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주, 주인님…?”
“….”
하지만 넬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순간적으로 하려고 했다.
저 남자의 디멘션 커넥터의 권한을 빼앗아와, ‘우정현’이라고 적혀져 있을 이름을 ‘송유하로’ 바꾸려고.
“젠장.”
나는 무슨 짓을.
“고맙다. 넬.”
나는 새하얗게 비어있던 뇌에 이성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뒤쪽에 있던 넬에게 인사를 했다. 녀석은 미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 그래도 좀 하고 싶긴 하네요!”
“안 돼.”
“으음…. 그럼 어쩌시게요?”
“돌아가야지. 하지만 그 전에.”
저 새끼 안면에 주먹 한 방 꽂고서.
“그, 그거 하시면 돌아가시기 전에 경찰서에 들르셔야 할 텐데요오오오…?”
“상관없어. 유하한테 먼저 가라고 전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분노랄 담아 남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샌님 같은 얼굴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 스스로 아무것도 없는 버러지 주제에 이 자리를 믿고서 유하에게 그런 폭언을 하다니.
유하에게, 말이지.
“손님 무슨….”
이쪽을 알아보고 다시금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주먹을 치켜들었….
“어머나, 당신은 그때!”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몸이 굳은 나는 팔을 올리던 자세 그대로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안경을 쓴 중년의 여성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때 파티에서 회장님이랑 인사했던…. 어, 이름이.”
“이, 이준입니다.”
“아! 이준 군! 오랜만이에요! 여기는 어쩐 일로?”
“…. 어.”
무슨 상황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온 여성을 향해 표를 내밀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한 여성이 이내 반색했다.
“아, 회장님 대신 온 거구나. 하긴, 바쁘신 분께 초대장을 드린 거라 괜히 걱정거리를 만들어 드린 걸까. 고민하고 있던 참인데. 당신이 와줘서 기뻐요.”
“저어, 사모님 이건….”
그리고 옆의 남자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여성이 컨퍼런스의 주최자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여성은 내게서 표를 가져가 남자에게 내밀었다.
“자, 표 확인 부탁해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건 뭐 있어요. 회장님 대신 이렇게 잘생긴 청년이 와준 거라면 나도 환영이에요. 너무 딱딱하기만 한 자리는 좋지 않으니까. 꽃 한 송이정도는….”
그렇게 중얼거린 여성이 이내 인기척을 느끼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덧 상황을 눈치 챈 것일까. 머뭇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유하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두 송이로군요.”
그리고 여성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여자친구?”
“누, 누나입니다. 윽…!”
적당히 넘기려 자니 가까이 다가온 유하가 내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옆에 선 그녀가 사무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발견했다.
“젊은 사람들 오래 붙잡아서는 안 되지. 즐기다 가요.”
“가, 감사합니다.”
여성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하의 손을 잡았다. 살짝 움츠러들려는 그녀를 대동한 채, 문 앞에 서있는 남자를 노려본 나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주, 준….”
“괜찮아.”
“네?”
“지금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까.”
“….”
“저런 놈이 하는 말 신경 쓰지 말라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유하는 얼굴이 빨개진 채 못 말리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보.”
◇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뒤, 건네받은 와인 한 잔을 마신 유하는 그대로 만취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에헤헤♡”
“여기에 앉아.”
나는 얼굴이 빨개진 유하를 부축해 벽 근처에 있는 의자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중심을 잃은 유하는 반쯤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재킷을 벗어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준♡ 준♡”
유하는 헤실헤실 웃으며 내 소매 끝을 꾹꾹 당겼다. 나는 반쯤 몸이 기우뚱하는 그녀를 어깨에 기대게 하며 그 옆에 앉았다. 유하는 고르게 숨을 몰아쉬며 내 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넬이 그 앞에 서서 붉어진 유하의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유하님 술이 많이 약하신대요…?”
“예전에도 그랬어.”
나는 반쯤 희미했던 기억이, 지금의 모습으로 인해 명확하게 바뀌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내가 중학생이고 유하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반주로 드시던 술을 마시고는 둘 다 뻗어버린 적이 있었지.
“주인님도 비슷하시지 않나요?”
“그런가?”
“두 분 설마 혈연관계이신 건….”
“절대 아니거든.”
나는 의심하는 듯한 넬의 말을 단박에 쳐내며 중얼거렸다. 지극히 가족에 가까운 관계이긴 하지만, 유하와 나는 DNA 구조로서는 생판 남이었다.
“준….”
바로 그때, 유하가 무릎에 올려둔 내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 유하를 바라보았다.
“응, 유하.”
“손이 거칠어졌네요.”
나는 그녀가 알코올의 힘을 빌려 못하던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것저것.”
“매번 적당히 넘기고.”
“….”
“요새도 어딘가에 한 눈 팔고 있는 것 같은데에~.”
거기에는 대답할 말이 없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오게 되서, 다행이에요.”
“응.”
“처음 돌아왔을 때보다 좀 더 유해진 것 같기도 하고…. 여자 친구라도 사귄 걸까나?”
“그, 그건….”
“만약 사귀었다면 죽일….”
“?”
“아니 그, 죽이 되고 싶다고요.”
“그렇군.”
나는 어쩐지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던 그녀는 이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쓰게 웃은 나는, 어깨를 빌려주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내 아서리안을 실행시켰다. 베디비어에 대해 뭔가 정보가 들어왔을지도 모르므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심플한 로고가 떠올랐고,
“응?”
양피지가 하나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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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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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도자의 길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방황하는 에스콰이어를 도와주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3,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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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퀘스트의 첫 번째 마커가 가리키고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내 시선이 머무르자 마커는 자리를 옮겨 방안의 한 장소를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사람을.
“빼빼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마커가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빼빼로였다.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덩치에, 선해 보이는 인상. 녀석은 정장을 입은 채 셀러 앞에서 소믈리에에게 와인을 건네주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넬을 돌아보았다.
“넬, 유하를 부탁해.”
“네넬!”
웃으며 활기차게 외친 녀석은, 이내 ‘재킷’을 조종해 유하의 어깨를 감싸도록 했다. 나는 안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빼빼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으나, 녀석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발을 멈추고 말았다. 매너가 아니라고 했던 린슬렛의 말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이 퀘스트는 대체…?
인도자의 길?
방황하는 에스콰이어는 저 녀석을 말하는 거겠지만, 대체 무엇을 도우라는 걸까.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이내 다시금 빼빼로를 바라보았다. 교대를 할 시간인 걸까. 녀석은 셀러 앞에서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는 대기실 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따라가 볼까.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이내 유하를 돌아보고는 앞머리를 매만졌다. 지금까지의 짧은 경험 상, 특별 퀘스트를 해서 손해를 본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꽤 빼빼로를 화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혹시 그렇게 되었을 때 사과할 말을 떠올리며 대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파악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다.
“…?”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기실 안에 발자국을 남기며 주변을 살폈다. 철제의자와 옷을 넣어두는 듯한 사물함 따위가 있는 대기실. 그렇게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니 이윽고, 철커덕하는 소리가 났다.
“빼빼, 로.”
그것은 문을 잠그는 소리였다.
“장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타나토스님.”
문을 문자 그대로 가로막다시피한 녀석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살짝 미지의 공포(?)를 느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뭐, 뭐라고?”
“화장실은 여기에서 두 블록 아래라고요?”
“…. 네?”
나는 당황한 채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섰으나, 이내 사물함에 등이 부딪쳤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온 빼빼로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스치듯 사물함에 대고 섰다. 어찌나 큰 덩치인지 나는 순간적으로 대기실의 불이 꺼졌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농담입니다.”
“노, 농담 같지가 않은데.”
왠지 다리 사이에서 불길한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어쨌든, ‘바깥’에서 뵙는 건 처음이지 싶은데요.”
“그렇군.”
하지만 평소와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녀석의 얼굴이 전부 보인다는 것 정도. 하지만 상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선한 얼굴이었다.
키는 190이 훌쩍 넘지 싶을 정도로 컸지만.
“김준우라고 합니다.”
“…. 이준이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마치자 녀석은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잠깐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소믈리에 지망이었어?”
“아뇨, 사실 이곳에서 퀘스트가 있어서.”
퀘스트.
갑작스레 윤곽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흥미로운 감각에 눈썹을 치켜떴고 빼빼로가 말을 이었다.
“여기에 ‘잠입’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복장으로?”
“예, 다행히 예전에 아버지와 연이 닿아있던 분이어서요. 이 와인 컨퍼런스의 기획자 분은….”
“아버지?”
되물었지만 빼빼로는 대답하지 않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빼빼로?”
“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뭘 말이냐?”
“이 퀘스트요.”
========== 작품 후기 ==========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습니까... 여러분...
저는... 마감이 너무 급해서...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