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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61화 (61/321)

61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머머머머, 회장님. 어디서 이런….”

부인이 가볍게 다가와 내 손을 움켜쥐고는 매만지기 시작했다. 살짝 주름이 지기 시작한 부드러운 손, 각종 액세서리의 차가운 감촉과 화장품 냄새가 느껴졌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만나서 나중에 날을 잡고서 설명드리는 걸로.”

“아아아니이이, 모델? 모델 지망인가요? 내가 괜찮은 잡지 사장을 알고 있는데….”

“크흠, 여보.”

“오, 오마나 내 정신 좀 보련….”

뒤쪽에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는 소리에,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는 물러섰다. 나는 의아한 기분에 눈썹이 찌푸려지려는 걸 막으며 정현 씨의 뒤로 다시 물러섰다.

“어쨌든 회장님. 좋은 파티가 되셨으면 좋겠군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말씀을…. 가죠. 이준 씨.”

다시금 대치한 정현 씨와 남자가 적당히 인사를 했고, 나는 부인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며 다시금 연회장 내부를 거닐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주변을 힐끔거리고는 고개를 숙여 정현 씨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저, 저기요.”

“허리를 숙여, 주변을 힐끔거리며, 거기에 귓속말까지. 모두 안 좋은 행동입니다. 자제하십시오.”

“네엡.”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조금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장소로 걷겠습니다. 질문은 그때 하시는 걸로.”

무서운 사람.

정현 씨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슬쩍 술잔을 가지러 가는 척 연회장 내부를 돌고 있던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잔을 집어 나에게도 한 잔 내밀었다. 나는 지금이 타이밍이라 생각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데, 많이 급해서.”

“아마 주다연 양은 위층에 있겠지요.”

무뚝뚝한 목소리.

“어린 손님들은 보통 그쪽에 모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장 올라가는 건 시기 상 좋지 않고, 한동안은 저와 어울려주셔야겠습니다.”

“저, 정현 씨…!”

나는 당혹감이 몰려드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급하다는 말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내 필사적인 외침에도 정현 씨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이준 씨는 빚이 있으니, 잠시 제 체면도 봐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턱시도를 입힌 겁니까…?”

“예, 마침 잘생기셨으니 도움이 되겠죠.”

“잘생겨…?”

“그것밖에 없다는 말도 되지만. 현재로서는.”

약간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가 가볍게 내 손에 들려져 있던 잔에 자신의 것을 부딪쳤다. 하지만 마시지는 않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좋을 대로 하세요.”

나는 우정현이라는 여자에 대해 슬쩍 안 좋은 기분이 드는 걸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손을 내밀어 창살처럼 치켜 올라간 내 눈썹을 매만졌다.

“아직 어린아이로군요. 역시.”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오시죠.”

그리고 그녀는 날 둔 채 연회장을 돌기 시작했다.

“….”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내가 무턱대고 분노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정현 씨의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일부러 그런다는 듯. ‘어디 한 번 네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자.’라는 기색이 느껴져 나는 거기에 또 다른 종류의 분노를 느꼈다.

차갑게 깔려서 얼어붙은 분노.

“오셨군요. 국장님.”

“아, 우 회장ㄴ…. 어머, 어머, 어머.”

그건 그렇고 이런 반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나는 얼굴에 쓰고 있던 안경이 미끄러질 정도로 당황해하는 여성을 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뭐가 그리도 즐거운 건지 정현 씨는 쿡쿡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쪽은 이준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끼는 아이죠.”

“어, 어디서 이런 예쁜이를…. 아, 아니. 크흠!”

“….”

뭐 대충, 높으신 분들과의 만남은 그런 식이었다. 똑같이 정현 씨와 내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면, 남성이고 여성이고 거리낌 없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건실한 청년이군요. 나도 소싯적에는….”

“여보, 헛소리하지 마세요. 아…. 이준, 이라고 했던가. 혹시 용돈 같은 거 필요하면….”

라는 부부의 반응이라던가,

“혹시 나이 많은 여자에 관심이 없니?”

그렇게 이야기하며 윙크를 하는, 담배를 멋들어지게 빼어 문 여성이라던가.

뭐어….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정현 씨와 의미심장한 눈빛 교류에 집중을 하는 쪽도 없지는 않았다. 소수였지만. 나는 그런 부류에 대해 좀 더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는 정현 씨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후, 이것도 지치는군요.”

그리고 깨나 시간이 흘러, 정현 씨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결국 입도 대지 않은 술잔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웃으며 날 보았다.

“어떻습니까. 상류 사회는.”

“구역질이 나는군요.”

나는 솔직한 감상을 냈다. 즐거워 모인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아는 파티와는 전혀 다른 종류.

“익숙해질 것 같습니까?”

“그럴 리가….”

“하지만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이곳에 있으려면.”

“그건 어떤 의미로?”

“여러 가지 의미로.”

중얼거린 그녀가 매혹적으로 웃었다. 귀 밑에서 자른 단발이 슬쩍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에 간질여졌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쩐지 그녀가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드려볼까요.”

“또 뭐죠….”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금세 회복한 정현 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연회장의 안쪽에 있는 바 테이블을 슬쩍 손으로 가리켰다.

“가서 한 잔 하시죠.”

“네?”

“종류는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주문을 하고 잔이 나오면 테이블에 기대어서 좌중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걸을 때는 당당하게, 하지만 약간 소년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 지는 않지만.”

그 의중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정현 씨는 더 이상의 오더는 없이 바 테이블과는 정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금 앞머리를 매만지려다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 만지고 싶다.

앞머리를.

“…. 넬.”

“네넬!”

어쨌든 지금은 좋은 찬스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디멘션 커넥터의 스테이터스를 비공개로 설정한 채 바 테이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정현 씨의 요구대로 등을 곧게 편 채, 바지 주머니에 엄지를 슬쩍 넣고는 까끌까끌한 수염 자국을 가볍게 매만졌다.

“린슬렛에게 전화를 걸 테니까. 그쪽 상황을 봐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지난번 시험을 쳤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휙, 옷을 갈아입어 나와 같은 턱시도 차림으로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추가해서 착용했다.

“헤헤, 뭔가 비밀요원 같네요!”

“…. 넌 참 즐겁게 사는 것 같아.”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007 제임스 본드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말이죠!”

“그, 영화….”

요새는 안 나오던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연회장 건너편에 있는 바 테이블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올백 머리를 하고 있던 바텐더가 나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알겠습니다.”

내 주문에 바텐더가 이것저것 술병을 가져와 섞기 시작했다. 그 알 수 없는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이내 인터페이스를 누르는 동작이 보이지 않도록 기댄 채 린슬렛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자, 잠깐만…. 여보세요?]

예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틀어 올려 묶은 머리, 살짝 부드러운 느낌이 가미된 화장에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의 상반신이 눈에 들어왔다.

“2층이냐.”

[너 정말 온 거야…? 응? 아, 당구?]

“네가 오라며.”

녀석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바쁜 건지 끊임없이 바깥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 내가 언제! 아, 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넬이나 승인해줘.”

[으, 으음.]

“다녀올게요♡”

허가가 떨어지자 넬이 부담스럽게 하트를 날려대며 건너편으로 향했다. 나는 보드카 마티닌지 뭔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무뚝뚝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어쩔 생각이야…?]

“뭘 어쩌긴, 가야지.”

[아니, 그, 으. 나는 지금 뭐 하느라…!]

[흐음, 린슬렛님. 사교 토크으, 를 하고 계시는군요!]

[네, 넬!]

“아가씨네.”

[아가씨라고 하지 마!]

“어쨌든, 10분 안으로 나갈 거야. 그렇게라면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출 수 있어. 너 그 드레스, 재킷이냐.”

[으, 응. 중간에 몰래 바꿔치기 해왔어….]

“보드카 마티니, 나왔습니다.”

나는 바텐더로부터 잔을 받아들고 뒤로 돌아섰다. 한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둔 채 기대어 서자 갑작스럽게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체 뭣 때문인지 싶었지만 나는 정현 씨가 가만히 이쪽을 관찰하듯 보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유가 뭐지.

아니, 지금 저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여기서 몰래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볍게 술을 한 모금.

[열 분 정도 계시네요. 호오, 가웨인님도.]

가웨인?

“그 녀석 좀 바꿔봐.”

[왜, 왜애?]

“빨리.”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고는 정현 씨가 주문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 턱시도의 재킷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기대는 동작을 우아하게, 우정현 씨처럼 하려고 노력하며 가만히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가웨인의 모습이 비춰졌다.

[아, 전화 바꿨는데…. 음, 근데 그냥 권한을 넘긴 것뿐인데 그렇게 표현해도 괜찮나?]

“가웨인.”

[오! 무뚝뚝이. 사랑한다고 말이라도 하게?]

“….”

죽이고 싶다.

[아하하! 농담이야. 농담. 무슨 일이야?]

“공교롭게도 지금 여기에 와있어서.”

[진짜? 와앗, 이거 나만 너무 개인 정보 보여주는 거 아닌가? 나중에 해코지 하는 거 아니야?]

“린슬렛을 데리고 나가려는데, 좀 도와주면 좋겠어.”

[흐음, 너희 너무 서로 좋아하는 거 아니야?]

“….”

옆에서 아니거드은! 하고 외치는 린슬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주변에서 누군데? 뭔데?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했는지 물러섰다.

[뭐, 그래. 도와줄게.]

“때를 봐서 2층으로 갈 거야. 탈출 경로를 모색해줘.”

[알겠습니다. 대장.]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신기하네.”

린슬렛의 어머니.

우아한 오프 숄더 드레스에 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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