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으아아아앗!!”
“큭!”
내가 공격을 가할 때마다 녀석은 몇 번이고 자신의 형상을 바꾸며 공격과 방어 중 유리한 쪽으로 상태를 이행시켰다. 나는 광폭화의 형상으로 전환한 녀석을 보며 다시금 본 테이커로 검의 캐치를 시도했다.
“또 같은 수작을!!”
“크흑?!”
하지만 녀석은 갈라틴을 휘둘러 나를 귀찮은 벌레마냥 손쉽게 떼어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쪽으로 날아가며 뭔가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론상으로라면 가웨인은 무적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공과 방, 그 어느 쪽으로도 스탠스를 바꿀 수 있다고?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순간마다?
그게, 말이 되나?
“망자 소환…!”
나는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내보이지 않았던 다른 스킬을 시전 했다. 주변을 자동으로 색적한 디멘션 커넥터가 땅에서 뼛조각으로 된 들개를 소환했다.
다시금 검이 부딪쳤다.
광폭화의 형상, 녀석의 머리카락이 빛을 발하는 걸 보며 나는 어렵사리 공격을 받아냈다. 연격의 중간, 비헤딩 슬래셔가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고 나는 빈틈을 타 뒤쪽에 서있던 들개를 돌진시켰다.
“큭, 이건…?!”
들개가 발목을 물어뜯자 가웨인이 당황해 조금 빈틈이 생겼고 나는 곧장 스파다를 휘둘렀다. 녀석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사도의…!!”
머리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그렇겐 안 되지!!”
그리고 난 그걸 베어냈다.
둥근 궤적을 그리며 가웨인의 머리 위를 가른 스파다가 태양을 가르고 지나갔다. 잘려져 나가는 태양, 눈을 동그랗게 뜬 가웨인의 모습에 나는 그제야 모든 비밀을 파악한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를…. 숨기고 있었군!”
“크윽?!”
가웨인이 힘차게 발을 털어내자 들개가 다시 뼈로 돌아갔다. 나는 녀석이 호흡을 되찾기 전 파고들어 좁은 간격 내에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무적에 가까운 능력이다.
하지만 완전한 무적은 없다.
“으아아아아앗!!”
형상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한 번, 태양이 떠야만 하는 거로군!”
“크학?!”
튕겨져 날아간 가웨인이 벽에 처박혔다. 녀석은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확실히 녀석은 최강에 가까운 에스콰이어…. 아니, 기사다. 일대일 전투에서의 강함은 그 누구도 비견할 바가 되지 못하겠지. 기본적인 스펙 자체가 강한 기사다.
하지만 이쪽은 적어도 둘…!
“때로는 그 이상이!”
비헤딩 슬래셔가 날아들었다.
1초? 아니 그 이하다.
저 일격은 금방이라도 나를 찢어발길 터였다. 하지만,
“의식 조종!”
나는 망자를 일으켜 세웠다.
수십 명이나 되는 망자들을.
“백시호오오오오오오옷!!”
“이주우우우우운!!”
비헤딩 슬래셔가 날아들 때마다 망자들이 내 앞을 채워 공격을 막아냈다. 나는 그걸 피하며 앞으로 돌진했다. 어깨에 부착된 방패를 세운 채.
녀석을 향해…!!
대지를 가르는 폭음과 함께 이어지는 수많은 빛의 궤적을 뚫고서…!!
하지만 망자는 모두, 가웨인의 일격에 쓰러졌다. 녀석은 검을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고는 휘둘렀다.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볼 수 없었던 강한 빛이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머릿속에 기억을 떠올렸다.
“가디언, 서핑…!”
한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고,
“망령 신체!!”
두 기술을 조합해,
“으아아아앗!!”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빌어, 먹을…!!”
빛의 일격을 통과해, 나는 뒤늦게 머리 위로 태양을 띄우는 가웨인을 들이받았다. 그러면서 린슬렛이 했던 것처럼, 어깨를 틀어 위로 날려 보냈다.
속도를 줄여, 기둥을 타고 위로…!
“…!!”
몇 번이고 녀석을 꿰뚫어 날려 보내며, 나는 구멍이 난 지붕을 통과해 옥상에 착지했다. 망령 신체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몸이 말을 듣질 않는 걸 느꼈다.
“허억, 허억…!!”
본 테이커는 반쯤 박살난 뒤였고, 스파다도 부러졌다. 눈앞에 쓰러져 있던 가웨인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녀석은 갈라틴을 바닥에 짚은 채 몸을 가누려고 했지만 이내 떨어뜨렸다.
“이럴, 수가…. 힘이…?”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거추장스러운 스파다를 떨어뜨리고,
“백시호…!!”
본 테이커도 해제했다.
나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코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코피가 터져 나왔고, 공중에서 흩뿌려졌다. 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가웨인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도심에서는 할 킬러즈와 에스콰이어들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눈을 두지 않았다.
린슬렛을 지키기 위해…!!
“으아아아아아아아앗!!”
나는 전력을 담아,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
나는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아버지라는 작자에 대한 증오로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게 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겉으로는 온갖 고상한 척을 다하면서 속에는 짐승을 숨기고 있는 그 자를 미워했다. 집을 나가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전전하며 에스콰이어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그녀와 만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아버지의 사주를 받은 할 킬러즈에게 쫓기다 한 고등학교에 잠시 몸을 숨겼던 날이었다. 나는 대충 신체 사이즈가 맞아 보이는 녀석의 옷을 빼앗아 입고는, 도서실에 들어갔다가 그녀와 만났다.
책을 정리하고 있던 수수한 여자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언제든 책을 읽고 싶으면 오라던 그녀의 말에 따라 가끔씩 학교를 가게 되었다. 물론 훔친 교복으로. 왜 그럴 기분이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잊었으니까.
그녀와 나는 점차 친해졌다. 그녀는 의외로 이것저것 잡지식이 많았고, 조용한 성향이었지만 말을 시키면 곧잘 해냈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점차 세상에 대해서 익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걸음마를 떼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아서리안과 엘레노어, 에스콰이어.
거기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그러면서 점점 좋아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만난 이후로, 내 머리는 점점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녀가 그 편이 더 보기 좋을 것 같다면서 처음으로 웃었으니까.
그로서 그녀가 텅 빈 내 안에 채워졌으니까.
그리고 시간은 지나, 어쩌다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에스콰이어라는 걸 말했다. 흥미로워하는 그녀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아서리안의 세계를 소개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다.
에스콰이어라는 괴물들이 판치는 세계에 평범한 여자애를 데리고 다닌 것이 잘못이었다. 함께 다니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퀘스트를 처리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고, 그녀는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내 잘못으로.
순전히 내 머저리 같은 짓으로.
그래서 나는….
◇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계약을 한 거였죠.”
비비안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의 우아함이 연기였다는 실감이 들 정도로.
전투는 거의 막바지였다. 두 사람 다 명백하게 지쳐보였다. 전투력의 차이는 심각할 정도였지만, 타나토스라는 에스콰이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가웨인은 계속해서 유효타를 허용했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비비안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올려다보았다.
“제 재킷은 엄밀하게 말해서 코트에요. 그는 이렇게 해서라도 저를 다시 걷게 만들고 싶은 거겠죠.”
그리고 린슬렛은 의자에 기댄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의식이 회복된 이후로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적잖이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모두 이해했다.
“저한테는 묻지 않고.”
그리고 남은 건 지독한 혼란스러움과 배신감이었다.
“마녀의 저주라는 스킬까지 얻어가면서까지. 그래요. 그는 그걸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 말릴 생각은 안 해본 거야?”
린슬렛은 분노의 이전에 어이가 없는 걸 느끼며 물었다. 그녀가 걷지 못한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 알았지만, 그 이면에 이런 추악하고 슬픈 진실이 있었을 줄이야.
“불쾌해. 비비안.”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배신감이 더 컸다.
“미안하다고 말씀드릴까요.”
“일부러 그렇게 미움 사려는 것도 역겨워.”
차갑게 대꾸한 뒤 린슬렛은 비비안의 앞으로 가 뺨을 올려붙였다.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된 전투 능력도 없는 그녀를 처절하게 박살내고 싶었지만 때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악인도, 선인도 되지 못하고.”
“저는 호수니까요.”
붉어진 뺨을 매만진 비비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린슬렛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저는 저 위에서 싸우고 있는 태양이, 스스로의 추악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비추기 위한 거울일 뿐이죠.”
“가웨인….”
저도 모르게 말을 중얼거린 린슬렛은 뒤를 이어 위쪽에서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사투는 끝났고 마지막 일격을 먹은 가웨인이 쓰러졌다.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티, 티. 라는 입 모양을 해보인 린슬렛은 이윽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호수는….”
즐거운 기억이 있는 장소…. 아니 잠깐.
“몰라. 에이, 일일이 의미 부여하지 말라고!”
“…?”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비안을 빤히 바라본 린슬렛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호수란 그녀와는 달리 린슬렛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장소였다. 거기에 일일이 의미부여를 하면서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상대방에게도 분명, 네 모습은 비추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네가 단지 눈을 돌리고 있을 뿐.”
“…. 그런가요.”
비비안의 자조 섞인 대답에 린슬렛은 대답하지 않고 재킷을 기동시켰다. 도심은 이미 할 킬러즈의 통제에 들어 간지 오래였다. 전투는 끝이 나 남은 것은 폭력이라는 이름의 광기뿐.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이 장소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순서였다.
“가자, 넬.”
“네넬, 린슬렛님!”
린슬렛은 옆에 있던 넬과 함께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