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뭔가 이상하군.
집으로 돌아와, 유하가 차려준 밥을 감사히 먹은 나는 멍하니 상념에 잠긴 채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묵직하게 입안에 감기는 듯한 무거운 맛을 즐겼다.
“준.”
“….”
“주인니임?”
“아까부터 저러는데, 넬. 바깥에서 무슨 일 있었나요?”
“딱히, 이렇다 할만 한건….”
린슬렛과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난 그녀가 복잡한 얼굴로 일이 생겼다면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려던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애초에 손을 잡은 행동도 너무 나갔다. 나는 린슬렛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나중에 목을 조르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컸다.
“빌어먹을.”
묵직한 감각의 뒤에 내가 싫어하는 쓴맛.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건 에스프레소의 맛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유하의 솜씨가 이럴 리 없다.
나는 기분이 좋지 못한 것이다.
“넬.”
그 기분을 지워내듯 나는 고개를 돌려 넬을 불렀다. 가까이 다가온 녀석은 땋은 머리를 흔들며 웃었다.
“네넬~? 주인님, 넬이 위로해드릴까요?”
“그런 건 됐고, 지난번에 부탁한 거, 어떻게 됐어?”
“음,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데요오….”
“어려운 거야?”
“네넬,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내가 묻자 넬은 곤란한 기색을 담아서 대답했다. 역시 그런 건가 싶어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게임의 불친절한 경향을 채우기 위한 방법을 잠시 생각하다가 누군가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역시 린슬렛을 찾아가봐야 하나.”
“음후후, 좋은 변명거리군요.”
“뭐?”
음흉한 웃음에 고개를 돌린 나는, 조그마한 악마의 뿔과 꼬리를 달고 있는 넬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내 그 말의 의도를 깨닫고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아, 아니거든!”
“호오이, 호오이. 역시 주인님은 귀여우셔요.”
젠장.
나는 넬의 말을 무시하고는 디멘션 커넥터의 인터페이스를 불러내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
컵을 닦고 있던 유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가늘게 눈을 뜨고 있는 유하와.
“린슬렛은 누구죠?”
“음, 남자야.”
“린슬렛이요?”
“어, 음.”
“어음은 유가 증권을 어음이라고 하는 거고요.”
“저,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지그시이.”
말까지 해서 노려보고 있다.
나는 왠지 유하가 들고 있던 컵에 금이 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등을 찌르는 듯한 시선을 느끼며 카페 바깥으로 나갔다.
[응, 티티.]
전화를 걸자 곧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온도가 그다지 낮지 않아, 나는 적당히 가게 근처에 있던 조약돌을 걷어차며 입을 열었다.
“어디냐.”
[잠깐…. 파티.]
“? 퀘스트 중이야?”
[아니, 정말로 파티.]
“무슨?”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다. 그 말에 몇 번이고 우물쭈물하며 뜸을 들이는 린슬렛. 나는 그 곤궁함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증폭되는 걸 느꼈다.
바이올린 소리.
“파, 파티 파티?"
[그럼 파티 파티지 무슨 파티겠어…!]
“주, 주인님? 파티 파티라는 건 대체…?”
옆에서 넬이 당황해 중얼거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머릿속에는 파티의 전경이 펼쳐진 상태였다. 높다란 샹들리에, 번쩍번쩍한 불빛, 샴페인으로 비롯되어 각종 술. 거기에 음악과 높으신 분들까지.
하지만,
“너, 이따가 결투 있지 않았냐?”
[그, 그렇, 지.]
목소리에 힘이 없다.
나는 그런 기색을 느끼고는 슬쩍 앞머리를 매만졌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기도 전,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녀석이 헤어지기 전 전화를 받았던 순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창백했던 얼굴이 아로새겨졌다.
“못나오는 거냐.”
[…. 응.]
“어딘데.”
[왜, 왜애?]
“말해.”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아, 아니야! 티티! 으, 으음. 오늘…. 무척 중요한 자리라고…. 엄마가…. 나도! 나도! 저항은 해봤는데, 아무래도 안 되더라고…. 아하하!]
꾸며내 웃고 있다.
“내가 도와주면, 너한테 실례인 거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린슬렛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모든 기운을 다 내려놓고, 담백하게…. 그 ‘여자’라는 색은 도무지 빠지지 않았으나 나는 그녀를 머릿속에 그렸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멋진 여자. 허나 꿈을 좇고 있는 여자.
그 여자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맞아.]
그리고 그녀는 내 예상과 정확히 맞는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린슬렛을 여기까지 파악하게 된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내가 바보 멍청이인 거겠지. 그냥 싫다고 하면 되는 건데….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걸.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가 않으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바이올린의 소리가 멎고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린슬렛이 테라스에 기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상상했다.
[어떻게, 하지?]
“나와.”
[하지만 그럴 수 없는걸!]
“그쪽으로 갈 테니까.”
[오, 오지 마! 이 바보야!]
“몰라. 얼굴 보고 얘기해.”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는 린슬렛의 다음 대답이 들려오기 전, 전화를 끊었다.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색을 느끼며 몸을 비틀어 뒤로 돌아섰다.
“음, 주인님?”
“왜.”
“그, 그러니까. 주소를 모르시잖아요?”
“허락도 받지 않았지.”
그래서 갈까 말까 방금 전부터 고민 중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넬을 지그시 바라본 나는, 이내 눈앞에 팝업창이 떠오르는 걸 확인했다.
린슬렛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주소가 적혀진.
“…. 오라는 거지?”
“휴휴, 두 분 다 새침새침하시네요오.”
입에 손을 올린 채 가볍게 웃는 넬. 나는 그런 모습에 다른 고민을 하나 떠올리고는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어쨌든 유하에게 인사를 해야겠다 싶….
“그때의 그 분이신가요.”
유하가 문자 그대로 칼을 갈던 도중 고개를 들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표면에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으, 으음.”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으음.”
“…. 준?”
그렇게 있자니 유하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비어 있는 시간이 있지만 오래 지내온 만큼 내 얼굴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일까.
“자, 장난인 거 알잖아요?”
“그렇, 지.”
칼을 휙 내려놓은 그녀가 얼굴이 붉어져서는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쥐었다. 걱정스러운 듯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 그리고 이내 유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우직한 사람이니까요. 준은. 미안해요. 누나가 조금 심하게 어리광을 부렸네.”
“누, 누나가 장난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린슬렛과 이대로 관계를 진전시켜도 될지 모르겠다.
그녀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그 자그마한 가능성이 거미줄처럼 눈앞에 쳐진 채였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그녀가 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좋은 거 가르쳐줄까요?”
“뭐?”
“할까 말까 고민이 있을 때는 일단 하고 본다. 그게 우리 가족의 철칙이잖아요?”
“하긴, 예전에 유하가 자주 말해주긴 했었지.”
“어머, 그랬나요? 전 아저씨가 해주신 말이라고….”
“유하 기억에는 그렇게 남아있는 건가아.”
나는 적당히 머리를 긁으며 뒤로 돌아섰다. 어쨌든 방금 전의 대화로 조금은 고민이 가셨다. 그래서 내가 막무가내인 일면이 있는 건가 싶었다.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후후, 잘 다녀와요.”
부드러운 유하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자, 잠깐 안에 친구가.”
정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비원 둘이 나를 제지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대문과, 그 뒤로 펼쳐진 드넓은 정원에 저택이었다. 정말 여기가 그 땅 좁은 대한민국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집이었다.
린슬렛이 찍어준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이 자식, 그 정도로 대단한 집 아가씨였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비원들에게서 물러섰다. 대문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가로등 밑으로 돌아온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 인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넉넉잡아 수천 평은 되겠다 싶을 정도로 거대한 저택 인근을 수많은 경비원들이 배회하는 중이었다. 아마 내부에는 경비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을 터였다.
“잠입할까.”
“아, 안돼요! 린슬렛님이 곤란해 하실 거라고요?”
“끄응.”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저런 녀석들과는 달리 나는 그저 가죽 재킷(사실 가격으로 따지자면 저런 녀석들이 입은 것의 수천 배는 될 테지만)에 청바지라는 평범한 서민의 옷이었다.
어떻게 뚫고 들어가지.
“초청된 요리사라고 거짓말할까.”
“하, 차라리 요리될 재료라고 하죠.”
노골적으로 비웃는 넬. 상처받았다.
“어쩐담.”
들어가는 방법. 뭔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도로 반대편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춰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으로 물러섰지만 차량은 속도를 줄이다 이내 내 앞에 멈춰 섰다.
“…?”
차에서 누군가 내렸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구한 인연이군요.”
검정색의 시스루 드레스를 멋들어지게 갖춰 입은…. 우정현이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파우치에 달린 액세서리가 우아하게 반짝거렸다.
“왜 이런 곳에 계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다, 당신이야말로?”
“파티에 초대되어섭니다. 물론.”
“그렇, 겠군.”
나는 뻔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가만히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깊은 눈동자에 현명함이 깃드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주다연 양도 오셨다더군요.”
“….”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