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거기 형씨! 아서리안인지 뭔지 하는 거면…. 당신은 거기 플레이어라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어쩐지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아까부터 뭔지 모르겠는데! 여기 뚫고 들어오려고 아주 난리야! 좀 어떻게 좀 해봐!”
기관사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선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 약간의 경외감을 느끼며 스파다를 뽑아들었다. 충차 같은 걸로 두드리는지 충격이 몹시도 거세, 문은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았다.
“여기 문, 기관사님이 잠가두신 겁니까?”
“뭐? 아, 응! 내가 잠가뒀어!”
“문을 열어주십시오.”
“어, 어쩌려고!”
“싸워야죠.”
어차피 뚫릴 문이라면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깻죽지에서 뼛조각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린슬렛의 방패를 만들어내 어깨를 단단히 감싸고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젠장…. 나도 이젠 모른다!”
기관사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이어지듯, 굳게 닫혀져 있던 문이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리고 그 뒤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
룡?
“?! 왜 네놈이 여기에 있는 거냐! 반란군 자식!”
허리를 쭉 빼서 숙이고 있는 공룡의 모습이 보였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길이가 엄청나게 길어, 열차의 반 정도는 차지했다. 거기에 특징적인 것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듯한 두개골 구조로….
“파키케팔로사우루스네요!”
“…. 똑똑하구나.”
옆에서 넬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머리를 들이밀고 씩씩거리고 있는 파키케…. 뭐시기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바닥을 땅으로 박차고 있었다.
“돌겨역!!”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모히칸 다람쥐가 소리쳤다. 아, 자세히 보니 주변의 의자 등받이 위에 다람쥐들이 한 가득이었다.
==============================
Special Monster
==============================
Name : 파키케 뭐시기.
Lv : 80
Exp : 100,000
방어력 : 1,000
==============================
“…!!”
나는 돌진해 들어온 공룡을 어깨의 방패로 막아냈다. 5톤쯤 되는 트럭과 맨몸으로 부딪친 듯한 충격에 나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큭!”
“주인님!”
넬이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어깨로부터 시작되어 온몸이 찌릿찌릿했고, 나는 스파다를 바닥에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금 발을 박차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공룡의 모습이 보였다.
“하하! 약해빠진 인간!”
그리고 그 위에 있던 모히칸이 소리쳤다.
다시 말해 다람쥐가.
“….”
약간 오기가 생기는데.
“주, 주인님?”
“유약한 인간이라.”
“음, 정면 승부는 조금 힘들지 않…. 아앗?!”
넬이 만류했으나, 나는 무시하고 곧바로 공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자, 녀석이 뒤늦게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나는 바닥에 휙 미끄러지며 녀석의 다리 사이를 지나쳤다.
“이, 반란군 놈이?!”
동시에 스파다로 다리를 베어낸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위치가 뒤바뀌어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녀석의 긴 꼬리를 밟은 뒤 타고 올라가 곧바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컥?!”
하지만 다음 순간, 휘둘러진 꼬리에 복부를 얻어맞고는 벽에 처박혔다. 한순간 숨이 쉬기 어려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의자 위로 엎어졌다.
“자, 잘했다! 이제 기관실을…!”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모히칸이 소리쳤다. 하지만 녀석은 명령을 듣지 않고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섰다. 콧김을 내뿜으며, 어지간히 화가 난 얼굴로.
“역시, 큰 강아지는 다루기 힘들지…?”
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당황한 모히칸이 공룡을 발로 차댔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크윽! 명령을 들으란 말이다! 왕국군! 너희라도…!”
“그렇게 둘 순 없지!!”
모히칸의 말에 다람쥐들이 움직이려고 들었다.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그것을 불러들였다.
한구석에 공유되고 있던 매의 시야가 변화했다. 스윽, 사선으로 흐트러지더니 달리고 있는 기차를 정면에 두고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기차 내부로 날아들었다.
“히익?!”
뼈로 된 매의 모습에 다람쥐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진격을 하려던 자세 그대로 멈춰선 녀석들은 이내 제각기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매다아아아아!”
“살려줘어어어어어어!!”
굵직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람쥐들의 도주. 간간히 용기를 낸 몇몇이 자리에 서서 총을 쏘아보았지만 뼈로 된 몸체를 뚫고 지나갈 뿐이었다. 매는 가볍게 활강을 해 다람쥐를 발톱으로 붙잡고는 뽀각, 하고 두 동강을 냈다.
자연의 섭리가 재현되는 순간이군.
“이, 이 잔인한 인간!”
“아까는 유약하다고 하지 않았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의 공룡, 그 위에 있는 모히칸은 스파다로 겨누었다. 녀석은 볼을 파르르 떨고는 이내 다리를 박차고 분노로 몸을 떨었다.
“가자! 파키케 뭐시기!”
“….”
도무지 정상적인 놈들이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세운 채 시작되는 공룡의 돌진을 방패로 막아냈다. 하지만 밀려나지는 않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공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별 건 아니지만.
“의자에 발을 걸치는 것쯤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휘둘러 공룡을 튕겨냈다. 그건 그렇고, 이런 단순한 기술조차 보고서 놀랄 정도라니. 뇌가 작기는 한가보군.
애초에 공룡과 싸우는 일 자체가….
“흔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기합의 대신, 소리를 버럭 내지르며 뛰어들었다. 달려들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녀석은 두터운 머리를 방패삼아 검을 막아냈지만 나는 능숙하게 검을 흘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길이가 길면 선회가 힘들기 때문에…!
“하아아아앗!!”
아슬아슬하게 옆을 지나치며, 나는 공룡의 목에 스파다를 대고는 그대로 베어 넘겼다. 마치 날이 두터운 전기톱과 같은 모양을 한 검은 벤다기보다는 거의 갈아버린다는 느낌이었다.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앗?!”
공룡이 허리를 치켜들며 비명을 내지르자, 목에 올라타 있던 모히칸이 뒤로 굴러 떨어졌다. 꼬리 쪽으로 빠져나가려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방향을 선회, 공룡의 위로 올라타 스파다를 역으로 쥐었다. 그리고는 곧장 검을 내리꽂으려고 했지만,
“크헉?!”
역관절을 한 다리가 움츠러들더니,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한순간 시야가 아찔해지며 나는 완충제마냥 녀석의 등에 끼인 채 천장을 꿰뚫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족히 수십 미터는…?!
“큭!”
정신은 금세 돌아왔지만, 나는 높이 뛰어오른 상태에서 하반신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잠시 뇌가 굳어진 상태에서 나는 곧장 녀석의 등에 매달렸다.
피는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 발버둥처럼.
“빌어, 먹을!”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천천히 하강이 시작되었다. 공룡은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르며 나를 떨쳐내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녀석과 나는 공중에서 얽히며 어떻게든 상대를 밑으로 누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지상은 계속해서 가까워져왔다.
방향이 비틀려 이대로라면 눈 위에 충돌 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중간부터 공룡은 포기를 하고 나를 길동무로 삼기 위해 팔뚝을 물고 늘어졌다.
제길, 어떻게 해야…!!
바로 그 순간, 뭔가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다.
“넬!!”
“주인님?!”
“의식, 조종…!!”
그리고 나는, 무척이나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킬을 시전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신호가 잡히며 누군가 천천히 내 망자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그건 트리슈였다.
“날, 쏘게 해!”
“그, 그게 무슨?!”
“시간이 없어!!”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팔이 너덜너덜해지기 직전에 공룡을 떼어냈다.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녀석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트리슈가 나를 쏘기 전까지 공룡의 정신을 흐트러뜨리려 했다.
“주인님!!”
얼마 지나지 않아 넬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트리슈를 발견했다. 거리는 백 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였으나 눈동자가 공허했다.
녀석은 지체하지 않고 내게 화살을 쏘았다.
망령 신체는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나는 각오를 다지고는 화살을 손으로 막아냈다. 푸욱, 하고 양 손등이 꿰뚫리며 내 몸은 화살의 충격으로 다시금 달리는 기차 위로 틀어졌다. 공룡이 떨어져 나갔다.
키이에엑, 하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크윽!!”
그리고 충격이 찾아들었다.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기차 위로 떨어진 나는, 몇 번이고 튕기며 뒤쪽으로 굴렀다. 나는 이를 악물며 팔을 뻗어 기차칸 사이에 화살을 걸치고 버텨냈다.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다. 나는 손등을 꿰뚫은 화살을 걸쳐 숨을 몰아쉬고는 이내 몸을 가누고 천천히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 주인님!”
“너는 맨날 나만 보면 주인님, 주인님이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괜찮다는 의미에서 쓴웃음과 함께 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녀석은 양 손등을 꼬챙이처럼 꿰고 있는 화살을 보고는 안색이 흩날리는 눈발만큼이나 새하얗게 물들었다.
“괜찮다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화살의 날 부분은 발바닥 사이에, 깃 부분은 입에 물고는 반으로 부러뜨렸다. 그리고 단숨에 쓱 뽑아냈다. 당연히 상처는 없었다.
통증은 심각했고 방어력도 너덜너덜했지만.
“후우….”
나는 숨을 몰아쉬며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시야 한쪽에서는 매가 다람쥐들을 잘 상대하고 있는 듯했지만 어쨌든 녀석 혼자서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