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90화 (90/321)

90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거미줄이 그 뒤를 따르듯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의 복도를 가로지른 그것은 반대편의 벽에 꽂히듯 선을 이루었고, 나는 숨을 삼키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해 버튼을 눌렀다.

[타란튤라가 그쪽으로 가고 있어.]

트리슈의 말에 뒤를 이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감각’은 느껴졌으나 잡히진 않은 망자를 추적해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대중이었지만 크기는 맞을 터.

문 바깥으로 빠져나온 거미가 주변으로 거미줄을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역을 넓혀 조금씩 색적을 벌였다. 거대한 몸뚱아리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앞으로 나오는 모습에 나는 숨을 멈췄고,

“망령 신체…!”

녀석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차 넣었다.

재킷을 입은 신체가 닿자 ‘정보량 송신 합금’이 정보의 변화를 분석, 신호를 쏘아 보냈다. 그리고 신에 가까운 권능을 지닌 엘레노어가 네트워크상에서 그에 따른 명령을 내렸다. 그 일련의 과정은 한순간이다 싶을 정도로 짧은 타이밍에 이루어졌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녀석은 현실에 나타났다.

공기 중에 떠돌고 있는 합금의 원자가 결합하며, 형태가 뒤바뀌었고 거미의 몸을 실제로 만들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처박힌 거미가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녀석의 다리가 쇄도해 오는 걸 보며 닫힘 버튼을 부서져라 강하게 눌렀다.

“…!!”

키이이이, 하는 비명과 함께 복부를 다리가 꿰뚫었다.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기분이 나빠져 이를 악물며 최상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유리창에 어그러지듯 균열이 발생하며 거미는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쳤다. 나는 녀석을 함부로 공격했다가 엘리베이터가 버텨내지 못할 것을 걱정해, 좁은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의 희생양으로 자신을 내어주었다.

여덟 개의 다리가 몸 곳곳을 꿰뚫었다. 그 하나하나가 투박하고 거대한 창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녀석에게 유린당했다.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할 때까지.

“윽….”

망령 신체가 거의 끝날 타이밍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튕겨져 날아간 나는 바닥을 미끄러지며 자세를 취했다. 문을 으스러뜨리며 빠져 나오는 거미가 뒤로 돌아서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좁은 복도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몸을 날렸다.

거미줄이 머리 위를 스쳤다.

저것에 잡혔다가는 곧장 공격에 휘말리리라.

[타나토스님!]

“넌 지하 주차장 쪽으로 가있어!!”

준우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거미줄이 방안을 잠식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몸을 숙였다. 최상층은 층 전체가 방 하나로 구성된 장소였고 피아노나 술병 같은 게 매달린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거미는 장식장을 쓰러뜨리며 방안을 배회했다. 꽁무니에서는 끊임없이 거미줄을 쏘며, 나를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소파 뒤쪽에 숨어서 숨을 고른 나는 곧장 망자들을 불러냈다.

뼛조각으로 이루어진 들짐승들이 거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다리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망자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녀석을 쓰러뜨릴 방법이….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지도의 마커를 통해 다시 한 번 주차장의 방향을 확인했다. 한쪽 벽을 형성하고 있는 유리창 쪽이었다.

망령 신체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버텨, 녀석을 저곳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충격으로 대미지를 입힌다.

그것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작전이었다. 굳이 주차장 쪽을 택한 것은 거기라면 사람이 없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남은 쿨타임은 1분 30초.

“윽?!”

바로 그 순간, 다리에 거미줄이 닿았다.

뇌가 휘둘러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나는 공중으로 몸이 붕 떠오르는 걸 느꼈다. 그렇게 난 거미줄에 낚아 채여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고 거미가 육중한 몸을 돌려 낮게 울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냈다.

“젠장…!”

그리고 쇄도해들었다.

톱날처럼 달린 이빨이 빛났다. 나는 피해를 각오하고 본 테이커를 소환해들었지만….

“스프링클 애로우.”

이내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허공에서 여러 갈래로 나뉜 화살은 거미의 다리에 무수히 꽂혔다. 그 위력에 얼굴을 거의 물어뜯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던 거미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와아, 살다 살다 이런 막무가내인 전투는 처음 보네.”

“트리슈….”

문 바깥에서 팔목에 휘감기는 형태의 활을 들고 있던 트리슈가 기가 차다는 듯 숨을 내뱉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금 시위를 걸어 화살을 쏘아 보냈다.

아니 그건, 화살이라기보다는 탄환처럼 느껴졌다.

“…!”

진한 녹색빛을 띈 화살이 발목을 휘감고 있던 거미줄을 꿰뚫고 지나갔다. 자세를 바로하며 바닥에 착지한 나는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거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녀석은 펄쩍 뛰어 천장에 달라붙었다.

“다시 색적하려는 모양이네.”

트리슈의 말을 이어 거미줄이 분사되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명백하게 현실의 것이 된 그것은 텅 빈 방안을 채우려는 듯 감지기처럼 곳곳에 퍼졌다.

“타나토스 오빠.”

뒤쪽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는 쳐지는 거미줄을 피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거대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에 긴장이라도 한 걸까. 나는 마스크 안쪽의 입안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흠, 원래 그런 스타일이야?”

허리를 펴고 잠깐 숨을 고르고 있자니 트리슈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챙이 넓은 깃털 달린 모자와, 그 밑의 화려한 카니발 마스크. 그 안의 눈동자에 살짝 흥미롭다는 듯한 기색이 감돌았다.

“섹시하게 당하는 거 보여주면서 시청자를 자극하는?”

“…? 뭐?”

“아, 그 표정 좋네.”

그러니까 이 녀석은,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거야?”

“응, 화살을 쏜 시점에서.”

“….”

어이가 없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뒤쪽에서 무언가 날아와 우리 둘을 비추기 시작했다. 날개가 달린 방송용 카메라였다. 저걸로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건가.

아니, 무시하자.

“응? 오빠, 시청자들한테 인사라도….”

“시끄러워.”

나는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거미를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망령 신체의 쿨타임까지 시간을 번다면, 녀석과 함께 밑으로 낙하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준우와 협공해 공격에 들어가면 되겠지.

“엘리베이터 안으로 에픽 몬스터를 차서 넣고 같이 들어가질 않나. 거기에 거미줄을 피할 방법 하나 생각하지 않고 있다니. 아, 브레이님 아이템 감사합니다~ 하트 뿅뿅! 트리슈는 브레이님이 있어서 행복해요!”

“….”

“뭐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나는 무시하기로 했다. 저 녀석이 방송을 통해 무슨 짓거리를 하든, 관심을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오히려 여기서 길길이 날뛰는 것이 녀석이 원하는 바겠지.

“아 참고로, 저 녀석 창문 밖으로 밀어봤자 얌전히 떨어지지 않을 거야. 외벽에 달라붙을 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신경이 쓰이는 정보에 나는 방금 전의 말을 철회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 말에 씨익 웃은 트리슈는 내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손바닥에 휘감겨 있는 활을 들여 보였다.

“저런 놈을 상대해봤으니까?”

“…. 트리스탄.”

나는 재차 확인을 하듯 중얼거렸다.

“트리슈라고 부르면 돼. 그게 더 예쁘잖아.”

“같이 떨어질 거야. 내가 몸으로 붙들고 있으면 쏘고 말고도 없겠지.”

“헤에, 정말? 오빠한테도 대미지 갈 텐데?”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지.”

나는 차갑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래도 에픽 몬스터를 처리할 정도는 안 될 텐데~.”

“젠장, 그러면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냐?”

나는 다시금 도발에 걸린 걸 느끼면서도 트리슈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잔뜩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글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이야기해줄게.”

싱긋 웃은 트리슈는 뒷짐을 진 채 기대감에 찬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슬쩍 재촉이라도 하듯 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화려한 문양을 한 가면, 그리고 그 속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는,

“안 해.”

거절했다.

무척이나 단호하게.

“에엑…?”

그런 대답에 트리슈는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어서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가볍게 움직이고 있는 녀석의 팔을 잡아 다시금 제대로 서게 만들었다.

“책임을 져.”

“무, 무슨 책임?”

“기사로서 책임을 지란 말이야.”

“….”

스스로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지는 이유였지만,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분명히 말하자면 기사는 게임 상에서의 계급이다. 그리고 또한 별다른 책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게임 세계가 실존하는 사람을, 단순한 게임 속의 주민으로 취급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책임을 져라.

통하지 않을 건 뻔히 알았지만.

갤러해드가 그랬듯이.

“기본이잖아. 사람들을 지키라고.”

내 말을 들은 트리슈는 잠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은 채 진지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고, 녀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푸….”

그러더니 이내,

“푸우…. 하하! 하하하하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무, 무! 무슨! 무슨 햄릿도 아니고!”

이 녀석 진짜 싫다.

진지하게 말한 사람에 대해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트리슈의 모습에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녀석은 이내 내 어깨에 팔을 걸쳤고,

“뭐, 좋아.”

화살을 발사했다.

“아아…. 이렇게 진지한 사람은 놀려주고 싶은데.”

거기에 맞은 거미가 다시금 키이익,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위치를 알아채고는 거미줄이 휘감기듯 포위해왔다.

“타나토스 오빠. 나에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있어.”

“뭐지?”

그런 돌진을 피해내며 나는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피아노 위에 올라선 녀석은 능숙하게 화살을 쏘아 몇 번이고 거미를 공격했다.

“그 전에 한 가지만. 이 트리슈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믿어준다고 하면 도와줄게.”

장난기가 섞인 트리슈의 얼굴.

“좋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난스러웠던 트리슈의 얼굴이 굳으며 홍조가 맺혔다.

“…. 지, 진짜로?”

“뭐가 진짜로야?”

나는 짜증스럽게 대답하며 스파다를 꺼내들었다.

“으음, 정말로 믿어줄 거야?”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라고 약속하면.”

“으음, 정말로 믿어줄 거야?”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라고 약속하면.”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음 순간, 거미의 발이 휘둘러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스파다를 들어 막아냈으나, 강한 힘에 주욱 뒤로 밀려났다.

“…. 으음, 오빠 순진하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아?”

“아니.”

무모하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만.

“얼굴도 잘생겼고…. 꽤 괜찮겠는데.”

“무슨 소리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설명할게.”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미의 눈에 화살을 꽂아 넣은 녀석은 카메라를 잡고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야 구석에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모르는 순간에 플래그를 또 꽂아버린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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