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눈앞에 스테이터스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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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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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타나토스
Lv : 50
Knightage : -
JACKET : Necromancer
Exp : 39,200/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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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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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가능한 스탯 : 90
공격력 : 140
방어력 : 50
민첩성 : 110
정신력 : 60
연산 속도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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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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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신 : F
망령 신체 : D
의식 조종 : C
망자 소환 :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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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있던 격렬한 전투와 퀘스트로 인해, 레벨은 무려 9나 상승한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스테이터스를 분배하고 랭크가 상승한 스킬들의 변화를 읽어봐야겠지만…. 나는 이내 아예 창을 꺼버렸다.
이런 것에 눈이 갈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여전히 복잡한 걸 느낀 나는 손바닥 위에 부유해있는 보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모르가나.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마녀, 모건 르 페이의 또 다른 이름이자…. 아서리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하루에 한 번, 정신력을 소모함으로서 지정한 대상이나 인근의 디멘션 커넥터를 모조리 해킹할 수 있는 아이템
나는 눈앞의 보석에 눈동자를 비추며 정현 씨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확실히 아서리안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이니만큼 언제나 위험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 재킷의 백업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다치고 고통을 느끼며 모든 행동은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자신은 단 한 번도 그걸 가볍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고통스럽고, 슬프고, 무섭다.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이 게임은 현실이니까.
모든 것은 현실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끝내고 싶은 것이다.
“….”
하지만 린슬렛이 위험하다는 그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넘기기 힘들었다.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 음. 왜 방이 하나인 걸까?”
재킷 차림을 한 린슬렛이 머쓱한 듯 시선을 피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무척이나 넓은 방은, 안쪽에 따로 드레스룸까지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 외에는 화장대나 TV를 비추기 위한 깨끗한 벽 정도.
여자의 방인 걸까.
“미안합니다. 방주인들이 지금 자리에 없는데…. 제 재량으로 빌려줄 수 있는 방은 여기 하나뿐이군요.”
“회, 회장님?!”
“편하게 부르세요. 다연 양.”
그 뒤로 따라 들어온 정현 씨가 꾸민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기대어 있던 창틀에서 일어나 당황하는 린슬렛을 감추듯이 자리에 섰다.
아마 그녀는, 내가 린슬렛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모르가나를 사용하기를 유도하고 있는 거겠지.
“뭐…. 정 불편하시면 다연 양, 저와 주무시는 것도?”
그게 아니라면 직접 린슬렛을 설득하겠다는 걸까. 나는 그런 정현 씨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티, 티티이?!”
뒤쪽에서 린슬렛이 투닥투닥 등을 두드리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정현 씨를 노려보았다.
“그럼 모쪼록, 말씀드린 건….”
“그건 제가 정하겠습니다.”
나는 말을 잘라냈다.
“…. 그럼, 편히 쉬시길.”
그런 내 모습에 뭐라 말을 하려던 정현 씨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방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자 복도로부터 들어오던 빛이 사라졌고, 방안은 어둠에 잠겼다.
빌어먹을.
“티티, 왜 그래?”
“…. 린슬렛.”
나는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불안한 듯 서있는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움츠리고 있는 어깨, 살짝 찡그린 눈썹.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면 좋은 걸까. 그녀는 나를 믿는다고 했다.
그 믿음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잔다니이…. 음.”
얼굴이 붉어져있던 그녀가 이내 삐걱거리며 다가와 내 가슴에 기댔다. 그녀 역시 정현 씨의 태도에서 상황을 대강 눈치채고 있는 것일까.
“저, 저는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응, 시키는 대로 해줘.”
“저, 정말로오?!”
“이상하지 않을 거야.”
“아픈 게…. 아니! 티티?!”
“왜?”
“그, 그! 역시 안 되겠어! 미안해!”
린슬렛이 얼굴을 붉히며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녀를 정현 씨의 방으로 두게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직접 이야기를 하고, 그 생각을 똑바로 듣고 싶었다.
“안 돼. 가지 마.”
“?!”
나는 린슬렛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어깨를 감싸고, 굳어져 있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오늘은 나와 함께 있어줘.”
“네, 네에에에에….”
“?”
“저, 저는 들어가 있을 게요오오오….”
“넬?”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넬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쉰 뒤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로서 남은 건 린슬렛과 나뿐인 상황.
“처음은 남자친구 방에서 했으면 했는데에에….”
품안의 린슬렛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해 곱씹을 생각도 못한 채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단, 침대로.”
“바, 바로?! 샤워는?!”
“? 아까 했잖아.”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린슬렛이 내 손을 꾸욱 쥐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뭔가 중대한 결심을 마친 듯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고개를 들었다.
“자, 잘 부탁합니다!”
“…?”
그러더니 이불 안으로 먼저 쓱 들어갔다.
이쯤 되면 뭔가 정말 이상한데.
“다, 다 벗었습니다!!”
디멘션 커넥터를 빠른 속도로 누른 린슬렛이 소리쳤다.
“???”
“피부가 좀 꺼끌꺼끌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재킷이 피부 표면에 달라붙어서이니까요!”
“아니 잠깐….”
“에이잇!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
“….”
아, 오해를 하고 있구나.
“저, 저어. 린슬렛?”
“왜 그러시죠! 어차피 남자는 다 변태 아닌가요!”
“….”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해 스테이터스창을 뽑아냈다. 약간의 결심조차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그걸 던졌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침대 맡에 기대어 앉았다.
“레벨, 이…?”
권한을 받아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린슬렛이 경악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국에서 게임했다는 거, 사실은 거짓말이었어.”
“그럼 얼마나?”
“한 달 정도인가.”
“…. 왜?”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책망하는 기색은 없이 단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게 더 문제인가.
“왜 그런 거짓말을…?”
“레벨 40이 기사단에 넣어달라고 하면, 그대로 이런 중대한 퀘스트에 끼워졌을까?”
“널 처음 만났을 때, 이름 모를 습격자에 대한 악명이 인근에 자자한 상황이었다고? 너 잘못했으면 이레귤러로 낙인 찍혀서 완전히 재킷 다 찢겨져서 기억 잃고 현실로 돌아갔을 거라고! 대체 왜 그랬던 거야?”
“…. 이레귤러가 뭔데?”
“일반적인 유저 성향에 반발되는 이단자. 네가 쓰러뜨렸던 고그와 모그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고 있었지만…. 네 악명은 그것보다 더 심했어.”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왜 그랬던 거냐고!”
“뭐, 크게 사고를 치고 다니면 라쿠스 기사단처럼 큰 녀석들이 흥미를 지닐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었던 거야.”
“미쳤어. 너. 얼마나 위험한 짓 했는지 알아? 바이킹을 몸으로 받았을 때도 그렇고…. 뭐 그렇게 무감각해?”
“어쩔 수 없었어. 난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만 하니까.”
“갤러해드가 되기 위해서?”
나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힐끔 고개를 들어, 괴로움에 이를 악물고 있는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뭐 굳이 그럴 일인가 싶었지만…. 나는 이내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이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양립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난 이 게임을 끝내고 싶어.”
“…. 뭐?”
“너도 알고 있잖아. 이 게임이…. 그 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렇, 지. 그건 알아. 나도.”
충분히.
린슬렛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끝내고 싶은 거야.”
“…. 응.”
“미안해. 너에게는, 괴로운 일일 텐데.”
“괴로, 웠지?”
바로 그 순간, 나는 뒤쪽에서 린슬렛이 날 끌어안는 걸 느꼈다.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해 굳어져 있자니, 그녀는 이내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머리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지금까지의 너는, 그리고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괜찮아.”
“린슬렛….”
“널 만난 이후의 주다연은, 행복하니까.”
그리고 린슬렛은 가볍게 내 턱을 쥐고는 들어 입술을 겹쳐왔다. 달빛이 비추는 침대 위. 새하얀 피부와 흘러내리는 듯한 금발…. 그리고 나는,
“아야야야야얏?!”
입술 아래를 깨물리고 말았다?!
“이에 어 오이으어 어이(이제 더 속이는 거 없지)?”
“어, 어어! 어아오(어, 없어! 없다고!)!”
필사적으로 소리치자 린슬렛은 입술을 놓아주었다. 탁! 하고 휘감기는 듯한 입술에 나는 고통스럽게 끙끙거렸으나 이내 다시 얼굴을 붙잡혔다.
“믿어줄게.”
“….”
“너도 나를 믿는 거잖아?”
“응.”
나는 그녀를 믿는다.
“너 같은 거 하나도 안 좋아하지만, 믿어줄게. 지금껏 거짓말만 했고, 애매한 부분도 많지만.”
린슬렛은 새침하게 중얼거렸다.
“미, 미안.”
“헤헤….”
내가 사과를 하자 린슬렛이 가볍게 웃었고, 이내 다시금 입술이 맞닿았다. 자연스럽게 내 목덜미를 휘감은 그녀가 뒤로 누웠고, 침대 위에 머리가 흩어졌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 린슬렛.”
얼마 후,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져, 나는 린슬렛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뭔데?”
“위험할 거야. 랜슬롯이 된다는 건.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일수도 있어.”
“그래도 ‘우리’라고 해주는구나?”
“….”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렇다면 괜찮아. 티티가 있으면.”
“바보냐, 나 레벨 50밖에 안되는데.”
“가디언은 지켜야할 사람이 있을수록 강해진다고?”
“….”
뭔가 이상한 논리다.
“그러니까 될 수 있어. 티티가 있으면.”
린슬렛이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는 가만히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너무 가까웠다는 생각에 나는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미안, 지금….”
“자, 잠깐!”
“윽?!”
하지만 다시 멱살이 붙잡힌 뒤 당겨져, 나는 린슬렛을 덮쳐누른 상태가 되고 말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그녀, 하지만 이윽고 나는 딱딱해진 하반신 쪽을 무언가 어루만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린슬렛?!”
“교, 교과서에서 본 그대로군요.”
“네?”
“크흠, 흠.”
뭐가 본대로 라는 거죠.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할 즈음, 린슬렛이 중얼거리고 뒤를 이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린슬렛님이 가상현실로 초대하였습니다.
“미련은 남겨두지 않을래.”
분홍빛 입술이 부끄러운 듯 웃었다.
========== 작품 후기 ==========
...죽창.. 죽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