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대검에 얻어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한순간 시야가 멀어지며 눈앞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라이오넬이 도약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라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자식, 복부에서 피가…?!
그렇게 생각하며 어깻죽지의 방패를 세우려던 순간, 갑자기 라이오넬이 바닥에 검을 박으며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닥에 발을 디뎠고, 바로 다음 순간 눈앞을 용암이 물들였다.
“?!”
바닥이 흔들렸다. 쩌억, 하고 라이오넬과 내 사이의 지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용암이 솟아올랐다. 마치 커튼처럼 드리운 그것을 보며, 나는 반대편의 라이오넬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했다.
“….”
내가 찌른 옆구리 쪽이 갈라진 채, 그곳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물론 일반적인 자상보다야 적은 양의 피였지만, 녀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설마 진짜 피가 아닌 건가?
단순히 디멘션 커넥터가 현실을 증강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그런 이야기인가?
“너, 다쳤다고.”
나는 약간 궁금증을 느끼며 녀석을 향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라이오넬은 더 이상 무어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용암이 잦아들었다. 나는 조그맣게 ‘망령 신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스파다를 바로 쥐며,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키만 한 대검을 땅에 처박은 채 있는 2미터가 넘는 거한을.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바이크 헬멧에 내 얼굴이 비췄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속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역시 한 방 먹여줘야겠단 말이지.
“가디언 서핑.”
그리고 나는 돌진했다.
공기를 가르고, 채 꺼지지 않는 용암의 불씨를 베어내며. 어깻죽지의 방패를 세운 채 달려들었다. 린슬렛의 힘을, 그녀가 지닌 ‘망자’로서의 힘을 되살리며…!
“으아아아앗!!”
나는 그대로 녀석의 복부를 꿰뚫을 각오로 부딪쳤다. 영점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에 라이오넬은 반응을 보이지 못했고, 나는 녀석과 함께 대지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용암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
온몸이 불꽃에 휘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통증도, 대미지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시야가 붉게 물드는 걸 느끼면서도 손을 뻗어 라이오넬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곧장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젠장….”
불쾌한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망령 신체가 끝나기 전, 몸에 붙은 불씨를 털어냈다. 물론 이것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지만, 그 불쾌한 감각은 진짜였다. 나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걸 느꼈다.
- 스테이지 해제
- 승자 ‘타나토스’ : 방어력이 전부 회복됩니다.
- 패자 ‘라이오넬’ : 상태 이상 ‘화상’을 받습니다. 스테이지에서 얻은 부가 효과가 지속됩니다.
역시 그런 거였군.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팝업창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이지의 해제 조건은 역시나, 용암 속에 상대방을 먼저 처박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망령 신체라는 스킬로 인해 방어력보다는 공격에 올인을 한 스타일이었지만…. 서도.
“어쨌든 감사히 받아두도록 할까.”
스테이지가 ‘걷어졌다.’ 다시금 오수처리장으로 돌아와, 나는 수면 위에 쓰러져 있는 라이오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불꽃에 몸이 휘감긴 채였고, 나는 이대로 녀석이 일어서지 못하는 걸 확인하자….
“….”
“뭐?!”
하지만 움찔거리며 팔이 움직였다.
라이오넬이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온몸에 불꽃을 휘감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목을 우드득 꺾으며.
“너, 어떻, 게….”
스킬인가? 아니, 애초에 내 망령 신체조차 거기에 대해 아는 녀석들은 입을 모아 말도 안 되게 좋다고 말하는 판인데. 그렇다면 저 녀석은 대체…?!
가만히 있던 녀석이 불꽃에 휘감긴 대검을 들어 장전했다. 나는 이를 악 문 채 린슬렛의 방패와 동시에 스파다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라이오넬이 바닥을 박차며 내게 날아들었다. 나는 방패로 대검을 흘리기 위해 일부러 어깨를 더 안쪽으로….
“?!”
불꽃에 휘감긴 대검에 방패가 녹아내렸다. 동시에 녀석이 내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 챈 건지 돌진하는 와중 몸을 크게 한 바퀴 돌렸다. 대검이 풍압을 일으키고 다음 순간, 나는 복부를 뭔가가 꿰뚫는 걸 느꼈다.
“커헉!”
입으로 공기가 새어나왔다.
“….”
붉게 달궈진 대검이, 복부를 꿰뚫은 채였다.
“이, 자식….”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나는 시야가 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팔이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뭐지? 무슨 상황인 거지? 그리고 깨달았다.
검을 떨어뜨린 것이다.
“….”
여전히 아무 말도 않은 채, 라이오넬은 나를 복부에 매단 채 돌진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꿰인 채로 반대편 벽에 처박혀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무슨, 녀석이….
입으로 말조차 나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시야가 멀어지는 걸 느꼈다.
◇
트리스탄은 일대일의 전투에 있어서 그다지 강한 에스콰이어는 아니었다. 그것은 트리슈 스스로도 깨닫되, 괘념치 않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력함을 느꼈다.
“으윽?!”
허공에 뻗어 있던 검이 날아들었다. 그걸 요격해 피해낸 트리슈는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화살에 맞아 튕겨져 날아갔던 검은 다시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트리슈는 몸을 뒤로 날려, 우아하게 백 덤블링을 돌며 검을 피했으나…!
“트리스탄이라고 했던가.”
“꺄악!”
뒤쪽에서 날아든 또 하나의 검에 팔을 베이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려던 트리슈는, 이를 악 물며 베인 팔을 움켜쥔 채 중심을 잡았다.
“네놈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체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
허공에 떠있던 검을 움켜쥔 우아랑이 가까이 다가왔다. 트리슈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래, 다시 생각하자면 일대일에 약한 것과는 별개로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지난번의 랜슬롯 같은 경우에는 적당히 싸우고 있던 데다가 무작정 돌진해오는 계통이었기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지만…. 역시 활을 당기는 동작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우아랑의 어검은 상대하기 버거웠다.
“이 트리슈가 쉽사리 잡힐 것 같아…?”
트리슈는 오른팔에 매달린 활에 시위를 걸어 당기며 우아랑을 겨누었다. 지근거리였으나 그녀의 주변에 떠오른 검은 언제라도 트리스탄의 화살을 쳐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성으로서 완벽하게 밀렸다.
적어도,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었다면….
“자 그럼, 어떻게 할 텐가? 여기서 당장 재킷이 박살날 테냐. 아니면 잡혀가 적법 절차에 따라 재킷의 회수를 받을 테냐. 정해라. 시간을 주지.”
그게 그거잖아.
트리슈는 그렇게 비아냥거리고 싶은 걸 참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우아랑을 막아선 뒤, 도망치도록 한 준우와 발렌타인이 사라진지 5분이 넘게 지났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은데.
“정해라. 트리스탄.”
“저기 언니, 그렇게 딱딱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뭐…?”
“여자는 부드러운 맛이 있어야지.”
약간 도발을 하자 우아랑의 차갑던 표정에 금이 갔다. 거기에 또 금세 불이 붙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트리슈는 시위를 놓았다.
자, 이건 좀 아플 거야.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녹색으로 빛나는 화살이 쏘아져 나아갔다. 우아랑의 주변에 맴돌던 검이 그걸 막아내기 위해 파고들었다. 트리슈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 화살이 공중에서 터졌다.
“뭣?!”
흩어져 도탄처럼 주변으로 튀었다. 우아랑은 검을 들며 신체를 보호하려 들었지만 조그마한 화살이 갈래져 미처 보호하지 못한 팔과 다리에 박혔다.
“…. 선택권은 없어졌군.”
“헤에, 트리슈는 달라고 안했는데.”
“장난도 정도껏 해라. 트리스탄.”
“그렇게 인상 쓰고 살면 일찍 늙는다고?”
“안되겠군.”
트리슈의 도발에 가볍게 심호흡을 한 우아랑이 곧이어 검을 한 곳에 모았다. 합쳐진 검은 길이가 점점 길어져 이내 하나의 완전한 형태를 이루었다.
“갈 마음이 들게 해주지.”
“어라아? 여기서 재킷을 부순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인상 잔뜩 찌푸리고 말하면 될 줄 아는 이상하고 자기 꾸밀 줄도 모르는 여자가?”
“….”
트리슈의 도발에 침묵으로 대답을 한 우아랑이 천천히 검을 들었다. 트리슈는 다시금 피하기 위해 간격을 재며 무릎을 뛰어오르기 직전의 가젤처럼 굽혔다.
“음속을…. 따라올 수 있겠나?”
“…?”
뭐야 미친, 왜 저래.
트리슈는 손발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고쳐 쥐고 심호흡을 한 그녀는 이내,
“멸의 태도.”
눈앞에서 사라졌다.
“?!”
잠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트리슈는, 무언가 볼을 가르고 지나가자 놀라 손을 가져다댔다. 축축하게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 순간, 칼날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개나 되는 칼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