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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10화 (110/321)

110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발렌타인과 트리슈 사이에는 당연하다는 듯 불편한 공기가 감돌았다. 나와 준우는 그 사이에 불편하게 끼이고 있는 상황.

“팔은 괜찮아?”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담아 물었다. 잠시 팔을 위아래로 흔들거나 해보이던 준우는 이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네, 의외로 움직일 만합니다. 좋은 친구도 생겼고.”

“친구?”

“바로 나다. 에스콰이어.”

그리고 나무로 된 팔의 구멍에서 킁킁거리며 코를 내민 다람쥐가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등에 열쇠를 짊어지고 있는 다람쥐, 고르바초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의 이름이야.

“후후, 대등한 대결을 펼치고 오랜만이군.”

“대등…?”

“오, 트리스탄도 함께 왔군.”

내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되물었으나, 고르바초프는 짤막한 팔을 흔들며 트리슈를 돌아보았다.

“하이~ 고르바초프 아저씨.”

트리슈 역시 살갑게 인사를 건넸고, 다시금 코를 킁킁 거린 고르바초프가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내가 차마 뭐라 반응을 보이기도 전, 녀석은 트리슈의 가슴 사이로 꼬리를 흔들며 파고 들었다.

“꺄아♡ 이 짐승!”

“남자는 모두 짐승이라는 이름의 신사지.”

“…. 나와 인마.”

분위기가 괴상해지는 걸 느낀 나는 곧장 트리슈의 가슴 사이로 손을 넣어 다람쥐를 꺼냈다. 조그마한 다람쥐는 내 손에 붙들려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이냐!”

“네가 가지고 있….”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르바초프를 다시금 준우에게 내밀려던 나는, 이내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

준우를 기점으로 발렌타인과 트리슈까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듯했다. 애써 침착하게 정신을 차린 나는, 그대로 숨을 몰아쉬며 고르바초프를 준우의 팔 위에 놓았다. 녀석은 다시금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저, 저 녀석 아직 어디 안 갔구나?”

“네…. 할 일이 있다면서.”

“할 일?”

준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녀석은, 평범한 왼팔을 들어 눈앞에 창을 띄우더니 나에게 슥 던졌다. 나 역시 테이블 밑으로 트리슈와 손을 잡은 채였던 터라 자주 쓰지 않는 오른손을 들어 그걸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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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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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베디비어의 여정 7/10

난이도 : ★☆☆☆☆☆☆☆☆☆

내용 : 완성을 이루어 길을 개척하세요. 엇갈린 길이

하나로 합쳐지며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제한 시간 : 72:49:37

보상 : 경험치 3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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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니 근데, 뭐 이렇게 경험치를 많이 줘?

“네, 이것입니다.”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준우는 고르바초프가 숨어있던 옹이구멍 안쪽으로 손을 눌렀다. 그리고 뭔가 딸칵, 하고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윽…?!”

무언가 솟아올랐다.

나와 트리슈는 놀라 시선을 위로 향했다. 색체가 선명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위그드라실’ 같은 느낌의 거대한 나무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준우를 바라보았다.

“이, 이게 뭐야?!”

“음…. 일종의 그림 같은 거죠.”

그렇게 중얼거린 녀석은, 가볍게 팔을 들고 이리저리 비틀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나무는 오래된 벽화 같은 느낌으로, 옹이구멍이 영사기처럼 투영해주는 듯했다.

“오, 일인가.”

그리고 고르바초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림 속으로 뛰어든 녀석은, 벽화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실제 다람쥐 같던 모습이 뒤바뀌며 고대인이 표현한 듯한 심플한 다람쥐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나무에 달려들어 이빨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퀘스트창을 보았다. 멈춰있던 제한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완성을 이루라는 건….”

“아마 다람쥐가 나무를 완성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중얼거린 준우는 다시금 옹이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그러자 나무의 그림이 고르바초프와 함께 다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까지는 무한정 대기인가?”

“아마도요.”

“팔은 괜찮아?”

“네, 재킷을 해제하니 팔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더군요.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쉴 수 있었습니다.”

“….”

넉살도 좋은 녀석이다. 잠시 팔을 붕붕 휘두르는 준우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했다.

퀘스트에 대한 정보가 주변에 퍼지지 않은 걸로 봐서는…. 아마 이대로 대기하면 될 것 같은데. 나중에 여기와 관련된 특별 퀘스트 같은 게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타나토스님?”

“아, 미안.”

준우가 이름을 불러, 나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니 반대편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있던 발렌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 뭔데.”

약간 불안한 걸.

“트리슈는, 왜?”

“헤에, 언니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는구나?”

“….”

불안이 적중했다.

“바, 발렌타인님.”

“미안하지만, 빼빼로는 나서지 말아줘요. 이건 저와 저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

준우가 말리려고 했으나 발렌타인은 차갑게 제지했다.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 역시 약간 곤란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제지를 하려던 찰나, 트리슈가 도발을 하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트리슈는 오빠가 도와달라고 해서 온 건데.”

“그 저의를 어떻게 믿느냐는 거죠.”

“어머, 너한테 믿어달라고는 안했는데.”

그렇게 이야기한 트리슈가 이내 내 어깨에 기댔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반대편의 발렌타인을 도발했다.

“오빠가 믿어주면 되는 걸~.”

“….”

온갖 욕설을 다 퍼붓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역시 발렌타인이 저렇게 입을 다무는 이유는, 그리고 또한 내가 조심스럽게 트리슈를 밀어내는 이유는 역시 준우 때문이겠지. 친오빠를 옆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동생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으니까.

“헤헤, 그치 타나 오빠?”

“타나…?”

“타나토스는 너무 길잖아. 중이병 같고.”

“….”

왜 다들 날 그렇게 놀리는 걸까.

“어쨌든 뭐, 불만이라도 있어?”

“당신 정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 트리스탄이 퀘스트를 도와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할 일 아니야?”

“그 트리스탄이라는 이름도…!!”

“발렌타인님.”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발렌타인을, 준우가 무게감을 담아 제지했다. 분노에 물든 눈동자로 트리슈를 노려보던 그녀가 이내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요. 아저…. 아니, 빼빼로.”

“괜찮아요.”

준우는 부드럽게 이야기하며 침울해하는 발렌타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나는, 그때까지도 서로 쥐고 있던 트리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둘이 아직도 알콩달콩한 사이구나?”

하지만 그녀는 도리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뭔가 제지를 해야 할까 싶었으나, 사실 막상 상황이 다가오자 말이 나오질 않았다. 세 사람의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거가 현재를 구속하는 느낌이었다.

“너는 괜찮은 거야? 빼…. 빼로.”

나는 테이블 위로 시선을 보내 녀석의 어깨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쩐지 꺼려지는 걸 느끼며 있자니 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

다시금 트리슈의 주먹이 꽈악.

이거야 원, 남매간의 싸움이라고는 해도 그 내용을 당최 모르겠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앞머리를 매만진 나는, 이내 준우 역시 같은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나의 목적을 비롯해 모든 걸.

조금은 이야기를 해둘 필요가 있겠어.

나는 반대편에 있는 준우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있자니 이내 조그마한 옹이구멍에서 고르바초프가 코를 킁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금 평범한 다람쥐의 모습을 취한 녀석이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아, 트리스탄. 잠시 이것 좀 도와주겠나.”

“응? 뭔데?”

녀석이 등 뒤에서 열쇠를 꺼내 트리슈에게 내밀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크기의 열쇠를 받아든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그대로 옹이구멍에서 빠져나와 준우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쪽의 자네도.”

그리고는 발렌타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열쇠를 가지고 있었지? 보여주겠나.”

“…. 여기요.”

아이템창을 매만진 발렌타인의 손에 뒤이어 열쇠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르바초프는 그걸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망치와 낫이 필요하네.”

그리고 트리슈와 발렌타인의 눈앞에, 각각 창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나는 곧바로 그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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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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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망치의 주조

난이도 : ★★★★★★☆☆☆☆

내용 : 인민들을 찾아 열쇠를 맡기세요.

제한 시간 : 48:00:00

보상 : 경험치 1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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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나이를 먹다보니 이빨이 약해져서….”

“이 열쇠로 낫과 망치를 해오라는 건가?”

나는 그렇게 물으며 지도를 살폈다. 이곳으로부터 꽤 먼 곳이었다. 함경남도…. 좀 자세히 살펴보니 개마고원 쪽이었다. 직행열차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리려나.

“부탁하네.”

제한 시간은 이틀인가.

“그쪽은 어디로 가래?”

나는 고개를 들어 발렌타인을 바라보았다.

“저희는 충남 방면에 있네요.”

“….”

두 개 조로 나누어야겠군.

“흐엑, 트리슈 추운 곳 싫은데.”

“어쩔 수 없잖아.”

“조항에 꼭 끌어안아주는 것도 넣으면 안 돼?”

“안 돼.”

“체엣.”

가볍게 볼을 부풀린 트리슈가 쥐고 있던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애정 결핍도 아니고 괴상한 짓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계약, 이요?”

그리고 거기에 준우가 반응을 보였다.

“응~ 우리 계약했거든.”

“무슨 계약?”

“나는 타나 오빠의 여자가 되어주고 타나 오빠는 트리슈를 슈퍼 아이돌로 만들어준다는 계약!”

“….”

“노, 농담이야~ 농담~.”

내가 노려보자 트리슈는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물론 준우가 이런 가벼운 장난에 넘어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어쩐지 속이 바싹바싹 마른단 말이지.

“….”

속았네.

“계약, 이요…?”

아니 그쪽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나는, 준우가 ‘계약’이라는 말에 신경이 쏠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트리슈를 이 일에 끌어들일 이유를 궁금해 한다는 느낌이었다. 슬슬 설명할 때라고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게….”

하지만 다음 순간, 뒤쪽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전작 '섹스만 잘하는 남자'가 원스토어를 통해 독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과분히 전작을 사랑해주시고 읽어주신 분들과 조아라의 멋진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표지는 kuro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이번 작을 통해 이 미숙한 소설가의 글을 읽어주시게 된 분들은 우정현 회장님의 파릇파릇한 20대 시절의 모습을 그림으로 만나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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