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66화 (66/321)

66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린슬렛과 협의(?)를 마치는 일은 약간의 시간을 더 필요로 했다.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 나는 린슬렛의 손을 쥔 채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곳으로 오십시오.’

약간 당황한 기색을 감추듯 중얼거린 그녀는 내게 위치 정보를 하나 전송했다. 밤이 깊어 포위망을 뚫는 건 어렵지 않아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 우리는 위치 정보가 가리키는 서울 외곽의 저택에 도착했다.

“티, 티…. 여기는?”

어둠에 잠긴 저택을 올려다본 린슬렛이 약간 당황해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내 온당한 설명을 요구하듯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안에서 설명해줄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린슬렛의 손을 잡은 채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어둠에 잠긴 정원을 가로 질러 문 앞에 도달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린슬렛이 내 손을 꾸욱 쥐는 것이 느껴졌다.

“오셨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나이트가운 차림을 한 정현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옆에 서있던 린슬렛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발견했다.

“우, 회장님?”

“반갑습니다. 주다연 양.”

“….”

“일단 들어오시죠.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모르니.”

당황해 굳어진 린슬렛을 일깨우듯 중얼거린 정현 씨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나는 커다란 문을 붙잡은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가자.”

“티티….”

“괜찮아.”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린슬렛은 다시금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런 반응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우리가 수세에 몰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눈앞에서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걸어가고 있는 여성 역시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나 봐요?”

“네, 딱히 상주 고용인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왜 이곳으로 부른 건지…. 여쭤 봐도?”

“제 사유지이기 때문입니다.”

내 질문에 정현 씨가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우하하게 선이 떨어져 내리는 나이트가운,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 외에는 딱히 더 말씀드릴 수 없겠군요. 개인적으로 부리는 에스콰이어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고만 해두죠.”

“…. 꽤 강한 친구들인가 보군.”

“그렇겠죠. 한 사람이 기사단 전력에 필적하므로.”

“그, 그게 말이나 되나요?”

“믿기 싫으시다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결국 믿으라고 하는 거잖아.

아무렇지도 중얼거린 그녀가 다시금 뒤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골치 아픈 기분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뒤를 따랐다. 좁고 긴 복도를 따라 나아간 그녀는 부엌인 듯 보이는 장소로 우리를 인도했다.

“상황을 정리하기 전에, 두 분 다 몸을 씻으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식사라도 준비해두죠.”

불을 켠 그녀가 이내 반대편의 문 하나를 가리켰다.

“좌측이 남성용, 우측이 여성용입니다.”

“그런 것도 구분해 둡니까…?”

“그럴 필요가 있었으므로.”

“?”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고 냉장고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잠시라도 정현 씨와 떨어져 이야기를 나눌 필요성을 느꼈으므로, 나는 린슬렛과 함께 부엌 밖으로 빠져나왔다.

“티티, 우리 지금 괜찮은 거야?”

“아마도….”

나는 조용한 목소리를 한 채 중얼거리고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졌다.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적어도 나와 린슬렛에게 해코지를 할 이유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우 회장님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널 감시해달라고 부탁받았거든.”

“뭐…. 어떻, 게? 그리고 왜?”

“모르겠어. 하지만 딱히 적대적인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거야…? 저 사람.”

“괜찮아.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지켜줄게.”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린슬렛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왜, 왜?”

“매사에 무모하고 막무가내면서, 그런 식으로 멋있게 말하면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정곡을 찌른 그녀가 이내 내 코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나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하, 하지만!”

“그래애, 어쩔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이내 깊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에픽 퀘스트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걸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거대한 기사단의 연합군을 만들 정도로 수완을 발휘한 건 어디의 누구인 걸까.

“이런 상황은 처음이야?”

“…. 응. 아무래도 큰 규모의 에픽 퀘스트일수록 언론이나 할 킬러즈를 자극하게 될 뿐이니까. 어느 정도 커지면 에스콰이어들끼리 자중하는 분위기가 없잖아 있었거든. 하지만 지금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것 같아서.”

고민에 빠져 중얼거린 린슬렛은 이내 이마를 긁적거리며 날 올려다보앗다.

“뭐, 지금 생각해도 별 수 없고, 일단은 씻고 나오자.”

“너, 재킷은 어떻게 하고?”

“아까 전처럼 하는 수밖에 없지이.”

그 말을 들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린슬렛은 약간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왔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 그, 그것도 이따 설명하겠습니다.”

“흐응, 날 속였다는 거야?”

“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선생님.”

나는 심장이 쿡쿡 찔리는 듯한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볼에 부드러운 감각이 닿았다.

“후우, 놀리지도 못하겠다니까.”

얼굴을 붉히며 웃은 린슬렛은 팝업창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장비창의 외견 파트에 들어간 그녀가 거기에 적혀져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 파티에서의 드레스부터 시작해 지금 입고 있는 털 달린 재킷, 그리고 가벼운 평상복이 몇 벌 정도. 마지막으로.

“외견을 보이지 않게?”

“응, 합금이 분자의 형태로 얼굴이나 재킷이 닿지 않는 부분을 보호하잖아? 그거랑 비슷한 방식으로…. 몰라. 뭔가 하는 모양이던데. 물론 진짜 알몸일 때보다는 불편한 느낌이지만, 그럭저럭 씻을 정도는….”

알면 알수록 신비한 물건이다.

“여, 엿보지 마.”

“뭘?”

생각에 잠겨있던 중, 린슬렛이 뒤로 물러서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잠시 가슴께를 손으로 가린 채 당황해하던 녀석은 이내 크게 헛기침을 하며 쌀쌀맞게 몸을 돌렸다.

“나 씻을 거야.”

“? 내가 뭐 잘못했어?”

“아~아니, 뭐 네 잘못이겠어? 결국 남자들은 유전적 본성에 의해 큰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거겠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이따가 보자….”

“흥!”

당황해 목소리를 내니 크게 짜증을 부린 린슬렛이 곧바로 여탕으로 들어가 버렸다. 멍하니 서있던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반대편의 남탕 쪽으로 들어섰다. 혹시 모를 상황이 전개될 수 있었으므로, 린슬렛이 설명했던 대로 장비창에서 재킷의 외견을 보이지 않도록….

“주우우우우이이이인니이이이이임…!!”

바로 그때 원망으로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빛의 창에서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눈을 부릅뜬 채 내 앞에 서있는 넬을 보고 입을 열었다.

“넬.”

“뭐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을 부르시는 건데요! 한참동안이나 안 불러주셔서 무슨 일이 생기셨나 했잖아요!”

“미, 미안.”

“여기는 어디죠?! 지금이 대체 무슨 상황이죠?!”

“그, 우정현 씨네 집이야.”

“…? 거기에서 왜 몸을?! 서, 설마 주인님! 돈을 위해 나이 많은 기업체 회장에게 몸을…!!”

“무슨 소리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장비창을 열어 그 안을 확인했다. ‘재킷’의 형태만 갖춰진 기본 재킷과, 완전히 풀 세트인 턱시도가 한 벌. 나는 지금 턱시도를 입고 있었으므로 그걸 해제하자, 희미하게 입고 있던 옷이 사라지며 그 아래에서 가벼운 티셔츠와 청바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식이군.”

셔츠와 청바지는 평범한 옷이었으므로 그대로 놔두되, 만약에 위아래를 풀세트로 옷을 구매했으면 완전히 알몸이 된다는 걸까. 나는 몰랐던 기능을 알게 되자 놀라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래? 넬.”

“흥, 넬은 이제 주인님 같은 거 몰라요.”

“미, 미안해. 혼자 놔둬서. 상황이 좀 급박하게 돌아가서 정신이 없었어.”

“설명해보세요오오….”

넬은 재촉하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어쨌든 녀석 또한 깊이 걱정을 했기 때문에 이토록 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피식 웃으며 나머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일단 씻으면서.”

셔츠를 벗은 상태에서 중얼거리니 넬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뒤로 돌아섰다. 안심하고 옷을 벗은 나는, 샤워기 밑으로 걸어가 물을 틀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며 나는 약간 멍한 상태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린슬렛이 후보자로 선정되고, 기사단 건물에 숨기도 전 이어진 에스콰이어들의 습격. 에픽 퀘스트의 정보가 새어나간 것까지.

“쥬브나일 포르노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음? 정황상으로 봤을 때는 그쪽 분들이 소문을 퍼뜨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나요?”

“린슬렛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나는 확신에 차 중얼거렸다.

“흐음…. 역시 두 분, 사랑에 빠지셨군요.”

“아, 아니거든.”

생각 외로 정확한 지적에 나는 당황해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한 갈래로 땋은 넬의 흰색 머리가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하님은요? 포기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야.”

나는 부드러운 반묶음 머리의 여성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 따뜻한 미소, 커피의 향, 그녀의 모든 것은, 그리고 과거의 것들은 내 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린슬렛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해.”

“변명이라는 거 아시죠오~?”

넬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스스로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망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나는 유하를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린슬렛 또한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과연 그런 게 허락받을 수 있는 짓인가.

용서받을 수 없는 쓰레기 짓이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하아, 주인님께서 그렇게 너무 진지하시니까. 두 분 다 그 이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거예요.”

“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금 넬을 바라보았다. 등을 진 채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진지하다니까요. 주인님은.”

“다, 당연하지!”

“왜요?”

“사람을 좋아하면…. 결혼, 해야 되니까.”

“…?”

내 말에 넬이 이쪽을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돌아보았다. 나는 찌푸려진 그녀의 눈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서로 좋아하면…. 육체적 관계가 있잖아?”

“네.”

“그건 뭐, 일단 정신적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난 그것도 정말로 했다고 생각해.”

“그렇군요.”

“그러니까, 음. 그…. 그렇게 되면 책임을 져야하잖아?”

“….”

넬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결혼을 해야지.”

“진짜 생긴 거는 길 가는 여자 잡아다가 사랑한다고 말한 다음에 등골까지 빼먹게 생기셔서는….”

“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생기셨다고요~!”

이상한 녀석이다.

========== 작품 후기 ==========

* 뒷부분 추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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