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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63화 (63/321)

63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늦은 밤, 어둠에 잠긴 공사 현장에 밝은 불빛이 번뜩였다. 컨테이너 차량 위쪽에 달린 야간작업용 조명이 켜진 걸 확인한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해킹 끝. 이제 잘 보이지?”

그 바로 앞에서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한 에스콰이어 하나가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슬쩍 뒤쪽에 서있던 나는, 모여드는 에스콰이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린슬렛을 포함해 열 사람 정도.

가웨인은 오지 않고 단지 우리를 배웅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쪽의 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서일까. 비슷한 이유에선지 비비안 역시 자리에 없는 상황.

“늦지 않고 왔군. 린.”

“하, 너야말로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앤더슨.”

대치해 선 린슬렛과 앤더슨이 한 차례 기 싸움을 벌이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은 미묘하게 앤더슨의 방향으로 물러선 상태였다.

“….”

나는 미끄러지듯 다가가 린슬렛의 뒤에 섰다. 넬 역시 뭔가 결의에 찬 얼굴로 반대편의 놈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원판 등장까지 30분 정도 남았어.”

그리고 그 사이로, 방금 전 불빛의 해킹을 마친 에스콰이어가 심판을 맡겠다는 듯 스윽 끼어들었고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이 슬며시 뒤로 떨어졌다. 그리고 린슬렛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전면부에 사자 머리가 달린 둥그런 방패를 소환해 팔에 착용했다.

“라이온 실드. 확실히 성가신 무기지”

그 모습을 보고 웃은 앤더슨이 두꺼운 양날도끼를 가슴 안쪽에서 뽑아들고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고리가 촘촘히 박힌 가죽 재질의 마스크. 민소매로 된 가죽 재킷이라는 흉흉한 녀석의 인상에 어울리는 투박한 형태였다.

“승부는 상대의 방어력을 제로로 만들면 이기는 걸로?”

“무슨 소리야. 확실하게 쓰러뜨려야지.”

심판 역할을 맡은 에스콰이어의 말에 앤더슨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눈빛에서 나는 린슬렛에 대한 걱정이 슬며시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동감이야. 앤더슨. 주제도 모르고 나선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 아 그럼, 다른 분들은 주변의 감시를 하면서 적당히 구경해주시면 됩니다. 저희가 감시하기 좋은 위치까지 물러서면 두 사람은 결투를 시작해주세요.”

그리고 심판은 천천히 나와, 반대편에 있던 다른 에스콰이어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뒤로 물러서기 전 마지막으로 린슬렛의 모습을 확인했다.

“리, 린슬렛님! 힘내세요!”

“헤헤, 맡겨만 둬!”

넬의 격려에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우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나는 입안에 침이 마르는 걸 느끼며 그대로 뒤로 물러서 컨테이너박스 위에 올라섰다. 원을 그리듯 공사현장을 포위하고 선 에스콰이어들.

두 사람이 충돌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 방어적으로 나갈 거라고 생각한 내 예상과는 달리 먼저 파고든 것은 린슬렛이었다. 무거운 날이 달린 도끼를 걸어 아래쪽으로부터 튕겨 올린 그녀가 방패를 휘둘렀다.

“언제나 같은 방식이군.”

하지만 예상한 바였던 것일까. 앤더슨은 지체하는 시간이 없이 곧장 뒤로 물러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말일까.

“뭐, 정도(正道)는 언제나 잘 통하는 법이, 라!”

침착하게 중얼거린 목소리의 끝에서 도약한 린슬렛이 다시금 공격했다. 하지만 그 극한으로 비좁은 간격을 내주지 않겠다는 듯 앤더슨은 도끼를 휘둘렀다.

허공에서 두 무기가 부딪쳤다. 도끼 자체는 무게와 길이가 있어 몸에 달라붙은 방패보다 한 템포씩 움직임이 느렸지만 앤더슨은 능숙하게 간격을 내어주지 않으며 계속해서 린슬렛의 공격을 방어해냈다.

“그래도 솜씨는, 늘었군!”

“애초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싸운 게 반 년 전이었으니까! 앤더슨!”

공방이 점점 빨라지며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소리가 끝나기 전 또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두르고, 막고, 튕겨내며 두 사람의 공방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딱딱하게 잡힌 앤더슨의 팔 근육에 핏줄이 서고 조금씩 벅찬 기색이 묻어나왔다.

“앤더슨! 이러면 너무 시시한데!”

“큭!”

린슬렛이 호기롭게 소리치며 템포를 한 층 높였다. 녀석은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비틀며 그 사이사이 거의 발악에 가까운 앤더슨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그리고 유효타가 적중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쩌억, 하는 폭음과 함께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동시에 검은 인영이 먼지 속으로부터 튕겨져 날아가 반대편의 철골 구조물에 처박혔다.

“컥?!”

“린슬렛…?!”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구부러진 철골구조물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이해를 하지 못한 나는 반대쪽의 먼지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욱하던 먼지 구름이 무언가에 빨아들여졌다.

“하, 역시 방심 잘하는 부분도 그대로군.”

앤더슨이 들고 있는 도끼의 날 표면에 조그마한 파이프가 여러 개 돋아난 상태였다. 각각 날 바깥쪽을 향하고 있는 파이프는 앤더슨이 힘을 주어 던지자 공기를 뿜어내며 회전해 린슬렛을 향해 날아갔다.

“무기를 던질 수 있는 스킬을 지닌 건, 이제 너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린슬렛!”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걸 느끼며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린슬렛은 내 목소리에 몸을 움찔하고는 방패를 들어 날아드는 도끼를 쳐냈다.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소리가 났다. 그 정도로 도끼의 충격이 엄청났다는 걸까. 하지만 중심을 잃고 하늘을 솟구친 도끼는 이내 원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콜록…! 마, 많이 늘었는데. 새비지 재킷.”

“그쪽은 뭐 없나? 가디언 재킷.”

여유롭게 중얼거린 앤더슨이 다시금 공기를 끌어 모아 충전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린슬렛은 이를 악물 며 방패를 손에 쥐고는 던졌다.

“그걸 놔둘 것 같아!”

“늦었어.”

하지만 도끼는 이미 주인의 손을 떠난 뒤였다. 날아드는 방패를 튕겨내며 허공을 가른 도끼가 린슬렛을 향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린슬렛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날렸고, 그 머리 위를 스친 도끼가 두터운 철골을 나뭇가지처럼 두 동강냈다.

“앤더슨…! 윽!”

반으로 잘려져 나간 철골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반대편 바닥에 꽂힌 라이온 실드를 보던 린슬렛은 복부를 움켜쥐며 다른 방패를 꺼내 다시금 도끼를 회수해 충전을 시작한 앤더슨에게 집어던졌다.

날아간 방패가 녀석의 안면에 깨끗하게 명중했다. 턱이 들리는 모양새에 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으나,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비지 재킷의 기본 능력을…. 너무 얕보는군.”

코피가 주륵 흘렀지만 앤더슨은 아무렇지도 않게 턱을 꺾으며 준비를 끝마치고 다시 도끼를 집어던졌다. 광포한 폭음과 함께 도끼는 다시금 허공을 갈랐다.

“그렇다면!”

호기롭게 소리친 린슬렛이 자리를 지키고 날아드는 도끼를 바라보았다. 다른 곳으로 날아간 방패를 대신해 세 번째 방패를 꺼내든 그녀는 곧이어 방패를 앞으로 세우고 허리를 숙였다. 표면에 금이 간 방패의 모습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도끼가 방패와 충돌했다.

“크윽…!”

바닥에 스키드 마크와 비슷한 선을 남기며 린슬렛은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표면에 도끼가 닿는 순간, 방패가 꽃봉오리처럼 접히며 도끼가 튕겨져 나가는 걸 방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슬렛은 도끼의 힘에 의해 20미터는 밀려나서야 자리에 멈춰 섰다.

“하, 드디어 잡았네.”

하지만 녀석은 상쾌하게 웃으며 앤더슨을 바라보았다. 앤더슨이 다시 불러들이는 걸까. 도끼에서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자루가 흔들렸지만, 린슬렛의 방패는 그것을 계속해서 움켜쥔 상태였다.

“내가 이름 붙이길, 이름하야 캐치볼 실드. 어때?”

“괴상한 이름이로군.”

“그래야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어쩔 생각이지? 린. 그 팔로 계속해서 싸우겠다는 건가?”

하지만 앤더슨은 여유롭게 땅바닥에서 조그마한 돌을 주워들고 린슬렛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평범했던 돌에 무언가 검은 액체가 달라붙는 걸 확인했다.

“확실히, 이래서야 팔은 못쓰겠네.”

그리고 린슬렛은 피식 웃으며 추욱 늘어진 양팔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애처롭게 떨리는 녀석의 팔을 보았고 앤더슨이 돌을 휙 집어던졌다.

“큭!”

평범한 돌의 경도라면, 재킷의 기본 방어력을 뚫을 정도의 통증은 주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탄환처럼 날아간 돌이 무릎에 맞자 린슬렛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야만인이라고? 돌 던지는 법 정도야 기본 스킬로 가지고 있지.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그 팔로.”

야만인이라는 말과는 달리, 앤더슨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먼 거리에 멈춰 섰다. 린슬렛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미동도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내,

“…. 아파아아.”

우는 소리를 내며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했다. 가녀린 팔은 금방이라도 꺾일 것처럼 부들부들거렸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 린.”

“앤더슨. 너야말로 너무 사람을 얕보는 거 아니야?”

“뭐…?”

“한 가지 물어볼게. 너는 왜 랜슬롯이 되려는 거야?”

“단순해. 기사의 명예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랜슬롯이 된다면 더욱 더….”

“안되겠네! 앤더슨. 넌 랜슬롯이 될 수 없어.”

“헛소리로 시간을 끌 생각이라면….”

“아이젠하워가 말했잖아. 원판은 그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안타깝게도 넌 탈락이야.”

“….”

“난 단지 지킬 수 있으면 되거든, 앤더슨. 그리고 지키는 일에 손은 굳이 필요하지 않아. 왜일까?”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푸른색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방패 부분의 주변으로부터 방어막처럼 피어오른 푸른 기운은 랜슬렛의 몸에 뒤덮였다.

“저 기술은…!”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 자신이 방패가 되면 되기 때문이야.”

그리고 린슬렛이 사라졌다.

“…!!”

그리고 다음 순간, 앤더슨의 육중한 몸이 허공에 치솟았다. 그것을 치고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린슬렛은 망가진 방패를 품에 넣고 꽂혀 있던 다른 방패를 주워들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앤더슨이 자세를 바로하며 땅바닥에 착지했다.

“린슬…!”

하지만 린슬렛은 녀석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 다시금 돌진해 녀석을 들이받았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옆구리를 얻어맞은 앤더슨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라이온 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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