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안으로 들어온 정현 씨는, 짧은 만남동안에 내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동요하고 있는 상태였다.
전력질주로 달려온 것일까.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상태에서 그녀는 멍하니 내 앞에 있는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차마 뭔가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눈빛에 절망이 스쳤다.
“…. 아랑, 아.”
“어머니.”
우아랑은 무뚝뚝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정현 씨는 그런 딸의 시선을 피하듯 방안을 둘러보며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이건….”
“심문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하, 지만…! 네 방인데!”
“애초에 집을 나갈 테니 짐은 모두 버려달라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그럴 리가 없잖니!”
정현 씨는 반쯤 패닉에 빠져서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선을 피한 우아랑이 다시금 날 돌아보았다.
이 녀석….
여기를 싫어하는구나.
“말이 끊어졌군. 다시 묻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바라보면서도, 우아랑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 비교해 확연하게 낮아진 상태였다. 당황한 정현 씨가 다가왔으나 우아랑은 손을 내밀었다.
“잠깐 나가 계셔주시겠습니까? 어머니.”
“아랑아…!”
“흉악 범죄자를 심문 중으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제멋대로인 녀석이로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적인 얼굴로 코트를 다시 입는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딸로서 이곳에 있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할 킬러즈의 우아랑 대위로서 이곳에 있겠다는 건가.
“우정현 회장님.”
“….”
딱딱한 어투에 정현 씨는 한 번 내 쪽을 돌아보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평소의 당당하고 멋진 풍모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아랑은 정현 씨를 무시한 채 내게 다가왔다.
“아까의 그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 뭐?”
“자기 스스로를 가장 싫어한다는 것 말이다.”
나는 거기에 대답을 하는 대신 정현 씨의 안색을 살폈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으로, 몇 번이고 딸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차마 닿지는 못했다.
“글쎄.”
나는 적당히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이로서 우아랑이 나와 우정현 씨의 사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말인즉슨 정현 씨로부터의 직접적인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걸까.
“제대로 대답해라.”
“딱히 깊이 생각하고서 한 말은 아니라서.”
나는 그렇게 거짓말을 했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우아랑은 내 턱을 붙잡고는 시선을 마주쳐왔다.
“네놈 따위에게도 죄책감 정도는 있단 말인가?”
“….”
“대답하라고 했다. 에스콰이어.”
“너야말로, 어떤 거냐?”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뭐?”
“할 킬러즈의 개 주제에.”
다음 순간, 주먹이 날아들었다.
“큭!”
“어디까지 지껄일 수 있는지 볼까.”
“하, 원하신다면.”
그리고 나는 정현 씨에게도 힐끔 시선을 보냈다. 순간적으로 이 이야기를 현재의 우아랑에게 해도 괜찮을까 싶었으나 말은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뒤였다.
“요새 들어 뭔가 이상해졌다고 느낀 거겠지?”
“…. 할 킬러즈가 말이냐?”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웨인이 있는 걸 테고.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날 찾아온 거다.”
가웨인이 큰 활약을 보였다(고 세간에는 알려진)는 랜슬롯 퀘스트의 전투에서 그 장본인을 상대한 타나토스를. 뭐 그쪽에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알려졌건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그런 내 말에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우아랑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쇠사슬에 매달린 상태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그것이, 할 킬러즈의 내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많은 아줌마의 집이라면…. 감청에 대한 대비 따위는 얼마든지 해두고 있을 테니까.”
적당히 모르는 척을 하며 나는 정현 씨를 힐끔 보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럼 뭐, 단순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 거냐?”
약간 도발을 하자 다시금 뺨을 얻어맞았다. 슬슬 감각이 없어져, 나는 몇 대 더 맞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말해봐라. 우아랑. 그게 아니라면 날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는 뭐지? 정의로우신 할 킬러즈의 대위님께서?”
“…. 설명해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내 좋을 대로 생각하지. 엄마가 보고 싶기 때문에 왔다는 걸로. 그래도 역시, 할 킬러즈의 대위씩이나 되는 분이 일개 에스콰이어를 비밀스럽게 혼자 심문하는 의도는 설명될 수 없지만.”
“…!! 이 개자식!”
우아랑은 참지 못하고 내 턱에 주먹을 날렸다. 혀를 깨무는 바람에 나게 된 피가, 계속되는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감히 그딴 소리를! 내 앞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녀석이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명치끝을 제대로 노리는 타격에 나는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만하렴.”
뒤쪽에 서있던 우정현 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우아랑의 팔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킷을 기동중인 에스콰이어의 팔을 붙잡는다고? 이 아줌마 대체 뭐야?
“아랑아, 그만해.”
“어머니…!”
“이건 단순한 폭력에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뭘 안다고 이러십니까!”
그리고 내 쪽을 돌아본 우아랑이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주먹이 피투성이인 것으로 봐, 아마 내 얼굴도 그에 못지않게 엉망진창인 모양이었다.
“젠장….”
주먹을 휘두르지 않은 깨끗한 손으로 앞머리를 밀어 올리며 욕지기를 내뱉은 우아랑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정현 씨가 착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돌아가렴.”
“….”
“여기는 엄마에게 맡겨두고.”
하지만 그 말은 도리어 역린을 건드린듯했다.
“당신은 왜 매번 그런 식으로!!”
버럭 소리를 지른 우아랑은 이내 이를 빠득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손에 검을 소환해 휘둘렀다. 한순간 눈을 감았던 나는, 위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던 팔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
“후….”
“가라.”
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자 차가운 얼굴을 한 우아랑이 뇌까리듯 중얼거렸다. 조각난 사슬이 땅에 떨어지는 걸 본 나는 감각이 없던 팔이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도록.”
“그건, 협박이냐?”
“좋을 대로 생각해라.”
그렇게 중얼거린 녀석은, 이내 나를 노려본 채로 벽에 기대어 섰다. 아무래도 먼저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까. 그런 모습에 나는 재킷의 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창문 쪽으로 향했다.
“….”
시선을 보내니 정현 씨가 눈썹을 찌푸린 채 가볍게 목례를 했다. 미안하다는 감정이 전해져 나는 재킷을 들어 코밑을 쓱 닦아냈다. 피가 한 사발쯤 나온 듯했다.
가다가 치료소에라도 들려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우아랑과 눈을 마주친 나는,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
사발을 들고 쭈욱 한 모금 들이키자,
“퍄하~~~!!”
절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후, 많이 드세요.”
“언니! 최고에요!”
마치 인생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원한 맛에, 트리슈는 볼이 빨갛게 물든 채 숨을 내쉬었다. 속을 진정시키는 고춧가루와 북어, 콩나물의 다채로운 맛에 그녀는 깍두기를 들어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이렇게 슈퍼 미소녀인 트리슈도 해장을 할 때는 콩나물 북엇국이 최고라고 생각한답니다.
팬들이 약간 깬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대답해주고 심정이었다. 언니(?)가 건네준 커다란 셔츠 한 장을 입은 채 트리슈는 코를 훌쩍이며 국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최고의 솜씨였다.
북어들이 살아서 숨 쉬는 듯했다.
어머니의 맛이란 이런 걸까. 사실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만, 트리슈는 어림짐작으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끔씩 손이 멈추기는 했지만.
“….”
뭐 저렇게 착한 사람이 다 있지.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 후배라는 거짓말을 그대로 믿어주질 않나, 어제 술을 잔뜩 마셨다는 말에 이렇게 해장국까지 차려주고 괜찮으냐며 물어볼 줄이야.
…. 알몸으로 동생 방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고 누가 보통 그렇게 잘해줄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에 트리슈는 살짝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방 쪽에서 다른 요리를 하는 유하를 바라보았다.
만화에서 나온 듯한 미인이었다.
청순해 보이는 긴 치마로 감추고 있었지만 어쩐지 야해보였다. 웃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남자를 다 홀릴 수 있는 엄청난 스타일. 특히나 저, 가슴을 감당하지 못하고 앞치마가 슬쩍 들려 있는 부분까지.
방송에 출연시키고 싶을 정도다.
분명히 엄청난 시청자가….
“국, 더 먹을래요?”
바로 그 순간, 유하가 등을 돌렸다.
“네?!”
“후후, 속은 좀 괜찮아요?”
반묶음 머리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에, 에헤헤…. 맛있어요! 언니!”
“많이 먹어요.”
아니, 출연 시키면 안 되겠어….
트리슈는 냉정하게 판단하며 국을 호로록 마셨다. 저 다이너마이트 바디로 방송에 나온다면, 분명히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트리슈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알 수 없는 결론을 내렸다.
“….”
사, 사실 좀 무서운 거지만.
그 남자가, 또 화를 낼 테니까.
“우우….”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맞은 볼이 테니스공처럼 부풀어 올랐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자를 때리다니 뭐 그런 녀석이 다 있나 생각이 들면서도….
남한테 혼난 건 무척 오랜만이어서.
“언제 오려나.”
트리슈는 젓가락 위에 올린 밥풀을 깨작거리며 그 넓은 등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돌아오면 또 뭐라고 할까. 화를 내려나? 아니면 아무 말도 않고 넘어가려나. 살짝 그 부분이 두려우면서도 어서 왔으면 했다. 매도 먼저 맞으면 낫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했는지 안했는지도 확인을 해야 했으니까.
잠이 좀 깨자 훌쩍거리며 운 게 창피해질 정도로 트리슈는 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한 건 아니겠지…. 싶었던 것이다. 딱히 어디 아프지도 않고.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국, 더 줄게요.”
“아, 감사합니다.”
고민에 빠져있자니 가까이 다가온 유하가 그릇을 가지고 갔다. 머리 아픈 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결론을 내린 트리슈는 크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골반을 가만히 눈으로 좇았다. 확실히…. 저런 여자랑 함께 살면 그렇게 돌부처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아니 근데 자기도 그렇게 잘생겼으면서…?
“저, 언니.”
“네?”
“혹시 그…. 선배랑 친남매에요?”
트리슈는 슬쩍 기대감에 차 물었다. 확실히 둘 다 출중하다 못해 넘치는 외모들이었으니, 맞겠지?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적 하나가…. 아, 아니 딱히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머,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하지만 유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 정말요?”
“네, 준은 음…. 뭐랄까. 한없이 가족에 가깝지만.”
준, 이라.
어딘지 그와 함께한 세월이 느껴지는 호칭에 트리슈는 어쩐지 입맛이 씁쓸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하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국이 담긴 그릇을 가져와 내려놓았다.
“자, 많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려던 트리슈는,
“….”
말문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 왜요?”
“저, 저어 언니?”
트리슈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음, 그러니까…. 국 자체는 평범하게 맛있어 보이는 느낌이었지만, 문제는 그릇 끄트머리가 녹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녹고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나면서.
“…. 어, 어머나!”
깜짝 놀란 유하가 다시금 국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무슨 재킷을 입은 사람처럼 엄청난 손놀림으로 그릇을 옆으로 치우더니, 새 그릇에 국을 받아서 돌아왔다.
이번에는 평범했지만 트리슈는 약간 공포에 휩싸인 채 멋쩍은 듯 웃고 있는 유하를 올려다보았다.
“미, 미안해요. 다른 국을 가지고 왔네.”
“다른…?”
“네, 저건 준 거에요.”
“…. 뭘 넣었죠?”
“황산과 질산칼륨이요.”
“…. 네?”
“후후♡ 준이 어서 와서 맛을 봐야할 텐데요.”
맛을 보는 게 아니라 천국을 보겠죠…?
트리슈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