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이상한 녀석이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얼굴이 빨개진 채 황급히 손을 내젓는 트리슈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듯 심호흡을 했다.
“어쨌든….”
그리고 나는 진지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좀 계약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는데.”
“무, 무슨 계약이요?”
“널 따라서 화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간단하게 말해 내 것이 되어주겠단 말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나는 녀석의 표현을 빌렸다.
“내, 내 것이요…?”
“?”
아까부터 이 녀석 왜 존댓말을 쓰는 거지.
“아니 중요한 거니까. 이런 문제는.”
“주, 중요한 건가?”
내 말에 당황한 트리스탄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어딘가 대답을 회피하려는 기색이 느껴져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몰린 옆으로 손을 내밀어 벽을 짚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남은 손을 찔러 넣은 채 눈을 마주쳤다.
“계약서를 쓰는 건 어때.”
“그, 그런 걸 계약서로 어떻게 써?!”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녀석.
“왜? 뭐 어때서.”
간단한 문제지 않나? 나는 트리슈를 돕고, 그로서 녀석은 가웨인의 쪽에 붙지 않고 나를 돕기로 한다. 그 정도면 이야기는….
“너무 음란하잖아!!”
“….”
뭔데.
“아, 아무리 그래도 그, 진짜로 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잠깐.”
나는 반쯤 울먹거리는 트리슈를 보며 뒤로 떨어졌다. 뭔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내가 원하는 걸 준다면서?”
“그래! 날 달라며!”
“아니 그러니까 그런 의미가….”
“나 같은 미소녀랑 섹스하고 싶은 거잖아!”
“….”
“그, 그래도 이건 명확히 하자! 오빠! 현실에서 하는 건 아니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가상에서만! 알겠지?!”
“아니 그러니까….”
“그, 그리고 막 이상한 옷 입히고 이상한 짓 하면 진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뭔가 큰 오해를 한 트리슈를 진정시키는 일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로 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앞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도무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어.
◇
“뭐, 뭐야~? 그런 거라면 말을 하지!”
“몇 번이고 말했잖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트리슈를 따라 길을 걸었다. 상황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녀석의 얼굴은 붉게 물든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응, 이 트리슈의 힘이 필요하다는 거지?”
이렇게 넘겨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트리스탄이지만.”
“그게 그거지 않아?”
“….”
나는 슬쩍 짜게 식는 걸 느끼며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웨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조리 해주었음에도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너, 굉장히 위험한 일에 빠진 거야.”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기업 회장이 뒤를 봐준다고 한들, 다른 한쪽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셈이었다. 평범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 일이 될 공산이 컸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일까. 녀석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흐음, 그래?”
“자각이 없는 거냐.”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각오가 되어있다고 해줘.”
“각오?”
“응, 그러니까….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이야기한 트리슈는 한순간 진지한 눈빛을 해보이며 요염하게 웃었다. 이 게임이 누군가
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잠깐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는 입을 열었다.
“가상의 트리스탄을 현실에 대입시킨다는?”
“아니, 그로서 현실의 시우를 끌어올린다는 거지.”
참 신기한 발상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가볍게 재킷을 기동하고 이동, 방송국 근처의 빌딩 위로 나를 인도한 그녀가 디멘션 커넥터를 매만지며 방송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팬 숫자가 어제보다 늘었네!.”
“…. 나도 출연해야 하는 거냐?”
“응응, 물론이지.”
“돌아가고 싶다.”
나는 저도 모르게 생각한 바를 머릿속에서 내뱉었다. 이 녀석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받아 넘긴다 치더라도…. 솔직하게 말해 나는 이렇게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녀석을 반드시 이쪽으로 끌어들여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어울릴 뿐.
“하지만 그렇게 되면~ 트리슈 마음에 큰 상처 입고 더러운 국가 조직에 협력할지도 모르겠는데에~”
그리고 문제는 녀석이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파악하고,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 젠장.”
“그렇게 되면~ 베디비어 퀘스트를 진행 중인 빼빼로 오빠도 분명히 트리슈를 도와주러 오겠지? 친남매니까!”
그렇겠지.그렇기 때문에 트리슈의 경우에는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백퍼센트 신뢰하기는 힘든 말이었지만, 빼빼로는 ‘어떤 퀘스트’를 수행함으로서 인해 ‘에픽 몬스터’를 붙잡았으니. 그게 기사 중 하나인 베디비어와 관련되어있을 가능성은 무척이나 높았다.
그리고 어쨌든 녀석의 말대로 빼빼로와 트리슈는 친남매이니 만큼 서로 적대하지는 않을 공산이 크니까.
“뭐, 어떻게 하면 될까?”
“잠시만….”
하고 눈앞의 팝업창을 두드린 녀석이 이내 치마 밑으로부터 지난번의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날개가 달린 카메라는 우리를 한 번 둘러보고는 트리슈의 앞에 섰다.
“크흠.”
- 방송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르고….
“하이~ 언니 오빠들! 여러분의 귀욤~ 귀욤~한 슈퍼 아이돌! 트리슈가 왔어요!”
트리슈가 미쳤다.
“….”
“오늘은 어떤 방송을 할까 생각해보다가 무려 특별 퀘스트를 찾게 되어서 한 번 진행해볼까 해요! 그리고 특별 퀘스트에 걸맞는 특별 게스트로는!”
카메라가 나를 비췄다.
“짜자안! 가웨인을 쓰러뜨리면서 단숨에 유명세를 얻게 되신 타나토스님입니다!”
“….”
나는 마스크가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며 카메라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옆구리를 쿡 찔리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쭉 폈다.
트리슈를 바라보니 녀석이 입 모양으로 조그맣게 ‘인사해.’라는 의사를 전하는 것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가볍게 목례를 하자 카메라가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자, 자아! 그럼 방송을 진행하기 전에! 지난번의 퀘스트 이후에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지….”
트리슈가 다시금 방송을 진행하는 사이, 나는 팝업창을 띄우고 방송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시청자 수는 3만 명의 전후로 왔다갔다….
“3만 명?!”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도 안 되는 숫자에 버럭 소리를 지르니, 여유롭게 방송을 진행하던 트리슈가 몸을 움찔 떨며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금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3만 명이라고?
아서리안의 전체 유저가 10만 명이라고 했는데…? 대략 3할 정도가 되는 유저가 시청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
엄청난 인기로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갑자기 손가락의 감각이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숫자를 실감하자 긴장이 든 모양이었다.
“자 그럼…. 오늘의 특별 퀘스트는 이것입니다!”
트리슈는 계속해서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서, 그때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넬…. 이게 일반적인 상황이야?”
“네넬?”
평소의 녀석은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조용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에 나 역시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던 거지만 지금은 도움이 필요했다.
“아서리안의 방송이 원래 이런 식인가 해서.”
“그, 글쎄요?”
“좀 알아봐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중얼거린 녀석이 디멘션 커넥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누군가 갑작스레 손을 쥐고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오빠아? 뭘 혼잣말 하고 있어요?”
손등이 따끔해서 의식하자니 트리슈가 생글생글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송용 미소의 뒤편에는 제대로 좀 하라는 분노가 느껴졌다.
“어, 음.”
“그럼 퀘스트를 진행해볼까요?”
“그러지.”
나는 입안이 바싹 마르는 걸 느끼며 녀석의 옆에 섰다. 방송용 카메라가 우리를 비추었고 퀘스트창이 공유되어 그 내용을 눈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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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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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열쇠를 안전하게 운반하세요.
난이도 : ★☆☆☆☆☆☆☆☆☆
내용 : 운반자로서의 책무를 수행하세요.
제한 시간 : 00:24:00
보상 : 경험치 2,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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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운반하라고…?
“어디로?”
“글쎄? 일단 위치상으로는 계속 이동하고 있어서.”
트리슈는 가볍게 지도창을 불러와 마커가 표시하고 있는 위치를 내게 보여주었다. 서울 중심부로 마커는 느린 속도로 계속해서 이동 중이었다.
“사람에게 전하라는 건가?”
“아마~ 그렇겠죠.”
그렇게 중얼거린 트리슈는 잠시 방송 상황을 확인하듯 카메라의 눈에 보이지 않게 아래에서 창을 띄우고 확인했다. 채팅창이 떠오르며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메시지는 몹시 빠르게 올라갔지만, 증강된 뇌는 그걸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 오늘도 노출함?
- 젖탱이 저거 뽕 넣은 거 아님?
- 동양인 가슴이 저럴 리가.
- 근데 엉덩이 라인도 죽이는데.
- 저것도 뽕임.
- 저것도 뽕이 있음?
- 재킷으로 부풀리면 되잖아.
- 씨발, 좆같은 조센징들 wwwwww
- 유럽에서 볼 때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음^^
- 병신들아 그냥 좀 봐.
- 근데 한국에서는 항상 저렇게 퀘스트함?
- 트리스탄이라 그런 거 아님?
“….”
불쾌하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창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 내용으로 미루어 보자면 역시나 전 세계에서 방송을 시청하는 에스콰이어들이 꽤나 많은 모양인데.
역시 어디든 똑같군.
“그럼 잠깐, 노래 한 곡 듣고 올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트리슈가 돌연 웃으며 이야기했다. 동시에 방송 쪽에서 우리의 모습 대신, 무척이나 소규모와 저예산으로 제작된 듯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기 시작했다.
“…. 이게 그 작전이냐?”
“응응, 어때 좋지?”
3만 명의 입소문을 타고 나기를 바라는 건가. 하지만 채팅창에서는 이상한 노래라면서 다시금 욕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저열함에 치를 떨면서도 다시금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그쪽으로 가는 건가?”
“그 전에 조금의 연출을 가미해야지.”
“? 자…. 잠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한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눈앞의 광경에 당황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빙긋 웃은 트리슈가 돌연,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벗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팬티를…?”
“왜? 필요해?”
트리슈는 요염하게 웃으며 검정색의 팬티를 손에 걸고 빙글빙글 돌렸다.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걸 느끼며 멍하니 그걸 바라보았…. 아니 이러면 안 돼.
“그런 거 필요 없거든! 아니 왜?!”
“왜냐니, 팬티를 벗어야 좋아하니까.”
“….”
“방송은 연출이 생명이니까!”
웃으며 소리친 트리슈가 장비창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꿈틀거리고 있는, 등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는 다람쥐였다. 트리슈는 손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다람쥐의 짐에 팬티를 걸었다.
“자아, 옳지. 옳지이….”
“무, 무슨 짓을 하는 건데.”
“이 다람쥐가 열쇠의 운반자였거든.”
웃으며 중얼거린 트리슈는 조그마한 다람쥐의 등에 달린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실크 재질의 조그마한 천 조각 사이로 열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운반 상의 실수로 인해 내 팬티를 훔쳐서 달아나게 된 거야. 어때, 아이디어 좋지?”
“네가 미쳤다는 건 알겠어.”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독자님들께서도 부디 감기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