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09화 (109/321)

109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네가 원하는 대로 최고의 아이돌로 만들어줄게.”

“뭐? 어떻….”

“그거야 뭐, 날 믿어보시고.”

사실 내가 아니라 우정현이라는 기업 회장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엄청난 인맥을 손에 넣었다고도 볼 수 있겠군. 순간적으로 그걸 악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솜씨 하나는 나쁘지 않은 녀석이니까.

“프로듀서 같은 말툰데….”

“좋을대로 생각해.”

“이 트리슈의 미모에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

내가 무뚝뚝하게 중얼거리자 트리슈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분명히 나쁜 외모는 아니었다. 아니, 성격을 빼놓고 말하자면 그런 표현은 실례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린슬렛이 발랄하고 순해 보이는 느낌이라면 트리슈는 반대로 어른스럽고 요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성격만 빼고 본다면 그렇다는 거지만.

“뭐어~ 알겠어. 그렇게 예쁜 언니랑 살면 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뭣…?!”

“사실은 둘이 찐~한 사이인 거지?”

“아니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네에, 네에. 트리슈는 유하 언니만큼 예쁘게 생기지 않군요! 잘 알겠습니다아~!”

이 녀석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흥, 트리슈도 바깥에 나가면 남자들이 쳐다보거든.”

“….”

“번호 같은 것도 막 따이는데.”

“그건 아이돌로서의 널 아무도 모른다는 게….”

“윽?! 미, 미안하네요!”

발끈한 트리슈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든 채 소리쳤다.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표정이 참으로 여러 방면으로 풍부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배우 같은 걸해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그게 좋지 않아?”

그리고 나는 생각했던 바를 입으로 내뱉었다.

“…? 네?”

“넌 노래를 할 때만큼은 멋지니까.”

호소력이 짙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걸 잘 알지 못했지만 기타를 치면서 부드러운 음색으로 노래를 부를 때의 트리슈는 멋졌다. 사실 따로 음반을 사서라도 듣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외모는 뭐…. 부차적인 느낌이랄까.”

“….”

“트리슈?”

“….”

이름을 불렀지만 녀석은 어째선지 굳어진 채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슬쩍 고개를 들이댄 나는, 이내 새빨갛게 물드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는 반응을 확인하고자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보았다.

“하으, 하으, 하으.”

그러자 녀석은 손을 휘젓는 대로 머리와 상반신을 휘청거렸다. 나는 그런 반응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꼬, 꼭 나도 가야해?”

“….”

여기까지 와서 망설이는 트리슈의 모습에,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수도 뚜껑을 적당히 비스듬히 걸쳐둔 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뒷짐을 지고 있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이런 상태란 말이지.

“왜?”

“아니 그…. 그렇게 물으시면.”

“뭐 꺼려지는 이유라도?”

“으, 으음.”

“그게 계약이었잖아? 너는 날 도와서 준우가 베디비어가 되는 걸 돕고, 내 편이 되어준다.”

“알고 있어! 그리고 오빠는 날 아이돌로서 프로듀스해주겠다는 조건이었잖아.”

“그래, 그런데?”

“….”

내 정론에 트리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느끼면서도 몸을 돌려 다시금 하수도로 향하는 뚜껑을 빼내기 시작했다.

물론 알고 있다.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녀석은 준우와 발렌타인이 껄끄러울 터였다. 그리고 나는 어렴풋이 세 사람 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릿속으로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굳이 트리슈를 데려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역시 그에 대한 대답은 ‘그럴 필요가 있다.’였다. 단순히 예상이었지만, 앞으로 남은 베디비어 퀘스트에서도 트리슈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트리슈가 아니라 김준우의 동생인 김시우로서.

“그, 그 나는…. 정화 필터도 없고오.”

“그럼 내거 써.”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아이템창을 열고는 정화 필터를 꺼내 트리슈에게 전송했다. 지난번에 린슬렛에게 받았던 물건으로, 아이템을 사용하면 재킷의 형태가 자동으로 변화하던지 코와 기도 안쪽에 뭔가가 씌워져 냄새를 완전히 차단하는 마법의 물건이었다.

“….”

“왜?”

“사실 있어.”

약간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린 트리슈가 눈앞에 아이템창을 띄우고 가볍게 조작했다. 동시에 재킷을 기동한 것일까. 허공에서 가면과 모자가 나타나 씌워졌다. 안심한 나는 정화 필터를 사용하며 동시에 재킷을 기동시켰다.

“그럼, 갈까?”

튕겨져 나오는 가면을 받아서 쓴 나는 그대로 하수구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가볍게 몸이 부유하는 걸 느끼며 잠시 후 바닥에 도달했고, 뒤를 이어 구멍의 빛이 사라지며 트리슈 역시 내 옆에 떨어졌다.

“이쪽이야.”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하수도를 걷기 시작했다.

“바, 방향 안 가르쳐줘도 되거든.”

“왔던 적이 있나 보네?”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 응, 꽤 됐지만.”

그러게 이야기하는 트리슈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약간 힘이 없었다. 약간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아본 나는 고개를 푹 숙인 녀석이 멈춰서있는 걸 발견했다. 긴 진녹색의 머리가 스르륵 어깨 앞으로 떨어졌다.

“트리슈?”

“손, 잡아줘.”

“뭐?”

당혹스러운 기색을 느끼며 되묻자니 트리슈는 이내 나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안 그러면 안 가.”

“…. 너 인마.”

“치사해. 자기만 조건 두 개고.”

“그렇게 따지는 거냐?”

“나도 하나 더 걸 거야.”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내민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트리슈. 어른스러운 외모나 요염한 체형에 정반대되는 행동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트리슈가 손 잡아달라고 하면 잡아주기.”

“…. 젠장.”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걸까 싶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손을 쥐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차갑게 얼어붙은 온도를 느끼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트리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녀석,

“그럼, 가자.”

떨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했으나 트리슈는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 역시 그녀의 손을 꾹 쥐었다. 아니 그러다 이내, 장난스럽게 손바닥 위쪽의 굳은살을 매만졌다.

“그, 그렇게 변태적으로는 말고.”

“변태적인 거냐.”

“응, 트리슈의 볼록 튀어나온 신체 부위를 되게 집요하게 매만지고 있잖아?”

“….”

보통 이런 걸 미친 사람이라고 하지.

처음에는 가볍게 장난을 쳐 분위기를 좀 띄워볼까 했으나, 나는 트리슈의 반응에 짜게 식는 걸 느꼈다. 입을 다물고 계속 걸음을 재촉하자니 이내 트리슈 쪽에서 내 손바닥을 검지로 두드리듯 매만지기 시작했다.

“화, 화내는 거야?”

“아니.”

약간 불안한 듯한 목소리에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트리슈는 안심했는지 내 손을 꾹 쥐었다. 조금씩 거기에 따르듯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오빠, 손 크네.”

“….”

“다리도 길고. 어깨도 넓고. 머리는 작은데.”

“어렸을 적부터 뭐든지 잘 먹어서.”

“호오, 그럼…. 거기도 커?”

“뭣?!”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던 트리슈가 다음 순간 요염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심장을 말하는 거야.”

“나도 안 봐서 모르겠는데.”

“어머머, 정말로 믿는 거야? 심장을 말했다고.”

“아니, 생식기를 의도했다는 거 알아.”

“생…?!”

내 낙차가 큰 직구에 트리슈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당황한 녀석이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나는 도리어 세게 쥐었다.

“생식기, 맞지?”

“미, 미안해요오오….”

당황해 발을 동동 구르던 녀석이 이내 시선을 피하며 사과했다. 드디어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생각한 나는 녀석의 손을 잡고 쥬브나일 포르노로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트리슈는 내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쾌재를 부르고 싶은 기분을 꾸욱 참았다.

익혔다.

드디어 이 녀석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배는 평소와 같이 하수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읏차….”

접근 승인 허가를 받고, 파이프 위에서 가볍게 뛰어오른 나는 갑판 위에 착지해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보이는 트리슈에게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져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마찬가지로 파이프에서 뛰어올라 갑판에 착지했다.

“….”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괜찮을 거야.”

“따, 딱히 겁먹은 건 아니거든.”

노파심에 덧붙였으나 트리슈는 고개를 픽 내저었다. 하지만 그러는 반면 손은 심하게 떨려, 나는 가볍게 손을 맞잡아 진정을 시키고는 함께 밑으로 내려갔다.

재즈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이걸 잊고 있었네.”

둥그런 테이블로 가득한 가게가 눈앞에 펼쳐졌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에 트리슈는 자리에 우뚝 멈춰서 한 순간 괴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트리슈?”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셨군요.”

녀석이 시치미를 떼고 다음 순간, 누군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장죽을 들고 있는, 분홍빛 머리에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

“발렌타인.”

“타나토스님. 그리고…. 트리슈.”

“….”

발렌타인은 침착하게 인사를 했으나, 반면 트리슈는 내 손을 잡은 채 등 뒤로 모습을 감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발렌타인을 바라본 나는, 준우의 이름을 입에 담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 녀석은?”

“따라오세요.”

적당히 넘기자 발렌타인은 뒤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가게 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손님들로 가득했던 터라 나는 입을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본명을 함부로 입에 담았다가 나중에 준우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알 수 없었으므로.

“오랜만이네, 여기도.”

“자주 왔던 거냐?”

“…. 살았지.”

추억을 떠올리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트리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계속해서 발렌타인의 뒤를 따랐다.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서, 화이트와 블랙에게도 인사를 하고 아예 안쪽의 주방까지 진입하자,

“아, 타나토스님. 트리슈도. 어서 와요.”

준우가 웃으며 인사했다.

손에는 칼을 든 채.

“…. 이런 시스템이었군.”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녀석을 보며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준우는 감자를 깎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정교하다고요? 이 감자는 진짜고, 재킷이 도움을 주니까요. 요리할 때나 그런 때도.”

“…. 대단하셔.”

녀석의 한쪽 팔은 어깨까지 진한 밤색의 나무처럼 물든 상태였다.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 좋게 웃고 있었으나, 나와 트리슈가 손을 잡고 있는 걸 보자 한순간 놀라 굳어졌다.

“이,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애써 거기에서 시선을 돌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괜히 신경을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자연스럽게 트리슈의 손을 놓으려고 했으나, 다음 순간 도리어 꽉 쥐어졌다.

“손 놓지 마.”

“….”

그리고 반쯤 협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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