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31화 (131/321)

131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헬기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아침이 되어서였다.

높은 빌딩으로 가득한 이 나라는, 이렇게 높은 곳에 서지 않으면 제대로 된 태양을 볼 기회가 적었다. 헬기 바깥에 몸을 걸치고 선 라이오넬은, 강하 허가가 떨어졌음에도 한동안 멍하니 태양을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태양은 강한 생명을 상징했다.

짐바브웨를 연상시켰다.

최근 들어서 개발과 발전으로 인해 이런 모습을 보는 일도 드물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오넬은 이런 태양을 스스로가 어렸을 적에 본 나라를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여겼다. 이제 막 태어나 걷는, 희망의 빛.

국가를 위해 싸우기로 하여, 이 머나먼 동쪽의 땅에 온 것도 어언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라이오넬은, 어쩐지 약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니고 있는 의무와는 정반대였으나 신성한 전사만이 가지고 있는 권리. 강한 의지를 지닌 상대를 만났다. 비록 현재는 비참하게 땅에 일그러진 상태였으나,

“분명 일어서겠지.”

라이오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 눈빛, 절망에 빠져서도 분노로 스스로를 다잡는 태도는 분명히 사자의 것이었다. 강자의 냄새가 났다.

“하라. 빨리.”

그리고 뒤를 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고개를 돌린 라이오넬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조종사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디멘션 커넥터가 제대로 된 번역을 제공하지 않는 건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었기에, 그는 대충 해석을 가미했다.

그 남자와의 대화도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거기에서 강한 의지를 느꼈다. 이곳에 온 뒤로 그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강인함을, 그래서 그는 한 번의 시련을 내렸다.

그걸 이겨낸다면 아마….

생각을 채 잇지 않고, 라이오넬은 헬기 위에서 뛰어내렸다. 거대한 신체가 중력에 휩쓸리며, 그는 지면을 향해 빠르게 낙하했다. 갑옷처럼 여기저기 덧대어둔 바이크 슈트와 헬멧을 바람이 스쳤다.

“….”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내려선 그는, 비명을 내지르는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반대편에 담배를 피우며 서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의 사내, 가웨인이었다. 흰색의 코트를 잘 여민 채 그는 정원의 반대편에서 싱긋 웃어보였다.

“어디 다녀와?”

영어로 된, 평범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거기에 반응을 보이는 대신 그를 지나치려고 했다.

“만난 거지? 이준을.”

“대답할 이유는 없다.”

“에헤이~ 영어로 대화하자. 번역이 이상하다고?”

“딱히,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니군.”

그렇게 대답한 라이오넬은 장난스럽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가웨인을 돌아보았다. 비슷한 이름을 공유하고, 거기에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에게 꽤나 큰 거리감을 느꼈다.

“어땠어, 그 녀석은.”

“….”

“지난번에도 말 안 해주더니.”

가웨인이 한숨을 내쉬었으나 대답을 하는 대신, 라이오넬은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기는 해 그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다른 존재와 마주쳤다.

뒤쪽에 쫓아오는 남자보다 더욱 성가신.

“대위님.”

그리고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검정색의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언제나 힘껏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듯한 행동. 때문에 라이오넬은 눈앞의 여자를 전사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약간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이거, 우 대위님. 징계 중이지 않?”

그리고 뒤쪽에서 등장한 가웨인이 라이오넬의 앞을 스윽 가로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아랑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지만 가웨인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 업무가 밀려서.”

“하하하, 그렇구나아.”

비아냥거리는 웃음.

“백 대위님이야말로, 일과 시간이지 않습니까?”

“잠깐 끽연 좀 하느라.”

“….”

그 기색을 더하기 위해 가웨인은 가끔 괴상한 말투를 사용할 때가 있다. 물론 우아랑도 이제는 거기에 익숙해져 대답을 하는 대신 그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식사라도 한 번?”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웨인도 그걸 바라고서 한 말이리라. 싱긋 웃으며 우아랑을 배웅하는 가웨인의 모습을 약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라이오넬은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라이오넬.”

“….”

하지만 다시금 그런 목소리가.

이번에는 진짜로 식사를 권유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져, 약간의 분노가. ‘왜 내 먹잇감을 건드느냐.’라고 묻는 듯한.

“좀 듣고 싶으니, 그 친구에 대해서는.”

“친구라. 우리나라에 이런 말이 있지.”

“뭔데?”

“친구란 적을 가장 증오할 때도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

가웨인의 얼굴이 드디어 굳어졌다.

약간 만족한 라이오넬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크윽!”

나는 달리는 중이었다.

온몸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왕궁의 복도를 질주했다. 오른쪽에는 망자 소환을 이용해 불러들인 매가, 다른 쪽에는 넬이 함께였다.

“주인님! 왼쪽!”

넬이 방향을 지정해주자, 나는 T자 모양으로 된 복도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쪽에서 따라붙던 공룡의 숫자가 더욱이 늘어 무슨 영화와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내 반대편에서 다른 공룡 하나가…!!

“더는 도망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익룡들이 유리창을 박살내며 안으로 날아들었다. 파편이 흩날리며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매를 날려 보내, 공룡의 등 뒤에 있던 다람쥐를 낚아채며 동시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진해오는 공룡을 스파다로 흘리며 투우사처럼 능숙하게 피해냈다.

슬슬 지긋지긋할 정도로군…!

공룡 위에 다람쥐가 타고 있다는 조합이 우스웠지만 이제는 대응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다람쥐가 공룡을 조종하는 것도, 공룡이 다람쥐에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닌 만큼 내가 공룡을 상대하고 매를 시켜서 다람쥐를 낚아채면 아주 간단하게 파훼가 가능했다.

“큭!”

물론 익룡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벽을 박차고 뛰어올라, 나와 매는 동시에 반대편 방향에서 파고들었다. 방향을 선회하기 위해 날개 짓을 하고 있던 익룡의 머리를 베어내며 나는 가속도를 받아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몸을 회전시키며 화려하게.

능숙하게 공룡들을 피해가며 앞으로.

“넬! 얼마나 남았어!”

“이, 이제 다음 층이에요!”

내 다급한 질문에 넬이 뒤쪽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공룡들의 발소리와 고함 소리가 뒤섞여 마치 중생대에 툭 떨어진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로 위?!”

“네, 네넬!”

그런 대답에 나는 머리 위를 스치는 익룡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곧바로 속도를 높여 익룡을 따라잡아 다리를 움켜쥐었다.

“뭐, 뭐냐?!”

휘청거리며 익룡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무게추처럼 버티며 동시에 벽을 박차고 반대편으로 몸을 비틀었다. 내 무게로 인해 익룡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서진 창문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왕궁 아래가 훤히 펼쳐져 눈앞에 드러났다.

“흐읍…!!”

나는 허리에 힘을 주고는 체조 선수처럼 몸을 한 바퀴 돌려 위로 도약했다. 익룡의 몸을 스치듯 지나치고는 위로 올라 가볍게 등을 밟고 중심을 잡았다.

“케헥!”

그 사이에 끼인 다람쥐가 비명을 내질렀고, 나는 무게를 버텨내지 못한 익룡이 무너지기 직전 다시금 발에 힘을 쥐어 뛰어올랐다. 트리키한 움직임에 옆으로 따라붙은 넬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그리고 최상층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떠오른 태양에 눈이 부시며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새어나왔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불가능한 북쪽의 왕궁은 이제 막 아침이 시작되고 있는 중이었다. 거대한 성벽과 그 뒤로 펼쳐진 고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디멘션 커넥터가 표시해주고 있는 현재 온도는 영하 15도. 나는 트리슈에 대한 걱정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걸 느끼며 부서진 창문 안으로 들어섰다.

“트리슈…!”

나는 다급히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트리슈는 침대 위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채였다.

“왜, 왜애….”

“주, 주인님! 모르가나를!”

“젠장…!”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모르가나를 소환해 라이오넬에게 귀속된 트리슈의 제어권을 가져와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체온이 내려간 상태였다.

“디멘션, 커넥터가 작동하지 않았어….”

트리슈는 몇 번이고 귓바퀴를 매만지며 추위에 몸을 떨었다. 거기에 이 넓은 고원에 잠시 동안이지만 혼자 남겨졌다는 공포가 엿보여,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만 참아! 트리슈! 여기서 빠져 나가야…!”

“안, 돼.”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뭐?!”

“퀘스트, 해, 야….”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푸른 입술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의지하고 싶지 않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작작 좀 해!”

나는 트리슈를 번쩍 안아들었다. 온몸이 냉동된 생선마냥 굳어진 그녀를 안고는 다시금 창틀 위로 올라섰다. 어쨌든 여기는 위험해, 도저히 몸을 녹이거나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크윽?!”

바로 그 순간, 허리 부근에 무수히 통증이 피어났다. 무수히 많은 대바늘에 꿰인 듯한 감각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그마한 총을 들고 있는 다람쥐들의 모습이 보였다.

“침입자다! 놓치지 마라!”

그리고 다시금 탄환이 날아들었다.

“칫!”

나는 지체하지 않고 창문 바깥으로 날아들었다. 지붕에 떨어져, 가속도를 붙이며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일단 왕국을 빠져나가야…!

“넬! 근처에 몸을 피할만한 곳이…!”

“아, 안내할게요!”

앞장서 날아가는 넬의 뒤를 따라, 나는 트리슈를 품에 안은 채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