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65화 (65/321)

65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큭?!”

“꺅?!”

욕조 옆에 있던 옷걸이가 휘청거리다 쓰러질 정도의 충격이 몸을 덮쳤다. 반쯤 녹아 있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나는 머릿속이 차갑게 얼어붙는 걸 느꼈다. 나는 욕조 바로 앞에 쓰러진 옷걸이를 들어 반대편으로 넘기며 무방비한 린슬렛을 가리듯이 섰다.

“넬!”

“우, 으으읏?! 뭔가요! 주인님! 다 끝났나요?!”

“네크로맨서 재킷, 기동.”

“네넬? 왜 갑자기 재킷을…?”

“확인해봐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귓가에 울려 퍼지는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일련의 변신 과정처럼 품안에서 튕겨져 나오는 마스크를 장착한 나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린….”

“응, 준비 끝났어.”

자리에서 일어선 린슬렛은 이미 재킷을 입은 상태였다. 부츠 끝을 욕조에 걸치고 훌쩍 뛰어넘은 그녀는 품안에서 고양이 얼굴 모양의 바이저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쓰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뒤에 있어.”

“…. 나도 내 몸은 지킬 줄 알거든.”

“아직 몸 다 회복 안됐을 거 아냐.”

“흥칫뿡.”

내 말에 린슬렛은 슬쩍 볼이 붉어져서는 뒤로 물러섰다. 나는 슬쩍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뭐가 됐든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큭!”

칼끝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 적대 상태의 플레이어 를 다수 감지했습니다.

- 전투 상태로 돌입 합니다.

눈앞에 떠올랐던 메시지가 사선으로 떨어져 나가며 나는 눈앞에 서있는 에스콰이어를 바라보았다. 녀석이 메시지창을 가른 검을 다시금 고쳐 쥐었다. 나는 슬쩍 뇌를 가동시키며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고, 완전히 박살난 가게의 풍경을 확인했다.

뭔가 큰 스킬을 맞은 것일까.

한쪽 벽에 휑하니 구멍이 뚫려 있는 상태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에스콰이어가 눈으로 채 세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가게 곳곳에서는 라쿠스 기사단에서 보내온 호위 병력과 녀석들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곧장 스파다를 꺼내들고는 눈앞의 녀석과 대치했다.

“도, 도망치라오오오오옹!”

“살이 쪄서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옹!”

“오오오오옹!”

어디선가 고양이 의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힐끗 시선을 주기도 전, 도약해오는 에스콰이어의 검을 막아냈다.

“네 녀석이 린슬렛인가?”

칼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가까이 얼굴을 들이댄 녀석이 물었다. 흉측하게 갈라진 가죽 가면 사이로 무감정한 눈이 보였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

“아닌 모양이로군.”

“역으로 묻지. 넌 뭐하는 놈이냐?”

“후보자가 되고 싶어서 왔는데.”

역시 그렇군.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걸까.

“….”

나는 슬쩍 눈을 돌려 뒤쪽의 상태를 확인했다. 린슬렛은 품안에서 방패를 꺼내든 상태였고, 나는 검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서 허리를 숙였다.

“크헉?!”

머리 위를 타고 날아간 방패가 에스콰이어의 안면에 명중했다. 나는 튕겨져 날아오는 방패를 마스크와 비슷한 요령으로 캐치하고는 뒤쪽의 린슬렛에게 넘겨주었다.

“가웨인은?”

“모르겠는데.”

그 뒤쪽에서 서있던 에스콰이어들이 다시 달려들었고 나는 그 중 하나의 검을 막아냈다. 그리고 스파다의 고리에 걸치고는 왼쪽으로 꺾었다. 그리고 맥없이 끌려온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녀석이 채 쓰러지기도 전, 뒤쪽에서 다시 공격이 들어왔다.

“퀘스트 하러 왔다앗!!”

“큭!”

적은 무수히 많은 상황. 나는 쓰러진 에스콰이어들과 박살난 잔해로 좁아터진 길목에서 계속해서 몰려드는 녀석들에 맞섰다. 하지만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공세는 더욱 강해졌다.

“주인님! 뒤!”

“망령 신체…!!”

“티티!!”

거기에 뒤쪽에서 정신을 차린 녀석들까지 합세하기 시작했다. 무수히 날아드는 검을 망령 신체로 받아낸 나는, 안색이 창백하게 물든 린슬렛을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찰나의 순간, 눈빛으로 신호를 보낸 뒤, 날붙이들에 몸이 꿰뚫린 상황에서…!

“저리…. 꺼져!!”

활로를 뚫기 위해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다.

“뭐, 뭐야! 이 자식!”

“공격이 듣질 않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앗!!”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녀석을 어깨로 들이받고는 밀어붙였다. 중심을 잃고 뒤쪽의 녀석들이 넘어져 나는 누군지도 모를 녀석의 코를 짓밟으며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망령 신체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 몸에 매달린 검들을 뽑아내 땅에 내팽개쳤다.

“티, 티티! 괜찮아?!”

“그보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다급히 소리치던 순간, 린슬렛이 내 앞으로 나서 날아드는 화살을 방패로 막아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패를 내린 그녀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가자!”

그리고 우리는 추격해오는 녀석들을 뿌리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를 습격한 에스콰이어들은 라쿠스 기사단을 제외한 다른 기사단들의 대규모 연합군이라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일에만 몇 시간이 소모되어, 우리는 무척이나 지친 상태였다. 배도 고팠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재킷의 백업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였으나 한계까지 내몰린 상태였다.

거기에 사건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커졌다.

[현 시각 부로 2급 비상사태가 선언되었습니다. 아서리안의 대규모 에픽 퀘스트가 진행 중으로, 시민 여러분께서는 경찰의 인도를 받으시며 비상 쉘터로 피난을….]

인근의 산자락, 스크린을 띄워 뉴스를 보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 너머로 펼쳐진 숲을 바라보았다. 달빛 한 모금 들어올 수 없는 숲은 어둠에 잠긴 채였다.

“어디서 새나간 거지…?”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옆의 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에서 접근하는 에스콰이어가 없는지 계속해서 탐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도 모르게 나무에 기대려던 나는, 그랬다간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겠다는 예감에 등을 꼿꼿이 세웠다.

“기사단 건물로 가는 건 무리겠지?”

옆에 서있던 린슬렛이 피곤한 기색이 엿보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웨인을 비롯해, 대부분의 기사단원들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한 걸 느꼈다.

“쥬브나일 포르노인가…?”

“걔들이? 왜?”

“에픽 퀘스트.”

나는 단호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반대편에 서있는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말에 그녀는 질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발렌타인이나 빼빼로나…! 다 괜찮고 좋은 녀석들인 걸!”

“젠장, 그걸 어떻게 믿느냐는 거지.”

나는 피로한 감각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파티부터 시작해, 결투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려와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다.

“….”

“일단 어디론가 몸을 좀 숨겨야겠는데….”

반대편의 린슬렛이 한순간 눈썹을 찌푸렸지만,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장소는 없었다. 누구든 에픽 퀘스트의 조건만 맞는다면 우리를 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녀석들이 들어올 수 없을 만한 장소…?

어딘가, 없을….

“아.”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그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재계를 쥐고 흔드는 그 사람이라면….

“린슬렛…!”

“그럼 넌 어떻게 믿는데.”

“뭐?”

머릿속에 떠오른 걸 말하려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린슬렛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디멘션 커넥터의 팝업창이 희미하게 빛나며 그 모습을 비추었다.

“그러는 너도, 날 믿지 못하겠네?”

“아니 그 소리가 아니잖아!”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지만 린슬렛은 차가운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럼 말해봐. 넌 왜 나를 돕는 거야?”

아까와 같은 질문이다.

“….”

“넬, 미안. 잠시 들어가 있어.”

“네, 네엘?”

내 말을 들은 넬은 약간 당황한 목소리를 냈으나, 얌전히 디멘션 커넥터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린슬렛은 눈썹을 찌푸리며 날 바라보았다.

“넬에게는 항상 친절하게 말하네?”

“….”

“믿을 수 있다는 걸까? 넬은?”

“린슬렛.”

“그럼 나는? 그리고 쥬브나일 포르노의 애들은? 모두 믿지 못할 사람들인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니긴! 넌 항상 그런 식이었어! 자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내가…. 내가 그 카페 찾아갔을 때도! 화만 내고! 짜증만 부리고!”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왜 나를 돕는 건데!”

린슬렛이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그녀를 도운 이유?

그건 간단하다.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그걸 말해버리면 된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단지 그뿐‘이었다’고.

나는, 갤러해드가 되어야만 하니까.

그리고 난 그저 게임의 레벨업을 한 과정으로 라쿠스 기사단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날 방패를 날려 기절시켰던 웬 성질 고약한 여자와 한 페어를 이루게 되어서, 처음에는 골탕을 먹었지만 술에 취해서 엉엉 우는 걸 보고, 입학시험에서 도움을 받아….

너구리를 도왔던 퀘스트가 에픽 퀘스트로 바뀌어.

돕고, 도우며.

그로서 감정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 어느 샌가.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

“왜 언제나, 상처받고 가슴 아프다는 듯이.”

널 알아버렸으니까.

현실의 주다연의.

가상의 린슬렛을.

“걱정하게 되어버렸으니까.”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그런 표현을 쓸 수 없는 나 자신이 더러운 쓰레기인 걸 느끼며 비참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조금은 허락된 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서 굳어져 있는 금발의 소녀. 린슬렛이자 주다연인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널,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 나는, 좋아한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어.”

나는 떨리는 린슬렛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그거 알아? 나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사람은 가슴에 큰 상처가 있구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네크로맨서구나.”

“….”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잖아? 아니 도리어,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서 나아갈 수 있는 거잖아? 온몸이 창으로 꿰뚫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린슬렛.”

나는 비틀리는 가슴을 쥐어짜내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린슬렛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볼을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동자.

“티티, 왜 내가 널 믿는지 알아?”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이런 곳에서 유일하게….”

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다.

“너 같은 거, 좋아하지는 않아.”

“…. 으, 으응?”

부드러운 감촉이 아직도 입술에 남은 상태였다. 나는 몸이 짜릿하게 멈추는 걸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에 비춘 린슬렛의 얼굴은 달아오른 상태였고, 그런 와중에 분홍빛 입술이 도드라져 보였다.

“지금은 이걸로 괜찮잖아? 이건 게임이니까.”

“…. 그렇다면 한 번 더.”

나는 스스로를 참을 수 없는 걸 느끼며 린슬렛의 얇은 허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 작품 후기 ==========

뱀부-스틱-재킷-맨이 등장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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