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우정현은 사내에서 궁지에 몰려있는 상태였다.
나이가 어리다. 여당 의원을 등에 업고 회사를 성장시켰을 뿐이다. 몰락해버린 재계에서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그 외 갖가지 모함과 독설에도 자신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 꿈은 현재 중단된 상태였다.
엘레노어라는 인공지능이 폭주를 일으킨 이후, 그리하여 세계 최초의 테러리스트가 되면서.
세계의 정세와 대한민국의 정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하지만 정현은 어떻게 해서든 광기에 물들려는 사회를 막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반대파의 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자신은 점점 더 권력을 잃고 고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열쇠’만큼은 넘겨주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막지 못한다면, 자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릴 터였다. 결국 반대파에게 뼈와 살을 다 내어주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릴 터였다.
그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모드레드, 주다연 양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프리이빗 채널로 통신을 걸자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저택 내에서 한숨을 내쉰 정현은 이를 빠득 갈며 스스로의 무력함에 어두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딸이 인질로 붙잡히고, 각종 정보 장치로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이렇게 저택에서 무력하게 지켜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회장님.]
바로 그때, 모드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요.”
[그 남자는 어떻게 됐죠?]
“타나토스. 말이군요.”
[네, 계획대로라면 타겟 A가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시점에서 재킷을 해제해야 했을 텐데요.]
“그렇, 죠.”
[놓아주셨나요?]
정현은 거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스스로 무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아닌 모양이었다.
[조우 시에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명령을.]
“최대한 돕되, 주다연 양을 우선으로 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통신은 끊어졌다.
“후우….”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정현은, 이내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디멘션 커넥터가 자동으로 문밖의 인물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통통한 체격의 여성, 전 상무가 서있었다. 잔뜩 굳어져 있는 얼굴에 정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믿어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일단은 말해야겠지. 하지만 어머니에게, 딸이 아서리안의 플레이어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어떤 얼굴을 하고 말하면 좋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정현은 저도 모르게 딸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
시민들에게 대피 명령이 떨어진 건, 내가 가웨인의 손에 이끌려 기사단 건물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라쿠스 기사단과 연합군 간에 다시금 교전이 발생한 것이었다.
“난, 아니라니까…!!”
자리에 멈춰서 항변했지만 나는 수갑이 채워져 꼼짝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외침을 무시한 채 내 뒤통수를 머스킷으로 밀어 다시금 걷게 만든 가웨인은, 곧이어 기사단원들을 돌아보았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적들을 막아. 외부에 있는 녀석들에게도 각자 정해진 구역을 사수하라고 전해.”
서른 명 정도 있던 에스콰이어 중,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함께 랜슬롯의 에픽 퀘스트를 수행했던 10명 정도만이 자리를 지켰다.
“데리고 왔습니다. 마담.”
가웨인의 손에 이끌려 걸은 나는 왕좌에 앉아있는 비비안의 앞에 거칠게 무릎이 꿇려졌다.
“린슬렛도 곧 도착하겠죠.”
그런 가웨인의 말에도 비비안은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비비안, 난 정말 아니야! 믿어달라고!”
“미안하지만, 타나토스.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누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뒤쪽에서 대신 대답을 한 가웨인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희미하게 웃고는 아예 등을 돌려 나를 무시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넬, 린슬렛은…?”
“아, 아직도 반응이 없으세요! 어쩌죠?!”
어떻게든 상황을 타계해야겠다는 생각에 소리쳤지만, 넬은 곤란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티티!”
“린슬렛!”
다급하게 날 부르며 들어온 린슬렛은 이내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가웨인의 뺨을 후려쳤다.
“아픈데….”
“티티는 아니야! 놔줘!”
“그걸 증명할 수단은?”
“없지만…! 사실이라고!”
“린, 진정해.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야.”
가웨인은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 깔며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문 린슬렛이 나를 지키듯 가웨인과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티티를, 어쩔 생각인데…!”
“그건 마담께서 정하실 일이지.”
“큭, 부인…. 아니, 비비안!”
린슬렛은 곧장 뒤쪽의 왕좌에 앉은 비비안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비비안은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고, 다른 기사단원들이 가웨인의 뒤쪽에 섰다.
“재킷을 없애버리도록 하세요.”
“안 돼! 그랬다가는…!!”
“너와의 기억이 사라지는 게 싫다는 건가?”
“가웨인…!! 너 진짜!!”
린슬렛은 눈을 부릅뜨며 가웨인의 멱살을 쥐었다. 하지만 가웨인은 가볍게 손을 들어, 팝업창을 눈앞에 띄웠다. 거기에는 현재의 시간이 표시된 상태였다.
오후 6시 47분.
“너야말로 잘 생각해. 배신자를 처리하는 퀘스트라고 했지? 제한 시간이 촉박하지 않겠어?”
“윽…!!”
그런 목소리에,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내 주먹을 꾸욱 쥔 상태에서 고개를 숙였다. 안타까울 정도로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문제야. 거기다, 네 퀘스트뿐만이 아니라 이런 건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이….”
“티티.”
다독이듯 이야기하는 가웨인의 말을 끊어낸 린슬렛이 곧이어 몸을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말해줘. 네가 배신자야?”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응, 믿을게. 티티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게.”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동시에 린슬렛의 재킷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이펙트가 피어났고,
“이게 내 대답이야.”
그녀는 방패를 손에 쥐었다.
“…. 린슬렛.”
“미안해. 가웨인. 어쩔 수가 없네.”
“랜슬롯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냐?”
“기네비어가 없는 랜슬롯은 의미가 없잖아? 하지만 나에게는 지켜야할 사람이 있으니까.”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린슬렛은 곧이어 가웨인을 향해 방패를 치켜들었다. 잠깐 그가 멍해져 있는 사이, 다른 기사단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품안에서 꺼내들고 린슬렛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 린슬렛님이 ‘랜슬롯 후보자’로서 그 위대한 업적을
8번째까지 진행하셨습니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사자인 린슬렛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나는, 이 커다란 흐름 속에서 유일하게 침묵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가웨인과 비비안.
“역시, 예상대로군.”
“….”
그리고 가웨인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손에는 검정 빛깔의 보석이 들린 채였다. 그 흉흉한 색을 눈으로 확인한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
“린슬…!!”
하지만 다음 순간,
“에?”
린슬렛의 방패가 파스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는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았고 그것을 기점으로 나는 그녀의 몸에서 재킷의 권능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미안, 다연아.”
가웨인은 쓰게 웃으며 퀘스트창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거기에 적힌 걸 본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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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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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실을 보여주기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어코 악마의
뒤를 이을 생각인가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랜슬롯 후보자의 자격 이동.
이동 대상 : 린슬렛 -〉 비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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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가웨인!”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나는 멍해져 있는 린슬렛을 지키듯 가웨인의 앞에 섰다. 하지만 녀석은 평소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싸늘하게 식어서는 날 노려보았다.
“적당히 정신 차리고 물러서. 네가 그럴수록 린슬렛이 죽을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야.”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그 악마가….”
하지만 가웨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
그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며 천장이 열렸고 밤하늘 사이로 커다란 수송용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내 새까만 인영들이 떨어져 내렸다.
검정색 코트로 몸을 감추고 있는 요원들.
할 킬러즈였다.
“큭!”
나는 린슬렛을 지키기 위해 끌어안고는 우리를 둘러싸는 요원들을 노려보았다. 가웨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한 중년 사내가 로프를 타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가웨인의 뺨을 후려쳤다.
“무슨 생각이냐.”
“….”
“허튼 짓거리를 하려던 건 아니겠지.”
“영감탱이, 손만 매워서.”
“아, 아저씨?!”
내 품에 안겨 있던 린슬렛이 당황해 소리쳤다. 그 부름에 사내는 무뚝뚝하게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미안하구나. 다연아.”
“네?”
“희생되어줘야겠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뽑아드는 남자.
타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