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98화 (98/321)

98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 다시는 놓아주지 마라.”

나는 단호하게 쏟아 붙이며 추욱 늘어진 고르바초프의 목덜미를 쥐고 트리슈에게 건네주었다. 양손을 들어 부드럽게 다람쥐를 감싸 안은 트리슈가 이내 볼 가까이 녀석을 가져다대며 빙긋 웃었다.

“무서웠지? 초프~.”

“흑흑, 무서웠다, 소녀여.”

언제 별명까지 지어준 거냐.

내가 어이가 없어 바라보고 있자니, 입을 오물거리며 슬퍼한 고르바초프가 이내 트리슈의 목덜미를 타고 어깨로 내려가 가슴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어머나♡”

“음, 좋은 탑승감이다.”

“…. 당장 나와.”

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녀석에게 스파다를 들이댔다. 하지만 트리슈는 도리어 가슴골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고르바초프를 보호하듯 몸을 돌렸다.

“왜애? 귀엽잖아!”

“방금 전까지 너한테 자기 아이를 낳으라느니 뭐니 했던 놈이라고…?”

“뭐 어때. 남자란 원래 그런 가련한 동물인 걸.”

“소녀의 말이 맞다. 나보다는 내 테스티클에서 분배되는 테스토스테론을 원망하도록.”

“꺄아~ 간지러워어~.”

그렇게 중얼거린 고르바초프는 트리슈의 가슴 사이로 들어가 굴을 파는 것처럼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위로 빠져나온 다람쥐의 꼬리가 진동기마냥 흔들리는 모습에 트리슈가 얼굴을 붉혔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카메라를 붙잡아 옆으로 치웠다.

물론 채팅창은 내 욕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럼, 갈까. 소녀여.”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가슴 사이에 자리를 잡은 고르바초프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트리슈는 웃으며 녀석의 조그마한 머리를 긁어주고는, 이내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왜 그래?”

“….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 삐쳤구나? 트리슈가 초프랑만 놀아줘서.”

“됐고, 빨리 열쇠나 운반ㅎ…. 트, 트리슈?!”

적당히 타이르듯 중얼거리던 나는, 느닷없이 팔짱을 끼는 트리슈의 모습에 놀라 물러섰다. 하지만 녀석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놔주지 않겠다는 듯 가슴 옆으로 내 팔을 밀어 넣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어때?”

“뭐가…. 아니 이것 좀 놓고….”

“자연산인 거 알겠지?”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70D인데.”

“갈 길이나 갑시다….”

나는 정신적으로 코너에 내몰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보자면, ‘특별 퀘스트’의 경우에는 유저 개인을 어떠한 방향성으로 가도록 유도할 때 사용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이 게임의 일반 퀘스트는 비교적 단순히, NPC와 교류를 맺거나 특정 몬스터를 잡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리고 에픽 퀘스트는 12명의 기사를 선정하기 위한 것. 이 두 개는 미리 정해져 있고 따라서 유저가 직접 찾아내는 형태로 퀘스트를 수행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특별 퀘스트는 그 말대로 참으로 독특한 형식이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와인 컨퍼런스에서 빼빼로…. 아니, 김준우를 도왔을 때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엘레노어는 실시간으로 모든 에스콰이어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고 있다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약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전지.

그리고 전능….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으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 우리는 마커가 가리키는 방향에 도착했고, 트리슈가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눈앞에는 중학교의 전경이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가로로 길쭉한 건물과 운동장이라는 단촐한 구성이었다.

“왜?”

“아니, 대충 누군지 알 것 같아서…?”

마커가 중학교에 머물렀던 걸 본 녀석은 서둘러 방송을 종료한 상태였다. 약간은 곤란해 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사이가 안 좋은 녀석이냐?”

“…. 서로 죽이고 싶어 하는 사이지.”

“서로?”

“그래. 그냥 확 돌아가 버릴까.”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한 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불쾌한 듯 입술 끝을 파르르 떨릴 정도로 깨물고 있는 트리슈의 모습을 보자니,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나도 알아. 이게 그쪽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쯤은.”

“그쪽?”

“에픽 퀘스트.”

짧은 한 마디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입을 다물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트리슈가 수행하고 있는 특별 퀘스트가, 그녀를 특정한 행동이나 목적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유도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역시 베디비어의 에픽 퀘스트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 걸까.

“너, 준우하고 친남매라고 했던가?”

“그래.”

녀석은 살짝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딱히 사이가 좋지는 않아보였는데…. 잠시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던 나는, 어느덧 가까이 다가와 있는 트리슈의 모습에 목을 움츠렸다.

“왜, 왜?”

“오빠가 전해주고 나와.”

고개를 갸웃거리자 트리슈는 가슴 사이에서 잠들어 있던 고르바초프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래도 괜….”

“학생들 수업하고 있는데 그 애랑 나랑 싸움이라도 벌이고 있으면 참으로 기분이 좋겠어?”

“그 애가 누군데?”

“발렌타인.”

“…. 쥬브나일 포르노의?”

“응, 본명은 이채영. 빨리 전해주고 나와.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끝나고 바로 방송국 가야 된다고.”

나는 반쯤 떠맡듯이 다람쥐를 건네받고는 품속에 집어넣었다. 아이템으로 변한 다람쥐가 인벤토리에 추가되는 걸 확인한 나는 마지막으로 트리슈를 돌아보았다.

“정말 안 가도 괜찮….”

“응~ 괜찮아~.”

녀석은 볼을 부풀린 와중, 일부러 유쾌한 목소리를 내며 벽에 기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천천히 교정 안으로 들어섰다.

마스크는 해제를 해두었기에, 지금의 나는 평범하게 재킷에 셔츠, 슬렉스라는 차림이었다. 수업 중인 건지 학교 안은 조용했고 나는 운동장을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름이 분명 이채영이라고 했었지.

선생님…. 인걸까.

확실히 쥬브나일 포르노에서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미루어보자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팝업창을 눈앞에 펼쳐 린슬렛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응, 티티.]

“통화 가능해?”

[응응, 괜찮아. 무슨 일인데?]

“혹시 발렌타인…. 실제로도 아는 사이야?”

[아니? 왜?]

“…. 니들 친구라고 하지 않았냐?”

[응, 인터넷 친구.]

나는 할 말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근데 그건 왜?]

“아니, 지금 잠깐 퀘스트로 만나러 와서.”

[…. 혹시 그 트리슌가 뭔가 하는 불여시랑?]

“그, 그렇다만.”

[당장 위치 찍어서 보내.]

“아, 아니 딱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넬?]

내가 변명과도 같은 말을 늘어놓으려던 와중, 린슬렛이 느닷없이 말을 끊으며 넬을 불렀다. 나는 어쩐지 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걸 느꼈다.

“네넬! 린슬렛님!”

그리고 돌연, 디멘션 커넥터 안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넬이 거기에 웃으며 대답했다.

[잠깐 이쪽으로 좀 올래…?]

“권한 승인해주시면 바로 갈게요!”

“자, 잠깐만….”

나는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을 뻗었으나, 이내 넬은 네트워크를 타고 린슬렛을 향해 넘어간 듯했다. 뒤를 이어 전화가 끊어지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텅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넬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보고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저기…. 그.”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던 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학생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세요?”

“너는 여기 학생이니?”

딱히 스스로에 대해 소개를 할 가치를 느끼진 못했지만, 나는 한껏 꾸며낸 친절한 말씨와 함께 소녀를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소녀는 어깨를 움츠렸지만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네, 네에….”

“혹시 이채영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시니?”

“이채영…. 선생님이요?”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분은 안 계신데요.”

“….”

그럼 누구지.

아니 잠깐 그렇다면….

“저희 반 애 중에 이채영이라고 있긴 한데.”

“…. 네?”

나는 저도 모르게 존댓말로 되물을 정도로 당황한 상태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천천히 복도 끝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저희 반이요….”

“어, 음.”

물론 그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당황해 머뭇거리던 나를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옆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채, 채영이랑 아는 사이세요?”

“…. 아, 아마도.”

그 이채영이라는 ‘중학생’이 발렌타인이 맞다면 이야기는 그렇게 되겠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준이라고 하는데….”

“호, 혹시 여자친구는 있으세요?”

“아니.”

“자, 잘 됐…. 아니 이게 아니라….”

“?”

이상한 소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른 소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당히 평범한 키로, 스스로 화려하게 꾸밀 줄 아는 느낌인데….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숫기라고는 전혀 없어보였다.

“저, 저희 조금만 있으면 수업 끝나니까요….”

“고마워.”

내가 대답하자, 미닫이로 된 문을 잡은 채 빙긋 웃은 소녀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다시금 조용해진 복도에 가만히 서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적당히 벽 위쪽에 달린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본 나는, 몇몇 여중생하고 눈이 마주치게 되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이 마친 듯 종이 울렸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광기에 물든 여중생들이 튀어나왔다.

“와! 미친! 대박!” “개잘생겼어!!!” “뭐야 이거?! 오빠 이름이 뭐에요?!” “와, 와아…. 와아아아아….”

깜짝 놀란 나를 벽으로 몰아붙인 여중생들은 둥글게 둘러싸고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 타나토스님?”

그리고 그 뒤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가 놀란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설정 상 빼빼로 나이 : 23세

설정 상 발렌타인 나이: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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