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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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 선율의 기사
그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
나는 어색하게 눈앞에 앉아 계시는 전 상무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머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참으로 애매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히 딱딱하게 상무님, 상무님 하고 말하는 건 또 이상하지 않나 싶어서.
“어, 어머님….”
하고 말한 나는,
“누가 자네 어머님이야!!”
세상에서 가장 큰 호통을 들었다.
“말해! 다연이는 어디에 있어!”
쿵! 하고 테이블을 내리친 어머님이 반쯤 협박하는 어조로 소리쳤다. 가득 들어있던 하이퍼 초콜릿 우유가 찰랑거리며 흔들렸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저도 잘 모릅니다.”
“우와, 주인님 거짓말을 정말 못하시네요오….”
“어디에 있냐고 물었어! 자네와 함께 있는 게지!”
어머님이 다시금 버럭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 틈으로 딸에 대한 걱정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짙은 화장 밑으로 눈 밑이 퀭한 게 보였다. 잠까지 자지 못한 걸까 싶어서 나는 무척이나 죄책감에 휩싸였다.
“사, 사실….”
[말하지 말라고 했지이이이!!]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린슬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릅니다.”
그렇게 나는 또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 말에 어머님은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하이퍼 초콜릿 우유를 벌컥벌컥 드시기 시작했다. 벌써 세 잔째. 저러시다 급성 당뇨로 가시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현재 린슬렛은 카페의 2층에 ‘몰래 숨어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무려 일주일동안이나. 가끔씩 학교는 가야겠다며 나가기는 했지만, 어머님께서 쫓아서 학교에 오면 도망쳐 2층으로 몰래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반복해 말하자면 일주일동안이나.
“….”
무려.
“저, 저어…. 어머님?”
“왜!”
“그, 그으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계속 드시면…. 몸이 상하시진 않을까…. 걱정이 들어서요….”
“…!! 흐, 흥! 자네가 걱정해주지 않아도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벌컥! 벌컥!”
“…?”
나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계하기 위해 한 말이었으나, 어머님은 도리어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는 입으로 소리까지 내며 우유를 드셨다. 볼이 살짝 붉어지신 기색이 보여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 설마 주인님…?”
[티티! 허튼 짓 하지 마!]
“내, 내가 뭘?”
당황하는 넬과 린슬렛의 반응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바깥은 난리가 난 이후 갓 평화를 되찾은 상태인데?
“거기 아가씨, 이거 한 잔 더 부탁해요!”
“네넬! 알겠습니다!”
“아아…! 유하님이 넬의 대사를 흉내 내고 계세요!”
요새 가게 매상이 올라서 기쁜 건지, 카운터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유하가 주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보자면 지금껏 그녀에게 린슬렛의 존재를 들키지 않은 것도 용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자네!”
“네, 넵!”
“내 아직 자네에게는 내 딸을 줄 수 없어!”
…. 어머님 어쩐지 점점 말투가 변하고 계신데.
“하지만 내 딸에 대한 마음은 진심인가?!”
“그, 그거는?!”
[안 사귄다고 해!]
“헤어졌습니다!”
“뭐?! 내 딸이 뭐가 모자라단 겐가!”
[아니, 그러지는 말고 멍청아!!!]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린슬렛과, 반대편에서 아예 유리잔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쥐는 어머님. 그리고 뒤를 이어 나는 뒤쪽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유하가,
“주, 준? 설마 여자친구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니! 자네 설마!”
“내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으흑흑!!”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면 좋은 걸까요.
하지만 유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신파극의 여주인공마냥 울기 시작했다. 당황해 달려가려던 나는 이내 흥분한 어머님께 멱살이 붙잡혔다.
“말해! 다연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시 주인님…. 얼굴에 여난의 상이….”
옆에서 한숨을 내쉬는 넬.
“네, 넬! 그렇게 보고 있지 말고 좀 도와줘!”
[따, 딱히 우리 사귀는 건 아니니까! 정말로!]
거기에 갑자기 뭔가 부정을 하는 린슬렛.
“아아…. 님은 가셨습니다….”
시를 읊기 시작하는 유하까지.
살려줘.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린슬렛의 도움을 받아 기사단 건물을 빠져나온 시점에서 거대한 전투는 끝난 뒤였다. 세력 당 천 명이 넘는 에스콰이어가 각지에서 전투를 벌였고 도심은 꽤나 심각한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큭…!!”
옥상 위로 뛰어오른 나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헤딩 슬래셔를 맞았을 때의 타격이 누적된 탓인지 하반신의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다.
“티티!”
가까이 다가온 린슬렛이 나를 부축했다. 비틀거리며 거기에 기댄 나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인님…. 걱정 마세요. 재킷의 백업 강도를….”
“아니, 됐어.”
“주, 주인님?”
팝업창을 두들기는 넬에게 손짓을 한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난간 쪽으로 향했다. 린슬렛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마에 남은 핏자국을 닦아주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나는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파괴되고, 연기와 불길에 휩싸인 도시를. 그렇게 큰 불이 번진 곳은 없었지만, 그리고 사실 에스콰이어가 지닌 능력에 비하자면 그다지 큰 손상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도심은 파괴되었다.
그 최초의 원인을 말하자면 수많은 에스콰이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터였다. 그들은 단순히 이런 상황을 게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뿐이니까.
어쨌든 사람은 죽지 않으니까.
뭐 요새 기술력으로 저런 거 금방 고치니까.
“린슬렛….”
“으응….”
“미안하다.”
“왜, 왜 티티가 사과하는 거야?”
말할 수 없다.
나는 괴로운 심경이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좌시하고 있다는 할 킬러즈에 대해서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린슬렛 한 사람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
“큭?!”
바로 그때, 무언가 코를 휙 때렸다.
“리, 린슬렛?!”
나는 놀라 코를 감싸 쥐며 어깨 밑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호한 얼굴로 튕긴 손가락을 들고 있던 린슬렛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얕보지 마.”
“으, 음?”
“혼자서 짊어지려고 들지 말란 말이야!”
“….”
“나 역시 오늘 일로 많은 걸 느꼈으니까.”
“미안해.”
실례를 범했다.
“단지 조금…. 많은 상처를 받았을 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린슬렛은 다시금 그 쓸쓸한 눈을 해보였다. 그제야 그녀가 오늘 밤, 나보다 많은 걸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슬렛! 괜찮아!”
나는 단호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으, 으응?!”
“내가 있잖아!”
“그, 그렇지?!”
“내가 그…!! 평생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뭐, 뭐어?!”
린슬렛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책임감이 어깨라는 걸 무겁게 짓누르는 걸 느꼈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으려 입을 열었….
“와, 이거 무슨 소설이야?”
바로 그때,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린슬렛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몸을 돌려 전투에 돌입할 자세를 취했다. 눈앞에는 남자가 하나 서있었고, 뒤를 이어 주변에 있었던 건지 하나둘씩 이름 모를 에스콰이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총 셋.
남자가 둘 여자가 하나였다.
“….”
제일 오른쪽의 덩치 큰 사내가 무뚝뚝하게 날 바라보았다. 얼굴 윗부분이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으아아아…. 힘들어 죽겠네. 이거 특별 근무 수당인가 뭔가 나오는 거 맞지?”
왼쪽에 서있던 사내가 불량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중얼거렸다.
“스톰, 조용히 하세요.”
중간에 서있던 여자가 무뚝뚝한 목소리를 냈다. 턱 밑에서 짧게 자른 검정색 머리.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당신들을 도왔던 분의 측근이라고 하면 될까요.”
“응? 우정….”
린슬렛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으려던 중, 여자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목 부근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며 뱀처럼 날아들었다.
“윽?!”
당황한 린슬렛이 방패로 칼날을 튕겨냈다. 여자는 칼날을 회수에 팔목의 안쪽으로 되돌리며 말을 이었다.
“누군가 엿들을지도 모르므로.”
“네놈들….”
“나, 나는 괜찮으니까. 티티.”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옆에 서있던 린슬렛이 만류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보냈다.
“목적이 뭐야?”
“저희를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쪽 분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저택에 계십니다.”
“소중한, 사람?”
그렇게 중얼거린 린슬렛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살짝 홍조를 띈 얼굴.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소리를 내더니 당황해 여자 쪽을 돌아보았다.
“어, 엄마! 엄마 말이지?!”
“그렇게 쉽게 말씀하셔도 괜찮습니까?”
“따, 딱히 티티가 가장 소중한 건 아니니까 말이지!”
“하아, 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옆에 서있던 경박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린슬렛은 거기에 발끈해 발꿈치를 슬쩍 들었다.
“뭐어?!”
“엇, 뭐야. 싸울 거야?”
“린슬렛을 모욕한다면.”
나는 경박한 남자의 시선에서 린슬렛을 가리듯 앞으로 나섰다. 세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옥상 위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느꼈다.
“헤에, 더 해볼까? 그 꼴로 싸울 수 있겠어?”
“…. 허세로군.”
오른쪽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이쪽을 경계하기 시작한 태도가 느껴졌지만 나는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만들 하세요. 이건 명령에 없는 일입니다.”
그 분위기를 잘라내듯 여자가 중간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뒤쪽의 사내들을 돌아보자 약간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니 저 친구가 가웨인을 쓰러뜨렸다고 좀 기고만장해져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 중에서 가웨인을 일대일로 제압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없지요오. 온갖 사기에, 가웨인이 아무 기술도 모르고 은근히 검에 손속을 두는 게 느껴졌지마안….”
“스톰.”
“네이, 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