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아니 하지만 그녀가 이 가게를 택한 이유는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저, 여기 고기 좀.”
그녀는 미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워메, 학생 잘생겼구마이.”
그런 내 이야기에 쟁반 위에 고기를 잔뜩 쌓아둔 아주머니가 오셔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다. 예열을 해둔 것일까. 금세 자글자글 소리와 연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뭐가 잘생겼다는 건지….”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아주머니를 보며 당황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약간 목을 조여든 차이나 칼라가 당기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어느덧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넬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인님은 자기 외모가 출중한 줄 모르시거든요.”
“넬….”
“호오.”
“정현 씨까지….”
짓궂게 웃는 정현 씨의 모습에, 나는 곤란해져 중얼거렸다. 딱히 쓸 만한 곳도 없는데, 그리고 자각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칭찬을 들어봤자 당황스러울 뿐이다.
“싫으신 건가요?”
그리고 정현 씨가 말문을 열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쇠로 된 집게를 들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딱히 좋지는 않네요.”
“왜죠?”
“이유를 꼭 말해야 하나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정현 씨가 이내 눈썹을 찌푸린 채 당황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기를 뒤집었다.
“딱히, 쓸 만한 게 아니니까요.”
어쨌든 이 아줌마는 조금 분위기를 예열시키고 싶은 모양이었다. 눈앞의 불판처럼.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로원 봉사하는 마음으로.
“실용주의를 신봉하시는군요.”
물론 눈앞의 여자는 3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웃을 때마다 입가에 살짝 주름이 지는 것 외에는 솔직히 나이를 먹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왜, 쓸모가 없는 걸 싫어하시는지요?”
“따,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좋지 않을 뿐.”
“….”
슬쩍 옆을 돌아본 나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넬의 모습을 발견했다. 관찰하는 듯한 호기심이 섞인 눈에 나는 애써 말을 이었다.
“그건 다른 거잖습니까?”
“다른 거죠.”
네, 하고 동의하듯 우정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준 씨는 가끔…. 그런 것들에 너무 초연해지려는 것처럼 보여서요.”
“….”
“돈이라던가.”
그녀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걸까.
“아뇨, 그건….”
“그건?”
“단순히 대등한 관계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신과.
“저는 갤러해드가 되어, 이 게임을 끝낸다는 목적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필요한 지원이 돈은 아니니까.”
게임 상의 재화라면 몰라도…. 말이지.
잠깐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뒤를 이어 무언가 얼굴 앞에 드리워지자 시선을 향했다. 우정현 씨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앞에….
“윽?!”
따콩, 하고 이마를 얻어맞았다.
무, 무슨 괴력이야 이 아줌마…!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도 좋지만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군요.”
“이, 이게 무슨…?!”
“그조차 단련으로서 이용하라는 거죠.”
“네에…?”
약간 당황해 묻자 정현 씨는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모르가나도,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까?”
“…. 조금 다르지 않나 싶은데요.”
“근본은 같습니다. 당신이 다루기 곤란해 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돈도, 외모도, 그리고 모르가나 역시.”
정현 씨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어딘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까.
만약 내가 잘생겼다면, 그걸 이용하라고?
“그런 건가요?”
내가 그렇게 묻자 정현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쨌든 손에 무슨 패가 주어질지는 알 수 없으므로. 그걸 이용하는 법은 기회가 있을 때 미리 익혀두는 법이 좋죠.”
“…. 그래서 와인 컨퍼런스를?”
“아뇨 그건, 그때 퀘스트가 있다는 정보를 따로 알았거든요. 유하 씨라면 당신을 데려가지 않을까 싶었죠.”
“곤란했거든요. 그때 아무 말도 안 해주셔서.”
하마터면 흥분해 모르가나를 쓸 뻔했다.
“예,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었습니다. 주최자 분께서 이준 씨와 만났다고 따로 연락을 주시더군요.”
“…. 음.”
“만약 이준 씨가 키 175의 볼품없는 사내였다면 그 분께서 기억을 하셨을 리 없겠죠.”
“무척이나 구체적인 예시로군요.”
“요는 가지고 있는 패는, 그리고 남이 쥐어주는 패는 열심히 써봐야 한다는 거죠. 인간의 삶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투쟁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준 씨는 꽤나 좋은 무기를 쥐고 난 셈이고.”
“만약 그게 없었다면?”
“싸움이 어려워지겠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앞에 있는 패는 어떠신지?”
“예?”
갑작스레 요염한 미소를 짓는 정현 씨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 되물었다.
“이 누나에게 부탁할 일이라도 있어 보여서.”
능숙하다.
나는 처음에 이 눈앞의 아줌마가 미안해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로 시간을 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여자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술이라도 필요할 것 같은 분위기로군요.”
“네?”
“한 잔, 어떠신지. 저는 술은 별로 마시질 못하지만.”
“….”
그건 이쪽도 마찬가진데.
내가 당황해 입을 다물고 있자니 정현 씨는 가볍게 손을 들어 식당 아주머니를 불렀다. 넓은 가게에 손님도 많았지만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 걸까. 금세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기에서 가장 좋은 술을 부탁합니다.”
“….”
그리고 아주머니는 소주를 들고 오셨다.
차갑게 얼어붙은 병이 놓이고 잔 두 개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설렁설렁 나왔다. 그리고 정현 씨는 가볍게 소주를 따고는 나에게 따라주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이준 씨가 가지고 있는 패를 좋은 방향으로서 활용해 이득을 본 거라 할 수 있겠죠?”
“네…?”
“저 아주머니, 서빙을 하시면서도 계속 이준 씨를 힐끔힐끔 쳐다보셨거든요. 그래서 바로 오신 거고.”
그래서였나.
“어쨌든 그래서, 뭔가 부탁하실 게 있는 모양인데.”
“…. 일단 드시면서 이야기하죠.”
“그렇게 할까요.”
고기는 마침 먹음직스럽게 익은 상태였고, 그걸 본 정현 씨가 소주잔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부딪쳤다.
◇
오늘 일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다.
유하는 카페의 카운터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 부드럽게 호를 그리는 눈썹은 현재 잔뜩 찌푸리고 있는 상태로, 낮의 일을 계속해서 되새기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거의 매일 같이 오시는 근처 부녀회 모임의 아주머니들이 무슨 일 있냐고 물었을 정도로.
그리고 잔뜩 화가 나잇던 유하는 저도 모르게 못 말리는 준의 여성 편력(?)에 관해 늘어놓았고, 조언을 한 가지 듣게 되었다.
남자는 꽉 잡아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에 농담을 좋아하시는 다른 아주머니께서 아랫도리에 달린 걸 꽉 잡으라고 말씀하셔 당황하긴 했지만, 어쨌든 간에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했다.
남자는 꽉 잡아야 하는 것이다.
“….”
무, 물론 그쪽도?
음, 누나한테 솔직하게 사과하면?
상으로?
그 말에 슬쩍, 저도 모르게 가슴 밑을 받치며 팔짱을 낀 유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녀로서는 사실, 준이 좋은 여자친구를 사귀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음에도 좀처럼 그걸 인정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모르겠다.
남동생으로의 준.
남자로서의 준.
그 어느 쪽이 자신이 원하는 진짜 준인 걸까. 그녀는 한동안 고민에 빠져서는 입을 다물었다.
“나, 왔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이 안으로 들어왔다. 얼른 표정을 굳힌 유하는 일부러 화가 난 얼굴을 지으며 문앞에 서있는 준을 향해 다가갔다.
“준, 잠깐 얘기 좀….”
“시끄러워.”
“네…?”
순간적으로 그런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뜬 유하는, 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있는 걸 보자 뒤쪽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있는 넬을 바라보았다.
“주, 준? 술 마셨어요?”
그리고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왜?”
“왜, 냐니…?”
“남자가 사회 생활하면 술 좀 마실 수도 있는 거지.”
“….”
어이가 없어 유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준은 이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알았으면 가서 꿀물이나 좀 타와.”
“주, 주인님?”
그런 이야기에 당황한 넬이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준은 무뚝뚝하게 중얼거리고는 가게 안쪽으로 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목을 갑갑하게 조이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몇 개 끌렀다.
“….”
“유, 유하님 많이 화나셨을…. 텐데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하의 눈치를 살피며 넬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예 테이블 위에 그 긴 다리를 뻗어 올려놓은 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뭐해, 빨리.”
그리고 유하는,
“네, 네에…♡”
완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이 되어서는 부엌으로 총총 들어갔다.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리는 엉덩이를 바라보던 넬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준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반병도 못 드셨잖아요?”
“시끄러워. 남자가 사회 생활하면 술 좀 마실 수도 있는 거야. 알았으면 가서 꿀물이나 타와.”
“….”
“주, 준. 여기 꿀물이요오….”
그리고 유하가 쟁반 가득 꿀물이 담긴 컵을 든 채 돌아왔다. 준은 귀찮다는 듯이 그걸 바라보다가 이내 단숨에 들이켰다. 보통의 남자가 한다면 추접스러운 행동일 테지만 그가 하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주, 배운 대로 바로 써먹으시는군요. 주인님….”
그런 모습에 넬은 헛웃음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