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에스콰이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전투였지만…. 지금은 단순히 서로 빈틈을 노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론다이트는 모르겠지만 페일노트의 경우에는 그때와 같은 포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즉, 그게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한다는 소리였다.
“린슬렛! 트리슈!”
“티티는 가만히 있어!”
“이런 이상한 거보다 트리슈가 더 좋지? 오빠!”
“그만 좀 해!”
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통하질 않았다. 몇 번을 이어진 공방 속에서 빈틈을 노려 린슬렛이 접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트리슈의 치마 밑에서 나온 카메라가 린슬렛의 재킷 속으로 파고드는 걸 발견했다.
“잠…!!”
“아, 진짜 못 봐주겠네.”
하지만 린슬렛은 눈치 채지 못한 듯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이내 철커덕, 하며 아론다이트가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경고할 게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하고 이 자리에서 꺼지는 게 좋아. 트리스탄.”
“헤에~ 랜슬롯은 입만 산 기사였구나?”
하지만 이어진 도발에, 린슬렛이 이를 빠득 갈았다.
“…. 그렇게 나오시겠단 거지?”
그리고 아론다이트가 ‘떨리기’ 시작했다.
뭐…?
짧은 순간, 그 진동을 눈치 챈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한 떨림에 지나지 않았던 그 진동은, 이내 공간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로 강해졌다.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수의 빛은, 절대로 그 색이 바라질 않지…!”
그리고 다음 순간,
“그만해.”
나는 차갑게 중얼거리며 린슬렛의 어깨를 쥐었다. 방패를 든 팔을 휘두르려던 그녀가 한껏 내려앉은 목소리에 멈춰 섰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으, 으응…?”
“일단 돌아가.”
나는 차갑게 중얼거리고는 그녀를 지나쳐 트리슈의 앞으로 다가갔다. 전투를 거친 탓인지 완전히 취기가 올라온 그녀는 비틀거리며 다시 내게 안겼다.
“와아♡ 역시 트리슈를 택하는 거네?”
“…. 아니.”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팔을 안쪽으로 넣어 트리슈를 밀쳐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입가에 그 미소를 거두지 않자 손을 들어서,
“…?!”
짜악, 하고 손등으로 뺨을 후려쳤다.
“어…?”
고개가 휙 돌아가고 트리슈의 뺨이 붉어졌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멍하니 볼을 움켜쥐고 있떤 그녀는 이윽고 손을 들어 내 뺨을 후려치려고 했다.
“윽…?!”
하지만 나는 간단하게 녀석의 팔목을 잡아냈다. 그리고는 아까 린슬렛의 어깨를 잡을 때 떼어냈던 카메라를 쥐고 내밀어보였다.
“이, 이거 놓지…. 못해?!”
“이런 상황에서까지 방송이냐?”
“트, 트리슈는 나쁘지 않아!”
“아니면 이걸로 그 큰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말 안 듣는 들개처럼 억지로 팔을 빼내려는 트리슈의 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으르릉 거리는 모습에 자칫하다가 물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여기는 너무 번잡하니까.
“꺄악?! 뭐, 뭐하는 거야?!”
나는 허리를 숙여 어깨에 트리슈를 비스듬히 걸쳐 들어올렸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가볍게 고쳐들듯 어깨를 움직이자 이내 조용해졌다.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티, 티티…?”
“….”
멍하니 자리에 서있는 린슬렛과 준우, 발렌타인을 남겨둔 채 나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뒤를 따라온 넬이 당황해 몇 번이고 지상에 남아있는 세 사람을 돌아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주, 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기사와 기사의 싸움이다. 거기다 둘 다 흥분해 이성이 나간 상태라면 주변의 이목을 끌 공산이 너무나도 컸다. 린슬렛에게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걸 방송까지 하려고 한 트리슈에게 큰 분노를 느낀 나는 몇 번이고 밤하늘을 가르며 장소를 이동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적당히 5분 정도 달려 도착한 건물의 높은 옥상. 나는 트리슈를 다시 자리에 내려놓았다. 의외로 조용하다 싶어 가만히 마주보고 서있자니,
“윽….”
이내 주먹이 날아들었다.
“너, 너어어…!”
“진정해. 트리슈.”
주먹을 가볍게 피해낸 나는 비틀거리고 있는 트리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딘가 안 좋은 듯 보이던 그녀는 이내 다가와 내 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가볍게 심호흡. 다시금 여유를 되찾으려는 심산인 걸까. 붉어진 얼굴 사이로 요염한 미소를 지은 트리슈가 가볍게 내 볼을 매만졌다.
“여자를 때리다니…. 최악이네, 오빠.”
이거 말이 안 통하는 상태로군.
“폭력적인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왜애, 트리슈가 나쁜 년인 거잖아. 결국에는.”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
어떻게 해서든 진정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침착하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트리슈는 입술을 비틀듯이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 여자랑 했어?”
“뭐…?”
“왜, 그렇지 않으면 찾아올 리가 없잖아?”
어쩜 이렇게 남이 싫어할만한 소리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더니, 나는 도리어 스스로가 침착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침착한 생각의 결과로, 나는 다시금 트리슈의 뺨을 후려쳤다.
“…. 아, 프네?”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 거니까 아프겠지.”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휘둘러지는 트리슈의 팔을 잡았다. 분노로 이를 악문 녀석이 몇 번이고 공격을 해왔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정신 차려, 트리슈. 지금 네 행동은 술에 취했다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이…! 이 바보! 바보 멍청이가!”
“그깟 방송이 그렇게나 중요한 거냐? 유명해지기 위해서 뭐든지 할 셈이야?”
“네가,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아무것도 모르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네 행동만 보고서 이야기하는 거다.”
그건 잘못됐다고.
“윽, 으윽…!!”
결국 트리슈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흐아아아아앙~!”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댄 그녀가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코를 훌쩍거리며 감정을 참지 못하고 뱉어냈다.
“바보…! 바보 멍청이! 쓰레기! 얼마나 아픈지 알아?!”
“일단 진정하고.”
스스로도 너무 흥분했다는 자각이 들어, 나는 트리슈의 등을 토닥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때린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우욱…!”
뭔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
“주, 주인님 트리슈님이 걸쭉한 알코올을….”
“넬.”
나는 트리슈의 인권(?)을 생각해 상황을 설명하려는 넬을 만류했다.
◇
“빌어먹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우으으음…. 음냥, 음냥….”
“조용히 해라.”
나는 잠결에 소리를 내는 트리슈를 향해 중얼거리고는, 그녀를 들쳐 업은 채 카페의 지붕 위로 내려섰다. 들어가기 전에 디멘션 커넥터로 2층의 출입 허가를 보낸 뒤, 반쯤 뻗은 트리슈의 손을 들어 팝업창을 꾹 눌렀다.
드르륵, 창문이 열렸고, 나는 트리슈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바로 앞에 있는 침대로 발을 디디자 두 명의 무게를 견뎌낸 녀석이 삐그덕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주, 주인니임…?”
“조용히 해. 유하가 들을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트리슈를 눕혔다. 거나하게 구토를 하고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한 건지 뭔지 기절해버린 녀석은, 아주 편안하게 꿈나라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하아.”
나는 지치는 걸 느끼며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집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쥬브나일 포르노나 린슬렛에게 데려갈 수 없었기에 이곳을 선택한 거지만.
과연 괜찮은 걸까.
“우으으음…. 더워어어….”
“아서라.”
옷을 벗으려는 트리슈를 제지한 나는, 로프로 꽁꽁 묶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녀석의 턱 밑으로는 거대한 알코올의 흔적(?)이 무르익은 모습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유하는 자고 있는 것 같았으므로….
재킷과 셔츠를 벗어 적당히 자국(?)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개어둔 나는, 청바지 하나만 달랑 걸친 채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한쪽 무릎을 걸친 채 잠에 깊이 빠져든 트리슈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 야.”
“으으으으으응…?”
“씻고 자.”
“아…. 트리슈한테 이상한 짓하려고오….”
“절대 아니거든…. 윽?!”
차갑게 중얼거리던 나는, 갑작스레 녀석의 옷이 사라지자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 분홍빛의 유두가 눈앞에 드러나며 트리슈는 완전히 취해서는 부끄러운 듯 그걸 두 손으로 가렸다.
“왜애, 하고 싶어어?”
“이 미친 여자가…?!”
벗어나려고 했지만 목덜미가 잡혀 당겨졌다. 하지만 나는 역으로 눈을 감은 채 트리슈를 침대 위에서 끌어 안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꺄아♡ 이 짐스응♡”
“일단 씻고….”
“씻고 하자는 거야아?”
“자라고…!!”
반쯤 소리를 지를 뻔한 상황에서, 나는 트리슈를 안아들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옆에 있는 화장실에 처넣으려던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
그녀는 현재 재킷을 완전히 벗은 상태였다. 아니 단순히 육안으로는 그렇게 보일 뿐이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원자화 되어 극도로 미세하게 몸에 달라붙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경우에 옷에 붙어 있던 흔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없어지는 건가. 아니면 다시 생겨나나.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몸을 씻어야 하는 건가.
“….”
고민에 빠져 있자니 유하의 방 안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트리슈를 안아든 채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주, 운?]
“윽?!”
나는 트리슈를 내던지듯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방문 바깥에 놔두었던 셔츠와 재킷을 떠올리고는 몸을 일으켜 세워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는 나와 옆에 서있던 넬을 보고는 웃었다.
“유, 유하….”
“아, 이제 와요? 넬도.”
“유하니임~. 헤헤.”
속이 비치는 네글리제 차림의 그녀가 밝게 웃었다. 아직 자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으로, 나는 길게 숨을 몰아쉬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유하와 나는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안, 내가 깨웠어?”
“아뇨, 책을 좀 읽고 있었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팝업창을 하나 띄워서 내게 보여주었다. 점성술과 신화에 관련된 서적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