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바람?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 순간, 칼날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개나 되는 칼날이. 바람이 형상을 이룬 그것을 보고 트리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윽…?!”
팔과 다리가 찢겨져 나가는 감각에, 그녀는 이를 악 문 채로 공격을 견뎌냈다. 잔뜩 찌푸리고 있는 시야의 너머로 우아랑의 잔상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은 명백하게 음속을 넘은 스피드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아아앗!!”
잔상의 끝에서 우아랑이 기합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피부가 찢겨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반쯤 본능에 의거해 몸을 비틀어 트리슈는 어떻게 해서든 치명상은 피해내려고 했으나, 그럴 때마다 우아랑의 검은 점점 더 속도를 높여갔다.
“끝이다! 트리스탄!”
짧게 일갈한 우아랑이 눈앞의 공간을 베어내 바람을 만들어내고는 그대로 검으로 쳐서 날렸다. 회오리처럼 찢겨져 날아드는 검풍에 트리슈는 치명상을 직감했다.
하지만, 다리가…. 무거워져서…. 피할, 수가…!
“꺄아아악?!”
볼품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다음 순간, 누군가 트리슈를 끌어안은 채 검풍을 등지고 섰다. 거대한 덩치에, 트리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왜? 아니 대체 어째서?
“왜, 오빠가…!”
뒤를 이어 살점을 찢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준우는 발버둥치는 트리슈를 품에 안은 채 그것을 견뎌냈다. 비명을 참아내는 듯 질끈 감은 입술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트리슈의 이마로 떨어졌다.
대체, 대체 왜…!
왜 이런 순간에서조차 참는 건데!
“…! 빼빼로!”
검풍이 지나가고, 준우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트리슈는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뒤로 물러서며 숨을 몰아쉬는 준우를 바라보았다.
엉망진창이었다.
모든 게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빼빼로! 정신 차려요! 빼빼로!”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가까이 다가온 발렌타인이 준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가까이 다가온 우아랑이 손을 들어 발렌타인의 뺨을 쳐냈다.
“윽!”
“미련한 녀석들이군.”
바닥에 쓰러진 발렌타인을 노려본 우아랑은 품안에서 수갑을 꺼내 준우의 손에 채웠다. 그리고는 뒤통수를 짓눌러 바닥에 쓰러지도록 했다.
“그래도 나로서는 좋은 일이로군. 이로서 기사 트리스탄을 포함해 베디비어 후보자, 마지막으로 쥬브나일 포르노의 함장까지 잡게 되었으니.”
끝이다.
트리슈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볼품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생각했다. 이길 수 없다. 이 여자에게는 이길 수 없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들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발렌타인이 장죽을 뽑아들려고 했으나 뒤에서 달려온 다른 할 킬러즈의 요원에게 제압당했다.
“얌전히 붙잡히는 건가. 트리스탄.”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우아랑이 다가와 수갑을 손에 채웠다. 트리슈는 멍하니 그걸 바라보면서도 무력감에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한쪽 손에 차가운 금속이 휘감겼고 그녀는 다른 손목 쪽으로 다가가는 수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뭣…?!”
무언가 달려들어 우아랑의 손목을 물어뜯었다.
뼈로 이루어진 늑대였다.
“이게, 무슨?!”
놀라 늑대를 바라보던 우아랑이 팔을 휘둘러 떨쳐냈다. 바닥에 쓰러져 부서지는 늑대를 본 그녀가 이내 뭔가를 느낀 듯 완전히 뒤를 돌아보았다.
“….”
그가 서있었다.
“오, 오빠…?”
참혹한 광경에 트리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중얼거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타나토스가 비틀거리며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얼굴을 뒤덮는 모습에 트리슈는 입술이 떨리는 걸 느꼈다.
“설마, 네놈 라이오넬을….”
“아니, 싸우다 말고 엄마가 불렀다면서 집에 가더군.”
“…. 내 앞에서 난장을 까자는 거냐!”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 타나토스의 말에 우아랑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숨을 몰아쉬며 품안에서 척추를 뽑아낸 듯한 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자, 덤벼. 우아랑. 라운드 2다.”
“타나토스, 님….”
준우가 고통에 찬 신음을 참아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우아랑의 구둣발에 차여 다시금 바닥에 고개를 처박혔다.
“어째서, 타나 오빠…. 왜….”
트리슈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비틀거리는 타나토스의 옆에, 넬이라는 네비게이터가 진지한 얼굴로 서포트를 하려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저런 꼴을 보고도?
“…!”
그리고 검이 부딪쳤다.
◇
나는 반쯤 뇌가 맛이 간 상태였다.
뇌진탕이라는 걸까. 아니, 모르겠다. 그런 의학적인 소양 따위는 없었고, 여기에서 통하리라는보장 또한 없으니까. 단지 머릿속에 있는 건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걸 위해,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런 몸으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냐!”
“….”
우아랑의 말에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검이 부딪쳤으나 나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방어력은 일찌감치 제로였고 나는 벽에 처박혀 기침을 했다. 쿨럭, 거리며 피가 흘러나왔다.
“주인님…!”
“괜찮, 아.”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킷이 사용자의 신체가 위험하다는 걸 느끼는 걸까. 정신이 몽롱해 잠이 쏟아졌다. 거기에 신체의 백업도 떨어져 나는 거의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우아랑의 검과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하아…. 하아….”
하지만 버텨낸다.
“게임에 푹 빠지셨군. 스컬.”
검을 바로 잡으며 가까이 다가온 우아랑이 비웃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반응하지 않은 채 검을 쥐었다. 망령 신체의 쿨타임을 계산했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수단이었다.
“재킷이 뇌를 재우려고 하는데 버티고 있단 말인가? 대단한 정신력이군. 하지만 그 상태에서 싸우다간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 네놈은 그래도 좋단 말이냐?”
“…. 글쎄.”
“한심하군. 저열하고.”
차갑게 중얼거린 우아랑이 한껏 혐오감을 담아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답을 미룬 채 비틀거리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팔을 내린 채 서있는 우아랑을 향해 휘둘렀다.
“느려.”
“큭?!”
하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스파다를 검지와 중지에 끼워 가볍게 잡아냈다. 힘의 차이가 명백하게 느껴지는 동작에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비틀었다. 하지만 우아랑은 고개를 내젓고는 곧바로 팔을 휘둘렀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내로군.”
“커헉?!”
“타나 오빠아아앗!!”
하지만 다음 순간, 복부를 무언가 관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망령 신체를 시전 하려던 나는,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뒤쪽에서 트리슈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처럼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지?
“망령 신체, 라고 했나. 확실히 최고급의 스킬이긴 하지. 일정 시간동안 모든 공격을 무효화 시킨다니. 덕분에 첫 번째 전투에선 깨나 애를 먹었어.”
“윽, 극….”
나는 고개를 들어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며 나는 눈앞이 멀어지는 걸 느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앞으로 쓰러졌다.
“주인님! 정신 차리세요! 주인님!”
“하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아. 내 질풍난화는 네놈의 의식보다 빠르게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으니까.”
우아랑의 부츠가 보였다.
“대체 뭐하자는 능력의 재킷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의 그 저열한 본성과 연관이 있다는 건 알겠다. 이게 철저하게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부츠가 멀어져갔다. 그리고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뭣…?!”
“반대, 다….”
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도무지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기어 녀석의 발목에 매달렸다.
“이게, 현실이니까….”
“끈질긴 자식!”
그리고 턱을 걷어차였다.
“주인님!”
“오빠!!”
그리고 시야는, 완전히 암흑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
“…. 뭐냐, 그 스킬은?”
나는 대검에 꿰여 벽에 박힌 채 그런 질문을 던졌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통증이 몰려들었으나 이내 아예 감각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 나를 앞에 둔 채 서있던 라이오넬이 눈앞에 팝업청을 띄우고는 두드렸다.
그리고 뭔가 날아들었다.
“…?”
- 아서리안 전용 언어 번역기를 설치하시겠습니까?
뭐지?
권유하듯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그것을 꾸욱 움켜쥐어 권한을 허락했다.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번역기라는 걸까. 그렇게 보자면 녀석은 외국인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지는데.
“가능한가? 너는, 듣다. 나의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스웨어로 조잡하게 합성한 듯한, 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허나 번역기의 성능이 나쁜 걸까. 무척이나 괴상한 번역이었다.
말을 안하는 이유는 그래서인가.
“아…. 이해는 되는군.”
그렇게 중얼거리자 라이오넬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바이크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검은 피부와 깊은 눈동자. 그것이 나를 응시했다.
라이오넬은 흑인이었다.
완전한 검정색에 가까운 피부, 두툼한 입술과 깊어 보이는 눈동자. 머리는 완전히 박박 민 스킨헤드였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인 모습에 이쪽의 공격이 아예 효과가 없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하다. 전언. 가웨인의 너에게 하는.”
“….”
“로 만들다. 내가 아주 멍청한 똥. 너.”
너는 내가 박살내겠다. 그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
“잘 씻어라. 목.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더럽진 않다고…?”
나는 이 말이 녀석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약간 걱정이 드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번역기의 성능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나, 싸운다. 위대한 전사. 사자의 심장을 지닌.”
하지만 라이오넬의 얼굴은 진지했다.
“하게 두지 않는다. 파괴. 이 게임. 나의 나라를 위해.”
“나라…? 윽!”
뜬구름 잡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니, 이내 라이오넬이 대검을 뽑아냈다. 쑤욱, 하고 배 아래가 사라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나는 수면 위로 떨어졌다.
“넬….”
하지만 물에 빠지지 않았던 터라, 나는 저도 모르게 그런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내 옆에 다가온 넬이 대신 팝업창을 띄워 재킷의 상태를 조작했다.
“주인님…. 그대로 계세요! 상처를 막을게요!”
“윽, 극….”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라이오넬은 자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를 악문 채 서있던 나는 이내 비틀거리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
“…!!”
하지만 다음 순간, 액체 속에서 눈을 떴다.
“윽?!”
“주, 주인님 더 누워 계세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나는, 넬의 제지에 이곳이 치료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정색 액체가 전신을 뒤덮어, 나는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넣으려 했다. 짜악, 하고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린슬렛…?”
놀라 고개를 돌린 나는 방문 앞에 서있는 금발의 소녀를 보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분노한 듯 다물고 있는 입술. 린슬렛은 악의에 찬 얼굴로,
“트리, 슈?”
반대편의 트리슈를 노려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흑인 캐릭터는 꼭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