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70화 (70/321)

70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건 어려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구분을 짓지 않으려는 거겠지.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언제나 진지하게.

격렬하게 감정을 나누고 입술을 겹친 후, 잔디밭 위에 함께 누운 것이 마지막 기억인가 싶더니. 다음 순간 다연은 현실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하아아….”

설정해둔 무음 알람 때문이었다.

뇌를 마사지하는 듯한 감각에 알람을 끈 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설정자가 피곤하면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지 않는 기능은 없는 걸까.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며 다시금 꿈속 세계로 떠나려던 그녀는 이내, 잠이 싹 달아나버리는 걸 느꼈다.

진짜 화가 날 정도로 잘생겼네.

“….”

굳게 다물고 있는 입과 눈. 평소의 진중한 성향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는 조그맣게 숨을 몰아쉬며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길디 긴 속눈썹에 어제와는 달리 수염이 까끌까끌한,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턱.

오늘은 와일드한 맛인가.

아니…. 굳이 야한 의미로 한 생각은 아니고.

“….”

사실 맞다.

한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잠든 남자를 바라보던 다연은, 이윽고 격렬했던 정사의 기억을 떠올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현실의 그와 자신은 단순히 키스를 한 정도였지만.

그는 그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진지한 사람. 사소한 도덕규범조차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외골수.

“내꺼…♡”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린 다연은 이내 용기를 내 그의 손을 쥐었다. 그가 했던 말과는 달리 사실, 주다연은 현실과 가상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인 느슨함을 용기의 기폭제로 이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 걸지도.

그가 파티장에 와 자신의 손을 잡아끌었을 때, 그렇게 쉽게 따라갔던 것은. 그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져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건 자신에게 있어 가상의 일이었으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꿈과도 같은.

하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있다.

현실의 사람.

아니, 그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걸쳐진 관계.

특별한, 나와 그만이 맺을 수 있는.

“후후.”

그렇게 생각하며 주다연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이 들면 그와 꿈속에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며, 다연은 천천히….

- 현재 수행 중인 에픽 퀘스트의 완료 조건이, 현실의

영향을 받아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응?”

바로 그때,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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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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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랜슬롯의 여정 8/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기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배신자를 찾아내 처

치하세요.

제한 시간 : 12:00

보상 : 경험치 20,000,000, 기사의 명예 5개,

※ 제한 시간 내에 배ㅣㄴ자를 처치하지 못할 경우, 자동

으로 랜슬롯 후보자의 권한이 박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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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라고?

“아니 그보다 왜 갑자기….”

다연은 팝업창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내 입술을 깨물며 그 내용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서 말하는 배신자란, 다른 기사단에게 에픽 퀘스트의 정보를 팔아넘긴 에스콰이어를 뜻하는 거겠지.

하지만, 누가?

“….”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 바깥으로 빠져나온 린슬렛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금 재킷을 착용했다. 신체의 각 부분에 머물던 정보량 송신 합금의 재질과 형태가 바뀌었고, 그녀는 스키니진과 니트, 재킷을 입은 채 천천히 테라스로 걸어 나가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배신자라니….”

퀘스트의 내용이 ‘현실의 영향을 받아’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도 이상했지만, 린슬렛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신자를 찾아내서 처치하라니, 이게 현실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까. 하지만 왜?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가웨인?!”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눈앞에 표시되는 이름을 잡아채 귀에 가져다대는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에서 더 이상 네 위치가 표시되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퀘스트가 갑자기 현실의 영향을 받아 바뀌었다면서 클리어 됐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다음 퀘스트는 뭐야?]

“아니 일단, 그쪽의 상황은 어떤데?”

린슬렛은 평소의 여유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가웨인의 목소리에 걱정을 느끼며 물었다. 그리고 잠시, 고통과 골치 아픔에 젖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약간 소강상태야. 밤새 기사단 건물 안에서 신나게 싸웠다고…. 아마 바깥이었으면 할 킬러즈 놈들이 미쳐서 다 잡으러 왔을 걸?]

“날이 밝으면 곧장 거기로 갈게. 티티도….”

[아니 잠깐만.]

“응?”

급격하게 굳어지는 가웨인의 목소리에 린슬렛은 의아한 목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입으로 내기 어려운 말인 걸까. 가웨인은 좀처럼 말을 하질 못했다.

[사실, 정보가 하나 더 있어.]

“응, 뭔데?”

린슬렛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이런 순간의 가웨인은 어쩐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예감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린슬렛은 침착하게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고,

[타나토스가 배신자였어. 그 녀석이 지금껏 너와 함께 하면서 정보를 팔아넘겼던 거야.]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

“잠, 뭐라고?”

[타나토스가 배신자야. 린슬렛.]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믿을 수 있는 정보야.]

“걔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는데!”

[그럼 우리 중 누군가 그래야할 이유는?]

“아니, 그거야….”

말문이 막힌 린슬렛은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거야 물론 자신도 알지 못한다. 기사단원 중에 그런 기색을 느낄 정도로 가까이 지낸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아, 일단 위치 정보를 전송해줘. 우리가 마중을 갈 테니까. 그리고 에픽 퀘스트는 뭐….]

“아, 아니야!”

지금 그를 기사단원들과 마주치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린슬렛은 다급히 소리쳤다. 그리고 잠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 그녀는 안쪽에 지쳐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침을 삼켰다.

“내가, 내가 그쪽으로 갈게…!”

지금 그를 기사단원들과 마주치게 할 수는 없다.

린슬렛은 그런 생각에 눈썹을 찡그리고는 이내, 동이 터오고 있는 도심을 바라보았다.

나는 침대 위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약간 멍한 상태로, 졸린 눈을 비비며 옆으로 몸을 돌린 나는, 두터운 이불을 당기듯 저도 모르게 옆에 있을 린슬렛을 기대하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없다.

“린…?”

쉰 목소리로 고개를 든 나는, 이내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의 상황을 확인했다. 커다란 침대의 반대편에는 누군가 누워있던 흔적만이 있을 뿐 텅 빈 채였다.

어디, 갔나?

그런 기색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이내 바닥이 가까워져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카펫 위로 털썩 쓰러졌다.

뭐, 지?

뇌가 말을 듣질 않았다.

몰려드는 구토감에, 복부에 무언가 가득 찬 기분이 이어져 구역질을 했다. 몸에 열이 펄펄 끓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이 몽롱했고 머리가 울렸다.

“넬, 넬….”

나는 그런 상황에 손가락 끝으로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픽셀 조각이 모여들며 넬이 크게 기지개를 폈다.

“으갸갸갸…. 어라, 주인님. 왜 바닥에 누워 계세요?”

“도와, 줘….”

“…. 설마 그런 플레이를 하신 건가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넬이 질색하는 기색으로 물러섰다. 나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크게 기침을 하면서도 침대 끝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다시 쓰러졌다.

“주, 주인님?!”

“젠장, 이 무슨….”

꼭두각시 인형에 의해 몸이 조종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침대 위에 털썩 엎어져 아서리안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상태 이상 : 오한, 어지럼, 열, 구토, 두통.

“엑?! 이게 왜…? 주인님!”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넬이 이것저것 조작을 해 상태의 이유를 확인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작업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신이 아려왔다.

“윽…?!”

그리고 이내 넬은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뭔, 데?”

“주인님, 엘레노어로부터 새 퀘스트가…. 왔는데요?”

“제기랄….”

그리고 나는 눈앞에 뜨는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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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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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실과 마주하기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당신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10,000,000, 기사의 명예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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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에픽 퀘스트가 끝을 향할수록, 엘레노어의 변덕은 강해집니다.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녀가 파악하고 있는 현재의 정세를 반영하는 일이 많아지는 거죠.”

바로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든 나는, 활짝 열려진 문 앞에 서있는 정현 씨를 발견했다. 검정색의 바지 정장. 그녀는 무뚝뚝한 기색으로 중얼거리고 내게 다가왔다.

“결국, 주다연 양의 재킷을 해제하지 않았군요.”

“그, 녀석은…?”

“기사단 본부로 갔습니다. 퀘스트가 변했기 때문이죠.”

“왜, 혼자서…?”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침대를 넘어서 정현 씨의 곁으로 가려고 했으나 다시금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우, 정현…!!”

“당신은 결국 실패했군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이 커다란 정세 속에서 그저 어린애처럼 행동했을 뿐.”

차갑게 중얼거린 그녀가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내 눈앞에 빠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정색의 보석이 생성되었다.

“재킷을 해제하면 몸은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빌어먹을…! 무슨, 짓이야!”

나는 가까이 다가와 보석을 손에 쥐는 정현 씨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다연 양은 걱정 마십시오. 어제 부근을 지키던 제 부하들이 지키기 위해서 갔으니까.”

그리고 눈앞에서 보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눈앞에 난잡하게 떠올라있던 팝업창들이 파스슥 거리는 걸 발견했다. 디멘션 커넥터가 종료되려고 하는 걸까.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정현 씨는 그 불꽃을 손에 쥔 채 냉정한 얼굴을 해보일 뿐이었다.

안 돼.

지금 돌아갈 순 없다.

나는 아직 평범한 이준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만, 두지…. 못해!!”

약속을 했기 때문에.

“….”

나는 발악에 가까운 외침을 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려 쓰러질 것 같았지만, 나는 똑바로 불꽃을 손에 쥔 정현 씨를 바라보았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니고…!!”

똑같이 되받아치며 나는 정현 씨로부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내 뒤로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어 고통에 몸을 떨었다. 내부에서 칼날이 날뛰는 기분이었다.

“나는, 약속했단 말이다…!!”

녀석을 랜슬롯으로 만들기로.

“바보 같은 이유로군요.”

“젠장…! 비웃지 말라고!”

“비웃는 게 아닙니다.”

내 외침에 정현 씨는 살짝 비틀어 올렸던 입술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내 얼굴에 다시금 그 불꽃을 가져다댔다.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먼 옛날을 떠올리듯 중얼거린 그녀는,

“저는 그런 무모함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내 눈동자에 불꽃을 박아 넣었다.

========== 작품 후기 ==========

으으으으윽...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말이라 출판사 모임 같은 게 자주 있어서 바깥에 자주 나가게 되는군요.

언제나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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