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아니 하지만 어쨌든, 녀석을 말려야 한다.
“트리슈, 잠시….”
“에잇♡”
“윽?!”
하지만 눈앞에서 녀석이 빙그르르 돌자,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볼에 살짝 붉은 기운이 묻은 채 웃은 트리슈의 치마가 위로 들렸다 이내 제자리를 되찾았다. 새하얀 허벅지가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사라지는 모습에 나는 심장이 멈추는 걸 느꼈다.
“오빠, 노팬티로 있으면 어떤 기분인지 알아?”
“너…!!”
대체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지.
“아까는 잘도 트리슈를 놀렸겠다~.”
요염하게 웃은 트리슈가 치마 밑단을 붙잡은 채 몇 번이고 스스로의 허벅지를 드러냈다. 부끄러움이라는 세포가 없는 걸까. 나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오빠, 트리슈의 은밀한 곳이 보고 싶어?”
“보, 보기 싫어!”
“그래애? 그럼 만지고 싶어?”
“만지고 싶지 않아!”
“그러엄….”
“넣고 싶지도 않아!”
“…?”
자, 잘못 말했다.
스스로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심한(?) 소리에, 나는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방금 전에는 뇌가 일을 안했던 걸까?!
“벼, 변태….”
그리고 트리슈는, 원망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다리 사이를 꾹 누른 그녀는 커다란 눈동자에 살짝 이슬이 맺힌 채 수치심으로 턱을 파르르 떨었다.
“변태애애!”
“아, 아니!”
“아, 방송 시작 10초 전!”
내가 무어라 변명을 하려던 순간, 갑작스레 표정을 굳힌 트리슈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다람쥐가 꿈틀거렸고, 머리를 정돈하며 카메라 앞에 선 녀석이 이내 나를 휙 노려보았다.
“변태.”
“….”
나는 혐오로 가득한 그 시선을 견뎌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트리슈의 얼굴 앞에 떠있던 카메라 옆으로 카운트가 시작했고, 그것이 0에 도달하기 직전 가볍게 헛기침을 한 트리슈가 이내 활짝 웃어보였다.
“실력파 신인 아이돌! 시우의 노래였습니다! 그럼 곧바로 특별 퀘스트를 시작해볼까요!”
가식적인 윙크를 한 트리슈는 카메라가 살짝 도심의 전경을 비추는 사이 뒷짐을 진 채 손에 들고 잇던 다람쥐(거의 숨을 못 쉬어 죽어가는)를 치마 속으로 쓱 집어넣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꺄악?!”
스커트의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트리슈가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얼굴을 붉힌 그녀는 몸동작을 요염하게 비틀며 스커트 안에서 날뛰는 그것을 당황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앗?! 항?! 거, 거기는 안 돼!”
무척이나 작위적인 신음을 내뱉으며.
내가 잠깐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바라보고 있자니, 채팅창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속도가 열 배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음담패설이었지만.
“다, 다람쥐가?!”
그리고 트리슈의 치마 밑에서 다람쥐가 튀어나왔다. 등에 열쇠(와 팬티)를 짊어진 채. 땅에 발을 디딘 녀석은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당황해 서있자니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
특별 퀘스트
==============================
제목 : 열쇠를 가진 다람쥐를 다시 붙잡으세요.
난이도 : ★★★★☆☆☆☆☆☆
내용 : 다람쥐가 도망쳤습니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없음
==============================
“꺄항♡ 다람쥐가 팬티를 가지고 도망쳤어!”
트리슈가 치맛자락을 요염하게 누르며 소리쳤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네가 알아서 해.’라며 짜증을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별 수 없이 다람쥐의 뒤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아읏, 트, 트리슈가 가장 아끼는 팬티인데!”
“그, 그런 거 신나서 소리치지 마!”
시야 한 구석에는 카메라가 찍고 있는 방송 영상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트리슈를 아슬아슬한 허벅지와 은밀한 부위를 찍으려는 듯한 행동에, 나는 이를 악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빌딩 숲을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다람쥐는 계속해서 우리로부터 도망쳤다. 실크로 된 검정색 팬티가 망토처럼 휘날렸고 녀석은 이내 좁은 빗물받이 구멍 속으로 쓱 들어갔다.
“어, 어떻게 하지이~?”
치마를 억누르며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당황해 소리쳤다. 물론 거기에서는 연기를 하는 기색이 진하게 묻어나왔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스킬을 시전 했다.
“망자 소환.”
근처의 조그마한 동물을….
뼈로 된 쥐가 피어오르듯 생겨나 발끝을 타고 어깨를 지나쳐 손등 위에서 멈췄다. 가까이 다가온 트리슈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쥐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는 녀석을 곧장 구멍 속으로 흘려 넣었다.
“호오, 타나토스 오빠는 신기한 스킬을 쓰는 군요!”
“….”
무시하자.
시야 반대편에 쥐가 보는 시야가 공유되어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건물 바깥쪽으로 드러난 빗물받이에 매달려 미끄러지며 동시에 쥐를 돌진시켰다.
보였다…!
동시에 주먹을 빗물받이 구멍을 때리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람쥐가 손에 잡혔다. 나는 뜯어내듯 다람쥐를 손에 쥔 채 바깥으로 빼내 확인했다. 녀석이 손을 물어뜯기 시작했지만 대미지는 전혀 없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다시금 빌딩 위로 뛰어오른 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서있던 트리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꿈틀거리던 다람쥐를 잡아 다시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와아! 트리슈보다 빨랐네. 오빠.”
“너보다?”
나는 저도 모르게 물었지만 금세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했다. 녀석 역시 방금 전의 나처럼 도망치는 ‘열쇠’를 찾아서 손에 넣었다는 거겠지.
검정색 속옷이 다람쥐의 머리끝에서 벗겨져 다시금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나는 허공에 떠올라있던 카메라를 낚아채며 뒤로 돌아섰다.
“빨리 입어.”
“…. 후후. 매너 있네?”
채팅창에서 나를 욕하는 소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중 절반은 외모는 칭찬하는 이야기들이었기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거기에서 시선을 피했….
“이 고르바초프를 붙잡다니 놀랍군. 에스콰이어.”
바로 그 순간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꺄항♡ 오빠, 도와줘어!”
약간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아본 나는, 트리슈의 어깨 위에 올라탄 다람쥐가 이쪽을 노려보는 걸 발견했다.
다시 말하자면 다람쥐가 노려봤다.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로.
거기다 이름이…?
“고르바초프?”
지난번의 너구리는 아이젠하워였잖아.
“그래, 이제부터 널 쓰러뜨릴 남자의 이름이다.”
그렇게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고르바초프의 얼굴 근처에 조그맣고 둥그런, 어딘가의 연결통로처럼 보이는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는 거기에 얼굴을 넣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그래 냄새를 맡는구나.
라고 내가 생각할 즈음 굵은 밧줄을 입으로 꺼내들었다. 까맣고 귀여운 눈동자에서 흉흉한 빛이 일어났다.
“어디 한 번 막아보시지!”
그리고는 트리슈의 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꺄아~!”
“트리슈?!”
다리 사이, 가슴의 아래와 위, 겨드랑이 틈을 통과한 녀석은 단단하고 굵은 밧줄로 트리슈를 휘감았다. 어찌나 빠른 속도였는지 내가 손을 뻗었을 때는 이미 트리슈는 밧줄에 완벽하게 포박이 된 뒤였다.
“아, 아앗…!”
그것도 무척이나 몸매가 도드라지듯이.
채팅창에서 오오오오오, 하며 남성 시청자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트리슈는 얼굴이 붉게 물들어서는 줄을 매만지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는 바람에 줄이 더욱 파고들며 가슴과 엉덩이를 부각시켰다.
“하윽?! 이, 이거 쓸려서어…!”
“후후후후후, 트리스탄이여. 이것이 고르바초프 패밀리에 전해져오는 비기다.”
“….”
“이, 이상한 기분이야! 트리슈! 아읏! 트리슈가 아니게 되어버려어어엇!”
진짜 왜 제정신인 놈이 없는 건데.
“가까이 오지 마라! 에스콰이어! 네놈이 그런 가학적인 시선으로 볼수록 이 여자는 더 위험해진다!”
“아니 대체 어디가 위험해진다는 건데.”
어이가 없어 중얼거리자니 트리슈가 매혹적으로 입술을 핥았다.
“오, 오빠…. 이 트리슈를, 그, 그런 눈으로 본 거야? 음란한…. 변태를 보는 듯한 눈으로….”
“아니거든.”
“나를, 나를 딸감으로 삼을 거지…?”
기절하시겠군.
- 딸감이 뭐임?
- 아 번역 이상하게 된 듯.
- 딸로 삼는다고?
번역이 잘못된 건지 채팅창에서는 한창 불꽃이 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인 듯 보이는 유저가 ‘자위를 할 때 소재로 삼는 대상’이라는 명확한 번역을 내놓자 다시금 남자들 사이에 열광이 계속되었다.
“칫….”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스파다를 뽑아, 트리슈의 몸을 향해 휘둘렀다.
“어라?”
“…. 호오.”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트리슈와, 그런 나를 호승심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고르바초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몸에 묶여 있던 밧줄이 순식간에 잘려져 나갔다.
“오, 오빠….”
트리슈는 비틀거리며 내게 안겨왔다. 나는 고르바초프가 뒤로 뛰듯이 몸을 날리는 걸 보면서도 괴로워하는 트리슈를 부축했다.
“진짜…. 방송이 뭔지 모르네. 이 진지충.”
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