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80화 (80/321)

80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는 12시를 넘긴 뒤였다.

“그럼, 잘 들어가.”

“린슬렛?”

가볍게 손을 들고 돌아서는 린슬렛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멀어져가던 그녀는 이윽고 살짝 새침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말을 잇질 않아 나는 재차 말을 이었다.

“어디 다녀오려고?”

“헤에, 그 표현은 뭔가 이상한데?”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리는 린슬렛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심야의 가로등 밑, 등 뒤로 늘어뜨린 금발이 좌우로 흔들렸다.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슬쩍 웃은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확실히 매듭을 짓고 오겠습니다.”

“…?”

“린슬렛님, 힘내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넬은 린슬렛이 확실히 무엇을 매듭지으려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이내 린슬렛의 단호한 눈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어냈다.

“어머님이랑?”

“응. 사실…. 그러는 게 맞는 거잖아?”

거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느라 여기까지 오는 내내 말이 없었던 건가.

“뭐, 이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너 말고 유하 씨한테.”

“뭐어.”

그건 그렇지.

사실 일종의 불법 침입이 되니 말이다. 거기에 2층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까지 내가 멋대로 줘버려서…. 그건 유하에게 예의가 아닌 거겠지.

“주인님…. 아마 지금 생각하신 방향으로서의 민폐는 아닌 거 같다고 넬은 생각해요.”

“?”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넬을 돌아보았다.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쿡쿡 웃은 린슬렛이 윙크를 했다.

“일단 각자의 영역은 존중하는 걸로.”

영역…?

“내일 봐. 티티.”

내가 그 말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고 있자니 린슬렛은 손을 흔들며 이내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화려하게 멀어져가는 인영을 보던 나는 이내 몸을 돌렸다.

“유하님, 주무시고 계시겠죠?”

“셔터는 내려가 있으니….”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뒷문 쪽으로 돌아들어갔다. 디멘션 커넥터를 인식한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나는 피곤한 감각을 느끼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4시간 정도 잘 수 있으려나.

아침에는 청소를 비롯해 쓰레기를 정리하는 카페의 일이, 그리고 수업에도 가야만 했다. 사실상 다니기만 하는 정도라 제대로 기억할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2층으로 계단을 올라 넬을 돌아보았다.

“씻을 거야.”

“주인님 부끄러움이 많으시다니까요오….”

“당연한 거잖아.”

꼭 한소리를 더하는 경향이 있어.

그리고 넬이 디멘션 커넥터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옷을 벗고는 좁은 욕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주변은 조용했고, 나는 뜨거운 물로 시야가 잠식되자 드넓은 세계에 겨우 혼자 남겨진 것을 깨달았다.

“좋았어…!!”

주먹을 불끈 쥐며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턱 끝이 파르르 떨려 자칫하다간 눈물까지 찔끔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기쁨에 몸을 떨었다.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광기를 끝낼 명확한 수단과 방법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기뻐서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붉게 물든 상태였고 눈은 초롱초롱했다.

갤러해드가 된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닌 채 게임을 끝낸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짧은 만남. 하지만 그 사람은 재킷을 잃고 기억이 사라졌음에도 나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를 다잡았다.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눈앞에 ‘린슬렛’이라는 글자가 적힌 팝업창이 떠오르며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인 걸까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전화를 받았다.

“응, 무슨 일이야.”

[하아…. 집에 도착했는데에.]

꽤나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있었던 걸까.

[엄마가 없어어어어!]

“그렇군.”

[그렇군은 뭐가 그렇군이야! 이 바보!]

“…?”

샤워기를 끄고, 바깥으로 나와 몸을 닦고 있자니 린슬렛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깥으로 새어나갈 염려가 없었음에도 무의식중에 굳게 닫힌 유하의 방문을 돌아본 나는 이내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의 준비라도 해두고 있으면?”

[하아, 그래서 전화한 거야.]

“흐음.”

[그래도 다행이야. 조금 서둘렀나 생각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첫 마디를 뭐라고 해야 할까 싶잖아. 보통 이건.]

나는 그 말에 조그맣게 웃는 소리를 내고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잘 때 입는 트레이닝팬츠 하나를 걸치고는 침대에 털썩 걸터앉으니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 모르겠어. 생각만 한다고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야기하자! 응?]

“무슨 이야기를?”

[음, 학교는 잘 다니고 계십니까아?]

“그럭저럭.”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거짓말이네.]

그리고 들켰다.

“…. 알 수 있는 거야?”

[둘 중 하나잖아. 거짓말하면 말이 많아지거나 적어지거나. 티티는 그런 버릇 꽤나 많은걸?]

그, 그런가.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으면 연락해.]

“그 정도는….”

사실 없다.

나는 친구가 없다.

[우리 과 애들도 너 계속 보고 싶다던데.]

“왜?”

[…. 그때 봤잖아?]

“그게 뭐?”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고 머릿속에 희미하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토끼였던가 뭐였던가 하는 금수(禽獸)를 구하기 위해 질척한 호수에 들어갔었지. 윗옷을 다 벗고서는.

“아, 동물을 구해줘서?”

린슬렛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의 탈의를 하셔서잖아요. 아저씨.]

“그게 뭐 이상한 거라도 되나?”

[아니…. 우으.]

“상의라면 지금도 벗고 있는데.”

[뭣?!]

바로 그 순간 린슬렛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귀가 먹먹해지는 걸 느꼈고 이내 반대편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너도 집이야?]

“응, 방금 샤워하고 나와서….”

[샤, 사워?!]

그러더니 이내 말이 뚝 그쳤다. 나는 좀처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다시금 팝업창이 떠올랐다.

린슬렛으로부터의 초대.

VR공간으로.

[스, 승낙하라고….]

따로 할 이야기라도 있는 걸까 싶은 마음에 나는 별 생각 없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뇌가 약간 몽롱해지며 나는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는 걸 느꼈다.

뇌가 가상의 세계로 진입하며 나는….

“윽?!”

린슬렛과 눈이 마주쳤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속이 다 비치는 네글리제 차림을 한 그녀와. 슬쩍 얼굴을 붉힌 채 있던 린슬렛이 쑥쓰러운 듯 웃었다. 화장을 지운 걸까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흐음, 잘 때는 그런 차림이구나.”

“너, 너야말로….”

몸이 쩌적 굳어진 상태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나왔다. 린슬렛은 불투명한 네글리제 밑에는 조그마한 팬티 하나를 입고 있을 뿐이었고, 슬쩍 벌어진 허벅지 사이의 틈이 내가 시선을 보내자 파르르 떨렸다.

“근데 왜, 내 방인 거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의식만을 이동시켜 그녀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 들어왔음에도 장소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 방이었다.

나는 침대에 앉은 상태로,

“왜, 싫어?”

그녀가 현실에 침입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음….”

뭐라 대답할 수도 없어 나는 린슬렛의 골반에 시선이 멈춘 걸 느꼈다. 잘록한 허리를 쭉 뻗으며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이내 내 위에 올라탔다.

린슬렛은 내 가슴을 매만지며.

“긴장을 풀기 위해서….”

입술을 겹쳐왔다.

“우읍?!”

단숨에 혀가 얽혀져 들어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린슬렛의 리드에 끌려갔다. 다리 사이에서 커진 그것의 뒤를 이어 린슬렛의 부드러운 엉덩이가 느껴졌다.

“리, 린슬렛?!”

“흐음~ 바지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고 자는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린슬렛은 내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그것을 손에 쥐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본 그녀는 이내 밑으로 내려가 내 유두를 가볍게 깨물었다. 나는 몸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린슬렛의 머리에 손을 올린 채, 나는 당황해 몸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바지 안쪽에서 아플 정도로 커진 그것을 린슬렛이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귀여워….”

“크흑?!”

“티티, 뭐 먹고 운동하면 몸 이렇게 좋아져?”

명확하게 형태를 갖춘 복근을 어루만진 린슬렛은 이내 조심스럽게 내 바지를 벗겨냈다. 고무줄에 걸려 있던 그것이 고개를 치켜들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내 얼굴이 빨개져서는 곤란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으, 으음….”

“미, 미안.”

“왜 사과하는 거야?”

“아니 그….”

커다란 눈망울이 날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린슬렛을 내려다보면서도 대답하지 못한 채 몸을 떨었다. 그러자 다시금 빙긋 웃은 그녀는 가볍게 내 그것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기둥을 핥고는 유혹하는 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조금 기뻐서 그런 거야.”

“뭐, 뭐가?!”

“날 보면서 티티가 흥분한다는 게….”

“윽…!”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입속에 넣었다.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동작에, 나는 뇌가 마비되는 걸 느꼈다. 상냥하지만 때로는 거칠게, 린슬렛은 펠라치오를 하며 내 반응을 살폈다. 난 애써 태연한 척 입을 다물었지만 그 사이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바로 그 순간,

[…. 준, 자요?]

문이 열렸다.

“?!”

린슬렛과 내가 거의 동시에 반응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그녀, 그리고 나 역시 머릿속이 새하얗게 굳는 걸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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