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녀석은 어쩐지 갑작스레 회의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타나…. 아니, 이준님은 왜 이곳에?”
“어쩌다보니 표를 받게 되어서.”
“흐음….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일상에서의 이준님이 어떤 분이신지 대략 짐작이 가는데요.”
“뭐?”
“연예인이시죠?”
“그럴 리가 있냐.”
나는 약간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김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돈 많은 여성 기업인의 젊은 애인?”
“…. 왜 그런 쪽으로 밖에 상상하지 못하는 거냐.”
내 말에 준우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잠깐 앞머리를 매만지던 나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퀘스튼데? 도와줄게.”
“아,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클리어할지 말지도 정하지 않아서요. 부끄러운 이야깁니다만. 아하하….”
“흐음.”
이걸 엘레노어는 ‘방황한다.’라고 표현한 걸까.
“그럼 진짜 대체 왜 온 거야…?”
하지만 입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왔다.
“그, 그러게요.”
“중요한 퀘스트인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해버려.”
“…. 무신경한 사람.”
“무슨 퀘스트인지 말해줄 수는 없는 거잖아?”
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스스로가 미움을 살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녀석에게 시야 한구석에 떠있는 양피지를 휙 던졌다.
“그러니까 난 해줬으면~ 하는 입장인 거야.”
“이래서 저에게?”
그 내용을 확인한 녀석이 입술을 비틀듯이 웃었다. 나는 스스로 너무 졸렬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면서도 반대로 씨익 웃었다.
“탐이 난단 말이지. 경험치 300만이.”
“가시고 나서 발렌타인님께 대충 전해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레벨이 90 정도 밖에 되지 않으신 건가요?”
“응, 그래서 절실하지.”
사실 좀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치는 부수적인 이유겠지만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기로 했다.
조금 궁금했다. 이 녀석이 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는 ‘중요한 퀘스트’란 게 무엇일지가.
“해줄래?”
그 말에 잠깐 망설이던 녀석은,
“뭐…. 이준님을 위해서라면 괜찮겠죠. 한 번 정도야.”
이내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 그건 좀.”
나는 어쩐지 다시금 공포감이 드는 걸 느꼈다. 어쩐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의 녀석은 사람을 무섭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농담입니다.”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중얼거리자니 준우는 눈앞에 떠오른 팝업창을 조작하고는 이내 나에게 휙 던졌다. 팝업창이 구겨지듯 권한으로 뒤바뀌었고 난 그것을 꾹 쥐어서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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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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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 5/10
난이도 : ★★★★★☆☆☆☆☆
내용 : ■■ ■■■■ ■■■■■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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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퀘스트인가. 대부분의 글씨를 방금 녀석이 지운 것 같았지만…. 어쨌든 같은 퀘스트를 공유하게 됨으로서 이제 나도 그걸 볼 수 있다는 걸까.
“아, 바깥에 나가서 놀라지 마세요.”
“뭐?”
“음, 사실 교대를 한 이유가 이것 때문에 ‘눈’이 피곤해서 그랬거든요.”
웃으며 중얼거린 준우는 몸을 돌려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고 준우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윽….”
그리고 바깥은 거미줄로 가득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와인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몸 곳곳에 달라붙은 거미줄의 모습에 나
는 숨을 삼켰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거미줄이 끈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리고 머릿속을 누군가 스쳤다.
“넬…!!”
나는 놀라 반쯤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깨진 유리창처럼 거미줄에 의해 시야에 금이 간 상태였고, 나는 본능적으로 멈추려는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재킷을 입지 않았기에 몸에 영향은 없었다. 그리고 또한, 퀘스트를 받아들이기 전의 정보로 인해 거미줄이 ‘합금’이 아님을 알아챘다.
“넬!”
“으, 으으으 주인니이임….”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나는, 유하의 옆에서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는 넬을 발견했다.
퀘스트를 승낙하자마자 녀석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 광경을 함께 공유하게 된 것이었다.
“괜찮아?”
“이, 이건 대체 뭐죠오오오?!”
“퀘스트야.”
“아, 아까 그?”
“이준님…?”
뒤쪽에서 다가온 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유하에게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거기 잠들어있는 분이…?”
“아, 아니 이 사람은 아니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하의 무릎 위에 있는 재킷을 치워 손에 들었다. 그녀가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굳이 스스로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넬이 녀석에게 화살을 쏘았다.
“…. 넬.”
“이러면 되죠?”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팝업창, 잠깐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준우가 가볍게 승인을 했다. 녀석의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에서 나는 넬이 녀석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녕하세요~ 넬입니다!”
“음, 이준님?”
“이쪽은 내 네비게이터….”
“그, 그렇군요.”
녀석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다시금 확실히 말을 했다.
“네비게이터야.”
“…. 알겠습니다.”
그러자 실례라는 걸 깨달았는지 준우는 금세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웃으며 서있는 넬을 돌아보았다.
“반가워요. 넬, 김준우라고 합니다. 닉네임은 빼빼로.”
“참 이상한 닉네임이란 말이지.”
“외우기 쉽게 이어서 지으라고 했거든요.”
“누가?”
“여동생이요.”
확실히 한 번 들으면 네 사람의 이름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구조기는 했다. 발렌타인, 빼빼로, 화이트, 블랙에 이르기까지.
“다들 빼빼로는 쓰기 싫어할 테니까요.”
“그렇군.”
“어쨌든, 퀘스트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뭐 지금까지는 제 예상입니다만.”
잠깐 거기에 대해 생각해보려던 중, 빼빼로가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연히 시선을 따라간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다시금 숨을 멈췄다.
“주, 주인니이이임…. 넬은 들어가 있을래요오오오!”
“그, 그러는 게 좋겠군.”
더는 버티지 못한 넬이 디멘션 커넥터의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천장에 붙은 ‘그것’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거미가 있었다.
사람은 한 입에 잡아먹을 법한 거대한 거미가.
“귀엽죠?”
“너 진지하게 병원 가보지 않을래.”
“하, 하하 저렇게 크면 뭔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아서 애정이 생기지 않나요?”
“그럴 리가 있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거미를 바라보았다. 입으로 보이는 근처에서 녹색의 체액이 뿜어져 나오고, 털이 가득한 여덟 개의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두툼한 엉덩이 끝에서는 거미줄이 분사되어 방안에 흰색의 집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부터 저런 거야?”
“제가 도착했을 때 시작했죠?”
“그래놓고 퀘스트를 안하시겠다…?”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녀석을 돌아보았다. 머쓱한 듯 볼을 긁적이는 준우, 나는 거미를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몬스터의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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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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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거대 타란튤라
Lv : 80
Exp : 150,000
방어력 :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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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몬스터…. 인가.
아니 그보다 이 녀석들은 몬스터 이름의 접두사로 ‘거대’만 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저 녀석을 쓰러뜨려야 하는 거군.”
“네, 하지만 이런 상황이어서야….”
녀석은 당황한 듯 웃으며 ‘현실’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가상’의 거미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들은, 즐겁게 와인 컨퍼런스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너 그거, 재킷 아니지?”
나는 가볍게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역시 그러하듯이 지금 이 장소에 가득한 ‘거미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 그런 반증이지 싶었던 것이다.
“할 지 안할 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하잖아?”
“그래도 되도록이면 와인 컨퍼런스를 즐기는 분들께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요.”
“뭐 정 그러시다면.”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다시금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조금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신기하네요.”
준우가 날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가.”
“보통은 그냥 하자고 하지 않나요? 그다지 강한 몬스터도 아니고…. 에스콰이어로서는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만약에 당장에 재킷을 입고 몬스터와 싸운다면, 근처에 원자의 형태로 된 합금이 모여들어 녀석의 신체를 형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에도 위험을 끼칠 터,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뒤쪽에 잠든 유하를 슬쩍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를 봤다는 걸 굳이 준우에게 알리고는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널찍한 컨퍼런스장의 안을 살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동물의 뼛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망자 소환.”
나는 스킬을 시전 했다. 재킷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일까. 뼛조각이 고양잇과 동물의 형상을 이루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호랑이나 재규어 같은 느낌.
“…. 신기한 스킬을 쓰시는군요.”
그걸 알아본 준우가 가볍게 감상을 내뱉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움직일지 보자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팔을 휘둘러 공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날렵하게 공중으로 뛰어오른 내 망자는 곧 거미가 쏘아 보낸 거미줄에 휩싸였다.
“….”
“….”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 야금야금.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나와 준우는 멍하니 그걸 바라보았다. 천장 위에 거꾸로 달라붙은 거미가 한 이천칠백 개쯤 되어 보이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뼛조각으로 이루어진 망자를 씹어먹었다.
분명 이빨이 보였는데
꽤나 날카로워 보이는.
“거미가 이빨이 있던가?”
“거미가 아니라 거대 타란튤라….”
준우의 지적에 나는 납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