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27화 (127/321)

127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들은 거지? 오빠한테서.”

“….”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나는 말을 잇질 못했다. 트리슈의 표정은 사납게 물들어 조금이라도 잘못 말을 했다가는 목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자니 그녀는 계속해서 위협을 가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 동정하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알겠어?”

트리슈의 목소리에서, 나는 어쩐지 자기혐오를 힘껏 감추려는 기색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눈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녀를 동정하지 않는다.

절대로 불쌍하다고도, 가엽게도 여기지 않는다.

“정말로?”

그리고 그녀가 되물었다.

“정말로.”

“그거면 됐어.”

트리슈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내 멱살을 놓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아니, 그러다 잠시 망설이고는 다가와 차이나칼라를 매만졌다.

“…. 더는 이야기하지 말자. 여기에 관해서는.”

방금 전까지의 살기는 약간 누그러들었으나 다가가기 힘든 벽이 느껴졌다. 트리슈는 그대로 내 디멘션 커넥터를 꾸욱 눌러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넬, 이제 됐어.”

“저, 정말인가요?”

바로 옆의 공간에서 반쯤 모습을 드러낸 넬이 물었다. 약간 겁을 먹은 듯한 모습에 트리슈는 씨익 웃어보였다.

“응!”

완전히 꾸미고 있군.

“그럼, 가보도록 할까?”

“…. 그래.”

약간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하지만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터라 나는 애써 무시하고 뒤로 돌아섰다.

창문을 열고, 가볍게 발을 걸쳤다.

“이쪽으로.”

“흐음, 뭔가 괴도 같네.”

“언제나 여유롭구먼. 너는.”

“일단 높은 곳으로 가자.”

나를 따라 창문 바깥으로 나온 트리슈가 바닥에 댄 무릎을 털며 중얼거렸다. 뭔가 싶어 바라보니 그녀의 몸 주변에서 픽셀의 거품 같은 게 피어오르며 옷이 원래의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로 돌아왔다.

거기에 달타냥이 쓸 법한 모자와 가면, 머플러까지.

“왜?”

“트리슈를 얕보지 말라고.”

내 물음에 슬쩍 윙크를 하며 대답한 트리슈는 기와로 이루어진 지붕 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쌀쌀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왕국은 어둠에 잠긴 채였다. 아주 약간의 화톳불만이 멀리서 보이는 정도.

그리고 그녀는 돌연 위로 뛰어올랐다.

“이쪽으로.”

“….”

일단 따라 가보는 걸로 할까.

사실 아까는 넬에게 의식 조종을 시켜두었기에 트리슈가 지니고 있는 스킬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약간의 의문과 호기심 그리고 불편한 마음을 지닌 채 트리슈의 뒤를 계속해서 따랐다.

모르겠다.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하지만 동정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녀석은 타인의 그런 동정을 혐오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지 않았을 터였다.

“호오, 여기가 좋겠네.”

높은 첨탑 위에 올라 서, 트리슈는 하늘을 향해 뻗은 깃대를 움켜쥔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둥그런 형태의 지붕을 밟았다.

트리슈는 자신을 혐오하라고 말하고 있다.

동정 대신, 차라리 그것을 원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양.

“타나 오빠?”

“어?”

“…. 왜, 왜 그래?”

뒤를 돌아본 트리슈의 얼굴이 가까웠다. 순간 놀라 대답을 한 나는, 팔을 금방이라도 트리슈를 끌어안을 것처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아니 아무것도.”

“…. 뭐 됐어.”

평소라면 잔뜩 놀려댔을 녀석은 내 안색을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손가락을 튕겨 치마 안쪽에서 날개가 달린 카메라를 여러 개 소환했다.

그 숫자가 총 일곱.

“사실, 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뭘?”

“왜 오빠와 가웨인 아저씨가 트리슈를 원하는지.”

몸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듯 카메라를 늘어놓은 트리슈가 곧이어 나를 돌아보았다. 달빛에 반사되어 그녀의 미소는 어쩐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트리슈는 정보전에 능하거든.”

그리고 카메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편대를 이루는 비행기처럼 트리슈의 앞에서 회전을 하고는 이내 흩어져 왕궁 곳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트리슈는 눈앞에 팝업창을 여러 개 띄워 보기 좋은 위치에 흩트려 놓았다. 카메라가 찍는 영상인 걸까.

“오빠도 와서 봐.”

“….”

약간 뒤쪽으로 떨어져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트리슈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가녀린 어깨, 진한 녹색을 띈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좋은 향기가….

아니 난 왜 이 시점에 이런 생각을.

“?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데.”

“…. 원래 이랬어.”

“원래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날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던 트리슈가 피식 웃으며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약간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건 뒤로 제쳐두고 트리슈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다수의 스크린에 집중했다.

왕궁 내부는 조용한 상태로, 경비병으로 보이는 다람쥐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정도였다. 화톳불을 밝혀둔 상태에서 커다란 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우스웠고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싶었지만….

어쨌든 집중을.

“조용한데?”

단순히 내 안 좋은 예감이었던 걸까? 왕의 말대로 기차에서 우리를 습격했던 녀석들은 왕궁에서 쫓겨났을 뿐인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며 화면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왕궁은 산 위에 지어져, 경사에 따라 다수의 층이 형성된 구조였다. 그리고 각 층을 카메라가 날아다니며 무언가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트리슈, 안쪽은 볼 수 없을까?”

“들어갈만한 틈을 찾아볼게.”

내 말에 트리슈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카메라들을 움직였다. 마치 우아한 연주를 하듯, 카메라들을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계속해서 스크린에 영상을 비췄다.

왕궁 내부에도, 없다.

왕은 자고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녀석들 모두가 인간이 쓸 사이즈의 침대에서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는 듯했다. 그런 모습에 나는 뭔가 초조함을 느꼈다.

이럴 리가 없다는 생각인지, 뭔지.

“…! 오빠.”

바로 그 순간 트리슈가 나를 불렀다.

“여기.”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스크린 중 하나를 끌어와 내게 보여주었다. 어두운 화면에 나는 비추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데?”

“잠시만, 조명을 켤게.”

트리슈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앞의 팝업창을 조작했다. 그러자 환하게 빛이 밝혀지며 무언가가 드러났다.

“윽?!”

사람이다.

낡은 거적때기와 더러운 몸, 절망의 끝에 서있는 듯한 표정. 적어도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철창 속에 갇힌 채였다. 여자와 남자, 아이와 노인으로 구분이 되어 마치 사육되는 짐승처럼….

“진짜, 사람인 건가?”

나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뒤를 이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참혹한 상황에 하마터면 구분을 지어버릴 뻔했다.

“오빠, 이쪽도.”

잠깐 당황하고 있자니 트리슈가 반대편의 다른 스크린을 눈앞으로 끌고 왔다. 또 뭔가 싶어서 그것을 확인한 나는, 짚더미가 깔린 방안을 눈으로 보았다. 마치 무언가의 사육장인 것처럼, 사슬과 나무로 된 칸막이가 여러 개 눈에 들어왔다.

마치 커다란 새 같은 걸 키우는 듯한….

바로 그 순간,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깜짝 놀라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달빛을 등진 채 검정색의 점 같은 것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용이었다.

날 수 있는 용, 다시 말해 익룡.

“저게 뭐야?!”

“….”

내가 당황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다음 순간, 트리슈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앞의 스크린을 제거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손목에서 에메랄드빛이 일어났다. 그리고 형태가 만들어져 순식간에 활의 형태를 갖추었다.

“오빠의 예상이 맞았네.”

그리고 공기를 가르며 화살이 날아갔다. 거기에 맞은 익룡이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트리슈는 지체하지 않고 연이어 화살을 쏘아 보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생각에 잠겼다. 이 혁명의 열쇠가, 사실 지하 감옥에 갇힌 인간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추론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분명 우리에게 퀘스트를 준 고르바초프는 다람쥐였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는 거겠지!”

“뭐…?”

“음, 초프가 사실 인간에게 감화되었다던가?”

“거 참, 엉망진창이군!”

“일단 지하로 내려가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어라, 근데 그게 맞나….”

“그럼 당연히 사람이지!”

내가 약간 짜증을 섞어 이야기하자 트리슈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녀석은 마지막 화살을 쏘아내고는 내 손을 쥐었다.

“그럼, 달려!”

“으억?!”

그리고 녀석은 내 팔을 휙 잡아끌었다. 몸의 중심을 잃고 기왓장 위를 미끄러져 내려간 나는 이내 앞장서는 트리슈를 따라 허공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크윽?!”

지면이?!

“밟아!”

트리슈의 외침에 뒤를 이어, 나는 발밑에 날아드는 카메라들을 발견했다. 나는 그대로 징검다리처럼 늘어서는 카메라를 밟고 다시금 하늘로 뛰어올랐다.

기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조금 더 낮은 다음 지붕 위로 도착하고도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날았다. 방향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트리슈는 능숙하게 지붕 위를 달렸다.

“기억, 해두고 있는 거냐!”

망설임이 없는 움직임에 나는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트리슈는 달리는 와중에도 빙긋 웃었다.

“기억이 아니라 기록!”

카메라들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