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편
<-- Chapter 3 : 선율의 기사 -->
그렇게 중얼거린 정현 씨는 잠시 후, 나를 돌아보았다. 역시 알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업적 퀘스트창을 불러왔다.
〈기사 서임 관련〉
- 기사 : 갤러해드로 각성하세요.
- 기사 : 랜슬롯으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퍼시벌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보호드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라이오넬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가웨인으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모드레드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케이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헥터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베디비어로 각성하세요.
- 기사 : 트리스탄으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 기사 : 캐러독으로 각성하세요. (달성불가)
“남은 건, 갤러해드와 베디비어로군요.”
“네,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저희 쪽에는 라이오넬과 케이까지 확보가 된 상태입니다.”
“갤러해드와 베디비어까지 합쳐지면 숫자는 여섯…. 이라는 거군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말이죠.”
“아마 할 킬러즈 역시, 이에 관해서는 파악해두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시호 군을 가웨인이 되도록 만든 거겠죠.”
“….”
불쾌한 이름에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졌다. 녀석 또한 그걸 위해서 가웨인이 된 걸까.
“어쨌든, 지난번의 작전이 실패한 후로 그쪽에서도 당분간은 몸을 사리겠죠. 저희도 한숨 돌릴 수 있었어요. 모두 이준 씨가 활약해준 덕분입니다.”
“난 그저 린슬렛을 도왔을 뿐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린슬렛을 내려다보았다.
“가장 중요한 타깃을 보호해준 덕분에, 모드레드와 저희 측 기사들이 손쉽게 할 킬러즈를 제압할 수 있었죠.”
가볍게 웃으며 중얼거린 정현 씨는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해 서류가방을 하나 눈앞에 띄웠다. 지난번에도 본 기억이 있는 가방이었다. 그리고 가방이 열리자 역시나 다량의 현금이 눈에 들어왔다.
“그 대가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필요 없어. 돈 따위.”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뒤쪽의 모드레드와 넬, 린슬렛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현 씨는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이해관계가 일치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해 모르가나를 꺼내 그녀에게 집어던졌다.
“이것도 필요 없어.”
“티, 티티?”
“내가 가지고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야.”
나는 놀라 소리치는 린슬렛을 무시한 채 침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저게 지니고 있는 엄청난 가치는 나로서도 인정하는 바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왜죠?”
“날 믿을 수 없기 때문이야.”
“….”
저걸 아서리안의 에스콰이어에게만 사용하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그 정도의 악행은 이미 이 게임에 진입하는 순간 각오해둔 바였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저걸 내가 현실에서조차 멋대로 쓰지 않을까 두려웠….
“이 멍청이가아아아앗!!”
바로 그때 턱에 어퍼컷이 작렬했다.
“크헉?!”
“사람이 진지하기만 한 것도 정도가 있지!”
“리, 린슬렛?!”
내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잔뜩 화가 난 린슬렛이 서있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내게 다가와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내가 있잖아!”
“…?”
“넬도 있고!”
“네, 네넬!”
“그, 유하 언니나!”
거기에는 왠지 모를 적개심을 담아 중얼거린 그녀는,
“회장님! 그리고 뒤쪽의 음침한 여자애도!”
“음침하다니….”
“젊은 건 좋군요.”
두 사람이 제각기 반응을 보였지만 린슬렛은 무시한 채 나를 돌아보았다. 그 커다란 눈동자에는 걱정하는 듯한,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듯한 기색까지 느껴졌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소리친 그녀는 이내,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서는 다시 어퍼컷을 날렸다. 어쩐지 머릿속이 상쾌해진 기분에 나는 그 주먹을 피하며 린슬렛의 팔목을 살짝 붙잡았다.
언제나 걱정만 시키는구나.
“티, 티티?!”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혼자가 아니라는 자각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정현 씨. 모르가나는….”
“네, 지켜보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신념대로.”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모르가나를 던졌고 나는 그것을 받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어쨌든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할 수 있는 물건이니만큼…. 여러모로 쓰일 수 있겠지.
“이건…. 어쩌실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정현 씨가 열려져 있는 서류가방을 슬쩍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일단은 착수금으로 1억. 어떠신지.”
“…. 그, 그건! 그건 됐어요! 아하하!”
“?”
내가 생각을 하기도 전 린슬렛이 앞서 서류가방을 정현 씨에게 되돌려주었다. 잠시 그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그녀는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있는 이점(?)이 사라지면…. 유하 언니와 경쟁할 수단이 하나 사라지니까…. 후후후….”
“무슨 소리야?”
“응♡ 나 되게 잘 산다고.”
“후후, 금수저로군요.”
“정현 씨, 그거 되게 옛날에 쓰이던 말….”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정현 씨가 살짝 뒤에서 음험한 오라(?)를 풍겨 올렸고 나는 시선을 피했다.
“어쨌든, 일단은 갤러해드나 베디비어에 대한 퀘스트를 진행하는 걸로…?”
“그렇게 하죠. 무슨 일이 있다면 모드레드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인사를 시키겠답시고 불러놓고서는 전혀 그렇게 하질 못했군요.”
정현 씨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앞으로 나섰다. 녀석은 나와 린슬렛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모드레드입니다.”
“음, 잘 부탁해. 나는 린슬렛. 이쪽은….”
“타나토스다.”
“멋진 이름이군요.”
“….”
“자기를 의인화된 죽음으로 표현하다니.”
“고맙군.”
“놀리는 거야, 티티….”
고개를 끄덕이자니 이내 옆에 서있던 린슬렛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맞는 말인데.”
“…. 그, 그래.”
“주인님의 감수성은 정말….”
넬까지 왜 이러는 걸까.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명령으로 두 사람을 바래다주고 온 뒤, 모드레드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판초 형태의 재킷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보며 정현은 쓰게 웃었다.
역시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뭐가 말이죠?”
“저 남자에게 일을 맡기시려는 회장님의 의도가 잘.”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그녀는 곧이어 소파 맞은편에 서서 주변을 힐끔힐끔 바라 보기 시작했다. 경계를 하는 것일까. 젊었을 적의 자신과 닮은 소녀의 모습에 정현은 언제나 탁상 위에 놔두는 초콜릿을 하나 건넸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애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일까. 꽤나 오랫동안 봐온 소녀의 성향이 이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걸 느끼며 정현은 초콜릿을 입에 물었다.
“뭐, 그렇게 경계하고 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언제 적의 습격이….”
부드러운 목소리에 모드레드는 살짝 당황한 건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언제나 게임 속에 있는 그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자리에 앉아요. 모드레드. 그러면 설명해줄게요.”
“….”
“궁금하지 않나요? 왜 제가 그를 선택했는지.”
“정 그러시다면.”
가볍게 입술을 깨문 그녀는 이내 큰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머뭇거리다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현은 모드레드가 완전히 등을 기대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그 전에, 그가 왜 이번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일단 감정적이기 때문이겠죠.”
“그 경향이 일에 지장을 줄 거라는 근거는?”
“감정적인 사람은 정해진 임무에 대하여 실패할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또한…. 영악하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요.”
눈앞의 소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스스로도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입을 다물었다. 곰곰이 고민에 빠진 모습에 정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느꼈다. 모드레드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건 드문 일인데.
“무모하다는 건가요?”
“네, 회장님께서 사용하셨던 언사이긴 하지만…. 아마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르가나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모드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리를 중시하고 다소 기계적인 경향이 있는 그녀로서는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게임을 시작한지 한 달이 좀 넘은 에스콰이어를 신임하여 계획에 끌어들일 정도로 말입니까?”
“네, 거기다 실제로 보여주었잖아요? 그는 주다연 씨를 구해냈고 랜슬롯이 되게 만들었어요.”
“그건…. 너무 비약이 아닐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었다는 건 아니에요. 다연 씨 또한 이준 씨가 없었더라면 좀 더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죠.”
“저는 그게 싫은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둔 게?”
“네. 사랑 따위, 하찮은 감정이니까요.”
“후후….”
이를 드러내듯 이야기하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정현은 어른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가, 저도 모르게 빈 반지 자국을 매만졌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 회장님.”
“미안해요. 모드레드. 저는 뭐랄까…. 말 재주가 부족해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군요.”
하지만 정현은 그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외골수에, 스스로 생각한 신념을 바보 같을 정도로 밀고 나가는 남자. 그로 인해 타인과 마찰을 빚어도, 가슴속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나아가는 남자.
물론 그것만 있다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그의 곁에는 주다연이 있다. 그리고 송유하도. 마지막으로 넬도. 그 외 다른…. 수많은 인연들이.
“그는 분명 성장할 거예요.”
여전히 모드레드는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말에 약속과 모임이 무척이나 많은데다가 카카오 페이지 연재 준비가 겹쳐서@.. 끄윾...
덕분에 하루 2연재도 1연재로 줄어들어서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ㅠㅠ 급한 불이 꺼진다면 다시 2연재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