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방송국은 여전히 번잡했다.
트리슈의 말에 의하면…. 방송국은 낮과 밤, 그리고 새벽으로 나누어서 쉴 새 없이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아까 낮에 비해 사람들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대기실 근처에 기대어 서있었다.
아직 넬은 돌아오고 있지 않다. 그런 사실에 약간 걱정을 느끼면서도 나는 멍하니 복도 반대편에 있는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방송 관계자와 무언가를 상의 중인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할 타이밍인가 싶기는 했지만…. 확실히 저런 식으로 깊게 생각을 할 때의 녀석은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실상은 전혀 아니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이나 굳게 다문 입술은 그런 이미지를 부여했다. 약간 외모가 진한 편이기 때문일까.
“….”
아니, 저런 거에 신경이 팔려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서리안을 실행시켜 추가 구입 제품란을 불러왔다. 카테고리를 재킷의 형태로 맞추고…. 얼굴을 가릴만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나가는 건 여러모로 나중에 불편할 사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안경은 조금 애매하고, 선글라스가 낫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가볍게 창을 스크롤하며 쓸만한 물건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서리안 자체가 무기나 아이템 이외에 방어구라는 개념이 희박한 게임이니…. 뭐, 아바타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그렇게 보자면 얼굴에 씌우는 종류는 마스크를 대체한다고 보면 되는 거겠지. 찾아보니 확실히 얼굴 자체에 노이즈가 끼도록 하는 종류는 비비안이나 발렌타인이 사용했던 가면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비쌌다.
“….”
특히나 선글라스 종류는 대부분이 100만원 전후로 가격이 책정되어, 설명에 의하면 ‘명품 선글라스의 로고를 그대로 복사합니다!’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는 거지.
“다른 건 없나….”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바로 그 순간, 이야기를 다 끝낸 건지 트리슈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팝업창에서 눈을 뗀 나는 녀석의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긴장 되냐?”
“헤에, 누굴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당당하게 받아친 녀석의 모습에 나는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한 뒤 다시금 아이템의 검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얼굴을 가릴만한 걸 뭔가 사둬야….
“시우의 노래를 듣고 놀라지나 말라고!”
“…. 그래.”
“기타를 연주하거든?! 아이돌이자 아티스트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래, 그래.”
슈퍼 아이돌이라고 했었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별 생각 없이 앞머리를 매만지며 물건을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현재의 통장 잔고를 생각해보자면 가장 싸구려를 구매하는 것도 꽤나 아슬아슬한 선택인데. 역시 고민을 할 때는 가장 좋은 행동이라, 나는 다시 한 번 앞머리를 매만….
“?”
지지 못했다.
손이 무겁게 느껴지는 감각에 고개를 내린 나는, 트리슈가 소매 끝을 꾹꾹 당기고 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으.”
“뭐?”
“아니야.”
하고 휙 손을 놓아버리는 녀석.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단정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는,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짧게 중얼거리며 손을 꾸욱 쥐어보니,
“뭐, 뭐야?!”
차가웠다.
“긴장했네.”
“아, 안했! 거든….”
그렇게 반발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던 트리슈는, 이내 시선을 내리깔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슬쩍 붉어진 얼굴, 그리고 깨물기 시작하는 입술. 나는 반대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녀석의 입술을 매만졌다.
“입술 깨물지 마라.”
“…. 왜, 왜애.”
“이제 곧 노래할 입술이잖아.”
“우읏….”
이유는 모르겠지만, 긴장을 하고 있군.
평소라면 이런 행동에 도리어 더 깊은 스킨십을 요구해오거나 애교를 부릴 녀석일 텐데. 머뭇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지만 안쓰러운 느낌이었다.
트리슈의 차가운 손끝이 약간 갈구하듯, 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내 꾹 잡고는 더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던 나는, 딱히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동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트리슈.”
“왜애…?”
“혹시 준우 때문이냐?”
“뭐?”
“아니, 네가 이렇게 긴장을 하는 것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나 해서.”
내가 딱히 녀석이 노래를 하는 걸 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그것만으로 긴장을 한다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 예기치 못하게 흘러간 상황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추론이 나왔다.
그리고 그게 준우라는 말이다. 더해서 발렌타인까지.
“아, 아니거든.”
“아님 말고.”
참고로 난 그렇게 친절한 성격은 아니다.
“우으으으으으….”
지금껏 실컷 사람을 놀려먹던 녀석이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마음을 써줄 정도로.
“이거나 좀 도와줘봐.”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팝업창을 슬쩍 녀석에게로 내밀었다. 팔을 당겨서 내 어깨에 반쯤 기대어선 트리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목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게 뭐?”
“얼굴을 좀 가리고 싶은데.”
“…. 엑? 왜?”
정말로 의아해하는 얼굴에 나는 트리슈와 내 사이에 있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를 느꼈다. 녀석은 애초에 타인의 앞에 나서지 않고 싶어 하는 심리를 모르는 거겠지.
“아깝잖아! 기껏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낳아줬는데!”
“마치 네가 낳아준 것처럼 말하는구나.”
“따, 딱히 그렇게는 안 말했거든?”
“….”
“뭐, 뭐.”
“결국 주목을 받아야할 건, 너니까.”
나는 적당한 말을 생각해 중얼거리며 트리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방송 관계자들이나 출연진이 계속해서 복도를 지나다녔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공연적인 측면에서 뭔가 어울리게 할 만한 방법이 있지 않겠어? 천재 아가씨.”
“….”
트리슈의 손이 따뜻해졌다.
“우엑.”
그리고 녀석은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느끼해.”
“뭐, 무슨 소리야…?”
“천재 아가씨래…. 우아아…. 오글오글.”
“….”
진짜 혐오하는 표정 지으니까 되게 상처받는데.
“그럼 솜씨를 보여줄 수밖에 없잖아.”
내가 당황해 입을 다물고 있자니, 이내 트리슈는 빙긋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어때?”
그리고 녀석은 단숨에 뭔가를 골랐는데….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노래는 괜찮았다.
약간 느리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트리슈의 부드러운 기타 연주에 맞춰서 피아노와 드럼이 가끔씩 끼어드는 형태였는데…. 솔직히 말해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듣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그 정도가 전부였다.
듣는 것만으로는 말이지.
“….”
“후아,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5분 남짓한 공연을 마치고 나온 트리슈는 기타를 손에 든 채 상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노래가 다 끝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던 나는 약간 지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불만이라도 있어?”
“안대가 뭐냐, 안대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수면용 안대를 흔들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공연 내내 내가 했던 거라고는 턱시도를 착용한 채 안대를 쓰고 다리를 꼬고서는 의자에 앉아있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왜, 다들 예술적이라고 생각할 걸?”
“어떤 의미에서?”
“글쎄…. 슈퍼 미소녀 블록버스터 아이돌 시우님의 앞에서 안대를 낀 턱시도의 미남이 있다는 게?”
그건 단순히 상황을 설명한 것뿐이잖아.
“안대를 끼었다는 건,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외한다는 거지. 그래서 음악에 더욱 집중하자는 거고. 뭐 그래서…. 슈퍼 미소녀 블록버스터 아이돌 시우님을 앞에 두고도 그 음악성을 보여주겠다는? 아마?”
“아마…. 라니.”
그보다 왜 슈퍼 아이돌의 사이에 미소녀 블록버스터가 붙은 건지가 더 궁금한데.
“아무튼, 공연은 성공적이었네. 이걸로 오빠도 조금은 나를 다시 보겠지.”
“? 내가?”
“….”
그렇게 묻자 트리슈의 몸이 한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녀석은 꾸민 게 명백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마, 맞아! 이제 조금은 트리슈를 다시 봤지?”
“글쎄.”
노래는 확실히 좋았지만,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어서 아이돌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이상하지 싶었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순 없겠지만.
“그럼, 오빠한테 연락 좀 해줄래?”
적당히 스튜디오 근처를 벗어나 다시 대기실 근처로 돌아왔을 즈음, 트리슈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준우로부터 연락이 없었던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후후, 이 트리슈님의 음악은 대단하다고?”
“그래, 그래.”
적당히 대답한 나는 팝업창을 띄우고 준우를 지정해 귓속말을 연결했다.
[네, 타나토스님.]
“지금 어디야?”
[음, 쥬브나일 포르노입니다.]
“…? 왜?”
나는 기뻐하고 있는 트리슈로부터 등을 돌리며 물었다. 잠깐 신음을 참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그쪽으로, 좀 가기 힘들 것 같아서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 죄송합니다.]
“아, 아니. 화가 난 게 아니라.”
[아마 트리슈가…. 화가 났을 거예요.]
“뭐?”
[어쨌든, 지금 조금 움직이기가 곤란해서…. 일단 발렌타인님을 그쪽으로 보내두었는데. 열쇠를 좀….]
“알겠어.”
그리고 귓속말은 끊어졌다.
“뭐래? 뭐래?”
뒤를 돌아보니 트리슈가 눈을 반짝반짝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준우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건가 싶었던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쥬브나일 포르노라는데.”
“뭐…?”
트리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왜애?!”
“몰라, 움직이기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지금 발렌타인이 이쪽으로 오고 있대.”
“….”
“? 트리슈?”
상황을 설명했지만 반응이 없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피식 웃었다.
“역시 또 그딴 식이네.”
========== 작품 후기 ==========
의식하고 있지 않았는데 어느덧 100화가 넘었네요
사실 머릿속에 있는 망상을 풀어내는 번잡한 글에 가까워서 자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다른 마감이 여러개 겹치면서 훨씬 바빠져서
어쨌든 완결은 300화 전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네요. 전작에 비해 여러모로 복잡한 이야기기도 하고 크흠..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실력 부족을 실감하고 있어서 과연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런 세계에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데, 사실 생활비를 생각하자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글쟁이도 아니고 첫작이 우연히 잭팟이 터진 신인 작가이기에@.. 최대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자꾸 소재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마사지를 엄청 잘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여자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스포츠물이라던가(여러모로 전작과 비슷하게 이해하기 쉽고 섹스코미디에 가까운@..)
아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 이상은 끝까지 쓰겠지만요. 그게 프로로서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멘탈이 뽀각뽀각 터지긴 하지만 여러분께서는 괘념치 않도록 저는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래도 항상 응원해주시는 건 글을 쓰는 양식이자 원동력으로 삼아 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국 항상 이런 말로 귀결이 되는 것 같지만.
혹시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본작의 히로인은 여섯 분입니다. 누구인지 맞추어 보시는 것도 꽤나 큰 재미가 되실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