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93화 (93/321)

93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상황을 정리하도록 하죠.”

내가 두 사람 사이에서 반쯤 죽어(?)가고 있을 무렵, 모드레드가 입을 열었다. 딱딱한 동작으로 팝업창이 사라지는 걸 바라본 그녀가 안경 너머의 눈동자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시선은 유하에게 향했다.

“잠깐 자리를 피해주시겠습니까?”

“…. 네, 네에.”

완벽한 직구에, 유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쟁판을 들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나는 아쉬운 듯 계속해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랬더라면 30분 이상 시간을 낭비했겠죠. 또한, 그녀는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을 두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입니다만.”

“…. 그렇군.”

“가족이지 않습니까?”

“정확히는 한없이 가족에 가까운 타인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안에 맴도는 커피 향을 맡았다. 모드레드는 특유의 무뚝뚝한 시선을 보냈고, 나는 거기에 뭔가 켕긴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설마 너나 우정현 씨나, 내 옛날 행적까지 모조리 조사해둔 건 아니겠지?”

“딱히, 저는 필요한 정보만 기억하는 편이기에.”

“그렇….”

“아, 아아! 그래서 뭔데!”

바로 그 순간, 린슬렛이 내 말을 잘라내며 들어와 팔을 당겼다. 거기에 가볍게 끌려간 나는 린슬렛의 억센 손길이 팔뚝을 꼬집는 걸 느꼈다.

아프다.

“사담이 길어졌군요.”

“그, 그래.”

꼬지입.

“어쨌든 타나토스 씨….”

그렇게 중얼거린 모드레드는 조그마한 입술을 핥으며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다시금 팝업창을 띄우고 매만지기 시작했다.

“일단…. 트리스탄이라는 유저는 제가 예전에 한 번 접근해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무언가를 휘갈기듯 쓴 모드레드가 테이블 중앙으로 휙 던졌다. 삐뚤빼뚤 활과 화살이 그려진 네모난 데이터 조각.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다음 조각이 그 옆에 위치했다.

“랜슬롯.”

방패.

“그리고 저까지.”

단검.

“만약 저희 쪽 인원이 갤러해드와 베디비어로 서임을 받는다고 치면, 그 숫자는 다섯입니다. 하지만 만약 할 킬러즈 측에서 남은 전력을 모두 끌어들일 가능성을 배재해두어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기사 전력 중 가장 그 능력이 ‘유니크’하다고 평가받는 트리스탄에게 협조를 구했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유니크하다는 기준이 뭐야?”

“물론 전투력입니다. ‘활’을 쓰기 때문이죠.”

“그게 유니크하다고?”

내가 되묻자 옆에 있던 린슬렛 역시 흥미로운 얼굴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몸을 가까이 했다.

“예.”

모드레드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뭔가를 더 끄적거리고 테이블 위로 휙휙 던졌다. 좀 자세히 설명해줄 건가 싶었던 나는 얌전히 기다렸지만,

“어쨌든 그래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 아니. 아니 잠깐만.”

갑작스레 돌아가려는 그녀를 보고 당황했는지 린슬렛이 이마를 매만지며 말을 끊었다.

“하아, 무슨 일인가요.”

“왜 활이 유니크한 건데?”

한숨을 내쉬는 모드레드를 보고 린슬렛은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 주제와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만.”

처음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시금 입을 다무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그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단순히 그냥 이야기가 새어 나가는 게 싫은 거다. 이 여자는.

그러니까 일종의 기차 같은 사람이랄까.

선로를 벗어나는 건 상상도 못하는.

“그래도 말해줘.”

그런 기색을 눈치 챈 듯 린슬렛은 사악함과 활기참이 뒤섞인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나 역시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군요.”

“부탁해~. 동료잖아?”

“….”

모드레드는 몹시도 그런 말을 몹시도 불쾌해하는 티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얼른 끝내자는 듯 바로 말을 치고 들어왔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죠.”

“응, 응.”

“랜슬롯과 린슬렛이 합쳐진 게, 당신인 거죠.”

“…?”

무척이나 간단하군요.

“자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자, 자자자자, 잠깐만!”

“또 뭔가요?”

한숨을 팍팍 내쉰 모드레드의 말에 이번에도 린슬렛이 당황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이제는 반쯤 테이블 위로 몸을 내민 채 질색하는 모드레드를 흥미에 가득 찬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랜슬롯과 린슬렛이 합쳐진 게 나라니. 좀 자세히 설명해줘.”

“재킷이 합쳐졌다고도 표현하죠.”

아아, 그런 말이었군.

“재킷?”

단박에 이해한 나와는 달리, 린슬렛은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머리를 매만지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모드레드와 눈을 마주치고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네 아론다이트는 ‘방패’잖아?”

“그렇, 지?”

하지만 랜슬롯의 아론다이트는 분명한 검.

그 차이가 메꾸어지면서 발생하는 것이, 눈앞에 있는 린슬렛의 아론다이트라는 것이었다. 방패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분명한 ‘검’ 그렇게 정돈이 되는 이야기에, 나는 적당히 설명을 마치곤 확인 차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쪽 눈썹을 치켜뜬 채였다.

“뜻밖이로군요.”

“왜?”

“당신께서 이해하실 거라고는….”

이 자식이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딱히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 그럼 어떤 의미로?”

“문자 그대로, 당신께서 이 말을 이해하실 지능이 있으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차라리 욕을 해라.

“흐흥, 티티는 이래보여도 꽤 똑똑하거든?”

“아니 왜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건데….”

나는 옆에서 팔짱을 끼며 웃는 린슬렛을 돌아보았다.

“무모할 뿐이지.”

그리고 거기에는 대답할 거리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네 뭐, 그로 인해 제가 잘못된 연산을 하고 있었던 것 같군요. 그 점은 사과드립니다.”

“…. 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상처를 입었다. 잠시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던 나는,

“하지만 그 녀석은 활이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즉각 내뱉었다.

“아직 하실 얘기가 더 남은 겁니까…?”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등을 기대고는 다시금 들을 준비를 마쳤다. 린슬렛 역시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나는 반대편에서 유하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럼, 드디어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 역시 트리스탄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랬지.”

아주 머나면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를 빙빙 돌아왔다.

“그때 당시 그녀가 그러더군요. 자신은 유명해지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그런 녀석이 기사를…?”

“일종의 과정처럼 여기는 듯한 말이었습니다.”

짤막한 모드레드의 대답에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졌다. 사실 아까 전에도 인터넷 방송 같은 걸 한다면서 주접(?)을 떨었던 걸 생각해보자면, 영 와닿지 않는 말은 아니었지만.

유명해지는 것이 과정의 일부.

하지만 그녀가 유명해지려는 건 과연 누구인 걸까…. 하는 생각이 일단 머릿속을 스쳤다.

현실의 시우인가. 아니면 트리스탄인가.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보자면 전자의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과정이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이라는 건 대체?

“어쨌든 그래서…. 첫 만남에서 설득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만, 며칠 뒤에 연락을 주시더군요.”

“무슨 이유로?”

“‘네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라시면서. 방송에 게스트로 나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뭔가 불길한데.

“…. 나갔어?”

“물론입니다. 트리스탄은 꼭 필요한 패이기에.”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는 파르르 주먹을 쥐며 떨었다. 그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바뀌는 걸 느끼며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땠, 는데?”

“방송 출연 후에도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만나러 가도 말을 회피하기만 할 뿐이었죠.”

너무 자연스럽게 넘기시는데.

그렇게 침묵이 찾아들고, 모드레드는 그 순간을 이용하듯 에스프레소를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잔 위의 크레마가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그녀는 여러모로 분노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이 영상인가?”

방송에 출연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 곧장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져보던 린슬렛이 그렇게 중얼거린 직후,

“히꺄악?!”

나이프가 날아들었다.

눈앞의 팝업창을 꿰뚫고 날아간 나이프가 벽에 박혀 부르르 떨렸다. 흉흉한 순간에 나와 린슬렛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침을 꿀꺽 삼켰고,

“본론으로 돌아가죠.”

모드레드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펴, 평소에도 재킷을…?”

“예, 언제나.”

린슬렛이 겁에 질려 묻자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는 이쪽을 찌릿 노려보았다. 나는 어쩐지 등줄기가 짜릿해지는 걸 느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쪽 역시 기만책을 쓸 필요는 있다는 겁니다.”

“….”

그건 좀 아니지 싶은데.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지며 모드레드와 눈을 마주쳤다. 방송 내용이 어땠는지, 그리고 녀석이 그런 식으로 희생(?)까지 하고도 트리스탄이라는 패를 끌어들이지 못한 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아니, 됐어.”

나는 간단하게 녀석의 말을 끊어냈다.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어쨌든 그 녀석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되는 거잖아? 전투에서 꽤 쓸 만한 재킷을 지녔다면서.”

“아니 그러니까 그게 먹히지 않….”

“그렇다고 해서 이쪽까지 똑같은 술수를 쓴다면 그 녀석들하고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

혹은 그 녀석.

나는 붉은 머리의 사내에 대한 걸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처럼, 목적을 위해 사람까지 가지고 놀고 싶지는 않았다.

“….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을 이용할 수는 없다. 그런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래.”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방금 전의 말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끊어내듯 말을 중얼거린 모드레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뒤로 돌아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모드….”

“머저리라고 하지요.”

혹시나 해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차갑게 말을 내뱉고 이내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 이야기에서 감정이 느껴져 나는 저도 모르게 발이 멈추는 걸 느꼈다.

“맞는 말이네.”

그리고 얼마 후, 내게 다가온 린슬렛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짓궂게 웃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나도 따라갈 거야.”

“…. 린슬렛.”

“너를 지켜줄게. 아론다이트로.”

믿음직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하가 뒤에서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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