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끼익, 끼익. 하고 천장에 달린 등이 삐걱거렸다.
수갑이 채워져 등 뒤로 돌려진 손은 아까부터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딱딱한 책상 위에 고개를 처박은 채, 준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만들어진 수갑은, 게임 상의 아이템으로 취급이 되어 움직일 때마다 손을 심하게 조여 왔다. 일반인보다 월등히 강한 신체 능력을 지닌 에스콰이어를 구속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즉, 등을 당한 통증 또한 계속해서 이어져 준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것을 견뎌냈다. 피나 상처는 단순히 이펙트였고, 통증은 단순히 게임의 시스템에 따라 뇌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역시 몇 시간째 이어지는 감금은,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듯했다.
물이 마시고 싶다.
어느덧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만이 남아, 준우는 머리를 털어내며 애써 견뎌냈다. 발렌타인, 타나토스, 트리슈까지. 분명히 우아랑에게는 자신 혼자 체포를 당했지만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이었다.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바깥쪽에서 형광등 빛이 바닥을 물들여, 준우는 어깨를 흠칫 떨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천천히, 구둣발 소리를 내며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붉은 머리가 보였다.
“김준우?”
“…. 어떻게 그걸.”
지문을 비롯해 각종 개인 정보를 알아낼만한 것들은 아서리안의 보안 프로그램에 의해 보호되고 있을 텐데. 거기에 재킷을 해제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얼굴은 형태가 없는 가면이 씌워진 걸로 보일 터였다.
“어떻게 라니? 할 킬러즈의 기술력을 얕보지 말라고.”
비릿하게 미소를 지은 남자가 이내 책상 위에 손을 얹었다. 흰색으로 펄럭이는 코트, 그 안에는 베스트와 셔츠, 넥타이라는 깔끔한 차림이었다. 거기에 진한 붉은빛의 머리까지. 준우는 완전히 분위기가 변한 가웨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사실 농담이야.”
그리고 그는 짓궂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키가 190이 넘는 서울에 사는 20대 남자들을 사이에서, 너와 닮아 보이는 하관을 일일이 대조해본 거야. 어떻게 보면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약간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쉰 가웨인이, 이내 의자를 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품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그대로 불을 당겼다.
“빼빼로.”
그리고 게임 상의 닉네임으로 자신을 불렀다. 약간 떨떠름하게 있던 준우는 인상을 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웨인님, 맞으시죠?”
“응, 맞아. 오랜만이네.”
애초에 그다지 많이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현재는 할 킬러즈에 계신 거군요.”
“큭큭큭…. 그렇다. 나는 그동안 함께해온 동료들을 모두 팔아넘기고 이 자리를 보장받았지. 국가의 개로서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소중한 것들을 모두 바치고서는. 뭐 이렇게 이야기하면 좀 악역처럼 보일까?”
“….”
준우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아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심각해?”
명백히 놀리고 있다.
준우는 그런 감각에 진지한 얼굴로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지금, 다른 할 킬러즈와는 달리 이 세계를 철저히 가상의 것으로 치부해버림으로서 도리어 자신을 놀리고 있는 듯했다. 마치 엘레노어가 그러듯이.
“할 킬러즈는 악당이잖아? 세계에 만연한 위기를 지켜내려는 에스콰이어를 방해하는.”
“글쎄요….”
그건 게임 상의 설정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준우는, 지금 가웨인이 하는 말에 슬쩍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자신은, 전 세계적으로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범죄로서 인정되는 게임을 하다가 붙잡혀온 한낱 범죄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가웨인은 지금의 자신을, 마치 게임 세계에서 통용되는 악의 집단 할 킬러즈에게 붙잡혀온 에스콰이어 취급을 하고 있다.
“왜 내가 이러는 건지 궁금해?”
“….”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반응을 살폈다.
가웨인의 입술에 닿아있는 담배가 비틀리며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타나토스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상당한 미남 축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더없이 잔혹한 웃음을 입에 머금었다. 마치 굶주린 맹수와 같은.
“나로서는 이 게임 세계가 유지되었으면 하니까.”
“네…?”
“일단 그럼, ‘현실’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준우가 놀라 되물었으나, 그는 그 말을 무시한 채 품안에서 검정색의 보석을 하나 꺼내들었다. 잠깐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통증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재킷이 해제된 것이었다.
“어떻, 게…?”
거기에 디멘션 커넥터까지 종료가 되어, 준우는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아무런 팝업창도 떠오르지 않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괜찮지? 아니, 음. 이 수갑은 누가 채운 거야?”
“우아랑 대위가….”
“하아, 그 병신 같은 년.”
아무렇지도 않게 독설을 내뱉은 가웨인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 대위님!”
“…. 네. 백 대위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아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보다 더욱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 준우는 약간 분위기가 무거움을 짐작했다.
“이것 좀 풀어줘요.”
“뭘 말입니까?”
“뭐냐니, 수갑.”
“….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대해주자는 거죠. 인간적으로.”
비교적 예의바른 태도를 취하는 우아랑과는 달리, 가웨인은 비웃으며 반쯤 도발을 했다. 잠시 그런 가웨인을 강하게 노려보던 우아랑이 가까이 다가왔다.
“됐습니까?”
그리고는 수갑을 풀어 품에 넣었다. 그제야 팔이 자유롭게 된 준우는 팔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등을 기대고 추욱 늘어져 앉았다.
“그보다…. 이 녀석, 왜 재킷을 해제하고 있는 겁니까?”
잠시 그런 준우를 바라보던 우아랑이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그 말에 살짝 시선을 피한 가웨인이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협조적인 친구라서.”
“…. 알겠습니다.”
그 보석에 대해서 우아랑은 모르고 있는 걸까.
준우는 반쯤 탈력 상태가 되어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하지만 차마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는 걸까. 분한 얼굴로 가웨인을 바라보던 우아랑이 이내 바깥으로 사라졌다.
“짜증나는 여자라니까.”
그리고 뒤를 이어 쓰레기통 같은 걸 걷어차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성격도 더럽고.”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는 저 년 성격이지. 딱딱하고 성질부릴 줄만 알지 ‘유도리’있게 일을 처리할 생각을 못하니까.”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 가웨인이 이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밀을 이었다.
“아마 이번 일로 징계를 받으지 않을까 싶고.”
“우아랑 씨가 말입니까?”
“응, 이번에 내부에서 정한 방침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면서 저렇게 사고를 친 거라. 참 좋지 않아? 군인이란. 실리보다 허례허식을 중시한다는 부분이. 사람을 개로 만들어 다루기 참 편하고 좋거든. 그게.”
“….”
“그래서 간단하게 제안 하나를 하고 싶은데.”
약간 당황하고 있는 준우를 향해, 가웨인은 붙임성 좋게 말을 이었다.
◇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적당히 협의를 마치고 다들 집으로 돌려보낸 뒤, 나는 어둠 속을 날고 있었다. 우정현 씨에게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고 약속 장소를 잡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넬.”
“네넬!”
“혹시 문제가 생기면 말해줘.”
“주인님도, 저를 믿고 맡겨주세요!”
활기차게 소리친 넬은 간호사 옷을 입은 채 팝업창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이제는 그 특유의 코스프레가 눈에 익는 걸 느끼며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은 재킷을 직접 조종해 내 신체를 서서히 회복시키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치료소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시는 편이 낫지만….”
“별 수 없잖아. 시간이 없는데.”
“그러다가 한 번에 훅 가세요.”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지도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말 그대로 시간이 없었기에 택한 고육지책이었고 머릿속에 복잡한 걸 느꼈다.
역시 난 아직 약한 걸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무척이나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스테이터스창을 실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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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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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타나토스
Lv : 102
Knightage : -
JACKET : Necromancer
Exp : 1,820,000/2,6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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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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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440
방어력 : 50
민첩성 : 410
정신력 : 60
연산 속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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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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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신 : F
망령 신체 : C
의식 조종 : C
망자 소환 : B
근본 승계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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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강해지긴 했지만 역시 부족한 걸까.
지금의 나는, 뭐 물론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였지만…. 기사 계급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걸 망령 신체라고 하는 조커의 존재로 인해 파훼해왔다. 그게 아니었다면 가웨인과의 전투에서도 녀석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비헤딩 슬래셔를 맞고 진작에 나가 떨어졌을 터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스킬의 존재로 인해 방어력은 최저한도까지 투자를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스킬도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 편이었기에 이 두 가지에 투자를 않고 따라붙기 위한 공격력과 방어력에 투자를 했다.
하지만 망령 신체가 파훼를 당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린슬렛의 방패를 사용해봤자 라이오넬이나 우아랑의 앞에서는 완전한 대응책으로 쓰기 어려울 터였다.
어떻게 하지.
뭔가 방법이 없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으나 좋은 해결책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고민으로 가득한 채 약속 장소까지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도착했다.
“….”
내가 청강생으로 다니고 있는 대학가 근처에.
신촌역이라는 역명에, 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걸 감춘 채 평범한 사람처럼 걷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진작 빼 품안에 넣어두었으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가죽 재킷을 입은 대학생처럼 보일 터였다.
“헤에, 역시 인기 좋으시네요.”
“무슨 소리야?”
“다들 주인님만 보고 있으시니까요.”
“….”
이해가 되지 않는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신경을 써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들이 길을 지나다 내 얼굴을 보고는 멈춰서는 게 느껴졌지만….
인상이 더럽나?
“근데 왜 하필 이곳인 거지.”
“글쎄요? 정말 왜일까요.”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마커가 가리키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5분 전인가 우정현 씨로부터 먼저 도착해 가게 안에 있겠다는 연락을 받았으므로. 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듯 가게로 향했다.
고기 집이었다.
19,000원 무한 리필 삼겹살.
“…?”
“아, 가게 하나를 통째로 사신 걸까요?”
“그럴 리가 있냐.”
그럴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사람이고.
넬의 바보 같은 소리에 핀잔을 준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애써 감추며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로 된 벽, 커다란 가게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안에서도 존재감이 드높았다.
“음, 회장님?”
“아, 이준 씨.”
슬쩍 다가가 말을 걸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지 정장이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이었으나 고기집에서 주는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식사는 아직이시겠죠.”
“네, 그렇습니다만….”
곳곳에서 시끄러운 말소리에 고기를 굽는 소리가 겹쳐져 나는 우정현 씨의 맞은편에 앉았다. 반면 이쪽은 고기는 굽지 않고 아직 테이블 세팅만 해둔 상태였다.
“…. 잘 아는 가게인가요?”
“아뇨, 학생들이 잘 찾는 가게라고 검색하니 나와서.”
그렇게 중얼거린 우정현 회장님께서는 내 앞에 젓가락을 놓아주셨다. 나는 검색 시스템의 폐해를 걱정하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