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64화 (64/321)

64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포탄을 재장전하는 것처럼 방패를 떨쳐낸 린슬렛이 마지막으로 꽂혀 있던 라이언 실드를 뽑아 회전하며 팔에 장착했다.

“이름하야, 호수를 질주하는 수호자의 춤.”

가디언 서핑.

뇌까리듯 중얼거린 린슬렛이 마지막으로 돌진했다.

사자가 울부짖는 듯한 폭음과 함께 앤더슨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린슬렛이란 이름의 방패에 처박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날아와 내가 서있던 컨테이너에 충돌했다. 발밑이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다시금 흙먼지가 일었다.

“린슬렛!”

나는 컨테이너에서 뛰어내려 구멍이 휑하니 뚫린 그 안을 확인했다. 묵묵히 결투를 지켜보던 심판 역시 내 옆으로 다가왔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호수의 수호자를 상징하는 푸른 빛.

“결투는 종료된 걸로 봐도 좋겠네요.”

심판의 말에 이어지듯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 에픽 퀘스트를 ‘린슬렛’님이 완료하셨습니다.

- ‘린슬렛’님이 ‘호수의 기사’ 랜슬롯의 후보자로 결정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가 퀘스트를 실패했기 때문일까. 눈앞에 떠오른 양피지 하나가 불에 타는 이펙트와 함께 사라졌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다른 퀘스트창이 등장하는 걸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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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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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랜슬롯의 여정 7/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랜슬롯 후보자를 쓰러뜨리고 당신이 새로운 후

보자라는 사실을 증명하세요.

제한 시간 : 72:00:00.

보상 : 랜슬롯 후보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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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인가.

나는 반쯤 내려오다만 앞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깜빡거리던 빛이 어둠 속으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원판. 물론 그것을 쥐고 있는 것은 린슬렛이었다.

“티티이….”

지친 기색의 그녀가 나를 보고는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이내 반쯤 눈이 풀려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수고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부축했다.

“갈비뼈가 넉 대는 나간 기분이야아….”

우는 소리를 낸 린슬렛이 욕조에 편안하게 누우며 길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모습에 가웨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엄청난 혈투였나 보네.”

“말도 마. 앤더슨 그 자식…. 어느새 신 스킬까지 익혀 와서 사람을 밀어붙이는데. 지는 줄 알았다니까.”

“뭐, 꽤 오래 전부터 노렸다는 거 아니겠어?”

“혹시나 싶어 나도 숨겨서 다행이었지. 히히.”

장난스럽게 웃은 린슬렛은 이윽고 검정색의 치료제 속에서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거기에 들려져 있는 원판은 여전히 빛으로 감싸인 상태였다.

“호오, 그게?”

“응, 너 때는 아무 형태도 없었지?”

“그랬나. 기억이 잘….”

“야, 그래봤자 반 년 전인데.”

“그때 네가 주 상무님한테 걸려서 못 빠져나온다고 했던 거 기억 나? 그때 좀 어이없었는데.”

“벼, 별 수 없잖아! 체엣.”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웨인과 린슬렛. 나는 약간 떨어진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내, 가웨인은 미소를 지으며 욕조 끝에 걸터앉아 린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뭐야.”

“고생했어. 이걸로 네 꿈이 이루어지겠네.”

“…. 힛.”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어쩐지 평화로운 분위기에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의도한 사항은 아닌데 목소리가 무뚝뚝했다. 두 사람이 약간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가웨인은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미안, 눈치 없이 행동해버렸네.”

“? 가웨인, 그게 무슨….”

“넌 조용히 해.”

나는 의아해하는 린슬렛을 향해 차갑게 목소리를 냈다. 잠깐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이내 볼을 부풀리며 원망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 내가 뭘!”

“….”

방금 그건 말실수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정정하는 대신, 불만에 가득 찬 린슬렛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커다란 눈동자, 욕심 많은 고양이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볼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

아니, 나는 왜.

“호위 병력은 이미 바깥에 준비해뒀으니, 몸의 치료를 마치면 곧장 기사단 건물로 가도록 해.”

호위 병력이라니, 무슨 말이지.

내가 당황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린슬렛은 이해를 한 건지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자, 잠깐 에픽 퀘스트. 아직 퍼지지 않았다면서? 굳이 기사단 건물에 머무를 필요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 좋잖아?”

“으윽, 지금 당장 가야 돼…?”

“마담의 명령이야.”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가웨인은, 이내 날 힐끔 바라보고는 천천히 욕조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일부러 자리 피해주는 거야. 천천히 얘기하고 나와.”

“무슨…?”

“에잉, 잘해보라고? 단 둘이서.”

상쾌하게 웃으며 중얼거린 가웨인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뭐가 단 둘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바로 옆에 넬까지….

“주인님! 힘내세요!”

하지만 무슨 바람이 든 걸까. 가만히 우리를 지켜보던 넬 역시 나에게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는 디멘션 커넥터 안으로 쓱 들어가 버렸다. 그로서 가웨인의 말대로 린슬렛과 나만 방안에 남겨졌다.

뭔가 의식하게 되는군.

“린슬렛, 묻고 싶은 게 있는….”

“티, 티티! 어떻게 하지?! 어, 어쩌면 좋지!”

“뭐?”

바로 그 순간, 린슬렛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새하얀 피부결을 따라 검정색 치료제가 부슬비처럼 흘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어, 엄마! 엄마한테…!”

가까이 다가온 린슬렛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적잖이 겁에 질린 얼굴이었으나, 나는 새하얗게 드러난 쇄골에만 시선이 가는 걸 느꼈다.

“….”

“엄마가 알고 있다면서! 파티 빠져나온 거!”

“저, 저어.”

“으앙!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린슬렛?”

“우으으! 그걸 생각하지 못했어! 후보자가 되면 3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가는데! 나는 정말 바보야!”

혼란에 빠져든 린슬렛은 눈동자가 반쯤 맛이 가서는 날뛰어댔다. 빙그르르 돌자 어깨를 갓 넘기는 금발이 흔들렸고, 조그마한 엉덩이가 내 하반신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일단 옷 좀 입어!”

“히익!”

내 외침에 린슬렛은 스스로의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다시금 욕조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푸른색으로 여성스럽던 속옷의 색깔에 나는 얼굴이 붉어진 걸 느꼈다.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괘, 괜찮아! 그, 이상하진 않았으니까!”

“으아아아앙~! 이상한 것 같잖아!”

검은색 치료제 속에서 발버둥 치는 린슬렛, 부끄러움을 타는 것일까. 온몸이 새빨갛게 물들어 이내 입술까지 물에 담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 그래서…. 왜 집에 못 들어간다는 건데?”

“으응? 아…. 티티는 에픽 퀘스트에 대해 잘 모르지….”

“설명해줘.”

“일단 후보자로 선정되면 계속해서 재킷을 기동시킨 상태로 있어야 해. 아서리안을 종료하는 것도 안 되고.”

그렇게 중얼거린 녀석은 손가락 하나만 빼꼼 내밀어 퀘스트창을 꺼내더니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욕조에 손을 짚은 채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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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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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랜슬롯의 여정 7/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제한 시간이 다 될 때까지 후보자의 자격을 잃

지 마세요.

제한 시간 : 72:00:00.

보상 : 경험치 20,000,000, 기사의 명예 5개,

※ 이 퀘스트를 수락한 에스콰이어는 재킷을 해제하거

나 아서리안을 종료할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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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내용을 다 읽은 나는 대충 상황을 이해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일 동안 디멘션 커넥터를 꺼두거나 하면 다른 쪽에서 손을 쓸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거군.”

“응, 그래서 아예 기사단 내부에서 숙식하면서 시간을 보내자는 거야. 퀘스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내 위치가 표시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가웨인의 기사 서임 퀘스트 때는 딱히 퀘스트에 대해서 아는 인원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그래도…. 네가 집에 있을 때 에스콰이어가 들이닥친다면 최악의 상황이잖아?”

“그, 그럼 어떻게 하지?”

“….”

나는 불안함에 어깨를 떠는 린슬렛의 모습을 보고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느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오던 그녀의 ‘게임 플레이’를 내가 경솔하게 망쳐버렸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예감.

“인상 찡그리지 마.”

그런 기색이 겉으로 나왔던 걸까. 린슬렛이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콧대 위를 매만져 눈썹을 펴게 했다. 그리고 이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보였다.

“린슬렛.”

“응, 티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나도.”

“….”

모르겠다.

나는 욕조에 앉은 조그마한 소녀를 내려다보며 눈을 마주쳤다. 그 표정에서는 아주 조금도….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라쿠스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그 사실에 가로막혀 나는 말문이 떨어지질 않아 몇 번이고 망설였다.

“…. 왜 게임을 하는 거야?”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린슬렛이었다.

“가끔, 왜 날 돕는 건가 싶어서. 그래서 몇 번이고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그게 제일 궁금해.”

핵심을 꿰뚫어보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그런 말에서, 린슬렛이 나라는 사람을 믿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타나토스라는 플레이어, 나아가 이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

린슬렛 역시, 나를 믿지 못할 이유는 충분한데.

“티티?”

“아니, 미안. 잠시 생각 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끼며 욕조에서 떨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인내심 있게 대답을 기다리는 린슬렛.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하지만 다음 순간, 엄청난 폭음이 귓가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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