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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32화 (132/321)

132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눈앞에 동굴이 보였다.

“허억, 헉….”

“주인님, 이쪽으로.”

상처를 입은 채 전력으로 달리느라 생각보다 더 지쳐버렸으나 나는 걸음을 재촉해 넬의 뒤를 따랐다. 커다랗고 긴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벽 부근에서 횃불이 밝혀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퀘스, 트…. 퀘스트를….”

“이 멍청아! 지금 그런 거 할 때냐고!”

나는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트리슈를 향해 소리쳤다.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내게 안긴 그녀는 뭔가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계속해서 퀘스트를 수행해야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넬!”

“거, 거의 다 왔어요!”

순간적으로 넬에게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다.

“…. 큭!”

나는 이를 악물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는 계속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점점 길이 좁아지는가 싶더니 안쪽에서 뭔가 수증기 같은 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약간 의아함을 지닌 채 몸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굴 안으로 들어선 나는, 거대한 공동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안쪽에서 나오던 수증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온천이다.

“여기에 트리슈님을.”

“….”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예요.”

살짝 망설이자니 넬이 단호하게 말을 덧붙였다. 나는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트리슈를 안아든 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옷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역시 이건 아서리안의…?

하지만 감각은 분명히 액체의 그것이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편하게 기대.”

“안, 된다고….”

마찬가지로 알몸이 된 트리슈가 몇 번이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꾹 끌어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지금 눈앞에서 아파하고 있는 소녀에 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

“지금 쉬지 않는다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하…. 안, 돼. 이 트리슈는….”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팝업창을 띄워 메시지를 하나 보여주었다. 발렌타인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퀘스트를 끝냈으니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거기에는 한줌의 악의도 없다. 도리어 사무적이었다.

트리슈도 그걸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 아이돌이니까….”

트리슈는 그게 싫은 것이었다.

타인으로 무시당하는 것, 동정 받는 것. 한심한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 그것들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동시에 스스로 행동이나 대화에서 주도권을 쥠으로서 일말의 가능성조차 열어두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단순히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을 뿐이잖아!”

그녀는 타인에게 혐오 받고 싶어 하기에.

친오빠의 손을 그렇게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걸까. 그리고 또한 관계의 파탄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녀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은 불명확했다.

하지만 이건 확실했다.

트리슈 또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걸.

현실과 가상의 차이로 인해.

“왜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는 거냐고…!”

이를 악 물며, 나는 트리슈를 끌어안았다. 그 가녀린 체구에서, 나는 그동안 트리슈가 짊어지고 있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무척이나 비참하고 외로운 길이었다.

그녀가 어째서 사람들의 앞에서, 그리고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했는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들었음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단지 ‘동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넘어갔는지.

“허세 부리지 말라고! 멍청아!”

스스로의 괴로운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

“나는 널 무시하지 않아. 트리슈. 너를 불쌍하고 지켜줘야 할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트리슈의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그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감정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위태로워 보이니까.”

그러니까 돕고 싶은 거다.

“…. 그만해.”

중얼거린 그녀가 이내 물 아래로 슬쩍 빠져들었다 다시 올라왔다. 머리카락이 단숨에 물로 범벅이 되어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감정을 참아내며 말을 이었다.

“이 트리슈님이, 고작 그런 걸로….”

그래서 물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일까.

하지만 알 수 있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엉망진창인 와중, 그녀는 울고 있다. 무어라 또, 평소처럼 힘껏 허세를 부리려고 듦에도 이어지질 못했다.

“계약을 변경하자.”

그리고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

“널 도와줄게.”

“뭘 받아가려는 건데?”

“없어.”

“뭐?”

“없다고 이 멍청아.”

나는 이를 드러내며 의지를 담아 중얼거렸다. 지금 트리슈를 돕는 것에 이유는 없다. 무엇을 도울지, 그리고 어떻게 도울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동그랗게 뜨고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청순한 외모를.

평범한 표정일 때는 이런 느낌이구나.

“너를 돕는데 이유는 없어.”

“….”

트리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우는 걸까?

“저기, 타나 오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해,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그런 말 하지 마. 트리슈가 아니었다면 무슨 여자라도 보증 서줄 테니까.”

하지만 이내 젖어들었다.

“도와줘….”

흐느끼며 우는 그녀를, 나는 한동안 꾹 끌어안았다.

반나절 푹 쉬고 나니 완전히 회복이 된 트리슈는 완전히 복수심에 이를 갈며 퀘스트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묘사를 한다면 거의 잠입 액션에 가깝지 않을까. 여러 대의 카메라를 능숙하게 퍼뜨리며 그녀는 열쇠를 지하 감옥의 인간들에게 전달, 망치로서 벼려냈다.

이후에 혁명이 일어나 뭐 어쩌고저쩌고.

“이것저것 뭔가 일어난 모양이지만….”

듣지도 않고 곧바로 왕국을 빠져나왔다. 감사의 축제를 벌이려는 인간 왕을 뒤로 한 채 말이지.

그리고 날을 넘겨 새벽, 트리슈와 나는 기차역 대합실에 도착했다. 아직 첫 차가 있을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바깥은 어둠에 잠겨서 조용했다. 때문에 나는 트리슈를 남겨둔 뒤 대합실 바깥으로 나왔다.

[아, 다행이네.]

일단 보고를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살짝 졸린 목소리를 한 린슬렛이 대답을 했다. 길게 하품이 이어져 나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자고 있었어?”

[으응? 아니.]

“하품한 건 뭐야.”

[…. 드, 들렸어?]

“응.”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뒤를 이어 가볍게 린슬렛이 헛기침이 반대쪽에서 이어지자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보.]

그리고 이내 으르릉 대는 듯한 목소리가.

“뭐가.”

[몰라, 바보.]

왜 이러는 거지.

[빨리 오기나 해. 모드레드가 준비 다 끝냈다니까.]

“어떤 식….”

으로? 라고 물어보려던 나는 갑작스레 뒤쪽에서 누군가 엉겨 붙자 한숨을 내쉬었다. 뒤를 돌아보니 트리슈가 얼굴을 숨긴 채 내게 꾹 들러붙은 채였다.

“들어가 있으라니까….”

“안에 추운데.”

“난로 있는데?”

“그래도 추운데.”

“그럼 난로 켜달라고 말하고 올게.”

“….”

“하아.”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트리슈, 뒤에 있던 넬까지도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싶었지만 나는 이내 트리슈를 매단 채 대합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됐어.”

하지만 트리슈는 곧장 떨어졌다.

“난로 이야기해두고 올게.”

“됐어, 켜져 있으니까.”

“그럼 왜….”

안이 훨씬 따뜻할 텐데.

“전화 재미있게 하세요.”

“…?”

안으로 휙 들어가버리는 트리슈.

[헤에, 그쪽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구나?]

그리고 린슬렛까지.

“응? 뭐?”

[아냐 아무것도. 재미있게 놀라고~.]

“아니 잠깐만 린슬렛!”

[으, 으응?!]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전화를 끊으려던 린슬렛이 대답했다. 잠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넬을 피해 돌아선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뭔데 그 모드레드의 작전이라는 게.”

일단 거기에 대해서 들어두고 싶었다. 첫 차까지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거기에 대해서 트리슈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지. 나는 그렇게 혼자 결론을 내리….

[모드레드한테 전화해보던가!!]

“….”

하지만 전화는 훅 끊겼다.

“주인니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니 넬이 한숨을 내쉬며 나무라듯 바라보았다.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돌아보니 녀석은 말을 이었다.

“눈치가 정말 없으시군요.”

“뭐, 뭐가?”

“…. 전부요?”

“전부?”

“네, 전부.”

전부 눈치가 없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애초에 지금 기차 기다리시면서…. 빼빼로님 구출 작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고요?”

“응.”

“…. 하아.”

한숨을 내쉰 넬이 이윽고 김이 서린 창문 너머에 있는 트리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난로 앞에 있는 넓은 의자에 앉은 그녀는 머뭇거리며 손가락을 만지는 중이었다.

“넬이 퀘스트를 드릴게요.”

“아니 왜….”

“그냥 시키는 대로 좀 하세욧!”

“네, 네넬….”

나는 거의 도끼눈을 뜨며 화를 내는 넬의 모습에 약간 압도되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그러고 있자니 눈앞에 어쩐지 휘갈겨 쓴 듯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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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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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트리슈님의 마음 얻기.

난이도 : ★☆☆☆☆☆☆☆☆☆

내용 : 따뜻한 캔커피를 뽑아가세요.

제한 시간 : 2.5초.

보상 : 음…. 야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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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퀘스트의 형식을 취하는 건 왜일까.

“아니 근데 보상은 왜….”

“그, 그런 걸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시다니?!”

“….”

“변태!”

“….”

“통하질 않는군요.”

“그래.”

“네, 넬은 좀 창피하니까 들어가 있을게요오.”

이제는 반대가 되어, 내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자 넬은 버텨내지 못하고 디멘션 커넥터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자판기는 근처에 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결국 괜찮은 걸까 싶어서.

“….”

몸을 회복한 뒤의 트리슈는, 내 도움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쌩쌩해졌다. 방금 전처럼 놀리는 기색도 그렇고, 어쩐지 계속 말을 돌리는 부분도 그렇고 말이지.

“에잇….”

괜한 상념이다.

결심은 해두었으니, 망설여서는 안 돼.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캔 커피를 두 개 뽑아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발밑이 슬쩍 쌀쌀했으나 난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따듯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

그리고 트리슈는 가만히 날 바라보았다. 뭔가 불만이 있는 건지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린 채.

“커피?”

“트리슈는 커피 안 먹어.”

“….”

큰 일이군.

나도 이렇게 달달한 커피는 싫어하는데.

“안 앉아?”

“아…. 응.”

망설이던 나는 캔 커피를 사이에 두고 트리슈와 나란히 앉았다. 붉게 빛나는 난로에서 따뜻한 빛이 나와 금세 몸이 따뜻해졌다. 차가워졌던 귀가 식어들었다.

“….”

“….”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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