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준 겁니다.”
“…?”
‘모르가나’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었다.
들어본 기억이 있다.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마녀.
“일단 기본적으로 아서리안에 귀속되어야만 작동하는 프로그램으로 기능은 간단합니다.”
나는 번쩍거리는 검정색 보석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모르가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넬이 호오, 하는 소리를 내며 거기에 자신의 눈동자를 비춰보았다.
“하루에 한 번. 정신력을 소모해 주변의 디멘션 커넥터를 해킹할 수 있죠. 이걸 이용해 어떤 에스콰이어의 디멘션 커넥터에 진입해 당신의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 아줌마. 이거 어디서 난 거야.”
뭔가 조각이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정현을 향해 다가갔다. 엄지와 검지에 받치자 그 좌표를 읽고 따라온 모르가나를 그 앞에 말했다.
“이건 들어야겠어.”
“하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이름을 말하면 아시겠습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엘레노어의 개발자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라고 되물을 뻔 했으나 나는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걸 느꼈다. 분명히 ‘엘레노어’를 ‘개발된 인공 지능’이라 칭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건 분명히 우한 그룹 산하의 IT 기업에서 개발되었다고 들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아니, 일단 기억만 해두자.
“그럼 혹시, 이게 외부로 퍼진 적은 있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 다 말할 수 없대…?”
나는 슬쩍 흥분해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섰다. 비비안이, 혹은 당시 기사단에 있던 사람이 사용했던 ‘디멘션 커넥터를 해제하는 일’은 이걸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확증이 필요한데.
눈앞의 능구렁이는 말해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의뢰를 받으시겠습니까?”
“…. 빌어먹을.”
나는 뒤쪽으로 돌아서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린슬렛에게 안 좋은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녀를 아직까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녀는 어쨌든 라쿠스 기사단의 소속이었기에.
“좋아, 받아들이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우정현에게 모르가나를 돌려주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거절하고 내게 다시 전송했다.
“나중에 쓰실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당신처럼 높으신 분들과는 달리 인권 의식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서 아서리안을 플레이하십니까?”
“….”
거기에 대해서 지적당하자 나는 할 말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하긴, 내가 누구에게 나쁜 짓을 한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었다. 결국 나부터 개자식이었기에.
“그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해두는 걸로 할까.”
“그러시죠.”
우정현이 고개를 끄덕여, 나는 그녀와 함께 방 바깥으로 나왔다. 하지만 창문을 나서려던 중, 뭔가 할 말이 떠올라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한 가지 더 묻고 싶은데.”
“말씀하십시오.”
“왜 나를 선택한 거지? 린슬렛의 주변에는 다른 사람도 있었을 텐데.”
“…. 디멘션 커넥터를 해킹했을 때 당신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거냐고.”
우정현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반지 자국이 있는 약지를 가볍게 매만졌다.
“그런 청년은 싫어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모순됨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고 가려는 자를.”
“….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군.”
“그렇습니까?”
“그래.”
하고 거울을 보며 자조하듯 중얼거린 나는 이내 우정현이 해킹한 디멘션 커넥터가 우아랑의 것임을 알아챘다. 그녀를 보낸 것도 우정현 걸까. 잠시 생각해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
“제 쪽에서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괴리감에 눈을 동그랗게 뜨니 우정현은 이내 벽에 기대어 서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잘 지내는 것 같습니까?”
“우아랑 대위?”
“네.”
“…. 적인 나에게 물어도.”
딸인 건가.
“그렇군요.”
“나중에 그쪽에 관해서도 보고서를 쓸까?”
“괜찮습니다. 사적인 부분까지 일을 맡길 수는 없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 우정현이 이내 가까이 다가왔다. 하긴 요새는 법률이 바뀌어서 어머니의 성씨를 물려받는 것도 이상한 시대는 아니니까….
“?”
그렇게 생각하던 중, 뺨에 손길이 닿았다.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주, 주인님! 이번에는 중년 여성의 마음을…!”
아니거든. 하고 중얼거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정현의 시선은 그런 것보다도 좀 더, 그리운 것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 그리고 한 마디만 더.”
우정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 나이는 41세입니다.”
“아얏?!”
볼을 꾸욱 꼬집었다. 나는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 이런 힘이…?!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계약을 맺을 때 그 조항도 추가하죠. 호칭은 우정현 회장님. 말을 할 때는 ‘다나까’를 쓰도록.”
“지, 진심이냐?”
“물론 진심입니다.”
“….”
어이가 없다는 내 얼굴에 우정현은 싱긋 웃었다.
◇
내일은 아침 수업이 있다. 거기에 오후에는 에픽 퀘스트까지. 하지만 다연은 침대에 퀭한 눈으로 드러누워서는 디멘션 커넥터가 표시해주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시 30분.
“내가아아아아…! 미쳤지!”
그녀는 안고 자는 베개를 목을 졸라 죽일 기세로 끌어안고는 푹신한 침대 위에서 발버둥 치며 괴로워했다. 본격적인 전투까지 벌어졌던 긴 하루였기에 몸은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으나 정신은 멀쩡하다 못해 날아다녔다.
부드러운 볼이었다.
“…. 우, 우으으으읏.”
하지만 죽을 것 같았다.
부끄러워서.
부드러워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모르겠다. 스스로 생각해서 나온 결론은 존재했지만 그걸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연은 차가운 태도로 자신을 지적했던 남자에 대해서 떠올리고는 머릿속의 결론을 다시금 생각했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
…. 그런 이유에서였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싫었는데, 그 무뚝뚝하고 중이병에 냉정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언젠가 이렇게.
“아니…. 아니이이이….”
다연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침대에 머리를 쿵쿵 찍으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그렇게 떨쳐내려고 해도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지 오래였다.
잘생겼다.
쌍꺼풀이 진 커다란, 사슴 같은 눈망울. 부드럽게 솟아오른 완벽한 코,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웃을 때와 무뚝뚝하게 있을 때마다 순수와 쿨을 오가는 표정. 미청년과 마초남의 경계를 오가는 그 오묘한 매력.
거기에 키도 크고….
올려다보아야 하는 그게, 멋져서.
몸도 좋고.
목소리도 중저음에.
살짝 서투른 그 태도가.
차가운 듯 잘해주는 것이….
“으으으으으으으으!”
저, 정말로 반한 건가?
아니, 그으? 그렇게 되면! 그 장난 삼아 했던 카페의 사건이나 그런 건?!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걔는! 그렇게 예쁜 언니랑 같이 살기까지 하는데!
“…!!”
괴로워져 침대에 얼굴을 처박은 주다연은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사실 그때 그 카페에서는 반쯤 장난을 치기 위해서 일부러 관심 있는 척을 했던 것이었지만….
“너구리, 를 보호해준 거나….”
아니면,
“토끼 구해준 거….”
라던가.
매사에 진지하고 생각이 깊어 보이는 모습이.
멋있, 달까.
“어, 어쩌지.”
주다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돌연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 앉았다. 그리고 이내 화장대로 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른 체격, 키는 165정도. 발육이 좋은 요즘 애들과는 비교해봤자 가슴만 아플 정도로 빈약하다.
얼굴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은 있지만, 금발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이국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 사람의 눈에 차지는 않겠다 싶어서.
아니 애초에, 그런 면으로는 눈치도 무척이나 없는데다가 관심도 없어 보이지만.
“우으.”
그래도 같이 있으면 좋았다.
편했다.
엄마나, 학교 사람들. 아니면, 라쿠스 기사단의 일원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의 린슬렛 그리고 주다연을 그대로 봐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렇게 중얼거리고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던 주다연은 이내, 디멘션 커넥터의 알림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속이 있다던 엄마가 지금 돌아온 것이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겉옷을 걸치고 방을 나섰다.
“다연아아~ 엄마 왔다아~.”
술 냄새.
“어, 엄마아?!”
다연은 놀라 중얼거리고는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엄마를 부축했다. 그리고 새삼 이 비대한 중년 여성의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으며 소파로 데려갔다.
“뭐, 뭘 이렇게 많이 마셨어…?”
“으응~? 엄마가아, 다연이 때문에 산다아~.”
“어휴….”
다연은 한숨을 내쉬고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잔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반쯤 잠이 든 엄마에게 내밀어 마시게 했다. 이런 순간에서조차 자신을 생각하는 모습에, 그녀는 엄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어머니’는 그 시대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악착같이 일을 해 우한 그룹의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자신을 위해.
지금도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좀 더 다양한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심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지속했다.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정재계 쪽으로 가리지 않는 듯싶었다.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어머니를 거절하지 못하는 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
========== 작품 후기 ==========
주인공 외모 묘사에 이렇게 공을 들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