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어쩔 수 없군! 강제로라도 연행하는 수밖에!”
“….”
이 자식, 말이 없지는 않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내 공원 내부에서 녀석과 계속해서 격돌했다. 방어적인 전법을 취하며 날아드는 검을 쳐내고 휘두르는 검을 막아냈다.
단순하지만 강한 전법이다. 나는 스스로의 생각을 수정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날아드는 검이 두 개가 될 때도, 세 개가 될 때도 있어 무척이나 상대하기에 까다로웠다.
하지만 아예 대응책이 없는 건 아니다.
“하아아앗!!”
좋은 생각을 떠올린 나는 두 개의 검이 몸을 스치고 날아간 타이밍을 잡아 우아랑이 쥐고 있던 검을 스파다에 걸고 튕겨냈다. 허공으로 튀어 오른 검이 회전했다.
“바보 같은 짓을!”
역시나, 녀석은 세 개의 검을 나에게 날렸다.
“망령 신체 발동.”
중얼거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개의 검이 묵직하게 몸을 꿰뚫는 ‘감각’만이 느껴졌다.
“큭….”
나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검을 던진 자세 그대로 잠시 숨을 몰아쉰 우아랑이 이내 내게 다가오며 품안에서 수갑을 꺼내들었다.
일단 상황을 확인했다.
린슬렛과 가웨인은 능숙히 자신에게 덤벼드는 할 킬러즈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역시나 기사의 힘인지 좀 더 여유가 있는 가웨인이 한 사람 쓰러뜨린 상태였다.
“의식 조종.”
그리고 나는 녀석의 코트를 조종했다.
“얌전히 체포되어라. 에스콰이어.”
가까이 다가온 우아랑이 내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쪽 수갑이 채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쪽으로 부른 망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뭣?!”
우아랑을 붙잡으라고.
“너 무슨…!! 미친 거냐!”
팔을 붙잡힌 우아랑이 저항했지만 망자의 신체 능력은 기절하기 전보다 상승한 상태였다. 연기를 마치고 무릎을 털고 일어난 나는 무력화가 된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
“너 이 자식, 무슨 짓을!”
“미안하다.”
나는 한쪽 손에 채워진 수갑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사과를 하며 녀석의 품안으로 손을 넣었다.
“뭐…? 큭, 너! 나를 희롱할 셈이냐!”
“아, 아니. 미안한데 그런 의도는 없어.”
당황한 나는 얼굴이 빨개진 걸 느끼며 녀석의 품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빨개진 채 괴로운 신음을 참아내는 녀석에 어쩐지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주, 주인님…! 역시 악당이세요!”
“….”
반박할 수 없군.
넬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나는 우아랑의 품안에서 조그마한 열쇠를 꺼내들었다. 이런 와중에도 녀석의 밋밋했던 가슴을 의식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열쇠를…?”
“그럼 달리 뭐겠어.”
우아랑의 말에 쏘아붙이듯 중얼거린 나는 수갑을 풀어 멀리 던진 뒤 주변의 상황을 다시금 확인했다. 전투는 아까보다 더욱 치열한 상황으로, 아까는 여유로웠던 가웨인도 한 녀석을 쓰러진 이후 전열을 가다듬은 할 킬러즈의 협공에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 바이킹에서 증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이킹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님!”
“큭?!”
넬의 이야기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눈앞을 스치는 검을 피해 뒤로 몸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중심을 잡지도 못한 채 나가떨어진 나는 머리를 잘못 부딪치고는 어질어질한 감각을 느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빌어, 먹을…!”
“에스콰이어!”
격이 다른 에스콰이어를 묶어두기는 무리인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 안쪽으로 달려드는 우아랑을 향해 옆에 쓰러져 있던 의자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녀석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순간, 자세를 바로 해 박차고 나가며 녀석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가당찮은 짓거리를!”
“크헉?!”
하지만 완력에서 상대가 되질 않아, 나는 도리어 녀석의 팔에 얻어맞고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올랐다. 그리고 짧은 순간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했으나 뭔가와 충돌하고 이내 몸이 회전하는 걸 느꼈다.
“큭!”
미약한 중력이 느껴졌다. 바닥에 처박힌 채 고개를 든 나는, 이내 스스로가 최고조에 도달하고도 멈추지 않는 바이킹의 위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머리가 제멋대로 흩날리며 나는 몸을 가누며 스파다를 손에 쥐었다.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 방어력이 17 감소했습니다. (현재 23)
“망령 신체의 쿨타임은?”
그렇게 말하자 팝업창이 시간을 표시해주었다. 아직 사용을 위해서는 2분 정도가 더 필요한 상황.
의식 조종으로 만들어낸 망자는 지속 시간이 끝나 다시 기절한지 오래였다. 따라서 사용하는 동안 소모되었던 정신력은 바닥을 치는 상태에서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나는 복부 쪽에서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검이 날아들어 그것을 잡아 바닥에 내리찍었다. 검붉은색의 칼날이 파르르 떨렸고 나는 그 다음으로 날아드는 우아랑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끝내는 둥그런 원을 그릴 기세로 바이킹은 점점 크게 흔들렸다. 주변의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깨 끝으로 파고드는 우아랑의 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 스테이지 출현 : 해상
“윽?!”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파도가 눈앞에서 갑판을 후려쳤다. 발밑이 흔들리는 감각이 더욱 생생해져 나는 놀라 주변을 확인했다.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배는 파도에 박살이 나는 상황이었다.
“어딜 한눈을 파는 거냐!”
하지만 우아랑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곧장 나에게 달려들었다. 의자를 박차고 뛰어올라 공격을 피한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의 충돌로 망령 신체가 없이는 녀석과 충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스테이지란 건…. 대체?!
“넬!”
“네넬! 주인님!”
“이 스테이지란 건 대체?!”
나는 쇄도해오는 우아랑의 검을 쳐내며 반대편으로 달렸다. 넬은 다급한 얼굴로 눈앞의 팝업창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보더니 금세 입을 열었다.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시면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해요!”
“그…. 클리어 조건은?!”
“스테이지마다 다르다는데요?!”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친 넬이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는 사이 반대편 끝으로 밀린 나는, 파도를 크게 뒤집어쓰고는 크게 기침을 했다.
우아랑의 검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불꽃이 튀며 허공에서 맞부딪치는 검, 그 빛을 잠재우듯 파도가 들이쳐 우아랑과 나는 거기에 흠뻑 젖었다. 나는 몸이 무거워지는 감각을 느끼며 수세로 몰려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래는 놀이공원의 바닥일 터.
아무리 이것이 현실적이라 할지라도…!
“이게 마지막이다!”
나는 도박을 걸어보기로 하고는 우아랑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튕겨져 날아갔다. 높이 올라선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나는 수면에 발을 디디기 직전 자세를 바로 잡고 무릎을 꿇었다.
- 스테이지 해제
- 승자 ‘우아랑’ : 일시적으로 버프 효과를 받습니다.
- 패자 ‘타나토스’ : 방어력이 하락합니다.
“크윽?!”
방어력이 감소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심장에 강한 통증을 느낀 나는 뒤로 밀려나며 무릎을 꿇었다. 예상대로 디멘션 커넥터가 구현하지 못하는 부분에 신체가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클리어 조건인 듯 했으나…!
현재의 방어력 수치는 제로. 재킷이 더 이상 상대의 공격에서 신체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끈질기군. 스컬.”
“그 스컬이라는 이름은 대체 뭐냐…?”
“할 킬러즈에서 지정한 일급 범죄자로서의 네 이름이다. 불만이 있다면 법정에 출두해서 이야기하시지.”
고압적으로 이야기하며 가까이 다가온 우아랑은 세 자루의 검을 한 손에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실린더가 튕겨지는 것처럼 소리가 나더니 검이 한 자루로 줄어들었다.
“트리니티. 샤픈 폼.”
저건…. 단순한 무기가 아닌 건가?
똑같은 형태였으나 한 자루로 줄어든 검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파다를 손에 들었다. 어찌되었건 한 방만 맞아도 뼈가 나가고 자동으로 디멘션 커넥터가 뇌에 셧다운을 걸어버릴 터였다. 가볍게 숨을 고르며 자세를 취한 나는, 다음 순간 도약해오는 우아랑의 검을 비스듬히 흘려 넘기는 식으로 피하려 했다. 극한으로 깎아낸 집중력은 녀석이 검을 휘두르는 동작을 느리게 받아들여 나는 자세를 취하고 옆으로 비켜서며….
하지만 다음 순간,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바이킹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검과 검이 닿아 불꽃이 튀며, 스파다의 칼날이 마치 나무토막마냥 세로로 잘려져 나가는 걸 보던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최고조에 이른 상태에 있던 바이킹은 무게와 운동 에너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앞으로 허공에 부웅 떠올랐다. 예상되는 궤적과 추락 지점을 저도 모르게 눈으로 그려본 나는, 이내 시간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예상되는 추락 지점에.
엄마를 잃어버린 것일까. 울고 있는 아이의 위로 허공에 솟아오른 바이킹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할 킬러즈가 대피시켜두었던 게 아니란 말인가?
아이의, 위로.
바이킹이.
떨어진다.
“으, 아아아아아앗!!”
나는 뇌가 텅 비는 걸 느끼며 반쯤 갈라진 검을 놓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여자애를 구해야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꽉 메운 터라 시야가 좁아졌다.
“티티! 잠…!”
어디선가 당혹감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여자애의 머리를 짓뭉개려는 바이킹을….
“크헉?!”
등으로 받아냈다.
살면서 겪어본 적이 없던 충격이 몸을 덮치며 나는 배의 앞부분을 짊어진 채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오르며 코피가 흐르는 걸 느꼈다.
- 척추/갈비뼈/골반뼈/그 외 다수 손상 탐지.
- 최저한도의 신체 수복에 들어갑니다.
- 수복의 영향으로 졸음이 쏟아집니다.
“닥, 쳐…!!”
“주, 주인님!”
나는 시야가 붉게 물드는 걸 느끼며 소리쳤다. 재킷의 내부에서 뭔가 변화한 건지 뒤통수와 목을 연결하는 부위가 뻐근해지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망령 신, 체…!!”
하지만 나는 그것을 견뎌내듯 스킬을 시전 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던 무게감과 충격은 사라지고 나는 무릎을 꿇었던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