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83화 (83/321)

83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아, 타나토스님. 오셨군요.”

그렇게 생각하던 중, 갑자기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든 나는 머리를 짧게 깎은 큰 덩치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빼빼로.

“잘 지내셨나요.”

“….”

살가운 인사와 시선을 일부러 피했지만, 녀석은 넉살좋게 맞은편에 앉았다. 린슬렛을 만나고, 조금은 주변을 대하는데 여유를 갖자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건 무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솔직히 말해 조금 다른 의미에서 불편한 것이다.

“걱정하고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걱정해주는 빼빼로가.

“….”

부, 불편하다.

얼굴 위쪽에는 그림자 같은 것이 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과도할 정도로 친절한 녀석의 목소리에 어쩐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쨌든 신세를 지긴 했으므로.

“고맙, 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

“네?”

“아니 뭐, 그…. 퀘스트라던가. 이것저것.”

녀석은 분명히 사건의 초반, 아무것도 모른 채 방황하던 나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주었다. 아니 도리어 그로서 입을 손해를 감수하기까지 했다.

“하하, 단순히 승부의 대가였을 뿐인데요.”

“그 승부조차 억지를 받아들여준 거였으니.”

그렇게 말한 나는 이내 옆에서 발렌타인과 술을 즐기는 린슬렛을 약간 짜게 식어서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했고 나는 귀엽게 얄밉다는 생각에 볼을 슬쩍 꼬집어주었다.

“호오, 두 분….”

그리고 거기에 빼빼로가 반응했다. 턱에 손을 댄 채 이쪽의 모습을 관찰하는 모습에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내 손을 받아들이던 린슬렛이 눈을 치켜떴다.

“뭐, 뭐가.”

“언제 그런 사이가….”

“뭘 상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거든.”

“그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린슬렛이 곤란해 한다는 생각에 화재를 돌리며 반대편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발렌타인과 빼빼로.

“…. 이 바보가.”

린슬렛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비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 에픽 퀘스트는 정해졌나?”

그 말에 방 안에 흐르던 재즈 음악이 뚝 멎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눈썹을 찌푸린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음악이 멎자 바깥쪽에서 노를 젓는 소리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베디비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빼빼로는 가볍게 턱을 매만지며 신음을 흘렸다. 발렌타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다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고 뒤쪽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보던 블랙과 화이트 역시 다시 일로 돌아갔다.

“되고 싶으시다는…?”

“그건 아니야. 누가 해줬으면 싶은데.”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일까. 살짝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발렌타인의 말에 나는 슬쩍 치고 들어가기로 했다. 장죽을 피우고 있던 손이 굳어졌다.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 말이지. 누군가 신뢰할만한 사람이 퀘스트를 통해 베디비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구체적으로 어떤…?”

“동료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렇군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졌다. 갑작스레 음악이 멈춘 거나, 살짝 경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기색이 드러나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정보의 독점이 가능할까?”

“…. 글쎄요.”

그리고 발렌타인의 대답은 냉정했다. ㄹ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는 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드는 걸 느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라쿠스 기사단의 경우에는…. 사실 어쩔 수 없이 협력했던 측면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무력적으로는 인근에서 영향력이 정말 강했었으니.”

“그랬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옆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린슬렛을 힐끔 보았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로 봐서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실 이전의 사건으로 기사단의 영향이 줄어들 게 되어서 쥬브나일 포르노로서는 기쁘답니다.”

“그런 반사이익이.”

“반사이익이 아니라 불온하게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은 거겠죠. 정보는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 저어, 발렌타인? 우리 친구지?”

“어머, 당연하지이~.”

린슬렛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발렌타인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대답에 린슬렛은 안심한 것 같았지만 나는 상황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너도 네가 친구로서 보여주었던 우정을 그대로 돌려줄게. 일단 내 구두부터 핥아보는 것이?”

“그으으으읏…. 나, 난 그런 짓까지는 안했잖아!”

“대신 피아노를 부숴버렸지.”

“그, 그깟 데이터 조각!”

“베디비어 퀘스트도 데이터 조각이란다.”

“그렇지는 않지.”

반쯤 본능적으로 반박한 나는, 이내 세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입을 다물었다. 이 퀘스트가 게임을 끝낼 중요한 과정이라는 건 두 사람은 모르니.

“어쨌든, 미안하다. 괜히 시간을 뺏은 것 같군.”

“왜, 왜 티티가 사과하는 거야…?!”

“네가 잘못했으니까.”

“아야야야얏!”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반박하려는 린슬렛의 볼을 슬쩍 세게 꼬집었다. 확실히 스스로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한 행동이라고는 해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린슬렛이 피아노를 부수었던 건 나쁜 일이었다.

“고지식해애애애….”

“너도 사과해.”

“으, 으으 미안함다.”

“헤에, 그 린슬렛이 이렇게….”

빨개진 볼을 움켜쥔 채 린슬렛이 사과를 하자 발렌타인이 흥미로운 얼굴로 담배를 물었다. 잠시 그 사과를 지켜보던 나는 이내 빼빼로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미안, 너에게도 무리한 부탁을 했군.”

“아닙니다.”

“그럼 혹시…. 에픽 퀘스트가 나오면 좀 그 정보를 사고 싶은데. 물론 정당한 대가는 치루겠어.”

“그거라면 환영입니다.”

그렇게 대답했음에도 빼빼로의 목소리에서는 약간 곤란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에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고,

“타나토스!!!”

바로 그 순간, 도끼가 날아들었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내 앞으로 방패가 드리워져 도끼를 막아냈다. 파르르 떨리는 도끼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너 이 자식…! 잘도!”

고리가 촘촘히 박힌 가죽 재질의 마스크. 민소매로 된 재킷을 입은 근육질의 사내. 앤더슨이 사나운 분노를 드러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한순간 입술을 강하게 깨문 발렌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앤더슨님, 이곳에서는 싸움은 금지….”

“닥쳐!”

눈앞에 적대 상태의 플레이어를 감지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앤더슨이 가까이 다가와 으르렁거리자 그 앞을 린슬렛이 막아섰다.

“린슬렛! 왜 이런 녀석과!”

“앤더슨….”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린슬렛은 아론다이트에서 도끼를 빼내 다시 앤더슨에게 돌려주었다. 새로운 디자인의 방패에 앤더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그게….”

“글쎄.”

그리고 내가 그 앞을 막아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던 일은 마저 끝내는 게?”

대체 뭐에 그렇게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나토스…!!”

“티, 티티. 싸우려고?”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이내 린슬렛의 귀에 대고 방패는 넣어두라고 속삭였다. 녀석이 각성을 한 이후 모든 유저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므로 랜슬롯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가려둘 필요성을 느꼈다.

“발렌타인, 미안하지만….”

“적어도 바깥에서 해주세요.”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발렌타인이 손을 튕기자 한쪽 벽에 둥그렇게 구멍이 뚫렸다. 나는 녀석을 힐끔 돌아보고는 곧장 배 위에서 뛰어올랐다.

더러운 구정물 위에 발을 디디고 뒤를 돌아보자, 앤더슨은 이미 따라 나온 상태였다. 멀찍이 대치해 선 상태에서 나는 힐끔 배 쪽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이야기가 들릴 염려는 없어보였다.

“한 가지만 묻지. 앤더슨.”

“뭐냐!”

“왜 나와 싸우려는 거지? 너도 그때 ‘알현실’에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대충 이해하고 있지 않나?”

결국 모든 일은 가웨인이 계획해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덤벼드는 녀석의 저의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닥쳐! 그렇다고 해서 네놈이 린…. 랜슬롯을 데리고 기사단을 빠져나간 건 용서하지 못해!”

“….”

대충 이해했다.

“린슬렛이야, 랜슬롯이야.”

“어느 쪽이던 무슨 상관이냐!”

이건 좀 골치가 아픈데.

나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느끼며 앞머리를 매만졌다. 녀석이 린슬렛에게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니. 무어라 반응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이긴다면 린슬렛은 데리고 가겠다!”

“그거랑 이건 별개지.”

“뭐…?”

“저 녀석이 알아서 선택한 거잖아.”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도끼를 쥔 채 소리친 녀석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사람을 무슨 보상 취급 하는 건 단순히 게임 감각이라고 치더라도. 역시나 린슬렛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태도는 기분이 더러웠다.

“랜슬롯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 주제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테이스창을 띄웠다.

레벨의 상승으로 인해 망자 소환의 랭크는 B.

“망자 소환.”

그리고 나는 뼈로 이루어진 고래를 소환했다.

“윽?!”

한순간 수면이 흔들리며 녀석이 비틀거렸다. 등 쪽에서 공기를 분사해내며 위로 솟아오른 고래가 녀석을 집어삼켰고, 나는 재킷의 끝자락이 떨리는 와중에도 가만히 서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물속에 빠져든 녀석을 삼킨 뼈 고래가 헤엄을 쳤다.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기본 스펙 차이가 크군.

“너, 이 자식!!”

고래를 부수고 튀어나온 앤더슨이 도끼를 내던졌다. 역시 랜슬롯이 되기 전의 린슬렛과 호각으로 맞붙었던 녀석이니만큼 레벨은 150 전후는 되는 걸까.

“망령 신체.”

도끼를 보며 여유롭게 중얼거린 나는,

“근본 승계.”

어깻죽지에서 뼈를 피워 올렸다.

동시에 내가 보았던 린슬렛의 방패 중 하나를 상상. 그것을 구현해냈다. 날아드는 도끼가 어깨에 달린 방패에 얻어맞았고 방패는 형태가 변해 그걸 휘감았다. 하지만 나는 무거운 도끼의 운동 에너지를 버텨내지 못하고 날아가 뒤쪽의 벽에 처박혔다.

“하, 이 멍청이가!”

멀리서 소리친 앤더슨이 가까이 다가왔다. 물론 나는 망령 신체로 인해 아무런 대미지가 없는 상태.

“읏차….”

머리에 묻은 콘크리트 조각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켜 세우자 앤더슨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감돌았다.

“너, 어떻게…?”

“아 뭐, 별 거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레벨이 좀 올랐거든.”

당황해 하고 있는 앤더슨을 향해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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