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머릿속이 복잡했다.
“…. 후우.”
지쳐 나가떨어진 유하를 반쯤 억지로 먼저 재운 뒤, 엉망이 된 주방을 완벽하게 치운 나는 12시를 넘겨서야 2층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낡은 매트리스에 드러눕자 스프링이 괴로운 비명을 질러댔고 나는 그 상태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디멘션 커넥터를 만졌다.
우정현.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우한 그룹의 회장으로, 20년 전 어쩌고저쩌고 구구절절 이상하게 미화가 된 정보들로 가득했다. 돈 많은 양반답게 손을 써둔 것인지 개인적인 정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름만 알면 가장 개인적인 정보까지 알 수 있다는 현 시대에서.
하지만 그녀가 날 왜?
그리고 어떻게?
할 킬러즈나 라쿠스 기사단 등등. 생각할 것이 무척이나 많았음에도 나는 다시금 상황이 빗나가자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앞머리를 매만지며 있자니 이내 공중에서 정보를 조사하는 듯싶던 넬이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뭔가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방금 전의 그 여자가 신경 쓰여서.”
“우정현님…. 말씀이시군요! 넬이 같이 조사해볼까요?”
“글쎄.”
그럴 필요까지는 아직 없을 터였다. 애초에 내가 넬에게 가웨인과 비비안의 조사를 부탁한 것은, 그들에 대해서 뭔가 숨기고 있는 의도가 있을까 싶어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 여자는 아무것도 없다.
왜, 그리고 어떻게 날 찾아왔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만나자고 하는 건지.
“…. 설마 잡아 넘기겠다는 건 아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할 킬러즈를 동원해서 오지 않았을까. 그녀는 대기업 회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그런 쪽으로 연락을 취한다면 출동하는데 30초도 걸리지 않겠지.
“역시 아직 잘 때는 아니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킷은 채 벗어두지 않았던 터라, 나는 곧장 인터페이스를 띄우고 품안에서 명함을 꺼냈다.
“음, 어디 또 가시게요?”
“잠시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정현이라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연결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네, 우정현입니다.]
자고로 선수는 먼저 쳐야하는 법이다.
“아까 카페에서 당신이 명함을 주고 갔던 사람인데.”
[…. 아, 이준 씨.]
이름은 이미 알고 있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얼른 끝냈으면 하는데. 혹시 지금 만날 수 있나?”
그 말에 우정현은 침묵을 지켰다. 역시 뭔가 생각하는 꿍꿍이가 있는 건가 싶어,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을 재촉하듯 침묵했다.
[그러시죠. 이곳으로 와주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정현은 슬쩍 적극적인 의사를 내보이며 내게 위치 정보를 하나 전송했다. 나는 그녀의 이런 태도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너무 그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마주치지 않는 이상 모든 건 불확실했다.
“그러지.”
[그럼, 근처에 오시면 전화를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후,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우정현이라는 여자의 태도에는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재계의 톱이라고 할 수 있는 우한 그룹의 회장이면서, 나 같은 놈에게 딱딱하게 존댓말을 쓰는 태도부터 시작해서….
“넬, 방금 전에 왔던 위치 정보 좀 띄워줘.”
잠시 그 단정했던 얼굴을 생각한 나는, 이내 창문을 열고 거기에 발을 디뎠다. 허나 넬은 지도와 마커를 띄우는 대신 아래쪽으로부터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지, 지금 가시게요?”
“응, 왜?”
“아뇨 음. 주인님 피곤하시지 않나 해서요.”
“괜한 걱정이야.”
뭔가 다른 생각이 있나 했더니. 나는 가볍게 중얼거리고는 재킷을 기동시켰다.
- 네크로맨서 재킷, 활성화.
- 환영합니다. 의인화된 죽음이자 기사의 절망, 망자들의 희망이시여.
언제나와 같이 전류가 흐르며 몸에 힘이 돌았다. 품안에서 탄피처럼 튀어나오는 마스크를 잡아 휙 집어던진 나는, 곧장 그것을 따라 도약해 허공에서 붙잡고 장착했다. 철커덕, 하면서 마스크가 자리를 찾는 소리가 났다.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중심부에 떠오르는 마커를 눈으로 확인한 나는 넬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오피스텔이라고…?”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마커가 가리키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서울 중심부의,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오피스텔. 현재는 밤이었기에 조용하고 어두웠지만 낮에는 전면부가 유리창으로 되어 화려하게 반짝일 터였다.
“도착했어. 어디로 가면 되지?”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전화를 건 나는 딸칵. 하는 연결음이 들려오자 곧장 말을 걸었다.
[최상층 1702호입니다. 문을 열어드릴 테니….]
“됐으니까 창문 쪽에 서있어.”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고는 곧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스산하게 조용한 기운이 퍼져있는 걸 보던 나는 곧장 오피스텔의 옥상으로 도약했다.
최상층이라고 했으니.
“넬, 1702호는 어느 쪽 방향일까.”
“잠시만요오…. 안내해드릴게요!”
건물의 데이터를 확인한 넬이 나를 인도해 옥상의 반대편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매끄러운 유리로 된 건물 외벽을 바라보다 그 밑으로 ‘발을 디뎠다.’
수면에 부유했던 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대로, 뇌는 별달리 오류를 일으키지 않고 재킷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나는 천천히 외벽을 걸어 내려가 바닥에 있는 유리창의 앞에 섰다.
그 안에는 우정현이 서있었다.
“들어오시죠.”
익숙한 것일까. 창문을 연 그녀가 뒤로 물러섰고 나는 넬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 이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양쪽에 있는 건물을 박차고 오르지 않더라도 쉽게 옥상어 오를 수 있겠지.
뇌가 다시금 중력을 받아들였다.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이걸 쓰고?”
나는 마스크를 툭툭 두들기며 대답했다. 방안은 어둡고, 적막감에 젖은 상태였고 나는 앞장서 걷는 우정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물건만 있다는 느낌의 집은, 여러 개의 방이 있었지만 가구가 놓여있는 장소는 마루와 안쪽의 사무실 같아 보이는 곳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우정현은 검정색 네글리제에 카디건을 입은 상태였고, 나는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희미하게 켜진 전등불에 비추는 얼굴은 다가오는 세월을 주먹으로 후려친 뒤 다시 오면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처럼 보였다.
“앉으시죠.”
“아니, 괜찮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벽에 기대어 섰다. 그런 반응은 예상한 바였다는 듯 가볍게 웃은 우정현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러지.”
“당신의 곁에, 주다연이라는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
나는 상황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그 아이와 있었던 일을 제게 ‘보고’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정당한 대가는 지불하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은 우정현은 이내 책상 밑에서 검정색의 서류가방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열다 멈칫하고 나를 향해 데이터 조각을 던졌다.
“승인하시죠.”
“….”
내가 꾹 쥐어서 권한을 받자 우정현은 가방을 열었다.
“우와아….”
그 안을 확인한 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마터면 나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일 뻔했으나 참고서는 가방의 안에 가득 들어찬 현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론 방금 전의 승인으로 인해 보이는 가짜 돈이었지만.
“전부 해서 10억입니다.”
“…. 아줌마. 돈 쓰고 싶으면 호스트바라도 가던가.”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으나, 이내 너무 심한 말이었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했다. 10억. 나에게는 천근보다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우정현의 모습에 살짝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허나 우정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넘겼다. 나는 어쩐지 이쪽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이해한다는 듯 있는 그녀의 모습에 생각을 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것만 시키지는 않겠지.”
“네, 앞으로 절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정확히 어떤 걸?”
“그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내 물음에 슬쩍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우정현. 그녀에게 있어 이것이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까. 나는 그녀와 빤히 눈을 마주치며 한 번 주도권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눈을 한 저 능구렁이에게 통할까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돕지 않겠어.”
“10억인데도 말입니까?”
“그래.”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우정현은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문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안 되겠군요.”
“….”
이건 좀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뭔가 다른 형태로 패를 내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단호한 태도를 내보이는 우정현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졌다.
“그렇다면 다른 걸 물어봐도 될까.”
“들어는 보죠.”
“왜 린슬렛의 동향을 보고하라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녀석이 당황할 때마다 내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그립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고는 고개를 털어서 지워냈다.
“그것도 대답해드릴 수 없군요.”
“난 그저 당신의 전서구나 되라는 말인가?”
“네, 제가 현재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일이 있습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말씀드리기는 힘들군요.”
“적당한 시기에는 알려준다는 건가?”
“주다연 양의 일이 매듭지어진다면요.”
“….”
나는 앞머리를 매만졌다.
아서리안. 우한 그룹의 회장. 그리고 린슬렛. 이 세 개의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연관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딱히 모아지는 정보는 없었다.
뭐지, 이 여자.
왜 나에게?
“그럼 다른 질문을.”
“말씀해 보시죠.”
“내가 린슬렛과 연관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내 개인 정보에 대해서 알았는지.”
“그건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겠군요.”
드디어 뭔가 털어놓는 건가.
나는 대답을 한 뒤 눈앞에 인터페이스를 띄워 조작하는 우정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로부터 프로그램이 하나 전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