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시간이 멈췄다.
흥분으로 인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혈류가 재킷의 성능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까. 나는 녀석이 들고 있는 총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화약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의식 조종…!!”
그리고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든 빛이 충돌하며 거대한 열기가 발생했다. 나는 그것을 견뎌내며 동시에 스스로의 신체에 가해진 변화를 받아들였다.
언제나 모두들 막무가내에 무모하다고 했었지.
하지만 사람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철해야만 하는 의지가 있는 법이다.
“뭐야?!”
빛이 사라지고 열기가 잦아들며 내 모습을 본 가웨인이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던 할 킬러즈가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왜, 레벨 84가 이런 수를 쓸 줄은 몰랐나?”
“너 이 자식 방금 전만 해도…!!”
“뭔가 문제라도 있나. 백시호. 네놈의 위선을 지적당하니 그걸 꽁해서 기억했다 반격하는 거냐?”
“…!!”
“확실히 네놈 말대로, 나는 이 엿같은 짓거리를 시작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초보자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지. 린슬렛을 만나기 전까지는 특히.”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본….”
Born, Bone.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내 새로운 스킬.
“테이커.”
다른 이름으로 근본 승계.
그렇게 중얼거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어깻죽지로부터 나뭇가지처럼 뼈가 튀어나왔다. 망토처럼 가지런히 모아지는 뼈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건, 무슨…?!”
“이제부터 시험해봐야겠지. 가웨인.”
누군가 듣는다면 또 무모하다고 하겠지만.
“네놈을 쓰러뜨리면서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달려 나갔다.
“으오오오오오오옷!!”
“큭?!”
순식간에 접근, 스파다를 휘둘렀지만 가웨인은 뒤로 물러서 피했다. 엄청난 속도였지만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머스킷을 쥐고 자세를 가누는 녀석을 향해 다시 도약했다.
“젠장…. 갈라틴!”
녀석이 외치고 이내, 머스킷의 형태를 지니고 있던 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픽셀 조각을 보며 가까이 접근했다. 녀석은 아직 검이 형태를 갖추지 못하자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의식 조종…!”
바닥에 쓰러져 있던 기사단원이 발목을 붙잡았다.
“윽?!”
“백시호!!”
나는 녀석을 쫓아 안으로 파고들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스파다가 녀석의 배에 박혔다. 그리고 짧은 순간,
“기사도의 형상.”
나는 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녀석의 머리 위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더니 머리의 색이 조금 어둡게 변한 기분이 들었다.
움찔거리며 자리에 멈춰선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나는 반쯤 본능적으로 방금 전의 공격이 그다지 큰 타격을 주지 못했음을 상기했다. 아마 들어갔다면 엄청난 치명타였겠지만.
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세상에는 분노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어. 이준.”
“…?”
“한 가지만 말해주지.”
그리고 이내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형태를 갖추었다. 그 의지를 형상화한 듯한 흰색의 양손검.
“난 태양이 정오에 떴을 때 가장 강해진다.”
그리고 검이 휘둘러졌다.
“…!! 망령 신체!!”
나는 위협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몸을 횡으로 가르며 빠져나간 검, 그리고 뒤를 이어 바윗돌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령 신체, 그게 그 방어 스킬인가?”
“네 기사도의 형상도 그런 모양이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웨인과 눈을 마주쳤다. 분명 복부를 찔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녀석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수반 과정이 필요했다.
스파다가 뽑혀, 녀석의 갈라틴과 부딪쳤다. 강철이 날아오르며 나는 녀석에게 맞서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스킬의 제대로 된 이름은 정오의 형상. 그리고 방금 전 녀석이 말했던 ‘정오에 가장 강해진다.’는 말.
“으아아아아아앗!!”
갈라틴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방금 전 녀석이 박살을 냈던 기둥의 잔해를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군더더기가 없는 가웨인의 검술은, 간격을 내어주는 일이 없이 계속해서 나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
“백시호!!”
나는 타이밍에 맞춰 들어오는 검을, 스파다의 끝으로 잡아채 튕겨냈다. 휙, 하고 들리며 가웨인의 복부가 텅 비었고 나는 본 테이커가 붙은 어깨로 돌진했다.
“하아아아앗!!”
“광폭화의 형상.”
하지만 검은 다시 자리를 되찾았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녀석의 머리가 타오르듯 빛나기 시작했다.
“뭣?!”
어깨를 낮추고 파고들어가는 그 짧은 찰나에, 가웨인은 검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 인간을 초월한 속도를 다시금 초월해, 달려드는 나를 베기 위해 휘두르는 동작으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본 테이커는 그걸 막아냈다.
‘방패의 근본’을 승계함으로서.
“이건…?”
가웨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뼈의 형태가 뒤바뀌며 동시에 확장되어 방패의 모양을 갖추어 갈라틴을 막아내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묵직하게 감기는 무게감을 느끼며 스파다를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앗-!!”
“큭?!”
가웨인은 곧장 거기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어느덧 본 테이커는 갈라틴을 갈고리처럼 잡아채고 난 뒤였다. 녀석이 본 테이커로부터 갈라틴을 뽑아내는 찰나의 순간,
“윽?!”
스파다가 녀석의 팔을 가르며 지나갔다.
붉은 이펙트와 함께 가웨인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베인 팔을 추욱 늘어뜨린 녀석을 계속해서 추적해 몇 번이고 검을 휘둘렀다.
“이, 자식!!”
이제는 도리어 가웨인이 궁지에 몰리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그 이름값은 한다는 걸까. 녀석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몇 번이고 반격했지만 모조리 본 테이커의 방패에 막히고 말았다.
본 테이커.
내 의지에 따라 다른 에스콰이어의 능력을 일부 가져오는 스킬. 그렇기 때문에 본성의 승계.
린슬렛의 의지를…!!
“하아아앗!!”
녀석이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꿈과!!
“빌어, 먹을!!”
“의지의, 구현이란 말이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가웨인의 가슴팍을 베어냈다.
“크허억?!”
비명을 지른 녀석이 뒤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무호흡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전투에 나는 심각할 정도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를 하지 않았다면 가웨인의 속도를 쫓아갈 수는 없었을 터였다.
“…. 방심했군.”
그 말대로, 기둥에 처박혀 바닥에 쓰러진 녀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복한 한쪽 팔을 동원해 양손으로 검을 쥔 가웨인은 곧이어 비비안을 잠깐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준…. 네놈은 지켜야할 것을 위해 행동하는 건가?”
“그래, 나는 린슬렛의 꿈을 지킨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비비안이 ‘걷지 못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데.”
그 말에 가웨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언제…?!”
“단순한 추론이다. 저 녀석은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일어서서 걷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가 랜슬롯의 자리를….”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나는 차갑게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분수에 맞지도 않게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런 거겠지.
비비안이 랜슬롯이 된다면, 이 또라이 같은 게임의 특성 상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까? 그게 녀석의 개인적인 이유인 걸까? 비비안을 이런 짓거리를 해가면서까지 다시 걷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녀석에게는 있는 걸까? 수많은 의문이 있다. 하지만….
“네놈의 궁상맞은 사정 따위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이다!!”
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 미안, 내가 너를 잠시 착각하고 있었군.”
“지금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놈에게 이런 감성팔이는 역시 통하지 않아.”
그리고 가웨인은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전력을 다해 네놈에게 맞서겠어. 재킷을 박살내 죽일 각오로. 기억을 소거해, 이 게임 상에서 퇴출시켜 범죄자로서 감옥에 쳐넣어주지.”
그리고 갈라틴이 휘둘러졌다.
비헤딩 슬래셔. 나는 순간적으로 녀석의 스킬창에 있던 그 이름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휘둘러진 갈라틴의 칼 끝을 따라 빛이 일어나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곧장 의식 조종을 이용해 망자를 일으켜 세웠다.
막아, 낸다…!!
“크으으윽!”
광포한 태양이 날 집어삼키려 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아까의 머스킷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열기가 몸을 불태울 것처럼 날아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다른 망자를 일으켜 세워, 자리를 대체했지만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바닥이 갈리며 기둥이 녹아내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 방어력이 35 감소했습니다.(현재 15)
그리고 이내 빛의 검이 멎었을 때, 나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방금 전의 비헤딩 슬래셔를 막아내느라 온몸의 뼈와 관절이 울어댔고 긁힌 자국으로 인해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무릎을 꿇을 순 없다…!!
몸이 다시금 공중에 뛰어올랐다.
“이준!!”
“백시호!!”
가웨인과 나는 공중에서 부딪쳤다. 속도와 검술이 밀리는 걸 본 테이커와 망자들로 채워 넣으며 나는 계속해서 녀석과 대등하게 맞섰다.
“하, 고작 레벨 84의 녀석에게…!!”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거라면 나 또한…!! 지지, 않는다!!”
다시금 비헤딩 슬래셔가 날아들었다. 나는 쿨타임이 돌아온 망령 신체를 이용해 그걸 몸으로 받아내며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까보다 더욱 격렬해진, 그리고 동시에 빨라지는 녀석의 공격을 몸으로 느꼈다.
정오에 강해진다는 말.
머리 위에 떠오르는 태양.
기사도와 광폭화.
“일정 시간마다…. 정오가 돌아온다는 건가…!!”
거기에 맞춰 기사도는 방어력을,
“이제야 깨달은 거냐!”
광폭화는 민첩섭을 극한까지 상승시키는 스킬인 건가!
“가웨인에 대한 전설을 잘 읽어보지 않았나보군!”
“뭐…?”
그 말의 다음 순간, 나는 복부를 걷어차여 튕겨져 날아갔다. 내장의 손상이 느껴졌다.
“커헉?!”
기둥을 몇 개나 박살내며 날아간 나는 이내 겨우 몸을 가누었다. 피를 쿨럭 토해내며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바로 한 순간, 가웨인이 다시 날아들었다.
기사의 스킬은, 그 원본이 된 기사 자체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아마 그런 의도겠지만,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그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품었다. 그러나 이내 가웨인의 공격이 계속 이어져 머릿속에는 여유가 없어지게 되었다.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거대한 기사단의 건물, 그 알현실을 날아다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