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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54화 (54/321)

54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무모하다니까요. 주인니이이임….”

“음, 역시 넌 좀 무모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양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욕조의 더 깊숙이 몸을 담갔다.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도무지 이 수은처럼 느껴지는 치료용 약물의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

“무뚝뚝에 무모해서 무무라고 불러도 될까?”

“아하하! 멋진 별명이네요! 가웨인님!”

참고로 가웨인과 넬은, 아까부터 서로 묘하게 대화가 연결이 되고 있는 상태여서 시끄러움은 배가 되었다. 특히나 가웨인의 썰렁한 개그를 넬이 무척이나 좋아해서. 나는 침묵한 채 두 사람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눈앞에 떠오른 팝업창을 노려보았다.

- 척추뼈 손상 회복 중 95%

그 밑으로 내가 입은 부상이 좌르륵 나열이 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들어 스크롤을 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들이었다. 재킷의 백업이 아니었다면 죽었으리라. 아니, 애초에 재킷에 관해서 생각한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런 부상을 3시간 남짓해서 치료하다니.

거기에 통증도 딱히 없고, 단순히 몸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어서 정말로 다쳤는가 싶을 정도였다. 단순히 데이터로 그렇게 표시하고 있을 뿐…. 이 아닐까?

“모르겠군.”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엘레노어가 만든 이 가상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면, 녀석은 역시 신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가웨인.”

“왜 그래? 무무.”

“….”

정말로 그 별명으로 부를 생각인가.

“혹시 재킷을 사용하다 죽은 사람을 본 적 있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애써 본래의 생각으로 돌아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물음에 가볍게 웃은 가웨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한 번도.”

“할 킬러즈에게 잡혀가는 녀석은?”

“아무도.”

“….”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금 묵묵히 ‘치료 중’이라고 적혀져 있는 팝업창을 노려보았다. 두고 보자며 물러갔던 할 킬러즈에 대한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녀석들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는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치료비 내고 왔어~.”

바로 그때, 닫혀져 있던 문이 열리며 린슬렛이 약간 새침한 얼굴을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가웨인의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나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던 녀석은 가까이 다가와 내 코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프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맞아요! 죽고 싶으세요?!”

“죽은 사람이 없다면서….”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 멍청아!”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 멍청아!”

두 여자는 적잖이 화가 난 모습이었다. 아니, 넬은 단순히 린슬렛의 말을 따르고 있을 뿐인 것 같았지만 뭐 어쨌든…. 나는 할 말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좀 멋졌어.”

“…?”

그렇게 두 사람의 싸늘한 시선을 몸으로 받아내던 중, 가웨인이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누가 뭐랄 것 없이 의자에 앉아 상쾌하게 웃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구분할 수 없으면, 차라리 모두 현실이라고 생각하자는 거잖아? 네 생각은.”

그 말에 나는 슬쩍 부끄러워지는 걸 느끼며 욕조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내가 몸을 바쳐서 구해냈던 ‘여자아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후회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같은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나는 어떻게 해서든 여자애를 구해내리라.

구분할 수 없으니.

“요새는 이런 녀석들 잘 없잖아.”

“뭐 그렇지.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바보 같았어.”

약간 질린 얼굴을 해보인 린슬렛이 욕조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살짝 무게감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즐겁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린슬렛을. 하지만 그건 옳은 것일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 원판 조각 획득 (2/3)

“아, 다른 쪽에서 획득한 모양인데.”

팝업창을 들여다본 린슬렛이 슬쩍 들뜬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반대편의 가웨인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린슬렛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그. 이 녀석들은 역시 좀 할 킬러즈를 격퇴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테니까.”

“…. 이유는?”

나는 의아함이 드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날카로운 질문이었는지 흠칫 놀라듯 어깨를 움츠린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티티, 개인 정보….”

“아, 아니! 괜찮아. 린슬렛.”

“가웨인…?”

가벼운 지적을 받던 도중, 가웨인이 제지했고 그런 반응에 린슬렛은 눈썹을 찌푸렸다. 후우, 하고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가웨인은 어려운 이야기를 준비하듯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았다.

“할 킬러즈의 부대장이 우리 아버지시거든. 아마 그래서 우아랑 대위는 중간에 돌아간 거겠지.”

“도련님이셨군. 꽤 보호받는 모양인데?”

그래서 아버지가 무리를 물렸다는 건가.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한 가웨인을 보고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티, 티티…?”

“아, 아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가볍게 중얼거린 가웨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백시호라고 한다.”

“…. 타나토스.”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시선을 반대쪽으로 향했다.

“티, 티티!”

“으음~ 아직 우리 친한 사이는 아닌가?”

“….”

어색한 상황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역시나 아직 녀석을 믿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도리어, 방금 전의 이야기로 인해 조금 더 불신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렇게 있자니 가웨인은 이내 벗어두었던 재킷을 손에 들었다.

“어쨌든, 난 슬슬 가볼게. 몸조리 잘하고. 무무.”

“가, 가웨인!”

“린슬렛은 나중에 저 녀석 좀 바래다줘.”

가볍게 녀석이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서있는 린슬렛과 눈이 마주쳤다.

“티, 티티…. 그거 매너 위반이라고?”

“그렇군.”

“그렇군. 이 아니라…! 하아, 넬도 뭐라고 좀 해봐!”

“에, 예에?! 네, 네루찡은 이론고 잘 몰라욤….”

린슬렛의 분노에 넬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는 당혹감을 내비췄다. 나는 침묵을 지키자 신체의 회복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 더 있지 그래?”

“시간 없어.”

상처가 심해 옷을 벗지 않고 욕조에 들어왔던 터라 나는 옷에서 수은 같은 액체들을 털어내며 밖으로 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자유롭게 몸이 움직이는 터라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려 했으나….

“잠깐만, 티티.”

린슬렛에게 손이 붙잡혔다.

“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리고 고개를 돌린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서있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문고리를 놓았다. 살짝 붉어져 있으나, 어딘지 불안한 듯 보이는 린슬렛의 얼굴.

“너…. 기사단에 들어올 거야?”

“글쎄, 왜?”

“왜, 왜냐니. 아마…. 랜슬롯은 내가 될 테니까. 그 뒤에 너도 같이 기사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해서.”

“….”

“너는 그런 거 없어? 되고 싶은 기사라던가.”

그렇게 중얼거린 린슬렛은 조금이지만 불안한 표정이 더해져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 나는 심장이 조여드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갤러해드.”

“저, 정말? 같이 하면 되겠네! 기사단에 들어와서…. 같이 퀘스트도 하고, 서로 정보도 공유하면서. 파트너도 하고. 으음, 그, 그리고 각종 이득으로 풍부한 결혼 시스템 같은 걸로 결혼도 하면…. 아, 아니! 사적인 감정은 없지만! 응? 재미있지 않겠어? 응응?”

재미라.

린슬렛의 그 한 마디에 나는 역시 그 부분에서 근본적으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은 분명히 즐거움으로 가득해보였다. 아서리안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이, 현실에 지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에 있게 되어서 기쁜 거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그…. 놀이공원 있잖냐.”

나는 줄곧 신경이 쓰였던 사실을 알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린슬렛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서는 어떠한 악의도 없는 것이 느껴졌다.

“부서졌잖아?”

“…. 아 그거? 너무 걱정하지 마. 할 킬러즈에서 따로 운용하는 복구반이 있으니까. 그 녀석들 일처리가 빠르고 신속해서 일주일이면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을 걸?”

그 말에 나는 짜게 식는 감정을 느끼며 린슬렛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돌리고 있던 녀석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 그렇지. 나도 마음이 좋지 못해.”

무겁게 중얼거린 린슬렛은 뒤쪽으로 물러서 욕조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먼 곳을 바라보듯 복잡한 얼굴로 침묵했다. 부서졌던 놀이기구를, 우리의 ‘게임 퀘스트’로 인해 사라졌던 누군가의 즐거운 시간을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여기는 내가 유일하게….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장소니까. 네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굳이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린슬렛은 변명을 하듯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게다가 놓고 돌아간다 한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시민이 될 뿐이잖아? 아서리안에 관한 정보는 머릿속에서 전부 지워질 테고, 정부나 언론의 신뢰할 수 없는 기사만 접하겠지. 그러면서 계속 겁에 질려서 살아갈 거야.”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 린슬렛은,

“그건 싫어.”

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슬렛이 아서리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즐거우니까.”

“그렇다면 주다연은 네 괴로운 부분이라는 건가?”

내 말에 린슬렛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혼이라도 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었다. 뒷짐을 지고 있는 자세에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 겠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난 지금, 너와 있는 게 무척이나 즐거워.”

그렇게 중얼거린 린슬렛은 희미하게 웃으며 날 올려다보았다. 상기되어있는 볼에서 감정이 묻어나왔다.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해. 티티.”

짧은 진심의 다음 순간,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볼에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그 진심만큼이나 나는 닿았던 부위가 후끈거리는 걸 느꼈다. 헤헤, 하고 어린애처럼 웃은 그녀는 이내 ‘다음에 봐.’라는 인사를 남긴 뒤 방안을 빠져나갔다.

“미치겠군.”

“주, 주인니임…?”

앞머리를 매만지고 있자니 눈을 동그랗게 뜬 넬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린슬렛의 진심을 방금 전의 입맞춤으로 느끼고는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무척이나 감정적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라쿠스 기사단의 비밀과 린슬렛은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넬, 하나만 조사해줬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이 바람둥이이….”

“가웨인, 비비안, 린슬렛이 혹시 ‘언제 게임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줄 수 있을까?”

“바람둥이이이이!”

“아, 아니 뭐가 바람둥이야?”

당황한 내가 중얼거렸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넬은 가늘게 눈을 뜬 채 노려볼 뿐이었다. 슬쩍 벽까지 밀린 나는 이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바람둥이인가?

“….”

아니, 그건 곤란한데.

========== 작품 후기 ==========

지난화에서는 분명히 '송대령'으로 읽으신 분이 많겠지만..

생각해보니 유하가 송씨여서... 백씨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변화가 있는데...

제가 설정 짤 때 계산을 잘못해서... 조금 작중 시간이 더 미루어졌습니다.

원래는 2030년에서 2041년입니다.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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