하자면, 눈앞의 사람은 발렌타인이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 우리 원래 이렇게 어색한 사이였나?”

“우으, 사람이 사과를 하면 좀 받으라고!”

하지만 슬쩍 손을 빼내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린슬렛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소리쳤다. 그리고 뒤를 이어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조용해진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이야기하고 싶은데.

발렌타인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조금, 기대고 싶은데.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린슬렛은 자신이 왜 불안한 감각을 느끼는 건지 알아차렸다. 날이 밝자 지금 돌아가고 있다며 온 연락, 그의 목소리가 한결 나아졌던 것이다.

“하아….”

지금 당장 독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거기까지는 불안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거리감을 느껴서일까. 하지만 린슬렛은 어쩐지 자신이 어리광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자괴감을 느꼈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듬직하지만 어쩐지 위태위태해 보이는 남자라서.

“….”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린슬렛은 곧이어 턱을 괸 채로 카운터에 앉아 있는 여성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사람과도 조금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을까?

하지만 역시 저런 사람의 앞에서는 주눅이 든단 말이지.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대하지 못

하는 걸까?

연한 갈색의 머리를 청초하게 반묶음을 해, 아름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외모였다. 그 남자와 두고 서있으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스타일. 동작이나 말씨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 그 눈은, 린슬렛 자신과 같은 불안감에 물든 채였다.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린슬렛은 유하의 시선이 트리슈에게 향한 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래서….

저 사람도 불안한 거구나.

자신처럼.

“저, 저기 발렌타인.”

일부러 조금 목소리를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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